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팁에 생계를 의존하는 레스토랑 서버들의 현실;
어쩌면 초보 유학생의 전형적인 실수였는 지도 모르겠다. 맨하탄 레스토랑에서 친구와 식사를 한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가려고 할 때였다. "이봐요." 웨이트리스가 내 손목을 꽉 붙들며 쩌렁한 목소리로 말햇다. "내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나는 화들짝 놀라 더듬거렸다. "네? 서비스가요? 아뇨. 서비스가....갠찮았는데...." "그러면 팁을 최소한 12퍼센트를 줘야죠. 최소한 12퍼센트." 좌중의 시선이 얼굴에 따갑게 박힌 채, 나는 황급히 머리속 계산기를 돌렷다. 모자란 산수 실력이 문제였다. 계산서 위 팁 란에 12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을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50센트를 모자라게 계산한 것이었다.
내 실수도 실수이지만, 그 50센트를 기어이 받겠다고 장관을 연출한 웨이트리스가 두고 두고 밉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팁은 팁이지, 의무가 아니잖아? 하지만 더 이상의 공개적 낙인은 사양이었기에, 그 이후로는 언제나 칼같이 12퍼센트를 계산해 적어넣었다. 미국 팁 문화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던 어느날, 한 미국 친구가 불의를 좌시하지 못하겠다는 듯 엄중하게 말햇다. " 하나, 너는 너무 인색해. 12퍼센트가 머야? 팁은 아무리 적어도 15퍼센트는 줘야지....."
메뉴판 가격 위에 세금이 따로 붙는 것도 불만스러운데, 대체 웬 팁을 그렇게 많이 줘야 하냐고 생각한다면, 미국 서버들의 임금 환경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웨이터, 웨이트리스들은 생께를 사경우 실상 팁으로 얻는 수입에 의존한다. 미국 대다수 주의 노동법이 팁을 받는 서버들의 경우 레스토랑 쪽에서 최저 생계비 이하를 지불해도 된다고 지정하고 있기에, 팁을 제외한 이들의 수입은 낮게는 시간당 1불 수준이고, 최악의 경우 아예 아무 것도 받지 못한다. 그러니까 미국 웨이트리스가 팁을 인색하게 놓고 나가는 당신을 사납게 흘겨본다면, 그건 딱히 그녀의 성질이 유독해서가 아니라는 것. 생각해 보면, 내 손목을 붙들었던 웨이트리스에게 50센트는 그냥 50센트가 아니었다. 팁에 생계를 의존하는 그에게, 팁을 슬쩍 깎아먹는 손님들 만한 악몽도 없을 테니까.
* 팁을 내지 않아 체포되기도;
작년 겨울 펜실베니아에서는 한 대학생 커플이 팁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여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펍(pub, 대폿집)에서 식사를 한 이 커플은 서비스가 형편 없다는 이유를 들어 통상 여섯 명 이상의 그룹에 붙는 18퍼센트의 팁을 내지 않았다. 펍 주인은 절도를 외치며 경찰을 불렀고, 이들은 졸지에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서로 호송됐다. 이 불운한 커플을 생각한다면, 사실 에이트리스에게 손목 붙들리는 정도의 망신은 그저 웃고 넘길 하룻 밤의 촌극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미국에서의 팁은 정말로 반드시 내야하는, 그러니까 무시할 경우엔 절도 혐의까지 뒤집어 쓸만큼 의무적인 것일까? 짧은 답은 아니오, 다. 레스토랑 쪽에서 무엇이라고 항변하건 간에 팁은 법적으로 강요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 커플의 절도 혐의는 결국 벗겨졌다. 하지만 번호사 선임을 비롯해 기타 재판과 관련해 들어간 비용을 고려한다면야, 차라리 눈 딱 감고 팁을 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훨씬 나았던 셈이다.
사실 법이 무엇이라고 말하건, 미국에서 팁은 그저 팁이 아니다. 미국 여행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이곳에서의 팁은 한국처럼 서비스가 마음에 들 경우 덤으로 얹어주는 돈이 아니라, 사회 관습상 의무적으로 치루어야 하는 비용에 가깝다.
* 팁의 역사;
미국에서 팁의 의무화를 외치는 서버들의 목소리는 적지 않다. 2006년 아틀란타 주의 한 레스토랑 매니저가 조직한 서버들의 이익 단체인 'Fairtip'은 팁 20%를 법적 의무화 할 것을 목표로 워싱턴 정계를 상대로 로비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을 비판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팁의 의무화는 커녕, 아예 팁 자체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서버들이 그들의 임금을 착취하는 레스토랑에 반기를 드는 대신, 그 부담을 손님들에게 돌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특히 서버들이 자신들을 희샌자로 묘사하고, 손님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아예 한국을 비롯한 스많은 나라들처럼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을 가격에 아예 반영시켜, 팁을 둘러싼 이 모든 논란을 해소하지 않는 것일까? 여기서 재미잇는 것은 팁의 역사다.
