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훈련된 대표선수가 되라
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10: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10: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10:4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10: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10: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번에 체육대회를 지켜보면서 얼마나 재미있던지 너무 웃어서 턱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참 기뻐하는 모든 분들의 미소를 보니 행복했습니다.
게다가 우리 교회 남자 성도님들만 축구를 잘하는 줄 알았더니 여성도님들도 참 즐거워 하면서 축구를 잘 하시더군요.
참 우리나라 사람들이 축구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영향이 언제부터였냐고 묻는다면 모두들 공통적으로 2002 월드컵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2002년 월드컵 축구가 우리나라에서 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내 평생 이렇게 흥분되고 행복한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16강에서 8강으로 진출할 때는 짜장면 집 주인은 짜장면을 공짜로 주는가 하면 냉면집에서는 냉면을 공짜로 돌린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신나면 저럴까?
이런 것을 보면서 축구 선수 몇 명 물론 거기에 다른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도 몇 사람만 잘 훈련되면 나라 전체를 흥분 시키는 것은 문제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여기서 저는 왜 예수님께서 이 땅 오셨을 때, 열두 제자만 부르셔서 훈련시켰을까?하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의인 열명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찾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열한 명의 축구선수가 나라 전체를 기쁘게 한 것만 보아도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많은 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구나! 그것보다도 정말 뛸만한 선수가 있는가가 중요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잘 훈련된 몇 사람이 교회를 교회답게 이끌어가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고, 세상을 세상답게 만들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세상을 기쁘게 하며, 신나는 세상으로 만들어갈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을 흥분하며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대표선수가 되겠습니까?
여기 열두명의 대표선수가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저는 우리 청년들이 경기장에서 구경하는 구경꾼이기 보다는 그것보다도 이왕 하나뿐인 인생이라면 후보선수도 아닌 대표선수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잘 훈련된 대표선수로서 하나님의 일들을 능력있게 감당하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많은 사람들의 심령을 변화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예수의 복음으로 행복하게 하는 믿음의 사람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제목을 이렇게 잡아 보았습니다.
잘 훈련된 대표선수가 되자.. 이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선수들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첫째로. 기초실력을 다져야합니다.
우리나라는 기초를 튼튼히 쌓지 않음으로 큰 피해를 본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그래서 무너졌고 성수대교가 그래서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은 부름 받은 제자들을 얼싸안고 울타리 안에서만 비닐하우스 안에서만 자라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열두명의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각 고을과 마을을 다니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복음만을 들고 나아가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훈련을 감당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것이라고는 한가지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가서 전파하라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는 메시지와 주님의 능력이 너희들과 함께한다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그대로 실천한 사람들은 주님의 약속이 그대로 생활가운데 적용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생활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는 기초 훈련을 한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기본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할 일, 가장 기초가 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없어도 예수님은 예수님과 같은 똑 같은 사역을 제자들이 감당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조건 제자들을 사랑하고 용서하셨지만 제자들이 마땅히 감당해야할 기본적인 것들을 못할 때에는 무섭게 책망하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주 야단을 치셨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느냐? 말씀하시며 저희의 믿음이 없음을 한탄하시고 꾸짖으셨다고 복음서 곧곧에서 사건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는 장면들이 등장하는 것을 복음서를 읽으면서 여러번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 시킴에 있어서 기초가 튼튼한 자들이 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건물에 있어서 기초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지하철 붕괴사고와 같은 엄청난 피해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초가 튼튼한가 신앙적 내면적 기초가 잘 다져져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 인생을 성공하는 인생으로 이끌어가느냐 그렇지 않은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기초훈련에 철저하게 실패했던 비참한 왕이 성경에도 등장합니다.
그는 바로 이스라엘 초대왕이었던 사울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왕이 스스로 작은자라 여겼을 때에 사울 왕을 하나님께서 왕으로 삼기를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 버리신바 되었다고 선언하면서 즉시 다윗에게 가서 기름부음으로 이스라엘 왕으로 삼은 것을 보게 됩니다.
