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성격상 경어체는 생략합니다.
얼마전 2007 K-리그 올스타전에 앞서 식전행사로 벌어진 황금발 클럽과 피스스타컵 연예인 올스타와의 '스페샬 매치'에서는 前 K-리그 득점왕 출신들로 이뤄진 황금발 클럽이 8:4의 여유있는 승리를 거뒀다. 물론 승패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경기는 아니었다. 궂은 날씨 속에도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찾은 많은 올드팬들에게, 이 게임은 왕년의 거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련한 향수에 빠져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에 충실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 역시 영원한 '미스터 현대' 김현석의 프리킥 골을 보면서 울산 공설 운동장을 수놓았던 그의 그림 같은 골들을 연상시켰으니깐 말이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이후 즐겁게 그라운드를 빠져 나가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 저 선수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의아심을 가진 사람이 필자 하나만은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슛돌이(!)를 통해 자주 TV에 얼굴을 비추는 유상철과 짬밥에 밀려 골키퍼를 본 유일한 현역 우성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축구장이나 언론을 통해 접하기가 힘든 얼굴들이었기 때문이다. K-리그 득점왕 출신이라는 이들 역시 '레전드'에 대한 예우나 발굴에 인색한 국내 축구계의 현실을 피해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사실 이러한 이벤트가 내년 올스타전에도 시행된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이러한 우리의 서글픈 현실을 보면서 자꾸 유럽 축구판이 눈 앞에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가보다. 유럽에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예우가 각별하다. 팀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어떠한 한 인물 - 그가 슈퍼스타든, 그저 그런 선수였든간에 - 에 대한 존중과 존경심은 우리네 사정에서 봤을 때는 참 부러운 문화다. 그 중에서도 바이에른 뮌헨과 울리 회네스(Uli Hoeneß)의 관계는 선진 축구 문화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많다.
바이에른 뮌헨의 제네럴 매니저, 즉 단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울리 회네스는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그 이름이 또 한 번 부각된 인물이다. 바이에른이라는 '유아독존'격 클럽의 단장이라는 직책과 더불어 특유의 독설과 까칠한 성격으로 인해 사방을 적으로 도배하고 있는 회네스는 이번 여름 루카 토니, 프랑크 리베리,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 대형 스타 영입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며 오래간만에 수완을 발휘했다. 이번 여름 선수 영입에 대한 업무때문에 다소 늦게 휴가길에 오른 회네스에게, 어쩌면 "책상에 앉아만 있는 돼지"라는 그동안의 비아냥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그는 바이에른 분노의 영입을 일선에서 성공적으로 진두지휘했다.
타 클럽 팬들의 비난과는 달리 바이에른의 팬들에게는 높은 신임을 받고 있어 '미스터 바이에른'으로 불리는 회네스는 이를 수치상으로 증명하듯 올해로 바이에른과 단장직으로만 인연을 맺은지 28년째가 된다. 28년이라는 세월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웬만한 프로 리그보다도 더 오래된 세월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전 생애보다도 길다. 그야말로 바이에른 현대사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무게감이다.
1952년 1월 5일 울름에서 태어난 회네스는 자신의 프로 커리어 대부분을 바이에른에서 보냈고 한때는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게르트 뮐러와 함께 바이에른의 공격진을 책임지기도 한 공격수 출신이다. 루카 토니와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조합이 '제 2의 뮐러-회네스 조합'이라는 독일 언론의 호들갑이 있을 정도로 당시 두 선수의 콤비네이션은 훌륭했다고 전해진다. 골문 앞에서의 득점력이 좋은 뮐러와 전방에서의 빠르고도 폭넓은 움직임을 선보이는 회네스의 조합은 그 당시로서는 공포 그 자체였다. 회네스는 바이에른에서만 239경기를 뛰며 86골을 넣었다.
