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새, 학교, 그리고 꽃
새로 이사 온 새집에서의 생활, 작은 희망, 그리고 아주 소박한 꿈.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 이삿짐을 나르는 아리스띠데스 아저씨와 그의 조
수가 이끄는 수레 위에 타고 새 집으로 오면서 마냥 기쁜 마음과 들뜬 희망
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수레는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리오-상파울로>의 도로에 들어서자 아주 미
끄러지듯이 달렸다. 우리가 지나가는 수레 옆으로 마침 멋진 자동차 한 대
가 스쳐갔다.
"야, 포르뚜깔 사람인 마누엘 발라다리스의 차가 가네."
우리가 <아스데스> 거리를 돌아 길을 건널 때 멀리서 기적 소리가 아침 공
기를 가르고 내 마음 속에 와 닿았다.
"아저씨! 저기 좀 보세요. 망가라띠바 기차가 지나가요."
"제제, 넌 별걸 다 아는구나. 어떻게 알았지?"
"기적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어요."
수레의 삐꺼덕 소리와 따가닥따가닥 하는 말굽소리가 거리 위로 흩어졌다.
나는 이 수레가 낡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튼튼해
보였다. 우리집의 이삿짐은 이제 두번만 실어 나르면 될 텐데 당나귀의 힘
이 별로 세어 보이지 않아 나는 아저씨의 비위를 맞추기로 했다.
"아저씨는 참 멋진 수레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겨우 쓸만한 정도야, 멋지기는......"
"당나귀도 아주 튼튼해 보여요. 이름이 뭐예요?"
"시가노라고 한단다."
아저씨는 별로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아저씨! 오늘은 가장 재수가 좋고 행복한 날이에요. 오늘 처음으로 수레
를 타 보았고 포르뚜깔 사람의 멋진 자동차도 봤고 망가라띠바의 기적소리
도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아저씨는 아무 대답도 않으셨다.
"망가라띠바가 브라질에서 제일 큰 기차인가요?"
"그건 아니다. 이쪽 노선에서만 제일 크단다."
그 말만 하시고는 입을 다물어 버리신다. 어른들은 가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수레가 새 집에 도착했을 때 문의 열쇠를 드리
면서 공손하게 말을 하려고 했다.
"아저씨!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아니다. 네가 곁에 있으면 방해만 될 테니까 나가서 놀다가 돌아갈 때 부
를 테니 그때 오너라."
나는 아저씨의 말대로 밖으로 나왔다.
"밍기뉴, 날마다 우린 같이 지낼 수 있게 됐어. 어느 나무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를 예쁘고 아름답게 만들 거야, 이봐, 밍기뉴. 난 지금 여
기로 올 때 수레를 타고 왔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마치 영화에 나오
는 포장마차를 탄 듯 했었어. 앞으로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얘기해
줄께. 괜찮지?"
나는 담 밑에 잡초가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그곳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밍기뉴, 우리가 저번에 저 강의 이름을 뭐라고 했었지?"
"아마조네스."
"그래, 그랬었지. 그 강의 하류에는 밀림 속에 사는 인디안들의 배들이 많
이 있겠지, 밍기뉴?"
"물론이야, 굉장히 많은 인디안들이 있을 거야."
겨우 몇 마디의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리스띠데스 아저씨가 문을 닫으
며 나를 불렀다.
"제제! 여기 남아 있을래, 아니면 우리와 같이 가겠니?"
"전 여기 남아 있겠어요. 식구들이 곧 도착할 거예요."
그리고 혼자서 나는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였다.
* * *
이곳 새 집으로 이사를 온 후 처음에는 이웃들의 눈도 있고 잘 보이려고
난 얌전하게 지냈다. 그러나 얼마 후엔 전에 주운 검은 스타킹을 다시 생각
해내고 찾아 꺼내어 발끝을 잘라내고 그곳에 실을 묶어 멀리서 잡아당기니
마치 뱀 같았다. 어두운 밤이면 꼭 뱀같이 보여 장난을 치면 성공하리라고
생각했다. 새로 이사를 온 뒤 밤엔 아무도 남의 일에 간섭을 하지 않기로
규칙을 만들었다. 밤에 가족끼리 오손도손 지내는 일은 이제 먼 옛날 일이
된 것이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만든 커다란 나무들의 그림자 뒤에서 나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숨을 죽이고 앉아 망을 보고 있었다.