사울이 버림받게 된 그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사울 왕이 왕이 된지 얼마 안되어서 신앙의 기본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전쟁에서 어찌하든지 이겨서 백성들의 영광을 얻으려는 욕심 때문에 그만 제사장이 해야할 영역인 제사드리는 일을 자신이 끝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하나님의 축복에만 관심이 있지
하나님께 주일성수하며 예배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기를 성공하게만 하신다면 헌신하겠습니다고 말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예수님을 믿어 뭔가 덕좀 보겠다는 자와 다를바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까?
기초가 된 사람 즉 기본을 갖춘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신앙의 기본입니까?
주일을 성수하는 것이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십의 일을 드리는 것이 물질 관리의 기본입니다.
믿음의 기초인 구원을 확신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의 기본입니다.
기본만 잘 지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12명의 대표 선수가 나옵니다.
여러 가지 환경가운데서 각자 다른 형편에 처해 있으면서 이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교회로 부르심을 받아 훈련과정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이미 신앙의 기초를 쌓는 일에 실패한 자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가룟유다입니다. 그는 재정을 도둑질 하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것과 자기의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지성을 가진 무분별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어떻게 이런 자가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볼 때 결론부터 바라보기 때문에 예수님이 혹시 실수한 것 아닌 가? 하는 생각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뽑기 전에 그냥 무작위로 뽑으신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성경을 보니 철야 기도를 하시고 뽑으셨다라구요
아니 여러분 성경에는 안나옵니까?
어디에 나오냐면?
눅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6: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을 뽑을 때에도 선지자 사무엘 통하여 하나님이 세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런 가룣 유다나 사울 같이 어차피 버림 받을 자들을 왜 지도자로 세우셨을까요?
여기서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기대하고 계셨음을 이 세우심의 사건들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잘 하겠지 기대하시고, 너는 할 수 있어!
너도 훈련받으면 새 사람이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부르신 것입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길 희망하셔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칼빈의 예정론을 오해 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갸룟유다는 이미 하나님이 버린 자라서 또 사울을 이미 버린 자라서 그런 결론을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그런 분들은 칼빈의 예정론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분들은 알라신을 믿는 사람들의 숙명론을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에 온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세리 마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국노라 부르며 혐오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한마디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비양심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혈기를 잘 내는 성격 파탄자였습니다.
금방 흥분하고 주체할 수 없어서 나서기 좋아하는 재수 없는 인간형이었습니다.
열심당 시몬은 국가적인 민족 투쟁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애국자인 시몬과 매국노인 마태는 서로 큰 적이 될 수 있는 섞이지 아니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외에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요한은 너무 마음이 유약하여 눈물이 많은 사람이어서
사내다운 면이 없다고 어머니의 걱정을 끼치는 사람이었고
도마는 냉철한 이성을 가졌지만 남을 의심하는 습관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도저히 하나될 수 없으며 도저히 변화될 것 같지 않은 자들을 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로 삼으셨을까요?
저 같으면 유능한 관리들을 제자 삼아 지도자로 썼을 텐데요.
바로 그들이 변화되기를 바래서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변화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위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에게 가졌던 비전도 마찬가지일 것 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기초를 제대로 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훈련 과정 속에서 그는 매번 그 기초를 자기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근거를 둠으로 그는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숙명론과 예정론이 다른 것이 바로 이 차이인 것입니다.
숙명론은 그렇게 인생을 정하셨다고 말하는 것이고
예정론은 하나님이 선한 뜻에 의해 창조하셨지만
인간의 죄와 허물 때문에 거기에 못미치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는 허용적으로 작정하셨다고 조직신학자들이 어려운 말을 같다 붙인 것입니다.
허용적 작정이란?
