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큰 기대와 꿈을 가기고 출발했던 2004년도 오늘로서 주보의 52주일 중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역사의 전환점에 서서 아쉬운 시간과의 작별을 할 때면 마음 한 구석에는 회한(悔恨)이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희들이 겪는 불행과 실패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며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본문 말씀 15절에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불의한 자가 복을 받고 오히려 선을 행하는 사람이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그 백성의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들과 더불어 공개적인 담판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16절에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인생의 실적을 놓고 손익계산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Ⅰ. 손익계산의 시기
본문 말씀 17절에는 “내가 나의 정한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2에는 그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그 날과 시간은 사람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1) 개인의 종말입니다.
솔로몬 왕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잠 3:1-2). 히브리서 9:27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정한 법칙에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창 3:19). 그런데 죽음 다음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심판의 때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인생의 실적을 내어놓고 평가를 받게되는 시간인 것입니다.
(2) 세상의 종말입니다.
히브리서 13:14에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체질 세계의 종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21:1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세상의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14:15에 보면 그 때 재림하시는 주님께서 손에 낫을 들고 추수할 곡식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3:30에는 추수 때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해서 알곡은 곳간에, 가라지는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넣는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만 아시는 때입니다.
사람들은 감추어진 사건이나 비밀에 관한 일은 꼭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생명이 언제 끝나게 되는지, 또는 세상의 종말이 언제쯤 오게 될는지 몹시 궁금해합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인간에게 있어서 풀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시간을 묻는 제자들에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라고 말했습니다(행 1:7). 마태복음 24:36에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Ⅱ. 손익계산의 근거
마태복음 25:14-30에는 예수님의 종말론적 교훈 가운데 달란트 비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이 종들에게 맡긴 달란트와 그들이 남긴 결과를 논하는 일종의 심판 행위입니다. 종들은 저마다 주인에게 받은 것과 그것으로 남긴 실적을 대조하여 상을 받기도 하고 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각 사람의 재능에 따라 주어진 기준이 다르게 적용되었습니다. 창조 주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각각 사명을 주셨고 또 그것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은사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사명을 근거로 거기 쌓은 실적에 따라 평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여부
사사기 9:7-16에 기드온의 아들 요담이 세겜사람에게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를 비유로 들어 설교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모두 하나님께 받은 사명 때문에 왕이 되어 달라는 나무들의 요청을 뿌리치고 자기의 분수를 지키며 최상의 열매를 맺는 일에 주력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제 위치에서 자기가 하여야 할 일에 최선을 다했을 경우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최고의 영광을 안겨 주십니다(마 25:31). 사도 바울은 자기의 평생을 회고하면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자랑하였습니다(딤후 4:7-8).
(2) 쌓은 실적으로 평가합니다.
요한복음 15:8에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 근처에서 거기 모인 무리들을 향하여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하였습니다(마 3:10). 이러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실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열매」란 하나님께서 가치를 인정하시는 행위를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갈 6:7-8).
(3) 가장 공정한 척도로 판정합니다.
로마서 14:12에는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만든 자료에는 조작하거나 잘못된 증거를 채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이나 꾸밈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는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신다고 하였습니다(마 16:27). 그런데 각 사람의 행위에 대하여는 다른 사람들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고 모두 스스로 직고하게 되어 있습니다(마 12:36-37). 다만 그 증언이 맞고 안 맞고는 하나님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된 자료가 판정하게 합니다.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은 그 수록된 내용만 가지고도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의 행위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16-17절).
Ⅲ. 잃는 것과 얻는 것
인생의 쌓은 실적을 놓고 평가를 할 때 겉으로는 대단한 것 같으나 내용은 없는 것이 있고, 반대로 사람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으나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 사자들에게 편지하면서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하였습니다(계 2:9). 한편 라오디게아 교회 사자들에게는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고 하였습니다(계 3:17).
(1) 예수가 있으면 모든 것이 있고, 예수가 없으면 모든 것이 없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와 투자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천국운동은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났을 때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자하여 그것을 손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마 13:45-46). 그리스도인은 하나를 얻기 위해 아홉을 포기하는 자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고 난 후 이전에 가졌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내버렸습니다(빌 3:7-8).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같은 사람들은 가족과 생업을 뒤로하고 예수를 좇았습니다(마 4:19-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6:25).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을 주셨을 때 고향도 포기했고(창 12:1-4), 뒤에는 백세에 얻은 독자도 희생하였습니다(창 22;12). 결국 그는 예수님의 조상으로서 열국의 뿌리가 되었고 그 후손들은 역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마 1:1).
(2) 지혜를 얻으면 모든 것을 얻고, 지혜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가치를 말하면서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잠 3:14). 그는 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고 하였습니다(잠 3:15-17).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단순한 세상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를 의미하는데(잠 1:7),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신앙을 뜻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역대 선진들은 모두 다 믿음 하나를 위하여 자기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9:7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하고 고백합니다(시 19:10). 사도 바울은 성령을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2:10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지혜를 가진 다니엘에게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도 “신들의 지혜가 있는 자”라고 하며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단 2:46).
(3) 시간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고, 시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에베소서 5:15-16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기회를 사라」는 뜻입니다. 이사야 55:6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2:6에는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능력을 받는 것도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시간 관리에 민감하여야 됩니다. 한 순간을 붙잡아 평생을 얻는 사람이 있고 한 순간을 놓쳐서 평생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모세는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시 90:14). 세상 사람들은 한 순간을 살기 위해 영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살기 위해 순간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고후 4:17-18).
Ⅳ. 우리 날 계수함의 지혜
(1) 우리의 날수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역사나 개인의 생애가 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시간 안에 있음을 말합니다(전 3:1-11). 따라서 어느 누구도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시 39:5). 모세는 하나님의 시간이 영원한데 반하여 인간의 시간은 한 순간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90:4에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9절에는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고 하였습니다. 10절에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하였습니다.
(2) 허망한 인생이 되기 쉽습니다.
평생을 뜻 있는 삶을 살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자기를 철저히 관리했던 사람도 생애의 마지막에 서서 볼 때 너무나 허무하다고 고백을 합니다. 솔로몬은 전도서를 기록하면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하였습니다(전 1:2). 그는 또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전 2:11). 이사야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고 하였습니다(사 40:6). 풀의 꽃처럼 잠시 피었다가 지고 마는 허망한 인생임을 알게 하는 말입니다. 신약의 야고보는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약 4:14).
(3) 중간 점검이 필요합니다.
제한된 시간에 내용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항상 자기를 살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말씀의 척도를 가지고 자기의 행위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내용 없는 거품은 걷어내고 실속 있는 것을 삶을 가꾸게 됩니다. 링 위에서 시합하는 권투선수가 공이 울릴 시간이 다 되어도 실점을 만회하지 못해 초조해 지는 것이나,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이 풀지 못하는 문제에 매달리면서 남은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의 생애가 길고 짧은데 상관없이 자기 인생의 목적을 바로 알고 그것을 붙드는데 주력합니다. 평생을 허무하게 살았던 사람도 마지막 순간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잃어버린 평생을 되찾는 소득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이 추구하는 물질이나 권력이나 쾌락을 다 누리고도 이것들을 바람을 잡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 솔로몬은 마지막으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였습니다(전 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