공장에는 밤일을 하는 사람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사람
들은 작업이 끝나면 몰려나올 것이고 그때 장난을 치면 모두들 기겁을 하며
놀라 자빠지겠지! 과연 내 마음 속의 악마를 즐겁게 해 줄 사람들이 언제쯤
나올 것인가!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9시가 조금 지날 무렵, 나는 공장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새벽이면 우리는 서글픈 작업 종소리는 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마치 작업 시작 종소리와 함께 사람들을 집어삼켰다가 밤이 되면 일에 지친
사람들을 토해버리는 괴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며 더욱이 그 공장의 주인
스크트휠드 씨는 아빠를 좇아내기까지 했으니 공장이 몹시 싫었다.
그때 저쪽에서 한 여자가 오고 있었다. 옳지! 기회는 이때다. 한 여자가
어깨에 핸드백을 메고 긴 그림자를 밟으며 오고 있었다. 구두 발자욱소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을 때 나는 슬슬
뱀을 잡아당겼다. 뱀은 잡아 끄는 대로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여 마침내 길
한가운데로 기어들어갔다.
나는 일이 크게 벌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여자는 뱀을 보자
고함을 질러 사람들을 깨워버린 것이다. 그 여자는 길에 털썩 주저앉아 있
었고 핸드백과 양산은 길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 여자가 비명을 너무
크게 질렀기 때문에 고요하던 밤거리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악!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주세요. 뱀이 나왔어요. 뱀이......"
그 비명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나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부
엌으로 뛰어들어가 더러운 빨래통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고 뚜껑을 닫아버
렸다. 내 가슴 속에선 심장이 마구 뛰었고 밖에선 그 여자의 비명소리가 계
속 들려왔다.
"원, 세상에 이럴 수가...... 뱃속에 있는 6개월 된 아이가 떨어지면 어떡
해요."
나는 빨래통 속에서 질식할 것만 같았으며 두려움으로 몸이 떨려왔다. 사
람들은 계속 웅성거리더니 그녀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고 그 여자를 진
정시키려 했다.
"못견디겠어요. 금방이라도 그 뱀이 나올 것만 같아 기절할 것 같아요."
"오렌지즙을 좀 마셔요. 괜찮을 겁니다. 사람들이 램프를 들고 몽둥이로
잡으러 나갔어요."
이제 겨우 조금 조용해진 듯하다. 그까짓 헝겊으로 만든 뱀한테 놀라 저렇
게 법석이람! 그런데 그 소란소리를 듣고 엄마와 잔디라 누나 그리고 라라
누나까지 소동이 있는 곳으로 나가고 있었다.
"뱀이 아닙니다. 이건 낡은 여자 스타킹이에요."
누군가가 스타킹 뱀을 발견하고 외쳤다.
'큰일이야, 그 여자가 너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뱀을 그대로 두고
왔네."
사람들이 뱀끝에 묶어놓은 실을 발견하고 실을 따라 우리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때 낯익은 세 사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외쳤다.
"바로 그 꼬마 녀석이 한 짓이야."
이제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나를 찾는 것이었
다. 침대 밑을 보기도 했고 집안과 집밖을 샅샅이 뒤졌으나 나를 찾지 못했
다. 나는 발래통 속에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잔디라 누나가 마
침내 빨래통을 생각해 내고 말았다.
"나는 알겠어, 어디 숨어 있는지!"
마침내 빨래통이 열리고 누나는 내 귀를 잡아끌고 식당으로 갔다.
엄마는 이 일만큼은 용서를 하지 않으시고 화가 나시어 세게 때리셨다. 마
치 슬리퍼짝이 노래를 부르는 듯이 소리가 났고 나는 아픔을 억제하지 못하
고 송아지처럼 울어댔다.
"이 악마 같은 녀석아! 넌 여자들이 6개월된 아기를 뱃속에 넣고 다닌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나 하니?"
라라 누나도 비꼬듯이 한 마디 했다.
