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샤와르에서 머문 시간들입니다.
카이버 패스나 아프카니스탄을 가지 못하는 신세가 아쉽기만 할 뿐입니다.
13: 30 페샤와르 터미널 도착
생각보다는 빨리 도착햇다. 나는 한 2시간 정도 걸릴 줄 알았거든....
럭샤를 불러 쇼바 춐의 로즈 호텔을 가자고 하였다. 처음에는 100루피를 불러 그 럭샤는 보내고 다음 럭샤와 50루피에 합의를 보고 출발하였다. 일반 버스 터미널 바로 앞은 대우버스 터미널이다.
13: 45 로즈 호텔 도착
가면서 보니까 붉은 색 커다란 요새를 지난다. 그 요새를 끼고 돌더니 그 끝의 4거리에 로즈 호텔이 있었다. 들어가니 2층에 사무실이 있었다. 더블 룸이 1일 800루피란다. 숙박계를 쓰는데 여권 보자는 말도 않한다. 카운터에서 아프칸 캠프+디라 혹은 카이버 패스 투어할거면 연락 주란다. 프론트 옆 102호실로 들어간 순간 우린 진정 감동 먹었다. 에어컨이 너무 빵빵해서 마치 얼음 창고 들어온 것 같았다. 넓은 실내, 깨끗한 침대하며 TV도 잘 나온다. 게다가 믿을 수 없는 COOL한 샤워!!! 진짜 둘이서 이게 꿈인가 싶었다. (아마도 시설이나 음식을 종합하면 서울 클럽이 젤 나았지만 가격대비로 보자면 여기가 제일 좋았다.) 40대 중반의 남자 둘이서 방안에 들어와 감격에 겨워 히히덕거리며 좋아하는 꼴이 상상이 되는가? 솔직히 이슬라마바드나 훈자, 칼라쉬 밸리 같은 곳에서 이곳으로 곧장 온 사람들은 이해 100배 못한다. 3일을 습기가 푹푹찌는 그 더위 속에서 하루에 생수 1.5L를 3개씩 먹어가며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니던 사람들이면 느낄 그런 희열이었다. 그리고 프론트 사람들도 처음으로 호텔 직원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친절하고 매너있게 대해준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Rose 호텔 대변인이라도 된 느낌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느낌이 생생히 다가온다. 컨디션이 최악인 상태에서 느낀 감정이라 다소 오버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내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허리 디스크의 심화(진통제도 서서히 약발이 떨어져간다.), 몸살, 더위로 인한 탈수현상, 모기떼에 시달림, 연일 15시간 내외의 봉고나 럭샤 이동과 땀으로 목욕을 하는 현지 답사의 강행군이 쉰 파김치같은 상태를 만들었다. 이젠 좀 쉬어야겠다.
14: 20 박물관으로 출발
호텔에서 나와 4거리를 대각선으로 건너 약간 올라가는 듯한 길을 따라 6,7분 걸어가면 박물관이 보인다. 붉은 색 벽돌로 우아한 빅토리아 식 건물이다.
14: 28 박물관 도착
※ 페샤와르 박물관에 대한 보충 설명
→ 페샤와르 박물관은 캔톤먼트 지역의 그랜드 트렁크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1905년도에 세워졌다.
양 벽면이 갤러리로 장식된 큰 홀과 봉긋하게 높인 플랫품은 한때 무도장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간다라의 뛰어난 조각견본, 부족생활, 무슬림 시대와 민족지학을 고고학적 질서에 따라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는 간다라 미술 작품이 주로 소장되어 있다. 현관에서 이어지는 홀과 복도에는 입불상과 보살상이 줄지어 서 있다. 그중에서도 석가모니의 탄생과 수도, 성도, 설법, 입멸의 과정을 새긴 일련의 조각이 압권인데, 유리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힌두교 경전과 도자기, 자수 등이 전시되어 있고, 왼쪽 방에는 유명한 '카니시카 왕의 금화'를 비롯하여 쿠샨왕조 때의 화폐 등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수요일과 국경을 제외한 날에는 문을 연다. 개관시간은, 여름철엔 8:30-17:00으로 오후 1시~2시의 휴식시간이 있다. 겨울철은 휴식시간 없이 9:00-16:00까지이다. 입장료는 외국인 여행객에게 100Rs씩 받고 있다.
