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시 중장기병 전술
실제로 중기병이 전장의 꽃이 되는 9-10세기 전후, 즉 샤를마뉴의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로부터 '새 사냥꾼' 헨리 1세, 그리고 오토 1세의 신성 로마 제국에 이르는 시기에서 시작하여, 중기병이 몰락하기 시작하는 15-16세기까지의 약 600년간에 있어서 중기병의 전술이란 없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중기병은 있는데 중기병의 전술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서양 유럽의 중기병들은 기사
로서의 각 개인의 자존심과 개성을 중시한 나머지 자신들의 상위의 지휘 체계라든가
자신들을 묶어 주는 전술 조직체 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사들은 각
개개인으로 보아서는 결코 전투력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조직화되지 않았고 체계적으로 지휘되지도 않았기에 그 실질적인 군사적 역량은
생각만큼 대단하지 못했던 것이죠.
자 이제 어느 나라끼리 전쟁이 붙어서 기사들이 늘어서 있다고 봅시다. 기사들이 자신
들의 자존심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말씀드렸습니다. 즉 이들은 기사라면 누구나 동등하
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마치 그리스의 중장 보병들이 시민이라면 누구
나 동등하다는 인식을 가졌던 것처럼요. 물론 명망 있는 왕이나 대영주가 지휘관이라
면 이들의 지휘를 받아들이겠지만 이들 역시 자신의 명령을 체계적으로 전달할 하부의
장교나 하사관 등은 전혀 없습니다. 즉 지휘 체계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
다. 중세 전쟁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으로서, 전체 군대를 하나의 부대로 편성하고 그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은 극소수였습니다. 예비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기사들은 보통 자신들의 종자 혹은 방패잡이 몇 명을 대동합니다. 종자
나 방패잡이 모두 기사 서품을 받기 이전의 약 16세 정도의 견습 기사들입니다. 이들
은 말을 타고서 자신이 모시는 기사의 방패를 들어 준다거나, 혹은 보병으로서 기사들
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사 이상의 신분의 이들이 중
기병으로서 전투의 핵심을 담당한다면, 기사 이하의 종자 등의 이들이 보병으로서 전
쟁의 뒷정리를 하는 것이었지요. 일반 농민병들은 이미 중기병의 등장 이후 3류 군인
들로 각인되어서 이 당시에는 거의 동원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전쟁이 특권 계
급에게 독점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전투가 시작됩니다. 나팔이라도 울리겠고 아니면 동양처럼 우는 화살을
쏘아 올리기도 하겠죠. 그러면 미리 평탄한 지역에서 만나서 진을 펼친 중기병들이 일
제히 서로에게 돌진합니다. 뒤에서는 종자들이 쫄래쫄래 달려오고요. 단 지금 이 중기
병들은 서로 한데 모여서 하나의 부대를 형성하고는 있지만, 철저하게 개인 본위로 움
직입니다. 즉 대부대 내에서 개인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협력 플레이 이런 거 전혀
없습니다. 철저하게 개인, 혹은 친분이 있는 기사들 몇 명이 하나의 소집단을 이루는
경우는 있습니다만 그 이상을 바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최고 지휘관들도 중기병
들이 한 번 출진하면 뒤에서 그냥 보고 있든가, 아니면 그들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서
직접 앞에서 돌격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같은 부대의 중기병들 간에도 조금씩 속도의 차가 생기면서 양 진영은 전체
적으로 느슨한 대형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양쪽의 제 1진이 맞붙게 됩니다.
이 때 바로 중기병의 기창이 제 구실을 하게 되죠. 즉 다리를 등자에 올리고 기창을
겨드랑이에 단단히 낀 채 상체를 굽히고 왼손에는 방패를 받쳐 듭니다. 그리고는 기
창으로 상대를 찔러서 말에서 떨어뜨리는 것이지요. 이게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상당
히 골치아픕니다. 일단 승부는 한 순간에 결정납니다. 그리고 창으로 상대를 찌르면
그만큼 반동력이 작용하기에 자신도 말에서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혹은 상대를 쓰
러뜨리지 못하고 지나갈 때 상대에게 뒤에서 칼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암튼 상대를 찌르거나 혹은 방패를 비껴 찔러서 자신의 스피드는 계속 유지하면서 상
대를 말에서 떨어지게 하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뒤에 오는 중기병들에게 밟히
기도 하겠거니와 뒤에서 졸라게 뛰어오는 종자들이 알아서 처리합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하여 제 1진, 2진, 3진이 상대와 맞붙어서 말에서 떨어지거나 혹
은 상대의 진 속으로 깊숙히 들어갑니다. 물론 가면 갈수록 속도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마침내 서로가 서로에게 뒤섞여서 난투를 벌이게 됩니다. 이 때는 기창을 버리고 검
이나 철퇴, 도끼 등을 사용하게 되죠. 종종 서로를 찌르거나 쳐서 동시에 말에서 떨
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럴 경우 어느 쪽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상대를 공
격하느냐가 관건이죠. 암튼 이런 난투 끝에 어느 쪽이 우세해지면 애시당초 군율 따위
는 없는 이들에게서 공포감이 퍼지면서 일시에 전열이 무너집니다. 그러면 전투는 그
것으로 끝입니다.
<전쟁의 역사, Ritterruestung> 참고
첫댓글 이런글... 넘 맘에 들어여...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