하나님은 죄를 만드시는 분은 아니지만 인간을 로봇처럼 프로그램에 의해 살게 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발적인 그 순종보다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죄를 짓는 것에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허용적으로 작정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그 자유 의지를 인간이 죄 짓는 쪽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실수는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니라 죄인인 인간이 망할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자이었지만 그는 변화를 위해 자신의 기초를 예수님이 훈련하시는 신앙의 기본 위에 두지 않고 여전히 옛성품인 죄성에 근거해 살다 보니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의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사탄이 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사탄의 자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훈을 얻습니다.
오늘날 우리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청년들이 많이 있지만
기초를 제대로 쌓지 않는다면 무너지고 마는 인생!
시간낭비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나는 정말 기초가 단단한 사람인가? 스스로 점검해야합니다.
히딩크 축구의 장점은 철저히 개인을 분석하였고 기초 체력을 잘 다졌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히딩크 같은 감독을 찾지 못해서 누구를 세울지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신앙의 기초가 믿음 위에 두지 아니하고 사람에게 두고, 하나님 말씀에 두지 아니하고 자기 감정에 둔다면, 그 믿음은 헛것이요, 반석위에 지은 집이 아니라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바로 하나님 앞에 기초를 제대로 쌓으며 제대로 훈련받은 지도자가 되셔서 하나님이 누구에게 이것을 맡길까?고민하실 때에 바로 신앙의 기초가 바로된 너라면 할 수 있겠구나!하며 기뻐 쓰임 받을 수 있는 그런 믿음의 백성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 훈련된 하나님 나라 대표선수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NQ지수를 높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처음부터 철저히 신뢰함으로 제자들은 기초 실력을 나름대로 쌓아을 뿐 아니라 하나 될 수 없었던 자들이 서로 다툼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양보하며 용서하면서 예수님 안에 하나가 되어간 것을 보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향하여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다라는 말입니다.
흔히 경상도 일부 지역사람들은 ㅅ과 쌍 시옷 발음을 구분못합니다.
그래서 비산 살밥먹고 사움질이나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시옷 발음을 유일하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뭔가하면 싸가지란 단어입니다.
왜 그럴까요?
싸가지는 하루아침에 얼렁뚱땅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싸가지는 싹수의 남도 사투리라고 합니다. 싹이 막 나오는 처음 상태를 싹수라고 합니다.
싹수란 보통 어떤 일이나 사람의 앞길이 잘 트일 징조나 낌새의 의미로 쓰입니다.
그러다보니 싹수가 있다! 없다 !라는 말은 각각 최고의 칭찬, 최악의 욕이 되는 셈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예의없이 함부로 대하고 혼자 잘난 척하는 사람, 혼자만 잘살겠다고 설치는 싸가지 없는 사람에게 신종 용어로 NQ가 낮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NQ란 네트워크 지수를 말합니다. 쉬운말로 표현하자면 얼마나 인간관계를 잘 맺고 있는가?
공동체 생활을 얼마나 잘 하고 있느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공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는가를 평가하는 지수를 말합니다.
이것은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김무곤씨의 NQ로 살아라라고 하는 책에 등장하는 신종 용어 입니다.
그 책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Y란 한 청년이 건축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 기업 건설 회사에서 7년간 근무한 뒤 개인 사무소를 열어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대주였습니다. Y는 지금은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을뿐더러 감리인, 현장 인부들과도 격의 없이 지냅니다. 그러나 그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사실 IQ가 높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NQ지수는 매우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명문 고등학교와 좋은 대학에 수석 입학해서 줄곧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집안도 넉넉하고 부모님들도 사회명사였습니다.
실력이 특출하니 졸업도 하기 전에 이미 대기업에 스카우트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부러울게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래가 보장된 유능한 건축가 Y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이었습니다. 늘 1등만 해온 사람의 교만이 몸에 베어있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을 무시하였고 언제나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으며 꼭 필요한 사무적인 이야기 외에는 다른 사람과 대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y자신은 한번도 그런 생활이 불편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봉급 받는 이상으로 열심히 일하는 그에게 성공은 따논 당상이었습니다.