30분부터 오후 개장한다고 해서 잠시 그늘에서 쉬다가 들어갔다. 여기는 웬일인지 외국인 입장료가 100루피/1인였다. 아침에 탁바이의 관리인 조카 말대로 100루피를 주면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줄 알았더니 그런건 없고 무조건 사진 촬영은 않된다고 한다. 박물관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다라 미술의 걸작들은 1층에 배치되어 있다.. 2층은 약간의 불교유물과 무갈 시대의 동전 및 칼라쉬 민속품, 이슬람관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최고 수준의 불상들이나 테라코타는 부처의 일생에 따라 순서대로 1층 중앙홀에 빙 둘러 배치되어 있다. 역시 간다라 3대 박물관 답게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이 곳의 유물들은 주로 탁트 히 바흐와 샤리 바흐롤의 것이 중심인데 주로 마르단과 그 주변의 유적지에서 나온 것들이다.
감시의 눈이 워낙 여럿이어서 그저 눈요기만 하였다. 그러나 오른쪽 홀에 가니 감시인이 없어 급히 3, 4장을 찍는데 멈추어 있던 천정의 fan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곳 담당 관리인이 우리가 들어가니 따라 들어오는 모양이다. 포기하려는데 신 선생이 관리인에게 사진 찍어도 되냐니까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찍으란다. 으잉! 이게 웬 떡이냐 근데 대체 나중에 얼마를 요구할까 순간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래도 일단 찍고 보자하고 차분하게 하나하나 돌아가면서 찍었다. 그동안에 신선생은 관리인에게 콜라까지 사주면서 말 상대가 되어주었다. 친절하게도 관리인이 유물들 전시공간에 형광등까지 켜주어 더 잘보인다. 다만 형광등과 내 자신이 유리에 투영되어 제대로 찍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래도 어쩌랴 최선을 다해 직어 봐야지. 가치 발을 들었다가 태권도 기마 자세를 잡아 보았다가 쭈그려 앉아서 올려 찍어 보았다가 별 폼을 다 잡으면서 찍어갔다. 다행히 이족 전시실에 다른 사람이 오지를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20분 정도 걸려 한 바퀴를 다 돌아 나오는데 신 선생이 100루피를 주었다고 한다. 근데 이 유물들을 찍을 수 있었다는게 너무 기뻐 그 관리인을 다시 불러 주머니 속의 잔돈을 꺼내어 주었다. 못 찍을 줄 알았던 사진을, 그것도 바로 오전에 보고왔던 탁트 히 바흐의 유물들울 카메라에 담게되어 그냥 고마울 따름이다. 혹시 다음에 가서 사진 찍을 사람은 100루피만 주면된다. 그 전시실을 나와 좁은 복도의 작품들을 몇 점 더 찍고 건너편 전시실로 갔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해야하나? 거기에는 이 박물관 전시실을 리모델링 하려는 듯 노트북을 가져다 놓고 전시실의 도면을 작성하고 있는 전문가와 그를 보좌하는 직원이 떡 하니 버티고 있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 전시실에는 아틀라스와 같은 그리스 계통의 인물상과 관세음 보살상과 같은 뛰어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나 그 아쉬움이 더욱 컸다.
또한 출입구에는 눈이 부리부리한 50대의 직원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키고 있어서 관리인들도 거긴 손사래를 친다.
※ 파키스탄의 박물관과 사진찍기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파키스탄에서 꼭 들러보아야 할 박물관은 5곳이다.
첫 번째 카라치 박물관은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와 같은 고대 인더스 문명의 유물들이 돋보이고 비록 공사중이라고 문은 닫았지만 괜챦은 간다라 미술(아마도 아프카니스탄 같은 곳이나 간다라 주변지역의 작품들일 것이다.) 유물들을 전시하는 공간도 있다. 우리는 비록 문 닫은 기간에 가서 어쩔 수 없었지만 다른 분들은 카라치를 가면 거기는 빼놓치 말고 가시길 바란다.
(그러나 오로지 박물관을 위해 카라치에 갈 필요는 없다.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의 유물들은 상당수가 모조품이겠지만 라호르 박물관에도 있다. 그거 보면 된다.)
두 번째는 탁실라 박물관이다. 여기는 탁실라지역이 가지고 있는 간다라미술의 전성기 시절의 아름다운 불교 유적과 작은 스투파들이 특징적이다.
세 번째는 스왓 박물관이다. 여기는 밍고라의 부카라 유적과 니모그램, 바리 콧 같은 곳에서 나온 테라코타가 압권인 박물관이다. 물론 불상도 좋은 것이 많이 있다.