"흥, 그런 나쁜 짓을 생각하느라고 길거리에 나가지도 않고 며칠을 얌전하
게 있었구나."
"어서 가서 잠이나 자, 이 망할 녀석아!"
나는 아픈 엉덩이를 만지며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웠다. 다행스럽게 아빠는
오늘 카드놀이를 하러 나가시고 안 계셨다.
어두운 침대 위에 엎드려 매맞은 곳을 낫게 하는 데는 역시 침대가 좋다는
것을 생각하며 울음을 삼켰다.
* * *
다음날 아치에 나는 일찍 일어났다.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밤 그곳에 가서 뱀을 찾아 셔츠 속에 숨겨와서 다른 곳에 다시 사용하
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뱀은 없었다. 그만한 스타킹은 구하기 힘들 텐
데. 정말 뱀과 똑같은 양말이였었다.
나는 찾는 걸 포기하고 딘디냐 할머니 댁으로 갔다. 에드문드 아저씨와 얘
기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퇴직자에게 있어서 지금 이 시간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일찍 찾아왔으니 좋아하시는 카드놀이를 하러 가
시지 않으셨을 테고 방안에서 신문이나 읽지 않으시면 화장실에나 가셨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역시 아저씨는 응접실에 계셨다. 오늘 밖에 나가서 카드놀이를 하시기 위
해 카드로 금일 운수를 떼어보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저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못들은 척 하시는 것이었다. 우리집
에선 언제나 아저씨가 말하고 싶지 않으실 땐 그렇게 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안 통할걸.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앞에서 귀머거리
는 될 수 없을걸. 아저씨의 소매자락을 잡아당겼다. 하얀 와이셔츠 사이로
검정 멜빵끈이 드러나 보였다.
"으응, 제제가 왔구나."
아저씨는 내가 옷 것을 보시지 못했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며 말하셨다.
"아저씨 지금 뭘 하고 계세요?"
"응, 오늘의 운수를 알아보는 거야."
"네에, 아주 재미있겠는데요?"
"그럼 재미있구말구."
나는 얼마 전부터 카드의 그림을 외워 알고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카드는
잭크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카드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왕의 종처
럼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저씨! 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그래? 그렇다면 이걸 마저 끝내고 얘기하자. 조금만 앉아서 기다리겠니?"
그러나 아저씨께서는 자꾸 카드를 섞으시고 다시 시작하시곤 하셨다.
"떨어졌어요?"
"아니."
아저씨는 카드를 접어서 옆에 밀어 놓으시고 손바닥을 털며,
"제제, 그래 할 말이란 게 돈이 관한 얘기겠지?"
"아저씨 구슬이 사고 싶은데요?"
아저씨는 빙긋이 웃으시며,
"그럼 그렇지. 어디 보자, 구슬 살 돈이라......"
그리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시려는 순간 나는 아저씨의 손을 빨리 잡으
며,
"아저씨 지금 한 말 농담이었어요."
"그럼 할 얘기가 뭐니?"
아저씨께서는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숙하고 영리한 점을 자랑스럽게 생
각하신다는 걸 알고 있다. 더욱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모든 것을 깨우쳐 가
는 것을 대견스럽게 여기셨다.
"아저씨께 궁금한 게 있어요. 아저씨는 소리없이 노래를 부를 수 있으세요
?"
"소리를 내지 않고 노래를? 잘 이해할 수가 없구나."
"자, 제가 부를 테니 들어보세요."
나는 속으로 <작은 오두막집>을 불렀다.
"네가 지금 노래를 불렀니?"
"그래요. 노래를 불렀어요. 글쎄 소리를 내지 않고도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니까요."
아저씨는 어리둥절 하시다가 싱겁다는 듯이 웃으셨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
지나 소리르 내지 않고 노래를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아저씨 저는요, 어렸을 때는 제 마음 속에 작은 새 덕분에 소리를 내지
않고 노래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오! 네가 그런 새를 갖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얘기구나."
"아저씨는 잘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그러나 지금은 제가 약간 의심이 생겨
요. 속으로 노래하고 속으로 볼 수도 있는 거예요?"
아저씨는 내가 혼돈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고 웃으셨다.
