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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나 좋다! 어깨춤 더덩실! | |||||||||||||||||||||||||||||
황민호 기자의 현장체험 - 전래놀이연구가 고갑준씨와 안내 월외리 주민들의 공동체 복원 놀이한마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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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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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노동은 놀이였다. 놀이는 바로 삶 그 자체였다. 노동과 놀이가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노동과 놀이의 분리는 노동의 신명을 앗아갔고, 놀이의 의미도 동시에 빼앗았다. 예로부터 우리는 음주가무를 즐기던 민족이었다. 늘 일과 연관돼 춤과 노래를 불렀고, 술을 곁들였을 뿐, 그것이 따로 놀지 않았다. 산 굽이굽이마다, 강 건너 건너마다 사람 사는 곳곳에는 자연그대로를 닮은 독특한 놀이문화가 숨쉬었다. 놀이는 바로 새로운 창작이었고, 자연을 닮은 우리의 성정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TV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TV는 광장에서 맘껏 뛰놀고, 소통하고, 공유했던 우리네 놀이문화를 문을 꼭꼭 잠근 채 모두 안으로 불러들였다. 컴퓨터의 등장은 그나마 집 안의 소통마저 앗아갔다. 이제 각자의 방안에 들어가 모니터와 대화하기 바쁘다. 점점 파편화 되고, 개별화 됐다. 기운이 서렸던 광장은 사라졌고, 음습한 밀실만이 가득했다. 거기서부터였다. 전래놀이연구가 고갑준(41)씨와 안내면 월외리 주민들이 힘을 합쳐 준비한 전래놀이 한마당 대잔치는 잃어버린 놀이, 빼앗긴 놀이를 다시 되찾자는 기분좋은 몸부림이었다. 그것은 이제 시작을 알리고 기나긴 여정을 암시했다. 이제 겨우 출발점을 찍었을 뿐이다. 모여라! 놀고 싶은 사람 모여라! 안내면 월외리(이장 이채준) 새 마을회관에 지난 1월29일 오후 4시 가족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오늘 초대된 가족은 모두 10가족. 하지만, 눈발이 휘날려 모두 올지는 고민이다. 청성면 신두영씨 가족이 먼저 도착했다. 그 다음에 이원면 민경천씨 가족, 옥천읍 이원식씨 가족, 김성장씨 가족, 배재순씨 가족, 안내면 김경아씨 가족, 안남면 주교종씨 가족 등이 줄을 잇는다. 안내 풍물단이 운을 띄운다. 땅을 기운차게 밟으며 풍악을 올린다. 추워서 떨며 웅크렸던 몸도 그 풍악에 저절로 펴지면서 어깨춤이 들썩인다. 얼어붙은 땅의 기운을 다시 되살리며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래! 얼씨구나! 좋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갖가지 옛날 전래놀이가 즐비하다. 마을 아이들은 참고누, 업기고누, 이사고누 등 고누 시리즈에 몰입해 있다. 우르르 몰려들자 꽤 부산하다. 2층으로 자리를 옮겨 가볍게 실뜨게 놀이를 한다. 매듭지어진 실뭉치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게임도 여러 가지, 고갑준씨의 말에 따라 가족들과 함께 실뜨게 놀이를 한다. 그리고 고갑준씨가 만든 우리카드놀이. 전래동화 12편이 담겨진 카드로 놀 수 있는 놀이가 수십가지가 넘는다. ‘꼬리따기’, ‘주세요’, ‘코코코’, ‘도둑경찰’ 놀이 등 쉴 새 없이 연이어 논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놀이방법을 가르쳐 주며 몰입한다. 그 사이 몇 몇 어른들은 아이들과 고누놀이와 ‘뒤집기 놀이’에 열중한다. 노는 모습이 영락없이 동심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어둑어둑해지자, 장소가 마을회관 너른 마당으로 옮겨졌다.
