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추락은 남의 일이 아니다… 삼성 반도체 1위가 노리는 것 (2) / 9/19(목) / 중앙일보 일본어판
세계 주요 반도체 회사 중 설계와 최첨단 제조 공정을 모두 하는 곳은 인텔과 삼성전자뿐이다. 하필 이 두 회사에서 울리는 경고 사이렌이 가장 크다. 지금 위기는 인텔인가, IDM 그 자체인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설계와 제조를 수직계열화하는 IDM은 잘 안 되면 이웃 사업부의 부진이 들불처럼 옮겨붙는다.
설계·제조·세트(완제품)까지 모두 내재화한 일본의 IDM이 2000년대 들어 그렇게 몰락했다. 인텔 파운드리에서 생산된 CPU 칩이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AMD 등 TSMC 제품을 쓰는 경쟁사에 뒤처지면서 고객들이 인텔 파운드리를 외면하고 인텔 CPU 경쟁력까지 발목이 잡혔다. 결국 인텔은 차세대 CPU '루나레이크' 생산을 자사 파운드리가 아닌 TSMC에 맡겼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행하던 공사장 청구서가 날아든다. 지난 4분기 인텔 파운드리(IFS)는 매출 43억 달러에 영업적자 28억 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1분기 13억 달러, 올해 1분기 25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적자폭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1980~90년대 이후 세계 반도체 산업계는 설계·제조·후공정을 분리하는 수평분업화로 나아갔다. 세상에 필요한 반도체는 다양해지지만 이를 제조하기 위한 설비를 갖추는 비용은 막대하기 때문이다. 당시 팹리스는 대형 팹(제조공장)을 보유한 회사가 우위에 있어 이들의 생산라인이 비었을 때에야 자신의 칩을 제조할 수 있었다. 1987년 모리스 장 박사는 이 점을 노려 '남의 팁만 만드는 회사'로 TSMC를 설립해 세계 1위 파운드리로 키웠다.
삼성과 인텔은 메모리와 CPU라는 확고한 성공신화를 발판으로 영토를 파운드리까지 넓히는 승부를 벌여왔다. 그러나 메모리와 CPU, 파운드리는 서로 전혀 다른 속성을 갖고 있는 사업이었다. TSMC 퇴사 후 인텔 파운드리 기술고문을 지낸 양광레이 교수는 "IDM이 파운드리 서비스를 하려면 완전히 다른 정체성이 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설계·제조·후공정이 나뉘어 각각의 분야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현재의 분업구조에서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IDM은 불리하다.
◇ '주력 초격차' 때가 IDM 전성기…삼성도 선택과 집중 고민할 때
미국에서는 인텔의 위기를 미국산 반도체의 위기로 본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4일 "미국의 반도체 제조를 부흥시키려고 인텔에 크게 베팅한 바이든 행정부의 야심찬 정책은 인텔의 경영난으로 큰 좌절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인텔은 미 CHIPS법 덕분에 85억 달러의 보조금과 110억 달러의 대출을 받기로 했지만 아직 실제 입금액은 제로다.
관건은 결국 집중이다. 과거 인텔의 메모리 사업 철수가 성공한 것은 이후 집중된 CPU가 인텔의 전성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IDM이 여러 가지 하는 것처럼 보여도 경쟁력은 주력 분야에서 생긴다. 인텔의 CPU와 삼성의 D램이 압도적 성능과 기술로 시장을 선도할 때가 IDM의 전성시대였다고 말했다. 인텔은 매각과 분사 등 모든 방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연말까지 인력의 15% 이상을 감축할 계획이다. 이미 간식과 헬스 등 사내 복지를 모두 중단했다고 한다.
삼성전자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5월 반도체 부문의 새 수장이 된 전영현 부회장은 지난달 사내 게시판에 현재를 모면하려고 문제를 숨기거나 회피하고 희망치와 의지만 반영된 비현실적인 계획을 보고하는 문화가 확산됐다고 지적하며 조직문화 대수술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