"제제, 내가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마. 그게 뭐냐하면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야. 네가 크면, 그때 네가 말하고 또 보는 것들을 생각이라 부
르는 것이야. 내가 전에 네게 한 말 있지? 네가 이제 곧 생각이라는 걸 갖
게 될 것이라고 말야."
"그럼 철 들 나이란 말인가요?"
"그래 기억하고 있구나. 그 나이가 되면 점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
다. 그 생각이 점차 성장해서 우리의 머리와 몸과 마음을 돌보게 하는 거란
다. 그때가 되면 너는 인생을 아주 새롭게 보게 된단다."
"네에! 알겠어요. 그럼 작은 새는 뭐지요, 아저씨?"
"그 작은 새는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하느님이
만든 거야. 그랬다가 어린애가 자라서 작은 새가 필요없게 되면 그 새를 하
느님께 되돌려드려야지.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그 새를 너처럼 영리한 다른
아이의 마음 속에 넣어 주신단다. 어때? 아주 아름다운 일이지?"
나는 내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만족해서 웃음이 나왔
다.
"참 아름다운 일이군요. 이제 됐으니 돌아가겠어요."
"그럼 돈은?"
"오늘은 돈이 필요 없어요. 저는 오늘 매우 바쁘거든요."
나는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다가 아주 슬픈 일이 떠올랐다.
언젠가 또또까 형은 작고 귀여운 참새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 예쁜
참새는 길이 잘 들어서 먹이를 줄 때면 속바닥 위에 와서 먹을 정도였다.
새장 문을 열어놔도 날아가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또또까 형은 새장을
뜨거운 햇빛에 놓아둔 채 잊어버렸고 그 참새는 뜨거운 햇빛에 의해 죽고
말았다. 또또까 형은 죽은 새를 뺨에 대고 하염없이 울었던 생각이 난다.
그때 형은 말했다.
"다시는 새를 기르지 않을 테야!"
나도 형의 마음을 위로하는 뜻으로 곁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형, 나도 새는 기르지 않겠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난 곧 바로 밍기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슈르루까(제제가 밍기뉴에게 붙인 애칭), 한 가지 일을 좀 하러왔어."
"일이라니, 그게 뭔데?"
"잠깐 기다려."
"응."
난 오렌지나무 허리에 머리를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게 뭐지, 제제?"
"응, 우리가 기다리는 건 예쁜 뭉게구름이야."
"뭘하게?"
"이제 내 작은 새를 날려보내려고."
"그렇다면 이제 그 새가 필요없어졌다는 거구나."
우리는 뭉게구름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밍기뉴! 저기 좀 봐, 어떠니?"
마치 꽃잎을 닮은 하얀 구름 한 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맞아, 바로 거기야 밍기뉴!"
나는 흥분되어감을 억누르며 셔츠 앞자락을 열어 젖혔다. 그러자 새가 나
의 가슴으로부터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작은 새야, 날아라. 높이 날아라. 훨훨 날아가 하느님의 손끝에 앉으렴.
하느님은 널 다른 애에게 보내주실 거야. 그러면 너는 지금까지 나를 위해
그랬듯이 그 애를 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거야. 잘 자거라, 내
예쁜 작은 새야!"
새를 보낸 내 가슴은 왠지 텅 빈 것 같았고 허전한 마음은 오래도록 가시
지 않을 것 같았다.
"제제, 저것 좀 봐. 작은 새가 벌써 구름 위에 앉았어!"
"나도 보았어."
나는 머리를 밍기뉴의 몸에 기대고 작은 나의 새가 앉아있는 구름이 멀리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난 작은 새와 친했었는데......"
나는 밍기뉴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
"슈르루까!"
"응?"
"운다면 흉해 보일까?"
"울면 바보야, 흉해 보이기도 하구. 왜 그래, 제제?"
"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아직 어른이 되질 않았기 때문인지, 익숙치 못해
서인지 아직도 가슴이 텅 빈 것 같고 허전하기만 해."
* * *
글로리아 누나는 이름 아침부터 나를 찾았다.
"제제, 어디 손톱 좀 보자."
손을 내밀며 손톱을 보여주니 누나는 요리조리 살피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
았다.