네 번째는 페샤와르 박물관이다. 여기는 비교적 큰 규모의 간다라 불상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고 부처의 일생과 경전의 내용을 테라코타로 제작한 훌륭한 작품들이 많다. 스왓 쪽은 대개 초창기의 작품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라호르 박물관이다. 여기는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특히 고행의 부처상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단한 작품이다. 이거 하나 보려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의 간다라 시대 작품들도 무시 할 수 없고 힌두교나 이슬람교의 유물들도 제법 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꼭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직어야 하나? 또 그렇게 찍다보면 손상이 가는게 아닌가? 너무 자기 혼자만의 욕심을 앞세운 것은 아닌가? 하는 것들이다. 이 점들에 대해서는 내 대답은 이렇다.
먼저 파키스탄의 문화 정책에 관한 부분이다. 특히 박물관 관련 정책은 제로를 넘어서서 마이너스다. 즉, 유물을 제대로 보존하려면 항온, 항습은 물론이고 조도나 햇빛에도 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 근데 벽에 그냥 못 박아 놓은 듯한 작품들도 널려있고 일반 유리로 막고 그 안에 열이 무척나는 형광등을 그냥 켠다.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건 파키스탄의 경제 수준에서 비롯되었다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그래선 않되지만) 정말 문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유물들을 제대로 보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대신 전문 작가들을 동원하여 좋은 화질의 박물관 도록이나 화보집을 만들어 판매한다. 나도 다른 나라가서 그런 화보집 있으면 가슴 졸여가며 사진 않찍고 느긋하게 감상한 후 다소 비싸더라도 좋은 화보집을 골라 흐뭇한 마음으로 사온다. 내 여행 경비에서 비싼 호텔값은 없을망정 그 나라의 풍물이나 문화재 도록을 살 돈은 항상 준비해간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그 어느 박물관도 칼라 도록이나 화보집이 없다. 오직 탁실라에서 “간다라”라는 제목의 화도집이 있어서 그거라도 사가지고 왔다. 화질은 우리나라 70년대 초반의 정부 홍보책자 수준이다. 그러니 도대체 무슨 수로 그 박물관의 작품들을 나중에 감상할 수 있단 말인가?
다음으로 더 중요한 문제가 훼손에 관한 것이다. 사실 종이나 섬유를 이용한 즉, 생물체를 이용한 작품들, 예컨대 그림이나 글씨들의 경우는 아쉽더라도 사진 찍는 걸 자제하는 것이 옳다. 그런 작품들은 빛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나 철과 같은 무샐물체로 만들어진 것으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으면 사실 별 상관 없다. 그렇게 사진찍어 손상되는 것보다는 탁본이나 자연 상태에서의 비바람이나 인간들의 파괴 행위가 더 무서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업에 활용할 자료를 확보하고 싶은 욕심도 솔직히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간다라 미술과 관련된 사진 자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직접 찍은 것은 별로 없다. 막말로 최소한 외국자료 인용이나 무단 퍼오기다. 이런 것은 지적 재산권 문제와도 관계있다. 내가 단 몇장이라도 제대로 찍어와서 수업이나 관련 분야에서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럼 박물관에서 사진찍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아무도 몰래 찍는건 나중에 모니터링해보면 디카의 경우 대개는 흔들렸거나 구도가 개판이거나 형광등에 반사되어 뭐가 뭔지 모르는게 대부분이다.
파키스탄의 박물관은 크게 정식 직원과 청소나 기타 관리를 담당하는 인부 수준의 관리인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정식 직원들의 경우 대부분 사진을 못 찍게 하지만 관리인들은 말하자면 슬쩍 슬쩍 알바를 하는 셈이다. 그러니 직원이 있을 경우에는 사진 찍는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대부분의 박물관이 처음 입장하는 출입구의 중앙 홀에 가장 훌륭한 작품이나 유물들을 전시하는데 그 출입구는 정식 직원이 버티고 앉아있어서 사진 찍는다는게 너무 어렵고 불가능하다.
그러니 들어가면 각 실을 담당하는(혹은 박물관을 청소하는 관리인들이 있다.) 관리인에게(직원들은 않된다. 말 하지 않느니 못하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을 것. 내 경우는 스왓 박물관을 빼고는 거의 허락했다. 물론 나오면서 100루피 혹은 적당한 값을 지불할 것. 일단 100루피를 주고 아니다 싶으면 조금 더 얹어주는 것이 낫다.
