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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에서 발견된 독일 군복을 입은 동양인 사진 한장.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이 된 전쟁의 비극이 낳은 기적 같은 이야기, <마이웨이>
이야기의 발단은 작은 사진 한 장이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이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관련사이트에 게재되어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승리한 연합군에 끌려온 독일군 포로 중에 발견된 동양인. 그가 하는 말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미 정보국에 넘겨진 그는 좀처럼 믿기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에서부터 몽골, 소련, 독일을 거쳐 프랑스 노르망디에 이르기까지 지구 반 바퀴에 이르는 12,000Km의 전장을 가로지른 여정, 그 속에서 살아남은 그는 다름 아닌 조선인이었던 것이다.
이 기이한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2005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시 한 번 조명되어 국내에 알려졌다. 이 이야기를 접한 강제규 감독은 큰 충격과 뜨거운 감동을 받았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노르망디 코리안 실화를 차근차근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2011년 겨울,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마이웨이>의 출발이다.
순제작비 280억 원이 투입된 <마이웨이>는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다루는 작품으로, 그 소재만으로도 가늠할 수 있는 거대한 스케일과 전쟁을 넘어선 감동의 한국영화의 역사상 새로운 예고를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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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스케일과 더불어, <마이웨이>는 노르망디의 코리안 실화를 바탕으로 구체화된 스토리를 그려낸다. 세기의 라이벌인 조선인 마라토너 김준식과 일본인 마라토너 하세가와 타츠오의 경성에서 시작된 엇갈린 운명은 일본군에 강제징집 되어 병사로 끌려간 준식이 대좌로 부임한 타츠오와 재회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련군 포로로 압송되는 두 남자, 그리고 참혹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두 남자가 서로를 의지하며 독일군 진영으로 탈출을 시도하기까지. 절대 가까워질 수 없어 보였던 이들은 12,000Km의 기나긴 전쟁 속에서 일본, 소련, 독일까지 세 벌의 군복을 바꿔 입으며 점차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간다. 이렇게 라이벌이었던 두 남자가 비로소 손을 잡을 때, 관객들은 뜨거운 인간애와 진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1996년 <은행나무 침대>, 1999년 <쉬리>,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에 이르기까지, 항상 새로운 시도로 대한민국 영화사를 새롭게 써 온 최고의 연출가 강제규 감독. 특히 한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6.25를 배경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어느 형제의 이야기를 그려냈던 <태극기 휘날리며>는 두밀령고지 전투, 평양시가지 전투, 낙동강 방어선 전투, 압록강진지 퇴각 전투 등 치열했던 전장을 완벽하게 재현함은 물론, 이념적 차원이 아닌, 한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본 전쟁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는 평을 받으며 전국 1,174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천만 흥행 신화를 이룬 강제규 감독은 이후 할리우드로 넘어가 새로운 작품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쉽지만은 않았던 <태극기 휘날리며>의 작업을 떠올리며 ‘다시는 전쟁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2005년 국내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된 ‘노르망디 코리안’의 기적 같은 스토리를 접하고 뜨거운 감동을 받아 또 한편의 전쟁 영화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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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라는 한국영화로서는 생소한 소재, 그리고 12,000Km의 전쟁을 겪어야만 했던 어느 동양인의 실화를 영화로 다룬다는 것은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이라 해도 접근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까지 세 벌의 군복을 갈아입은 인물들의 드라마와 이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은 세 편의 대작 영화를 작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제작을 결정한 후에는 약 3년간 시나리오 작업과 프리프로덕션에 매진했고, 2010년 10월에 첫 촬영을 시작, 8개월 156회차의 대장정을 거쳐 <마이웨이>를 완성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최고의 자리에서도 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강제규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7년 만의 복귀작 <마이웨이>로 2011년 12월, 한국영화사에 또 하나의 역사를 기록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관통하는 거대한 스케일과 전쟁을 넘어선 드라마를 담은 <마이웨이>를 위해 국적을 초월한 최고의 배우들이 모였다. 장동건, 오다기리 조, 판빙빙, 김인권이 그 주인공이다. 강제규 감독은 <마이웨이>에서 12,000Km의 전쟁을 거치며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기적의 첫 번째 아이콘으로 장동건을 손꼽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동생을 살리기 위해 전쟁의 중심에 나서는 진태 역으로 강제규 감독과 함께한 그는 또한번 강제규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장동건은 12,000Km의 끝없는 전쟁 속에서 인간적이면서도 강인한 면모를 가진 준식 역을 통해 대한민국 최고 배우로서의 진가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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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장동건의 카리스마에 대적할 운명적 라이벌이자 동지로는 일본의 오다기리 조가 맡았다. <비몽>, <공기인형> 등을 통해 한국 영화와 남다른 인연을 맺고 이미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넓은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그는 일본 최고의 마라토너가 되어 조국의 명예를 떨치기를 희망하는 하세가와 타츠오를 연기했다. 타츠오는 조국을 목숨이 다 되어도 절대 전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의 신분으로 세 번의 전쟁을 겪으며 점차 변해가는 캐릭터로, 오다기리 조는 한층 성숙된 연기로 캐릭터의 매력을 살려냈다.