"그럼 귀 좀 보자."
나는 얼굴을 돌려 귀를 보여줬더니,
"아휴, 더러워."
누나는 나를 수도가로 데리고 가서 수건에 비누를 칠하더니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
"삐나제 인디안의 사내가 더럽게 산다는 말을 나는 들은 적이 없어. 자!
이제 옷을 갈아입자."
누나는 옷장 설합을 뒤적거리며 찾았으나 마땅한 옷이 없었다. 뒤지면 뒤
질수록 낡고 기우고 헝겊을 댄 것 뿐이었다.
"이러쿵 저러쿵 말할 필요도 없겠구나. 이 옷들만 봐도 네가 얼마나 지독
한 장난꾸러기인지 알 수가 있겠어. 자, 이 옷을 입자. 그래도 이 옷이 그
중에서 좀 나은 것 같구나."
누나와 나는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기적같은 일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
났다. 학교 부근에 오니 벌써 많은 아이들이 입학하기 위해 엄마들의 손을
잡고 오고 있었다.
"제제, 이제부터 말썽부리지 마, 응? 누나의 말 알아 듣겠지?"
누나와 같이 들어간 교실은 아이들이 가득했다. 차례를 기다리고 앉아 있
다가 우리의 차례가 되어 누나의 손을 잡고 교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안경을 낀 여교장 선생님이 계셨다.
"동생인가요?"
"네, 어머니께선 일하러 가셨기 때문에 오시지 못했어요."
선생님은 나를 자세히 보셨다. 안경이 두껍고 굵어서인지 눈이 크고 까맣
게 보였다. 한 가지 우스운 것은 교장선생님의 얼굴에는 남자처럼 수염이
나 있었다. 그래서 교장이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역주:브라질 혼혈족 중에
는 여자도 수염이 나는 사람이 있음).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요?"
"나이에 비해서 허약한 편이에요. 그래도 글은 벌써부터 잘 읽을 줄 알아
요."
"몇 살이지?"
"2월 6일이면 여섯 살이에요."
"음, 아주 똑똑하군요. 카드를 작성할까요? 우선 부모님의 성명부터 말해
주세요."
글로리아 누나는 아빠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름을 말할 때
는 <에스떼파니아 데 바스콘셀로스>라고만 말했다. 나는 누나가 빼먹고 말
한 부분을 큰 소리로 말했다.
"에스떼파나이 삐나제 데 바스콘셀로스입니다."
글로리아 누나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삐나제랍니다. 어머니는 인디안의 딸이랍니다."
나는 이 학교에서 인디안 이름을 가진 유일한 학생이 될 것이 무척 자랑스
러웠다.
글로리아 누나는 등록을 끝낸 후에도 잠시 머뭇거렸다.
"무슨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가씨?"
"교복에 대해서 좀 알고 싶어서요.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 아버지
께선 실직자이시기 때문에 저희는 생활이 매우 어려워요."
교장선생님이 내 키와 옷의 치수를 재기 위해 뒤로 돌았을 때 옷의 기우고
꿰맨 곳이 드러나 가난을 충분히 증명했다. 선생님은 치수를 적은 종이를
주며 에우라리아 부인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에우라리아 부인도 역시
내가 너무 작은 것을 보고 놀랐다. 여러 옷들 중에서도 제일 작은 치수를
골라 입었는데도 마치 병아리가 긴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제일 작은 옷인데도 크구나. 작긴 참 작구나. 곧 크겠지 뭐."
"가지고 가서 줄일께요."
우리는 교복 두 벌을 선물로 받고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교복을
입은 나를 보면 밍기뉴의 표정은 어떨까?
학교에 나가 생활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나갔다. 나는 매일매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애기해 주엇다.
"학교의 종소리는 굉장히 커. 그러나 교회의 종소리만큼은 안 크지만 그
소리를 듣고 애들이 모두 운동장에 모여. 각자 자기 선생님이 서 계신 곳으
로 말야.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는 네줄로 날나히 줄을 맞추어 교실로 데리
고 들어간단다. 그리고는 열고 닫을 수 있는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아 책상
안의 학용품을 넣어 두지. 그리고 난 다음 우리는 국가를 배운단다. 우리
선생님께선 훌륭한 국민이 되고 애국자가 되기 위해서는 맨 먼저 국가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셔싼다. 국가를 다 배우면 너에게 불러 줄께, 밍기
뉴."
