[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이는 동아일보 1945년 12일 27일 기사의 제목입니다.
광복 뒤 독립정부 수립을 원했던 한국 사람들은
동아일보의 보도를 계기로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반대성명을 발표함은 물론 신탁통치 반대 집회를 온 나라에서 격렬하게 일으켰습니다.
일제강점기 35년의 고통을 끝내고 찾은 광복인데
다시 외국의 간섭을 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를 보도한 동아일보 1945년 12월 27일 기사
해냄에듀에서 펴낸 《한 컷 한국사》에서는
이 동아일보 기사는 물론 조선일보 등
다른 신문도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을 왜곡한 가짜뉴스를 보도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따르면 1945년 12월 미국ㆍ영국ㆍ소련 세 나라 외무장관들은
이 기사와는 다르게 “한국의 독립을 위한
조선 민주주의 임시정부의 수립, 임시정부 수립을 돕기 위한 미ㆍ소 공동위원회 개최,
미ㆍ영ㆍ소ㆍ중 네 개 나라가 공동 관리하는 신탁통치를
최고 5년 기한으로 실시한다.”라고 합의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국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한반도에서의 신탁통치는 오히려 미국의 일관된 정책이었고,
미국은 한국을 즉시 독립시킬 뜻이 없었다고 이 책은 지적합니다.
그런데도 동아일보의 이 오보는 결국 한국을 극단적인 좌우대립으로 몰고 갔고,
이 틈을 타 친일세력이 ‘모스크바 3상회의 찬성=신탁통치 찬성’으로 몰아세우고,
반탁을 주장한 자신들은 ‘반공=애국’으로 둔갑시켜
자신들이 남한을 휘어잡을 발판을 만든 것입니다.
언론의 기사 한 줄은 그래서 한 나라의 운명을 뒤바꿔놓을 수 있는 정말 종요로운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