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9일 토요일 경기도 광명 농부 김백근 형님(노래하는 농부)댁에 다녀왔습니다. 4월 논 모판 작업할 때 다녀온 뒤 두달만에 다시 찾아뵈었네요. 광명 올 때면 항상 마음 설레입니다. 넉넉한 인심과 흙내음, 땀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두루 선물받을 수 있어서지요. 버스에서 내리니 마침 형님이 비닐하우스에서 거둔 오이를 옮기고 계시네요. 같이 차를 타고 저장고에 가서 보관했습니다. 다음주 시장에 내다팔 것들이겠지요. 집으로 돌아와 늦은 아침을 드십니다. 저도 같이앉아 두번째 아침을 먹었습니다. 싱싱한 상추와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먹어니, 또 먹어도 맛있네요.
냉커피를 한잔 곁들인 후 (내년이면 여든이신) 모친, 형님 내외와 세시간여 밭에서 메주용 콩을 심었습니다. 저와 형님은 고랑에 두세 개씩 구멍내고, 물 뿌리고, 어린 종자 너댓 개씩 놓고. 그러면 모친과 형수님은 뒤따라오며 흙을 돋워 심고. 원래 일 못하는 사람이 더 바쁘지요. 제가 딱 그랬습니다. 간격도 못 맞추고, 아까운 물도 이리저리 흘리고, 느리고... 형수님의 잔소리가 들려오고 그만큼 뙤악볕도 심해지네요. 그래도 좋습니다. 형수님은 참 편안하고, 다정하신 분입니다. 이제 가벼운 농담도 건낼만큼 가깝게 느껴집니다. 일하는 중에 형님께서 이런 말씀 하시더군요. “밭에 씨 심을 때 좋은 마음, 착한 마음으로 일해야 돼. 만약 화났을 때, 나쁜 마음 상태일 때 심으면 절대 안돼. 그 마음이 씨에 전해져서 안 좋거든.” 그 말씀 듣고선 고개가 절로 끄덕여져, 쏟아지는 뙤악볕에도 즐겁게 일했습니다.
요즘 형님 일과는 이렇답니다. 아침 다섯시 반 일어나 바로 비닐하우스나 밭에 나가 세 시간여 새벽 일, 아홉 시경 돌아와 아침 먹고 잠시 쉰 후 다시 나가 오전 일. 두 시경 점심 식사후 쉬고 서너시경 나가 저녁일 시작, 돌아오면 아홉 시. 그 시간에 늦은 저녁 먹고나면 정신없이 잠에 빠진답니다. “아이고 형님, 너무 힘드시겠어요. 몸 관리도 하셔야 하는데...” 십여 군데 나눠진 논밭을 혼자서 관리하신다니 고생이 눈에 훤히 보입니다. 그래도 어제 저녁엔 시내 나가 형수님과 막걸리도 한 잔 하셨답니다. “형님. 참 멋지게, 재미나게 사시네요.” 했습니다.
한참 일하는 중에 문득 지난 달 고향에서 만난 분(이이화선생)이 생각나 문자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출판사 편집자로 서울에서 생활하다 몇해 전 귀향, 인문학 강좌를 열고계신 분입니다. “아제(저와 같은 집안분이라 이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잘 계신지요? 이응덕입니다. 저는 광명 교외 아는 농부형님댁 와서 밭일 하고 있습니다. 일 잘 못하지만 땀흘리니 좋습니다. 가족들 모두 건강하세요~~.” 바로 답장을 주시네요. "멋 있네... 게시판 글 잘 보고있고, 나도 글 올려야지 하면서도 이런저런 일로 시간이 쏜살같다^^”. 제가 듣기엔 넘치는 칭찬이지만, 어쨋든 기분 좋네요.
오후엔 일손이 늘었습니다. 같은 광명 사는(올해초 경남 창원으로 발령나 주말 가족인) 제 친구가 합류한 겁니다. 오랫동안 주말 농장을 해 일솜씨가 저와는 비교도 안됩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냥 오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막걸리 몇 병 손에들고는 싱글벙글, 참 사랑스런 놈입니다. 마침 오후에는 아주 잠깐이지만 소나기가 내려 가뭄도 덜고 더위도 식혀줍니다. 그동안 너무 가물었지요. 더 많이 내려주면 좋겠는데 좀 아쉽습니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 오전에 비해선 훨씬 일하기 수월했습니다. 이렇게 여섯 시 조금지나 일이 대강 마무리되고, 즉석에서 작은 막걸리판이 벌어졌습니다. 밭 바로 앞 냉장고 수리공장 사장님도 함께 했습니다. 오늘 밭일에 공장 수도물을 대주신 고마운 분이지요. 서울 영등포가 고향으로 58년 개띠라고 하시는군요. 이런저런 정겨운 얘기들이 오고가는 사이, 어느새 해가 기울었네요.