매일 새로운 일들이 일어났다. 친구도 사귀게 되지만 가끔 싸움도 했다.
그러면서 많은 것들을 자꾸 알게 됐다.
"그 꽃은 왜 가지고 왔니?"
예쁘게 생긴 여자 아이의 손에는 책과 포장이 잘 된 노트가 들려져 있었으
며 머리는 두 갈래로 땋아 내렸다.
"우리 선생님께 드리려고 가져왔어."
"왜?"
"난 선생님을 좋아하거든, 선생님을 좋아하는 애들은 꽃을 갖다드리거든."
"남자 애도 그럴 수 있니?"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남자와 여자가 무슨 상관이 있니?"
"아, 그래?"
"응."
그런데 우리 담임선생님은 도나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께 꽃을 가져오는 아
이들은 없었다. 아마 선생님이 예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눈만 조금 예
쁘게 생겼더라면 그렇게 안 예쁘진 않을 텐데. 그러나 선생님은 점심시간이
면 가끔 내게 과자를 사먹으라며 돈을 주시는 분이었다. 다른 반 교실을 유
심히 봐도 탁자 위에 꽃이 없는 교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직 우리 선생
님의 탁자 위의 꽃병만 늘 비어 있었다.
* * *
그 무렵 나는 커다란 하나의 모험을 즐기고 있었다.
"밍기뉴, 난 오늘 박쥐를 붙들었어."
"네가 이곳에 와서 살게 될 거라고 말하던 루씨아노라는 그 박쥐 말이니?"
"바보야, 아니야! 굴러다니는 박쥐말이야. 난 말야 요즈음 차가 학교 근처
를 천천히 지나가면 뒤에 달린 자동차 바퀴에 매달린단 말야. 한참 달려가
면 아주 멋진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단 말이야. 차가 모퉁이에 서서 다른 차
가 오나 살펴볼 때 얼른 뒤어오르는 거야. 차가 빨리 달리 때타면 땅에 떨
어져 엉덩방아를 찧거나 팔을 부러뜨리거든. 그런 박쥐 말야. 그래도 못 알
아 듣겠니?"
그리고 나는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나 애들과 놀았던 일들을 계속해 주었
다. 내가 국어시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을 때는 밍기뉴도 자랑스럽게
여겼다. 도나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은 내가 글을 제일 잘 읽는 학생이라고
칭찬하셨다. 가장 성적이 우수한 학생! 그런데 그 말이 의심스러워졌다. 에
드문드 아저씨에게 진짜 내가 우수한 학생인지 여쭈어 봐야겠다.
"밍기뉴! 다시 박쥐 애기를 해 줄께. 그 얘기가 얼마나 재미있느냐 하면
밍기뉴 너를 말처럼 타고 달릴 때는 위험하지 않잖아?"
"그건 진짜로 달리지 않기 때문이야. 넌 진짜로 미친듯이 서부를 달리며
물소나 들소를 사냥하는 박쥐가 아니잖아, 잊었니?"
밍기뉴는 말로써는 나를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땜누에 무조건 내 말을 믿어
야 했다.
"그런데 밍기뉴! 애들이 넘보지 못하는 차가 하나 있어. 넌 뭔지 아니? 포
르뚜깔인 마누엘 발라디리스란 사람의 차야. 넌 그렇게 흉칙스런 이름을 들
어 본 적이 있니? 아주 좋지 않은 이름이지? 마누엘 발라다리스!"
"그래, 나에게도 생각이 있어."
"난 밍기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모를 줄 아니? 이제는 너를 올
라타고 말타기 연습을 해 볼께. 그래서 모험을 한 번 해 보는 거야."
* * *
기쁨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선생니므이 탁자 위에 꽃병에 꽃을 갖다가 꽂아 드렸
다. 선생님은 기뻐하시 나에게 기사님이라고 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니, 밍기뉴?"
"기사란 왕자님처럼 교육을 훌륭하게 받은 신사를 말하는 거야."