공리, 장쯔이의 계보를 잇는 중국 최고의 여배우 판빙빙은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한 가족의 원수를 갚고자 저격수가 되어 혈혈단신으로 일본군 부대에 뛰어든 중국 여인 쉬라이 역으로 <마이웨이>에 합류했다. 전장을 누비는 강인한 저격수의 모습에서부터 사지가 매달려 고문을 당하는 장면까지 고난이도의 촬영을 주저 없이 훌륭하게 소화한 그녀의 연기는 전쟁의 비극과 함께 그 아픔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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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대표 씬스틸러 김인권은 준식과는 가족과 다름없는 친구이자 준식의 곁에서 항상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마라톤 코치가 되기도 하는 종대 역을 맡았다. 종대는 준식과 함께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되어 치열한 2차 세계대전 소용돌이에 던져지지만, 소련 포로수용소의 작업반장이 되어 권력을 손에 넣게 된 후 전쟁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변해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천상의 목소리로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팝페라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가 <마이웨이>의 OST에 참여한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클래식과 팝의 경계를 허물며 팝페라라는 장르를 개척, 통산 6천 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팝페라의 거장이다. 1996년 사라 브라이트만과 함께 부른 “TIME TO SAY GOODBYE”는 국내 CF, 드라마 등에 사용되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안드레아 보첼리가 이번 작품에 참여하기까지는 <마이웨이>의 음악을 총괄한 이동준 음악감독의 노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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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음악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으로 감동을 극대화 시켰던 주인공으로, 이번 <마이웨이>를 통해 강제규 감독의 작품을 또한번 맡게 되면서 거대한 스케일과 감동적인 드라마를 강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이미 기획 단계부터 보첼리의 목소리를 떠올렸던 이동준 음악감독은 그를 섭외하기 위해 1년간 공을 들였다. 12살 때 시력을 잃었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한 결과 세계적인 팝페라 테너가 된 안드레아 보첼리는 <마이웨이>의 스토리를 접하고 전쟁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공감해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이번에 부른 곡은 이동준 음악감독이 작곡한 ‘TO FIND MY WAY’라는 곡으로 <마이웨이>의 엔딩 크래딧에 삽입될 예정이며 2011년 12월 15일 발매되는 라이브 음반 [CONCERTO]에도 수록된다. <마이웨이>의 스토리처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TO FIND MY WAY’는 감성적이면서도 힘 있는 보첼리의 목소리로 거대한 감동을 전하며 영화의 여운을 배가시킬 것이다.
일본 관동군의 진영인 몽골의 노몬한 전투지를 재현하고, 소련군의 포로수용소가 되었다가, 독일군과 소련군의 접전이 벌어지는 독소전까지, 모든 장소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최적의 로케이션 현장이었던 새만금 방조제 지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획 단계에서 해외촬영을 생각했던 <마이웨이> 제작진은 중국과 몽골 지역으로의 로케이션을 준비했지만 현지답사 결과 날씨, 숙박, 비용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에 부딪혀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국내로 눈을 돌렸다. 국내 촬영을 결정하고 전국 촬영장소를 물색하던 <마이웨이> 제작진이 발견해낸 곳은 바로 새만금 방조제. 그곳은 날씨, 숙박은 물론 교통과 장비운송 문제까지 <마이웨이> 촬영의 모든 요건을 충족시켰다. 특히 401㎢라는 한국영화의 촬영지 사상 최대의 면적은 노몬한 전투와 독소전 등 2차 세계대전의 치열했던 주요 전투와 몽골의 넓은 초원, 소련의 포로수용소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것이 가능했다. 이런 천혜의 환경인 새만금에서 꼭 촬영을 하고 싶었던 제작팀은 새만금 관리공단에 요청해 새만금의 전 지역을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어렵게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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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401㎢의 새만금 전 지역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마이웨이> 팀은 영화의 배경에 맞춰 광활면 부지, 만경강 부근, 계화도 부근 등 3섹터로 구역을 나눠서 세트를 제작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주변에 인적이 드물다는 점 역시 큰 장점이었다. 폭발 등의 소음이 큰 전쟁 장면을 촬영할 때 주위에 신경 쓰지 않고 촬영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촬영 요건의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촬영장소를 찾아낸 결과 <마이웨이>는 한 장소에서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의 진영을 완벽하게 구현해내며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스케일로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할 것이다.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2차 세계대전을 담은 <마이웨이>. 이번 작품의 큰 과제는 무엇보다 전쟁씬을 얼마나 실감나는 영상으로 표현해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마이웨이>의 촬영을 총괄한 이 아무개 촬영감독은 이 작품을 위해 총 5대의 카메라, 10가지의 촬영 기술을 도입했다. 전투씬 촬영에는 RED MX 2대, ARRIFLEX 435 1대, CANNON 5D MARK2 2대 등 총 5대의 영화용 카메라가 동원되었다. 그리고 몸과 헬멧에 장착하는 바디캠, 전동방식과 프로펠러 방식의 와이어캠, 무인헬기 및 직접 헬기팀을 동원해 촬영한 항공촬영, 초고속 카메라 촬영과 수중 촬영, 촬영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직접 와이어에 매달린 상태로 촬영한 와이어 촬영 방식, 유압 촬영 시스템 등의 다양한 촬영 기술을 동원해 보다 입체적인 앵글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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