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월) 예레미야 34:8-22 찬송 246장
8.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9.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10.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하여 놓았더니
11. 후에 그들이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12.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
14.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15.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16.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
1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18.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19.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20.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이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21. 또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그의 고관들을 그의 원수의 손과 그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
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 (개역 개정)
- 노예 해방 언약을 변개한 유다인들을 향한 심판 경고 -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 함락 직전의 예레미야의 선지 활동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제34-38장까지 계속되는 일련 기사의 연속 부분으로,
시드기야의 운명에 대해 예언한 지난 말씀(1-7절)에 이어
노예 해방 언약을 변개한 유다인들을 향한 심판 경고를 말씀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을 상술하면,
먼저 8-11절은 시드기야 왕과 방백들과 백성들이 언약을 맺고 동족 노예들을
해방시켰다가 이를 변개(變改)하여 다시 끌어다가 노예로 삼은 사실을
12-16절은 노예 해방 언약을 변개한 유다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통렬하게 책망한 사실을,
17-22절은 노예 해방 언약을 변개한 유다 백성들을 향한 심판 경고로,
유다가 이방 민족의 침입을 받아 성들이 황폐화되며,
왕과 방백과 백성들이 살육당하게 될 것을 예언한 사실을 각각 기록하고 있다.
구약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부득이하게 동족의 노예가 되었을 경우
6년 동안만 노예로 삼고 제 7년에는 해방시켜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신15:12-18)
그러나 당시 유다인들은 이 규정을 무시하고
7년이 지난 동족 노예도 해방시켜 주지 않고 계속해서 노예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시드기야는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노예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드기야와 백성들이 회개하고
신앙적 결단을 내려 행한 조치는 아니었다.
즉 시드기야와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의 누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함으로써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직면하자 율법의 규정을 준수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려 뜨리고자 한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의도는 바벨론이 일시적으로 예루살렘 포위를 풀자
노예들을 다시 잡아 들인 사실로 입증된다.(11절)
즉 시드기야와 백성들은 유다의 구원 요청을 받은 애굽 군대의 진격으로
바벨론 군대가 일시적으로 예루살렘의 포위를 푸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친 것으로 알고 해방시킨 노예를 다시 잡아들였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을 맺을 때
그 언약을 성실히 지킬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짐승을 둘로 쪼갠 후 그 쪼개진 짐승 사이로
언약의 당사자가 지남으로써 언약 준수에 대한 성실함을 보증했다.(창15장)
즉 이러한 언약 체결 절차는 언약을 체결하는 쌍방이
언약을 준수함에 있어서 목숨으로 보증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이러한 관습대로 언약을 체결하고도 이를 변개하였다.
따라서 이 언약의 증인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변개한
유다 백성들을 엄히 징계하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이러한 본문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마음이 결여된 자들은
하나님이나 사람간의 언약을 맺고도
자신들의 이기적 목적에 따라 언제든지 변개할 수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을 파기하는 행위는
증인되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위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11절) 「후에 그들이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11절은 시드기야와 유다 백성들이 언약을 체결하고
동족 출신의 노비를 해방시킨 것이 그들의 본의가 아니었음을 증거하여 준다.
그렇다면 유다 백성들은 무엇 때문에 노비 해방 언약을 체결하였을까?
우선 그들은 예루살렘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여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사실 이들이 노비를 해방시킨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려는 데 참 목적이 있지 않았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른 것은 비단 노비 해방 규례만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전반적으로 거슬렀다.
그럼에도 이들이 많은 율법의 규례 가운데 하필이면
노비 해방 규례를 준수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이기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군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절대적으로 군사의 수가 부족하였다.
그들은 단 한 사람이 아쉬웠다.
그런데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도 노비들은 전쟁에 투입하지 않았다.
이에 시드기야와 유다 백성들은 동족 출신의 노비들을 해방시킴으로써
그들을 예루살렘 방비에 투입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유다 백성들이 동족 출신의 노비들을 해방시킨 것은
결코 신앙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노비 해방조차도 철저하게 자신들의 유익을 좇은,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맞으면 순종하는 척하면서도
자기 목적, 자기 형편, 자기 상황과 맞지 않으면 불순종으로 반응했다.
이러한 사실은 경건의 행위조차 얼마든지 사악한 인간들에 의해
이기적인 목적으로 오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악인들은 자기들의 사사로운 목적, 사리 사욕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경건의 행위조차도 자신들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얼마든지 오용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제사장들은 장사꾼들과 결탁하고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성전에서 파는 것으로만 제한하여 폭리를 취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제사를 자신들의 이기적인 탐심을 채우는데 이용하였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경건을 가장함으로써 백성들 위에 군림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경건을 자기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남용, 오용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관계없이
오직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교회 생활을 하는가?
오직 생계의 수단으로만 목회를 하는 사람,
정치적인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사람,
경제적인 이익을 바라보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 등
경건을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세속적인 복만을 기대하며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목적이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
이내 경건의 모습도, 신앙도 버리고 만다.
이들은 실상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한 것이 아니고
자기 사욕을 채우려는 일을 한 것뿐이다. 이는 우상 숭배자들과 흡사하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기복적인 성향이 있다.
곧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
곧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이지 우상을 성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면에서 이기적인 목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척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이들은
우상 숭배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죄와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순종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에
그분을 경외하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의해
구원과 은혜, 넘치는 복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자원함으로,
형편과 상황을 초월하여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의 형편이 좋아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형편과 맞아서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나(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가며
무엇을 위하여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가 진솔하게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딤전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