회네스는 79년, 27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로랑트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마지막 시즌의 반을 바이에른의 지역 라이벌 뉘른베르크에서 보낸 회네스는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했고 이로 인해 선수 생활을 연장할 지, 아니면 다른 직책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지에 대한 기로에 서있었다. 그런데 당시 바이에른의 회장이었던 빌헬름 노이데커는 회네스에게 단장직을 제의했고 평소 이 직책에 대한 꿈이 있었던 회네스가 이를 수락하면서 그는 27살의 나이에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연소 단장이 되기에 이른다. 회네스는 바이에른 단장직을 수행하고 있던 82년, 독일 대표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하노버로 날아가던 중 비행기가 추락하는 대형 참사 속에서도 유일한 생존자로 구출되기도 했다. 어쩌면 아직 바이에른을 위해 할 것이 남아 있었던 회네스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하늘의 도움이 아니었을까.
회네스가 바이에른의 단장으로 함께한 지난 27년, 그의 팀은 15차례나 분데스리가 정상에 올랐고 8번의 포칼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UEFA컵, 인터컨티넨탈컵 등 그들이 이룰 수 있는 성과는 모두 다 이뤘다. 바이에른의 회장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회네스를 두고 "누구도 회네스만큼 업무를 잘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며 옛 동료의 능력을 높게 평가 했다. 그러나 회네스의 꿈은 단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당초 2006년 계약 만료 이후 현직에서 은퇴하려고 했던 회네스는 2009년 바이에른 회장 선거에도 공공연히 출마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2009년 임기가 끝나는 현 회장 베켄바우어가 완전히 물러나면 그 뒤를 잇겠다는 원대한 구상이다.
벌써부터 회네스의 바이에른 회장직 수행을 놓고 입에 개거품을 물면서 반대할 이들의 모습이 훤하지만, 어쨌든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한 때 팀을 대표하는 스타로서, 55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그 팀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네 실정에서는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다. 브레멘의 클라우스 알로프스, 도르트문트의 미카엘 조르크, 슈투트가르트의 호어스트 헬트와 같은 인물들도 회네스와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다. 그들은 선수로서, 그리고 구단 관계자로서 평생 한 팀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한다. 자연스럽게 선수들과 팬, 그리고 구단을 한 곳에 묶을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최대의 장점이다. 보통 그러한 응집력은 클럽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회네스가 바이에른에서 이뤄냈던 수많은 업적들처럼 말이다.
우리도 이러한 모습을 따라가려면, 현재 성남에서는 신태용, 포항에서는 홍명보, 울산에서는 김현석과 최인영, 서울에서는 윤상철, 부산에서는 김주성, 수원에서는 윤성효와 박건하 같은 인물들이 팀에서 한가닥을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테프와 구단 행정 및 관계자들을 통틀어도 이러한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이름을 찾기는 쉽지가 않다. 설상 있다고 하더라도 그 비중이 미비해 K-리그라는 제도권 사회를 바꿔놓을 만한 파급력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대표팀에만 환장하는 특유의 축구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난 적어도 홍명보가 파리아스 감독 체제에서 다소간 위기를 겪고 있는 포항을 위한 의미 있는 행보를 걷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유럽식 클럽 구조가 100% 옳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다. 또한 그것이 100% 옳다해도 문화적, 그리고 경제적 태생의 근본 자체가 틀린 K-리그에 100% 이식할 수 있다고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옆 동네 프로야구에서는 이러한 팀의 '번지수 찾기'가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 팬들에게 옛 추억을 제공할 수 있는 김재박의 LG 감독 부임은 성적을 차치하더라도 마케팅과 흥행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는 평이다. '돈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난 몇 년간 타 팀의 선수 영입을 통해 전력 보강에 나섰던 삼성은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을 앞세워 "프랜차이즈 스타 관리에 인색하다"라는 기존의 악평을 일거에 뒤집었다.
어쩌면 짧은 역사를 탓할 수도 있겠다. 지도자 양성 과정 측면에서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기는 힘든 국내 현실을 감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을 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극명히 나타날 것이다. 없다고만 불평할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지역 연고제를 뿌리로 두고 있는 K-리그라면 이러한 뿌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건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30년 넘게 걸음마 수준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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