사진을 찍을 때는 형광등 불빛과 햇살에 의해 유리창에 반사되는 물체들을 피해서 찍어야한다. 상당히 힘든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서 몇 장 찍는게 낫지 대충 찍으면 나중에 살아나는게 없다. 대략 낭패하다. 다른 관람객들과 가급적이면 몰려다니지 말 것. 특히 동양인들은 찍고 있는거 보면 당연히 되는 줄 알고 마구 찍어대니 같이 쫓겨난다. 마지막으로 후레쉬를 켜지 말고 찍을 것. 후레쉬를 터트리면 유물에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퍽!하고 터진 순간의 강렬한 빛이 유물 앞에서 춤추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내가 뭘 찍었는지 모르는 사진들이 주~욱 나온다. 디카의 경우 먼저 발광 강제 금지로 설정해야한다. 그리고 밧테리 여분을 꼭 준비해라. 페샤와르에서 열심히 찍다가 밧테리가 없어서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
15: 50 박물관 나옴
잠시 박물관 앞 그늘진 잔디밭에서 경비원과 잡담도 나누고 함께 사진도 찍은 후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방으로 들어가니 살 것 같다. 잠시 쉬다가 밀린 빨래를 하였다.
16 : 40 올드 시티 돌아 다니기
인터넷 카페를 찾아 나섰다가 구 시가지로 이어지는 시장통을 한바퀴 돌아 나왓다. 아이들이나 젊은 이들이 우리에게 묻지도 않고 우릴 보면서 약간의 경멸하는 말투로 “친총”이라고 약올린다. “빙쉰들 니네는 동양인은 중국 밖에 모르냐?
오다가 소고기 꼬치를 하나 맛보았는데 조금 짜서 그렇지 먹을만 하였다. 근데 소고기 볶음도 판다. 케밥 식으로 파는게 아니라 작은 쇠그릇에 토마토, 고추(빠르쵸)를 넣어 볶아주는 식이다. 1그릇에 얼마냐니까 짧은 순간에 우릴 스윽~ 보다가 눈을 돌린다.(흐음~ 바가지 씌울 준비 중) 50루피라고 해서 일어서려니까 바로 30루피로 떨어진다. 에이~ 하고 웃으면서 일어나 꼬치 값 6루피만 주고 옆 가게로 갔다. 거기서 물으니 25루피라고 한다. 빠르쵸 팍팍!! 하고 손짓을 하니까 주인이 웃으면서 진짜 팍팍 넣는다. 카운터 보는 젊은 친구가 영어를 할 줄 알아(A~C~ 이렇게 말하면 진짜 내가 영어 잘하는 줄 알겠다. ) 음식 이름이 뭐냐니까 “고~쉬”란다. 그러면서 우리 파슈툰 말로는 “와하”란다. 음~ 파슈툰 족이야? 말 조심해야겠군. 괜히 탈레반 욕했다가 며칠 뒤 목잘린 시체될까 두렵다.
음식이 나와 먹어보니 먹을만하다. 고추를 팍팍 넣어놓고 우리 반응을 기다리던 주인이 우리가 맛있다고 하니까 껄걸 웃는다. 특별한 향료는 없다. 그걸 짜파티(이쪽 동네에서는 짜파티를 “로티” 혹은 “루티”라고 한다. 나는 만드는 방식이 다른 줄 알았더니 그냥 지역에 따른 방언인가 보다.)에 싸먹는 식이다. 많이 먹을 필요는 없고 2, 3명이서 1그릇 정도 먹으면 된다.
먹고나서 길을 되짚어 와서 (로즈 호텔에서 나와 요새 쪽으로 조금 걸으면 오른쪽의 시장으로 들어가는 큰 길을 건너 코너에 있는 주차장 같은 곳의 입구) 인터넷 카페에 갔더니 WIN98이라서 한글 지원이 않된다고 한다. 포기하고 돌아오면서 복숭아 큰거 3개(15루피/1개), 살구 1KG/25루피를 사가지고 왔다. 부근에 라이스하는 곳이 없어서 호텔 레스토랑에 볶음밥 1그릇(60루피?) 야채(토마토+오이+ 고추+ 양배추 = 20루피)를 시켰는데 “고쉬‘를 먹어서 그런지 둘이서 볶음밥을 반 정도만 먹고도 배가 물렀다.