모닥불이 피워지고 안내면 월외리 주도완씨가 준비한 쥐불놀이 깡통이 여기저기서 희번득 거린다. ‘불놀이야!’ 아이들은 불깡통을 들고 공중에서 휘휘 돌린다. 선욱(안내초4)이와 성현(안내초6)이도 이채준 이장의 아들인 태양이도, 지현(삼양초2)이도 불깡통을 들고 신나게 돌린다. 마을회관 멍석이 깔린 찜질방에서는 뒤집기 놀이가 한창이다. 이원식씨가 동네 아이들과 멋지게 한판 승부를 벌인다. 바둑판 모양의 판에 바둑알보다 큰 원판을 놓으며 수싸움에 정신없다. 딸들과 같이 온 민영규(74·동이 세산리)씨도 마을 주민 황연자(63)씨와 다시 옛날로 돌아가듯 실뜨게 놀이를 한다. “우리 옛날에는 푸대실과 광목실로 만들어 실뜨게 놀이를 했지. 이거 손가락 운동도 되고 좋지, 옛날 생각나는구만.” 박정삼(48·안내 월외리)씨와 운규(안내중1)는 고누 중 제일 재밌고 머리를 써야 한다는 참고누에 흠뻑 빠져 있다. 누가 놀이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박정삼씨는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가며 한 수 한수 놓는다. 운규는 놀이방법을 쉽게 배웠다.
모닥불에서 고구마를 한참 굽고 빙 둘러 모여 어깨동무를 한 채 대동놀이를 한바탕 한 가족들은 고씨가 준비한 폭죽을 하늘 높이 터트린다. ‘월외리 하늘에 잔별도 많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월외리 밤하늘 찬 공기가 스며들 무렵 가족들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신나는 동요놀이 대회다. 영동에서 온 승연(영동중2)이는 기타를 들고 왔다. 쉽고 재밌지만, 모르는 노래가 많다. 하나둘씩 따라부르니 참 재밌는가 보다. 즉석에서 이뤄진 가족노래자랑, 준비한 상품도 받으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월외리의 오후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고갑준씨와 월외리 주민과의 만남 사그라든 우리 전래 놀이의 싹을 다시 틔우겠다고 다짐하며 올해 첫 사업으로 벌인 것이 월외리 주민과의 전래놀이 한마당 잔치였다. 그의 이런 제안을 월외리 이장인 이채준씨가 흔쾌히 승낙했고, 월외리 마을 주민들도 반갑게 받아들였다. 고갑준씨는 자비를 털어가며 행사를 준비했고, 안내면 월외리 주민들도 진심어린 마음으로 가족들을 환영했다. 옥천민예총 식구들도 같이 와서 월외리 주민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고갑준씨는 놀이를 통해 꿈을 꾼다. 그가 거창하게 말한 ‘놀이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의 실현이다. 그는 놀이에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흐름, 문화현상, 그리고 사람의 심리까지 놀이에 담겨있다 생각한다. 우리 전래놀이를 통해 다시 노동과 놀이가 하나 되는 것을 꿈꾸는 것은 물론 서로를 배려하는 인간존중의 사회와 자연과 함께하는 놀이를 만들려 애를 쓴다. 고갑준씨는 앞으로 각 마을마다 작은 잔치를 많이 할 생각이다. 안내 월외리의 잔치는 그것의 시발점이었다. 고갑준씨를 넉넉하게 받아들인 안내면 월외리도 꿈을 꾸긴 마찬가진다. 이제 황량해진 농촌마을을 정말 살맛나는 마을로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흙살림 회원으로 직접 자연 양계를 하며 친환경 농업을 실행하고 있는 안내면 월외리 이채준 이장이 마을에 대한 구상을 그려내고 있다. 농림부에서 지원하는 ‘농촌체험마을’에 곧 계획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거기에는 고갑준씨의 놀이프로그램도 들어가 있다. 고갑준씨와 월외리 주민들은 그렇게 만났다. 단지 장소와 시간을 제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간의 장점을 받아들이며 아름답게 엉킬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날 초대된 사람들은 정말 좋은 후원자가 될 것이다. 둘은 다르지만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살맛나는 세상, 풀뿌리 민초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 텔레비전의 환상에 매몰되지 않고, 컴퓨터의 현란함에 주눅들지 않고 자신들만의 공동체 놀이를 가치있게 여기는 세상, 그리고 남녀노소가 놀이를 통해 즐겁게 소통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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