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님, 오늘도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교회의 권징에 대해 질문을 주셨지요? 권징에 대한 사유나 방법, 사례 등을 직접 거론하는 것보다는 이에 대한 개념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들은 교회의 권징에 대해 말씀드리기가 매우 조심스러운 시기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사람들의 사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TV 토론 프로를 보아도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게 결론 낼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요.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교회 내에도 ‘절대 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점차로 득세하고 있지요. 그 결과 교회에서의 권징은 이제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무엇이 옳은 것인지, 누가 옳은 것이지 말해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이제는 교회 내의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전락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즈음 불거지고 있는 대형교회들의 분란을 보면 이러한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작 권징이 필요한 곳에는 권징이 없고, 권징이 불필요한 곳에 권징이 시행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전5:1~2)”
그럼 성경적인 권징이란 무엇일까요?
첫째, 권징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권징은 하나님 말씀에 의한 권징입니다. 즉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선포된 말씀의 능력으로 권징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지 않는 교회에서는 올바른 권징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저 세상과 같이 이권다툼을 위한, 힘 있는 자가 자신의 뜻을 반대하는 자를 억압하기 위한, 또는 그 시대 시대마다 어긋난 도덕적 행위를 다스리기 위한 재판과 판결이 있을 뿐이지요. 일반적으로 요즘의 교회들이 올바른 권징을 하지 못하게 된 원인을 지도자들의 부패, 도덕적 타락, 공동체의 개인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향상 등이라고 말들 하지만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권징은 ‘사랑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13:1)”
권징을 받아야 할 자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권징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올바른 권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벌주는 세상과 전혀 다를 것이 없지요. 교회는 힘으로 다스리는 곳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스려지는 곳입니다. 이 사랑의 힘이 없다면 범죄 하는 형제들에게 권징 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많은 눈물로 썼다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를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라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하려한 것이죠.(고후2:4) 그런 후에 사도 바울은 계속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고후7~8)”
이렇게 눈물로 편지를 쓰면서 넘치는 사랑을 가지고 권징 할 수 있어야 참된 권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모가 사랑하는 마음 없이 자녀를 다스린다면 자녀는 부모를 따르지 않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하는 마음을 자녀들이 마음 속 깊이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자녀들은 마음으로부터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권징은 교회를 지키고 범죄 한 형제를 다시 찾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5:5)”
이 말씀은 권징을 통해 육의 소욕을 다스려서 영의 소욕이 승리하도록 돕는다는 말씀입니다. 즉, 권징은 단순히 범죄의 댓가로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다시 말씀드리면 권징이란 그리스도 예수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거룩함과 순수성을 지키고, 범죄 한 형제에게 죄의 종노릇 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알게 하여 의의 종으로 다시 교회로 불러내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권징 당하는 자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설사 출교를 당한다고 해도 다시 꼭 돌아오게 되어 있지요. 교인 한 명이라도 잃어버릴봐 벌벌 떨면서 권면 한마디 제대로 못한다면 권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권징은 절차에 맞게 시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18:15~17)”
이 권징의 절차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첫째, 올바른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고, 둘째, 사랑의 힘이 있어야 하며, 셋째, 권징의 의미을 정확히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수단으로서 총회 헌법에 따라 ‘치리회’를 구성해서 모든 것을 잘 살펴 보면서(비성경적이고 억울한 일이 없도록) 권징의 절차에 맞게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성경적인 권징은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 선포와 그 말씀의 능력이 우리들을 직접 치리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에 항상 있어야 하는 진정한 권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권징이 무너지고 교회 내에 ‘치리회’가 구성되어 권징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18:21~22)”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회 안에서 생기는 일을 교회가 처리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법관들 앞)에 끌고 나가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죠.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있는 자들입니다. 세상사람들과 같이 있지만 그들과는 다른 존재들이지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항상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름다운 권징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샬롬~.
첫댓글 감사합니다. 실은 제가 더 궁금했었는데 아주 명쾌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