21: 00 취침
간단히 포도주 한잔씩 하고 잠이 들었다.
22일차 (8월 7일 일요일) 페샤와르에서 어스렁거리기
07: 00 기상
추워서 이불을 덮고 잤다. 그래도 푹자고나니 몸도 한결 좋아진다.
어제 먹다남은 볶음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아침을 먹고나니 할 일이 없다. 오늘은 그저 쉬는 날이다. 너무 심심하면 그것도 않좋겠다 싶어서 포트(요새) - 모스크 - 바자르를 도는 올드시티 순례나 하면 되겠다 싶었다.
09 : 30 숙소 나옴
호텔 나와 오른쪽으로 곧장 4, 5분 가면 성채의 외벽이 보인다. 처음 들어가는 곳이 가보았더니 거긴 무슨 여성 전용병원 출입문이었다. 다시 성벽따라 오른쪽으로 돌다보니 건널목 고가도로가 보이고 성채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는 현재 파키스탄 육군이 사용한ㄴ 군대 주둔지이다. 출입 금지에 촬영금지다. 들어가진 못하고 그 옆 주유소에서 외벽 정문만 찍었다. 다시 주유소끼고 오른쪽 큰 도로따라 조금 걷다보니 높은 미나렛(모스크의 망루같은 곳인데 아잔을 알리는 곳이기도 한다.)이 보여 그 골목으로 들어가니 오른쪽에 마하바드 칸 모스크 정문이 보인다. 그런데 의외로 정문이 일반 가정집 출입문 정도 밖에 되질 않는다. 주택가에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몇 개의 계단을 오르니 좌우에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 드러누워 자고 있다. (어쩜 팔자 좋은 놈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니 마당 한 가운데에는 4각형의 손씻는 수돗가가 잇고 마당은 온통 대리석으로 깔아 맨발로 다니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다만 새로 보수 공사를 하는지 파이프 기중과 하늘을 덮은 치장 때문에 아쉬움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참 코란 외우는 높은 톤의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고 천장에는 꽃무늬가 한창 때를 막 지난 여인네의 화장한 얼굴처럼 덧씌워져 있었다. 다만 복도의 제일 끝 유리창의 아라베스크한 칼라를 타고 햇살이 복도를 비추는게 참 평화로워 보였다.
나와서 오던 방향으로 나가 다시 오른쪽으로 꺽으니 분수광장같은(물은 나오지 않음) 곳이 나오고 왼쪽 골목으로 시계탐이 보인다. 시계탑에 가까이 가서 보고 광장으로 다시 나오니 여기는 바자르 안이다. 온갖 과일, 야채, 옷감, 향신료 골목을 지나쳐 오다보니 흰색 돔에 십자가가 보인다. 교회인가? 하고 가서 보니 All saint Church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경비보던 사람들이 금속 탐지기를 들이대기에 마당에서 사진 1장만 직고 나간다고 양해를 구한 후 건물만 찍고 나왔다. 치! 테러할거면 니네 동네 얘들이 하지 우리가 여기까지 왔겠냐 싶었다.
교회를 벗어나 큰 길을 따라 가다가 자시 골목길로 접어들어 가게들을 기웃거리면서 다시 큰 길로 나왔는데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대개 이런 경우에는 경험상 내가 생각하는 방향은 아니더군. 신 선생도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그게 맞을 듯 싶어서 그족으로 나갔다. 걷다가 쇼바 춐(shoba
chawak)이 이쪽이냐고 물으니 맞다고 한다. 도중에 그늘이 있는 음료수 가게에세 펲시 한병(10루피/1병)씩 시원하게 마셨다. 국내에서는 1년에, 그것도 사이다 종류만 1병 정도 마시는 내가 (난 설탕들어간 음식을 싫어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하루에 1, 2병씩을 예사로 마시고 있으니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웃긴다.
11: 00 숙소 귀환
호텔에 들어와 또 드러누웠다.
휴식이 분명이 필요한데 한나절 이상 쉬면 따분해 미칠 것 같은 이 드러운 성질은 어디 갔다 버릴 때가 없나? 오후엔 뭐하지? 또 뭘 먹어야하지? 아니! 꼭 먹어야하나? 뒹굴거리다가 12시쯤 잠이 들었나보다.