물론 평소 남에게 폐 끼치는 일도 별로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잘 될 것 같은 일이 꼭 끝에 가서 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이 나빠서겠지 하며, 그래도 나는 똑똑하기 때문에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안주하던 어느날 !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가 그 당사자인줄도 모르고 자기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는 것입니다.
Y라는 인간 이야기 들어봤어? 우리 부서가 아니니까 다행이야 !
그 인간 얼마 못 가겠더라고! 들어보니 정말 싸가지 없는 인간이더구먼!
능력이 있다며? 능력있는데 뭐 당장 어떻게 되기야하겠어?
능력있는 사람이야 이 바닥에 널렸지 어디 저 뿐인가?
그리고 이 바닥 일이 어디 능력만으로 되냐?
그렇게 잘났으면 왜 혼자서 건축일 하지? 재수 없는 놈 이야기 할 것도 없지만!
자기를 모르는 사람조차도 그런 이야기를 하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평판이야
들어보나 마나 뻔하겠다 싶어 자기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Y는 그 때까지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쓴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할 일만 잘 해내면 그걸로 보람을 느꼈고 기분이 좋았던 것입니다.
동료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건 대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득 사람 사는 집을 짓는다는 건축가가 다른 사람에게 인간 취급도 못 받고 싸가지 없다는 이야기나 듣고 있으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 때부터 Y는 스스로의 생활 패턴을 바꾸기 위해 노력합니다.
먼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 자세를 낮추고 그러니 상대방도 점점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로 작정하고 실천한 것입니다.
Y가 인간관계의 기초를 다시 쌓으면서 NQ를 높이자 y에게는 싸가지가 생긴 것입니다.
사람들은 Y가 싹수가 보이는 유망한 건축인이라고 칭찬하기 시작했고 성공한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같이 교회 안에서 NQ의식이 있습니까?
청년인 나 자신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각이 어떠합니까?
Y와 같이 내 할일만 하고 교회안에서 소위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통한다면 그 사람은 교인이란 소리는 들어도 세상을 변화시킨 제자가 되기엔 부족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제부터 훈련되어야합니다. NQ를 높이는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요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NQ적인 생각을 많이 합니까?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을 많이 합니까?
요즘 어린이들의 놀이 문화와 자라온 환경이 이렇게 사회를 병들어 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중에는 에버랜드같이 놀이기구와 같은 기계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들을 태워주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 옛날 어른신들의 어렸을 때는 어떠했습니까?
놀이기구가 나를 태워주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내가 물고기를 잡고 놀고, 내가 뭐든지 주도하면서 놀이를 만들어서 놀지 않았습니까? 동네 아이들이 또한 함께 어울려 공동체적인 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이것이 NQ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돈을 내어야만 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추구합니다. 돈이 있어야 인생이 재미다고 생각합니다. 놀이 동산에서 같은 돈을 내고 같은 열차를 탔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함께 즐거워하지만 그들과의 만남은 놀이동산에서 일회적인 만남의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기적인 사회 개인적인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말해주는 단면적인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NQ를 높임으로 우리 청년들의 삶이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삶에서 벗어나
인간관계의 기초와 신앙의 기초를 제대로 튼튼히 쌓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셔 하나님 나라의 대표선수들로 잘 훈련되어 이름을 빚내는 천국시민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그만 이라는 생각을 가진 싸가지 없는 사람이 있다면 큰 일입니다.
싸가지가 없으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청년들은 얼마나 싹수가 있습니까?
