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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해설 ( 2 )
<찬송가 355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맡은 자 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 2) 이 호 운 작시 이 유 선 작곡
1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2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3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예수 님이 지셨으니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15: 22)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분연히 일어나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담대한 믿음으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다 바쳐야 합니다. < 1 절>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고 찾아가며 죄악의 거리에서도 내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다 드리며 사랑으로 전도하여 불쌍한 이웃을 구원하도록 열심을 다해야합니다. < 2 절>
모든 존귀와 영광은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께 돌리며 고난과 핍박 가운데에서도 오직 택하시고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섬겨야 합니다. < 3 절> |
찬송가에 실린 우리 나라 사람이 만든 찬송 중에서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을 작시한 이 호 운 목사님의 찬송은 493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이 호 운 목사님은 1911년 5월 3일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답게 몸을 돌보지 않고 심혈과 정열을 기울여 우리 나라의 교회 성장을 위해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만주 용정시 영신 중학을 거쳐, 서울 감리교 신학대학을 마쳤으며, 강원도 화천감리교회 담임, 황해도 옹진감리교회, 평양 성화여고 교감, 중앙 신학교 교수, 감리교 신학교 교수를 거쳐 1952년 미국 텍사스주 남 감리교 S.M.U.신학대학을 졸업, 연세대학교 강사, 이화대학교 강사, 감리교 대전신학교 교장 외에 국제대학과 연세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삼화중학교 이사장 직도 역임했습니다. 이후에도, YMCA 이사장, 기독교서회 이사, 감리교 대전 신학대학 학장, 중앙 신학교 재단이사장도 역임했습니다.
목사님이 옹진에서 전도사로 목회를 하실 때 산골에서 혼자 사는 가난하고 연로한 모매님을 심방 갔는데 어둡고 비좁은 방에 몸져누웠던 모매님은 주의 젊은 종을 모시고 들어가 소중히 간직했던 사과 한 개를 선반에서 내리더니 녹슨 참칼 하나를 등잔 받침에서 꺼내 침을 탁 뱉아 버선목에 쓱쓱 닦은 후 사과를 벗겨 대접하였는데 군데군데 시커먼 손자국이 묻어있는 사과를 태연히 받아들고 정성스럽게 감사기도를 한 후 맛있게 잡수셨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병들고 가난한 자 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 찬송은 원래 박 재 훈 박사의 곡으로 불리웠으나 1966년 찬송가 개편 때에 이 유 선 교수님의 곡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 찬송은 부르심을 받은 젊은 종들이 헌신을 다짐하는 찬송으로 삼아왔습니다.
이 찬송의 작곡자 이 유 선 교수님은 “짧은 시간 내에 이 찬송에 곡을 붙여야 할 사정이 생겨서 피아노 앞에 앉아서 마음속으로 멜로디를 그려가며 써내려 가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멜로디가 흘러나와 거침없이 한 번에 곡이 완성되었다.”고 하며 “이 곡처럼 멜로디가 한번에 그려진 일은 평생 처음이다.”고 하셨다합니다.
교수님은 1911년 평양에서 한국 기독교 감리교 초대목사인 이 익 모 목사님의 삼남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찬송 부를 기회를 많이 가졌으며 배재 고보, 연희 전문학교, 미국 시카고 아메리칸 음악학교, 시카고 음악대학원을 나오셨으며 배재 고보 이후 줄곧 교회 성가대를 지휘하시며 우리 나라의 음악계에 이바지해오셨습니다.
※참고문헌: 기독지혜사 간 해설 찬송가 김경선 저 찬송가 해설 글:박경우 안수집사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