미국의 팁 문화는 본래 유럽에서 전해진 것으로, 처음에는 강력한 반발의 대상이엇다. 팁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영국 튜터 왕조 시대(1485 ~ 1603)를 그 시작으로 꼽는다. 당시 개인 집에 초청을 받아 밤을 난 손님들이 그집의 하인들에게 돈을 주던 것에서 관습이 시작되었다는 것. 시간이 흐르면서 팁 문화는 런던의 카페와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자리잡았는데, 영국의 시인 겸 평론가 사뮤엘 존슨(1709 ~ 1784)이 자주 드나들던 곳에는 'To Insure Promptitude'(신속한 서비스를 위하여)라는 문구가 적힌 통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바로 그 문구의 앞 글자를 따서 TIP이란 단어가 탄생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어쨌거나 당시만 해도 팁은 귀족들이 비천한 평민들에게 베푸는 자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 지극히 계급 중심적인 문화의 일환이었다.
미국으로 팁 문화가 전파된 것은 남북전쟁 이후다. 당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상류층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교양을 뽑내기 위한 행위로 유럽의 팁 문화를 미국에 가자고 돌아왔다는 설이다. 하지만 군주제를 부정하고 공화국으로 시작된 미국에서 귀족 냄새를 물씬 풍기는 팁 문화는 민주주의 이상에 역행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안티 티핑(anti-tiping)' 법안이 여러 주에서 통과되었을 만큼 팁 문화는 거센 반발과 공격의 대상이었다.
* 미국인 80%가 팁 문화 선호; 하지만 그것이 서비스의 질과 비례하는 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세월과 관습의 힘은 역시 녹록치 않아서 팁이라는 개념이 처음 전파된 이래 한 세기 사이 팁 문화는 미국 사회에 깊숙히 뿌리를 내렸다,세계적인 레스토랑 안내서의 하나로 꼽히는 자갓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80%가 고정된 서비스 요금보다 팁을 내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팁의 경우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 손님이 서비스 만족도에 따라 그 금액을 정할 수 있고, 그 결과 보다 나은 서비스를 위한 인센티브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일정 퍼센트의 팁이 관습적으로 기대되는 미국 문화를 차치한다 하더라도, 팁이 서비스의 질과 과연 비례하는 가에 관해서는 의문점이 많다. 사람들이 후한 팁을 놓는다면, 그건 정말로 서비스가 남달리 좋아서 일까? 아니면 단지 그날 기분이 유독 좋아서? 혹은 데이트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아니면 웨이트리스가 매력적이어서?
코넬 대학의 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에 다르면, 팁의 액수는 웨이터와 웨이트리스의 특정한 행동 패턴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연구 대상 중 서버가 손님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리거나, 테이블 옆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추며 주문을 받았던 경우 팁이 평균 3퍼센트 증가했다. 또 서버가 손님에게 계산서와 함께 사탕(!)을 준 경우 팁이 평균 2퍼센트 증가했다고 하니, 사람 마음 붙들기란 참 쉽지 않나 싶기도 하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서 스티브 부세미가 연기한 캐릭터 미스터 핑크가 팁에 관한 일장 연설을 펼치는 장면이 있다. 그의 논리란 서버가 팁을 받을 자격이 있을 만큼 '특별한 서비스'를 했다면 모를까, 단지 사회적인 관습이 그렇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팁을 줄 필요는 없다는 것, 타란티노 특유의 재치잇는 입담이 빛나는 이 장면이 바로 팁에 관한 근본적인 딜레마를 압축해서 보여주지 않나 싶다.
팁에 생계를 의존하는 서버들에 대한 모종의 도덕적 의무감과 서비스의 질에 부응해 팁을 낼 손님느오서의 권리, 미스터 핑크처럼 대차게 소비자의 입장을 내세우기에는 서버들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 같아 양심이 쑤시고, 그렇다고 마냥 후하게 주기에는 진땀이 나는 나의 경우,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생각한다.
"팁을 과하게 주는 것은 멍청이로 보이는 것이고, 팁을 모자라게 주는 것은 그보다 더한 멍청이로 보이는 것이다.(To overtip is to appear an ass; to undertip is to appear an even greater ass.)
그리하여 나의 구세주가 된 것은 시대의 총아, 팁 계산기다. 암산으로 머리를 싸매거나 소심하게 서버의 표정을 살피는 대신, 나는 이제 테이블 위에 아이팟을 톡톡 두들녀 딱 떨어지게 팁을 계산한다. 소화 불량을 유발하는 식후 고민은 그만. 좀 품새는 떨어지지만, 아무렴 멍청이로 보이는 것보다야.(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