싹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 없어도 있는 것처럼 말하시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년여러분! 하나님이 보시기에 신앙의 기초를 제대로 쌓으며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NQ의식을 높임으로 싹수가 있으며 건강한 믿음을 지닌 하나님 나라의 대표선수로 선발되셔서 주님의 일들을 능히 감당하고도 남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그렇게 훈련되시는 청년시절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대표선수는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축구로 말하자면 골을 넣어야 능력이 있습니다. 잘 싸워도 이기지 못하면 국민들의 탄성을 듣게 됩니다. 축구선수는 골을 넣고 드리볼 하고 방어하는 능력이 있어야하고 달리기 선수는 달리기 능력이 뛰어나야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연습 또 연습 훈련의 반복을 통해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제자란 용어는 영어로 디싸이플린 훈련되는 것을 말합니다.
헬라어로 마데테스 학생 배우는자의 뜻이 있습니다. 그 어원은( 만딴노-동사-어떤 방법으로든지) '배우다', 이해하다 <고전 4:6>동. to learn; 1)배우다, 평가되다, 지식을 증가시키다, 사용과 실행을 통해 배우다, 습관이 되다
즉 제자들은 모든 면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실생활가운데 적용되도록 아예 습관이 되도록 훈련받는 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삼년간 제자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삶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병든자를 고치며 눈먼자를 뜨게하고 앉은 뱅이를 일으키시며, 마음이 상한자를 고치며, 포로된자를 자유케 하며, 귀신을 내어좇는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왜 이런 일들을 하셨습니까? 바로 천국복음과 함께 죄로 말미암아 죄의 저주와 죄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병든 인생을 고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죄를 사하러 오셨을 뿐 아니라 죄에서 구원하셔서 죄의 영향력아래 구속받던 죄인들이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 동시에 귀신에게 얽매여 있고 여러 가지 죄로 인한 죄의 결과들인 질병에서 놓임을 받게 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능력을 지니고 오신 주님은 같은 명령을 내리십니다. 제자들도 이와같은 능력을 가시고 각 고을과 마을로 가라고 파송하고 계시는 모습을 본문을 통해 보게 됩니다.
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본문의 앞뒤를 묶고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입니다. 제자들이 소유하기를 원하셔서 세상에 파송하면서도 계속해서 그 내용을 상기시키는 예수님의 핵심적인 말씀은 무엇입니까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능력을 주마! 그 능력을 지니고 가야 너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대표선수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기초적인 신앙, 싹수가 있는 신앙, NQ의식을 높이는 신앙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오늘날 사회는 개인의 능력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한 사람을 채용할 때에도 어떤 능력, 어떤 재능이 있는가 회사에서 이 사람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가를 평가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 청년들이 사회에서 능력 있는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소유해야합니다.
그것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변화 산에 올라가셨다가 내려왔더니 제자들이 헤메고 있었습니다. 병을 고치지 못하여 헤메고 있는 상황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시며 병을 고쳐 주셨고 귀신을 물리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이 이 사건 후에 조용히 질문하였습니다. 예수님 왜 우리는 못 고쳤습니까?
예수님은 능력이 없어서이다. 기도와 말씀 외에는 이런 유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되지 않으면 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실제적인 가르침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기도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 끝까지 달려가 목숨을 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주력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부활하신 후 기도함으로 성령체험을 한 후에야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예수님은 끊임없이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때는 밤을 세워 기도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부담이 없었을 것 같지만 인간의 몸과 한계를 가지시고 예수님도 태어나셨기에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셨기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누워서 자고 싶고 배고플 때 먹고 싶은 것들이 예수님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은 쉽게 편한하게 십자가를 지셨으리라고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고통 가운데 십자가를 지셨고 그러므로 예수님은 고통과 아픔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셨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밤새 기도하실 때 무엇을 놓고 기도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무엇을 놓고 기도하셨습니까
예수님의 기도 제목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만나는 영혼 내가 훈련시키는 영혼이 변화되기 위하여 기도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부흥이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변화가 없는 시대에 오셨던 예수님은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이 영혼들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고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내가 감당해야할 십자가를 질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영혼들을 떠올리면서 내가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저 영혼이 죄 가운데서 그냥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죽을 텐데 그 안타까움을 가지시고 눈물의 고통을 안으시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이와같이 기도하셨다면 나약한 인간인 우리들은 더 많이 기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교회에서 청년들이 중국선교회를 나갔습니다. 거기서 눈먼 장님이 따라오길래 불쌍한 마음이 들어 청년중 하나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눈이 떠진 것입니다. 누가 제일 놀랬겠습니까? 눈을 뜬 소경도 놀랬겠지만 기도한 청년이 제일 놀랬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이와같은 역사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으로 훈련되어져야합니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날 신문 기자가 링컨 옆으로 다가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의 놀라운 성공과 존경받는 삶의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링컨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다른 사람들보다 실패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나는 실패할 때마다 실패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배웠고 그것을 징검다리로 활용했습니다.