나는 학교 공부에 점점 흥미를 느껴 열심히 공부를 했다. 학교와 집안에서
도 그러한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으며 심지어 글로리아 누나는 그런 나를
가리켜 작은 악마는 설합 속에 넣어두고 딴 사람이 됐다고까지 말했다.
"밍기뉴, 너도 내가 요즈음 변했다고 생각하니?"
"글쎄, 그렇기도 해."
"그래? 그러다면 비밀 얘기를 해 주려고 했는데 그만 둬야겠다."
나는 밍기뉴에게 화를 내고 왔다. 그러나 밍기뉴는 나의 화가 오래가지 못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 비밀 얘기란 오늘 밤에 일어날 일이다. 나는 어떤 조바심같은 것으로
들떠 있었다. 공장에선 싸이렌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사람들이 몰려 나왔
다. 긴 여름의 낮은 밤을 천천히 끌고 오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시간도 아
직 오지 않고 있다. 나는 뱀장난도 또 다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문 앞
에 앉아 엄마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잔디라 누나는 그런 내가 이상하게 생
각되었는지 풋과일을 먹어 배라도 아프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 피곤에 지친 엄마의 모습이 길모퉁이에 나타났다. 이 세상에 우리 엄
마의 모습을 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에
게 달려가싿.
"엄마! 지금 오세요?"
나는 엄마의 손등에 키스를 해드렸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도
엄마의 피곤에 지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마, 많이 피곤하시죠?"
"그래 제제, 기계에서 뿜어내는 열기를 견디기가 힘들구나."
"엄마, 도시락 가방 이리 주셍. 제가 들겠어요?"
나는 도시락가방을 받아들었다.
"오늘도 장난 쳤니?"
"조금밖에 치지 않았어요, 엄마."
"그런데 제제가 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엄마는 뭔가 눈치를 채고 계시는 것 같았다.
"엄마, 그래도 저를 사랑하시죠."
"그럼 사랑하고 말고. 다른 애들과 똑같이 사랑하지. 그런데 왜 묻니?"
"엄마! 나르딩뇨를 아시죠? 빠따 쇼카 아줌마의 조카 말이에요."
엄마는 알 것도 같으신지 웃으시며,
"그래 알 것 같구나."
"그럼 됐어요. 그런데 그 애 엄마는 아주 멋있는 양복을 하나 만들어 주셨
는데 초록색에 흰줄이 있는 옷인데 목에는 단추를 잠그게 했고 칼라가 달린
옷이에요. 그애한테는 작아서 입지 못한데요. 그걸 물려 줄 동생도 없어서
팔려고 한대요. 엄마 그 옷 저에게 사 주시겠어요?"
"제제, 그건 너무 어려운 주문이구나. 우리는 형편이 어렵잖니?"
"돈은 두 번에 나눠서 줘도 된데요. 그리고 비싸지도 않구요. 그런 장식이
있는 옷은 살 수도 없잖아요. 엄마!"
나는 엄마에게 기회주인자인 야곱처럼 돈은 여러 번에 나눠 줘도 된다고
몇 번씩이나 되풀이했다.
"엄마, 난 우리 반에서 공부도 제일 잘하는 뛰어난 학생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엄마, 꼭 사 주세요. 새 옷이라곤 못 입어봤잖아요."
엄마가 말씀을 하시지 않고 계셨기 때문에 나는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엄마, 그 옷을 사지 못하면 난 평생 시인의 옷을 못 입어 볼 거예요. 그
걸 사 주시면 라라 누나가 비단 헝겊으로 커다란 나비넥타이를 만들어 줄
거예요."
"알았다, 제제. 밤일을 일 주일 동안 해서라도 사 주마."
나는 엄마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 엄마의 손을 나의 얼굴에 댄채 집으로
왔다. 그리하여 난 시이닁 소을 입게 되었고 그 모양이 얼마나 예뻤는지 에
드문드 아저씨는 사진을 찍어주시겠다며 사진관으로 데리고 가셨다.
* * *
학교와 꽃, 그리고 한 송이의 꽃, 학교......