14 : 30 오침에서 일어남
15: 00 호텔 나옴
대우버스 터미널에 가서 내일 라왈핀디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기로 하였다. 럭샤를 30루피에 잡아타고 출발하였다. 어제 로즈호텔 올때 50루피 준 것은 바가지 썼음을 확인했다. 입맛이 쓰다. 쩝쩝....
15: 10 대우 버스 터미널
이 동네에서는 Daewoo를 다에우라고 발음해야한다. 마찬가지로 Hyundai는 윤다이라고 발음한다. 도대체가 어느나라 방식의 발음인지 원....
대우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버스 터미널에 가서 시간표를 보니 (대우 터미널은 시간표를 휴게실 안에 A4용지에 프린트해서 붙여 놓는다.) 05:00부터 꽤 여러 편 있다. 오전에 대사관을 방문하기 위해 06:30분 버스표를 예약하려고 하였더니 좌석이 없단다. 제일 빠른 것이 09 : 30버스라고 한다. 그것도 41, 42번이란다. 내가 내일 오전에 우리나라 대사관을 반드시 방문해야한다고 사정하였더니 그럼 일단 6시까지 오란다. 아마도 대기자로 놔두었다가 빈 자리가 있으면 태워줄 모양이다. 내 생각에 만약 빈자리가 없다면 건너편의 일반버스를 타고라도 가야겠다 생각하니 크게 부담되지는 않았다. 라왈핀디까지는 163km인데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나보다.
더워서 휴게실에 들어가니 하드가 있기에 얼마 않하겠지하고 쵸코바 2개를 꺼내니 물경 60루피!! 허걱~ 나쁜 선택이었다. 하드를 먹고 시간 보낼 때가 마땅치 않아 투어리스트 인에 가면 한국인이 있겠지. 특히 가능하면 이글 네스트에서 만난 이글 네스트에서 만났던 대학생들이 아프같으로 넘어간다고 했으니 혹시 만날 수도 있을거라는 기대감에 일단 투어리스트 인으로 가기로 하였다.
럭샤꾼들에게 “사다르!, 쟌 베이커리!”하니 50원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30루피에 가자니까 4번째 릭샤가 잡혔다. 투어리스트 이을 가다보니 우리가 묶는 로즈 호텔에서 박물관을 지나 큰 길따라 5분만 가면된다. 난 전혀 다른 구역인 줄 알았었다. 쟌 베이커리 앞에 내려주는데 어딜 둘러보아도 바자르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냥 한적하고 큰 길이었다. (럭샤꾼들에게 투어리스트 인을 말해봐야 잘 모르니 쟌 베이커리라고 해야 알아먹을 것이다.)
쟌 베이커리는 프랑스식 멋진 외관을 갖춘 제과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본듯한 제과점 건물인데 기억이 않난다. 안에 들어가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을 생각이었다. 제과점의 빵이나 쿠키들은 우리나라 여느 고급 제과점하고 비슷하다. 우리는 소세지와 야채, 토마토 샐러드를 빵 가운데를 칼집내어 집어 넣은(우리나라에서는 빵을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이름은 모르지만 제과점에 가면 흔하게 있는) 삼각형의 샌드위치 2개와 안에 야채 + 계란을 넣은 샌드위치 1개, 소고기 버거 1개를 함쳐서 145루피에 샀다. 안에서 먹으려고 하니 앉을 좌석이 없다. 할 수 없이 들고나와 제과점 왼쪽의 주차장같은 공터러 들어가 그 안에 있는 투어리스트 인으로 갔다.
투어리스트 인은 단층 건물이었다. 입구의 카운터를 지나면 마당이 나오고는데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할아버지에게 혹시 한국인 없냐고 하니까 이다면서 손으로 가리킨다. 마당을 지나 지붕 밑의 소파 앞 더블 룸으로 가니 중년의 수염을 기른(수염을 기른게 아니라 깍지 않은) 두분이 계셨다. 인사를 하니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어디서 왔냐고 하니까 이란에서 아프간을 거쳐 오늘 왔다고 한다. 아프간을 통과했다고 해서 몇가지 궁금한 걸 물어보다가 아예 소파에 진을 치고 이야기를 하였다. 조금 있다가 또 한분이 오신다. 이 분은 아프간만 여행하다가 조금 전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더블 룸의 두분은 서울의 고등학교 교사들이고 한분은 양양의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5명이 모두 교사들이었다. 소개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아프간을 중심으로 여행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우리는 그분들에 비하면 무척 편하게 여행을 한 셈이었다. 특히 서울 팀의 후배(후배라고 해도 40대 중반)분은 배낭 경험이 매우 풍부하신 분이라 그야말로 종횡무진 이야기가 펼쳐지고 무척 재미있었다. 속초의 선생님은 주로 다큐 사진을 찍는 분이신데 상당히 전문가적인 시각으로 앵글을 이야기 하신다. 그 분들의 공통된 의견은 아프간은 생각보다는 안전하다. 아시아 어느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잘난 척하거니 까불지 않고 침착하고 정중한 자세로 접근하면 어디서든지 친절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정말 좋은 지적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잠간 한 것 같은데 시간은 쏜살같이 3시간을 지났다.