형님댁으로 돌아와 씻고 나니 여덟 시가 가깝습니다. 제 친구가 어느새 옆 가게에서 먹걸리를 몇병 더 가져옵니다. 마땅한 안주거리 없다며 형수님은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양장피를 시키고요. 덕분에 푸짐히 잘 먹습니다. 농사 얘기, 애들 얘기, 그냥 사는 얘기, 서로 끝없는 이야기 보따리를 풉니다. 그러다 제가 형님께 청을 하나 드렸습니다. " 형님, 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이런 거 잘 안하는데... 형님 싸인 들어간 CD 두 장 꼭 갖고 싶어요. 하나는 제가 하고, 하나는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에게 선물하고." "그래그래. 나야 좋지" 흔쾌히 주신다네요. 어느새 열 시를 가리킵니다. 형님은 어느샌가 곤히 잠에 빠지셨네요. 소파에 기대 졸고 계신겁니다. ‘아이고 얼마나 피곤하시면...’ 형수님과 친구놈은 아직 멀쩡한데, 저는 주량을 한참 넘어서 ‘불타는 고구마’ 얼굴이 되어가네요. 안되겠다 싶어 서둘러 일어났습니다. “형수님, 저희들 갑니다. 잘 먹고 잘 놀다 갑니다. 형님 깨우지 마시고, 그냥 조용히...”
술기운 때문이었겠지요. 일요일 아침 늦게 일어나보니 휴대폰이 없습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네요. 할 수없이 전화를 드렸습니다. “형님. 응덕입니다. 어디세요, 일하시는 중이세요?” “그럼. 나 지금 밭이야.” 집에 들어가시면 폰 좀 찾아봐달라고 말씀드리니 잠시후 연락이 옵니다. 찾아봐도 없답니다. 안되겠다싶어 어제 탄 시내버스 회사를 검색했습니다. 고맙게도 전화 받으시는 분이 보관하고 있답니다. 어제밤 돌아오는 버스에서 흘리고 내렸군요. 차고지 사무실에 있으니 오랍니다. 형님댁 근처라 휴대폰을 찾은 후 다시 댁에 들렀습니다. 세 시경, 단잠에 드셨는데 저 때문에 깨었습니다. 어제 못 주셨다며 친필 CD를 미리 준비해 두셨네요. ‘ 행복 가득, 기쁨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농부가수 김백근. 2012년 6월’. 고마운 마음 안고 집으로 왔습니다. 오늘도 큰 선물을 받았네요.
무척 덥고 고된 하루였지만, 농부의 마음을, 그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알기에 감히 힘들다는 생각은 접기로 했습니다. 항상 많이 배우고, 깨닫고 오니 제겐 더없이 좋은 경험이지요. 마침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선생 위인전을 펴보니,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어린 시절 다산은 엄청 사고뭉치 개구쟁이였나 봅니다. 아이들과 남의 집 호박에다 말뚝을 박고 무를 뽑아 팽개치는 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들킨겁니다. 보다못한 동네 어른이 다산의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알렸지요. "네 나이 벌써 열 살인데, 농부들이 논밭을 일구는 데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는지 보지도 못했단 말이냐?"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 "그 호박 하나 무 하나에 들어간 농부들의 피와 땀을 알지 못하면서, 글만 읽는다고 사람 노릇을 하겠느냐?"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다산은 철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적혀 있네요. “농부들이 땀흘려 지은 곡식과 작물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 그것이 약용에게 세상의 갖가지 이치를 깨닫게 한 것입니다.”
저도 요즘 조금이나마 ‘농부의 마음’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이만.
※ 김백근: 노래하는 농부.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거주. 2009년 1집 <땅으로부터의 메시지> 발표,
대표곡 <쌀>, <농부의 마음>. 개인 콘서트 3회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