사단은 내가 실패할 때마다 이제 너는 끝장이야 라고 속삭였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실패할 때마다 이번 실패를 거울삼아 더 큰 일에 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사단의 속삭임 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지요.
링컨이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드는 신앙의 인물이 되기까지 수많은 역경과 실패가 있었습니다.
링컨은 크고 작은 선거에서 무려 일곱 번이나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고, 사업에도 두 번이나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10살 때 잃었으며 20살에는 누이 사라마저 세상을 떠났고 27살에 결혼 약속을 했던 연인 앤 메이가 갑작스런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42살과 53살에는 각각 둘째 아들 에드워드 5살과 셋째 아들 윌리엄 12살짜리를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링컨의 인생은 정치가로서, 사업가로서 , 가정적으로 어느 것 하나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링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선거에서 사업에서 가정에서 아픔과 실패와 장애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때마다 실패를 통해 오히려 디딤돌로 바꾸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실패를 통해서 지혜를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실패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 음성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자주 넘어질 때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외쳤습니다.
1980년 2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공익 광고의 내용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런 사나이를 생각해 보십시요.
그는 초등학교를 9개월 밖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는 잡화점을 경영하다 파산했는데,
그 빚을 갚는 데만 무려 17년이 걸렸습니다.
그는 주 의회 의원 선거에서 낙선했고,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낙선했으며
부통령 선거에서도 낙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이름을 항상 A. 링컨이라고 서명합니다.
무엇이 에브라함 링컨을 수많은 실패와 역경에도 불구하고 A학점 인생이 되게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려서부터 훈련되고 기도로 무장되어있던 링컨은 하나님 앞에서 A학점인생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저력이 바로 미국을 이끌어간 대통령으로서
존경받는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서 세계를 움직이는 백악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백악관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와 말씀으로 능력을 힘입어야합니다.
거져 주어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역경이 있고 실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잘 훈련된 청년이 이 중에 몇 명만 있어도 우리 교회가 변화되고 송탄이 변화되며 세상이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말입니다.
그 때마다 기도로 말씀으로 무장한다면 아브라함 링컨과 같이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제자들에 주셨던 능력과 같이 귀신을 내어 쫓으며 앉은 뱅이를 일으키는 대표 선수가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훈련 받아 능력의 사람이 되겠습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해야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방식대로 살아야합니다.
학창시절 달리기 선수였던 고든 맥도날드는 그의 책에서 어떻게 능력의 사람으로 훈련 되어져야할지 그 영적인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육상 선수 선발에 뽑힌 고든은 골드 버그 감독의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됩니다. 잘 짜여진 훈련이 고되었지만 프로그램이 짜여질 때마다 모두들 무척 싫어했지만 선수로 서 부름 받은 사람들은 그의 지시를 따라 훈련받아야했습니다.
때로는 체중을 감량해야했고 체력 강화훈련은 지옥같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이 그의 주문에 순종해야한다는 것을 인식하는데는 같이 했기에 고되지만 승리의 결과와 꿈을 바라보며 뛰었습니다.
감독은 늘 어떻게 하면 실패하는지 바톤을 쥐는 방법에서부터 결승점에서 실패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경우를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경기를 분석해 주었습니다.