이야기 중간에 라호르의 리갈 인터넷 인에서 만났던 하시시에 중독된 예수같이 생긴 친구를 만았다. 자기도 우리를 알아보더니 반갑다고 악수를 한다. 알고보니 독일 대학생이었다. 그때는 몸이 상당히 안 좋아 보이던데 몸이 많이 나은 모양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시시 뻑뻑....
어디로 갈거냐니까 치트랄로 간다기에 몇가지 정보를 주었다. 또 이야기 도중에 눈이 부리부리한데 한쪽눈에 백태가 낀듯한 흰 머리의 노인이 우리 옆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한국어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듣다가 물어 보는 말에는 친절하게 답변해준다. 알고보니 이 분이 그 유명한(?) 바비지였다. 바비지는 주로 페샤와르에서 당일 코스로 다라 구역이나 아프간 난민 캠프를 투어로 데리고 다니는데 많은 배낭족들에게 이름이 아려진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 투어를 부탁할 때는 사람 숫자 나누기 총액이기 때문에 적은 숫자가 투어에 나설 경우 비용 부담이 있다. 내가 알기로는 하루 투어비가 1,000루피일 것이다. 그래서 산두르 패스를 같이 넘은 캐나다 친구는 혼자서 버스타고 다라에 가서 총도 솨보았다고 한다. 총쏘는 가격은 생각보다는 비싸다. 일본인이나 웨스턴 친구들이야 실제 총쏘는게 쉽지 않을테니 좋다고 가겠지만 우리나라야 군대에서 많이 쏴보지 않는가?. 나 같은 경우에도 수경사 출신이라 사격은 무척 많이 했었다. 시가지전투부터 시작해서 야간사격, 심지어는 APC타고 딜리면서 M60쏘기까지.....
바비지가 지금은 붕괴된 탈레반 정권에서 발행한 지폐가 있기에 10루피줄테니까 바꾸자고 해서 바꾸었다. 아프간 못간 대신 기념품이다.
18: 30 투어리스트 인 출발
하늘에 구름이 짙게 깔리기 시작해서 아쉽지만 일어났다.
내게는 페샤와르가 무척 심심한 곳이다. 거기에는 여권이 없다는 것이 많은 작용을 하였으리라 그러나 페샤와르는 교통의 중심지이지 그 자체로서 볼 것은 별로 없는 곳이다. 내가 아프간을 넘어갈 것도 아니고(여기서 아프간 비자는 1박 2일에 30달러라고 한다.) 카이버패스를 다녀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자르에 많은 흥미를 가진 것도 아니어서 그저 푹 쉬다 가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호텔로 돌아오는 럭샤는 20루피였다.
18: 40 호텔 도착
호텔로 돌아와 소세지 샌드위치 1개와 사과 1개를 먹고 드러누웠다. TV를 켜니 스타 스포츠에서 영국의 아스날과 첼시의 축구를 중계하고 있다. 첼시가 입은 유니폼의 삼성전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나가서 소고기 꼬치구이(10루피/1개) 5개를 사다가 마지막 남은 팩 소주 2개를 먹어치웠다. TV의 축구 경기는 첼시가 2:1로 아스날을 꺽었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CNN에서 이탈리아 앞바다에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스팟 뉴스가 계속 뜬다. 아! 삼순이가 보고 싶다. 내가 CNN을 들여다보고 있다는게 신기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계속 틀어놓으니 반복되는 뉴스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점차 대강의 뜻이 이해된다는 것이다. 으음~ 언어 공부는 이렇게 하는건가?
21: 25 취침 모드로 전환 중
00: 00 정확하게 12시에 잠이 깨었다.
이때부터 3시까지 허리 통증 때문에 계속 뒤척이다가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