한 동안 모든 것이 순조로왔다. 고도푸레도 씨가 우리 교실에 들어와 우리
담임선생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나에게 별 문제가 없었다.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화병에 꽂힌 꽃을 가리켰다는 것뿐이었다. 그가 돌
아가고 난 후 선생님은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더니 수업이 끝나고 나
를 부르셨다.
"제제, 할 얘기가 있는데 잠깐 기다리겠니?"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망설이시는 듯 핸드백을 계속 뒤적
이셨다. 아마 핸드백을 정리하시며 마음을 가다듬고 계시는 것 같았다. 마
침내 선생님은 말씀을 하셨다.
"고도푸레도 씨가 내게 좋지 않은 얘길 들려줬어. 그게 사실이냐, 제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꽃 말이죠? 그렇죠?"
"왜 그런 행동을 했니?"
"아침 일찍 하교에 오는 도중에 세르지뉴 씨댁의 정원을 지나다가 대문이
조금 열려있는 것을 보았어요. 재빨리 들어가 꽃을 꺾었어요. 하지만 꽃이
너무 많아서 표시가 나질 않았어요."
"그랬었구나. 하지만 그건 옳지 못한 짓이란다. 꽃 몇 송이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는 건 도둑이나 하는 짓인거야."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 아니에요? 그
러니까 그 꽃들도 하느님의 것이잖아요."
선생님은 나의 말을 들으시고 놀라시는 것 같았다.
"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 집에는 정원이 없어요. 또 꽃을
사려면 돈도 필요하고요. 저는 선생님의 화병만 늘 비어있는 게 가슴이 아
팠어요."
선새임은 나의 말을 듣고 침을 삼키셨다.
"선생님께선 가끔 제게 과자를 사먹으라고 돈을 주셨잖아요?"
"제제, 난 너에게 매일 조금씩 주려고 했지만 네가 그냥 가버리곤 했어."
"매일 선생님께 돈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건 왜?"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하는 애가 또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시더니 눈물을 닦으셨다.
"선생님! 올빼미 아세요?"
"그게 누군데?"
"머리를 돌돌 말아 끈으로 묶고 다니는 검둥이 여자애 말예요."
"응, 알겠다. 도로띠리아 말이지?"
"맞아요. 그 애는 저보다도 집안이 더 가난해요. 다른 아이들은 그 애가
검둥이이고 가난뱅이라고 같이 놀려고도 하지 않아요. 저는 선생님께서 주
신 돈으로 과자를 사서 그 애와 같이 나눠 먹었어요."
선생님께서 또 오래 눈물을 닦으셨다.
"선생님께선 저보다도 그 애에게 돈을 주셨어야 했어요. 그 애의 어머니가
남의 집 빨래를 해서 먹고 살아요. 형제들이 열 하나나 된데요. 그리고 아
직 모두 어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대요. 저의 딘디냐 할머니께서는 매주
토요일이면 그 애 집에 쌀과 콩을 조금씩 가져다주곤 해요. 그래서 저의 엄
마 말씀대로 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과 나눠먹으려고 그 애와 나눠 먹은 거
예요. 선생님!"
선생님의 얼굴엔 계속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예 닦을 생각도 하지 않으셨
다.
"전 선생님을 슬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선생님,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만 하겠어요. 약속할께요, 선생님."
"그래서 우는 게 아니란다, 제제."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넌 아주 고운 마음씨를 가졌구나. 그리고 네가 지금 한 말 지켜야 한다,
제제?"
"맹세할께요, 선생님. 그러나 전 고운 마음씨를 가진 아이가 아녜요. 선생
님께선 저를 모르셔서 그래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내게는 네가 아주 착하고 고운 애야."
"하지만 선생님! 저 꽃병은 언제나 저렇게 비어 있어야 하나요?"
"이젠 꽃을 가져오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얻어오면 모르지만. 그리고 저
꽃병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야. 나는 꽃병을 볼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 거야. 이 선생님에게 그 꽃을 준 사람은 바로 제제,
너야. 그럼 됐지 않니?"
선생님은 웃으시며 내 손을 놓으셨다.
"황금같은 마음을 가진 아이야. 네게 조그만 꿈을 준 이 선새임은 너로부
터 가장 크고 훌륭한 것을 받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