골드버그 감독은 고든을 크로스 컨츄리 팀 8천 미터 계주에 뛰게 했습니다.
감독은 너의 끈기가 길러질 것이고 네 마음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싸움에서 대처하는 데 유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경기를 치룬 후 어느날 고든은 감독과 함께 400미터 출발선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때 경쟁자의 이름은 카를린이었습니다. 감독은 고디야! 출발선에서 뛰어나올 때 완전히 긴장을 풀고 있어야한다. 카릴린의 어깨에 맞춘 상태에서 뛰어... 줄곧 그 상태를 유지하고, 마지막 바퀴를 돌기 전에는 그를 앞서 나가려 해서는 안된다. 그 지점에 이르면 전속력으로 달려 스피드 면에서는 카를린이 앞서지만, 너는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어, 너의 경주는 이 마지막 35m를 뛸 때, 속도 내기에 지금까지 체력훈련을 해 왔으니 최선을 다하면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속력을 내거라!
마지막 바퀴까지 기다리는 걸 명심해! 이제 나가서 최선을 다해라!
경주는 시작되었고 고든은 들은 대로 카를린의 어깨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첫 바퀴를 돈 다음 계획을 바꾸기로 결심합니다. 카를린은 그가 예상한 만큼 빨리 뛰지 않았고 고든이 생각하길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선두에 서면 여자친구에게도 멋지게 보이겠다 싶어 그녀의 관심을 최대한 끌기 위해 결승점 반대편 코스를 돌아나오면서 카를린을 뒤로 제쳤던 것입니다. 그것은 심각한 실수였습니다. 그를 제치자말자 그는 갑자기 속력을 내더니 고든을 여유있게 따돌리고는 9미터나 앞서 나가 승리했던 것입니다.
감독은 내 지시를 듣지 못한 거니 아니면 경주를 시작할 때 내 지시를 묵살하기로 결정한 거냐? 묻습니다. 감독님 죄송하지만 제 방식대로 해보려고 했습니다.
나는 네가 경기에서 졌다는 사실보다 너의 습관적인 패턴 때문에 몇배나 걱정되는 구나!
너는 잘 듣질 않아 그리고 이 문제는 평생 너를 따라다닐 것이야.
내가 보기에 너는 너를 위해 길을 가르쳐 줄 사람들에게 배우려는 대신 자신이 직접 고생하면서 시간낭비를 하면서 중요한 인생교훈을 배워야 할 것 같구나!.
네가 이런 것들을 배우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경기에서 패해야 될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치 교회에서 배운대로 하지 아니하고 교회에서는 금방 아멘 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을 무시하고 주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훈련받았던 것을 무시한 채 그냥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의 시선만을 의식한 채 달림으로 그 동안의 수고를 헛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시간낭비가 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자기 패이스로 돌아가야합니다. 그것이 훌륭한 대표선수의 삶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헌신예배에 임하는 청년들이 이와같이 자기의 고집을 꺽고 예전의 자기 방식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헌신할 수 있길 바랍니다.
배우고 확신한 것에 거하시고 적용하실수 있는 청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오늘 이렇게 청년들을 한 마음으로 묶어주시고 하나님 앞에 교회앞에서 헌신을 다짐하게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들의 미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축복해 주시옵소서 세상은 점점 악해져가고 자기를 사랑하며 이기적인 사회가 되어가는 이 때에 청년들이 신앙의 기초를 든든히 쌓고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헌신하게 하옵소서 ! 세상을 변화시켰던 제자들과 같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광과 이름을 자랑하는 믿음의 아들 딸들이 되길 원합니다.
승리하는 인생 성공하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되어 성령의 능력이 임해야하겠습니다. 능력을 주옵소서 그리하여서 당신의 보내신 청년들을 통하여 이 땅에 그리스도의 물결로 온 세상을 밝히는 믿음의 등불이 되는 송탄 중앙의 청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