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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 제1구간 산행
(칠장사 ~ 옥정현)
1. 산행일자 : 2006년 12월 9일 (토요일) 05 : 00시
2. 산 행 지 : 칠장산(492m), 칠현산(516.2m) - 경기 안성
3. 출발장소 : 경기대 후문 입구 맞은편 물류센터(동수원TG 진입직전 버스승차장)
4. 날 씨 : 비, 옥정현 도착 후 개임
5. 일정 및 소요시간
[1] 총 산행 거리 및 소요 시간 : 총 산행 약 19.1km, 9시간 30정도
[2] 구간별 거리
칠장사--1.2km--칠장산(492.4m)--2.4km--칠현산(516.2m)--1.6km--덕성산(520m)--4.6km--무이산(462.2m)--2.2km--옥정현(320m)--3.5km--△470.8m--3.5km--장고개(410m)--1.3km--배티고개(350m)
[3]. 구간별 산행 계획(소요 시간)
(1) 수원(05:00) ~ 영동, 중부고속도로 ~ 용인휴게소(05:30/아침식사/06:00) ~ 일죽TG ~ 17번국도 ~ 칠장사 주차장(06:30)
(2) 칠장사 주차장(06:30/06:40) → 칠장산(07:00/산제/07:30) → 부부탑(08:00) → 칠현산(08:20) → 덕성산(09:05) → 454.9(09:55) → 무이산(10:50) → 옥정현(11:40/점심/12:20) → 410.0(12:38) → 무제산능선갈림(13:15) → 470.8/헬기장(14:00) → 두멍골안부(15:10) → 421.8/헬기장(15:40) → 안부/장고개(15:50) → 배티고개(16:10)
(3) 배티고개, 313번 지방도(16:20) ~ 칠장사 주차장(17:00) ~ 일죽TG ~ 중부, 영동고속도로 ~ 수원(18:30)
[4] 산행의 실제
○ 동수원 TG 통과(05 : 50) → 죽산 도착(06 : 50) → 칠장사 도착(07 : 50)
○ 칠장사 출발(08 : 00) → 칠장사 뒤 능선봉 삼거리(08 : 18) → 바위봉(08 : 30) → 헬기장(08 : 35) → 안부, 부부 칠순비, 돌탑(08 : 40) → 안부(09 : 00) → 칠현산 정상/ 산신제(09 : 05) → 곰림정상(09 : 35) → 삼거리 갈림길, 생거진천 이정표, 덕성산 갈림길 (09 : 55) → [Y]자 갈림길, 소나무봉(10 : 07) → 능선 평지 / 후미 팀 기다림(10 : 15) → 삼각점(10 : 55) → 안부 사거리, 돌탑(11 : 17) → [Y]자 갈림길(11 : 38) → 사장골 정상(11 : 45) → [ㅏ]자 갈림길 / 산봉중턱을 가로질러 나감(11 : 45) → 안부 사거리, 작은 부부탑(12 : 05) → 고라니봉 삼거리(12 : 37) → 옥정재(390m, 13 : 00)
○ 청산가든 → 칠장사 → 동수원
6. 참 가 자 : 윤희원, 노승애, 김미환, 박봉하, 안상경, 박기양, 이용준, 장현옥, (강동규)
7. 산행 견문
[1] 금북정맥(錦北正脈) 개요(槪要)
「금북정맥은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491.2m)에서 충남 태안의 태안반도에 있는 안흥진까지 금강의 북서쪽을 지나는 산줄기로 거리는 약 263.5km에 달한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속리산 천황봉에서 가지를 쳐 안성의 칠장산까지 와서는 그 맥을 둘로 나누는데 이 산줄기가 한강과 금강의 강줄기를 가르는 한남금북정맥이고, 칠장산에서 김포 월곳면의 문수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남정맥이다.
금북정맥(錦北正脈)은 그 나머지 하나를 이루고 있는 산줄기로 칠장산(491.2m)에서 남쪽으로 칠현산(515.7m), 덕성산(521m), 무이산(462.2m)까지 이어지다가 방향을 서남쪽으로 틀어 서운산(547.7m)을 이루고 다시 남쪽으로 틀어 성거산(579.1m), 태조산(421.5m), 경암산, 고려산(301.2m), 국사봉(402.7m)까지 이어지다 북서쪽으로 봉수산(366.4m)까지 치고 올라간 다음, 서쪽으로 가지를 뻗어 각흘고개로 이어진다.
각흘고개에서는 잠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봉수산(535.2m)으로 이어지다가 그 맥을 다시 남쪽로 뻗어 천방산(478.9m), 극정봉(421.0m), 장학산, 국사봉(488.5m), 금자봉(324.7m), 문박산(337.8m), 천마봉(422.1m), 오봉산(145m), 백월산(393.6m)을 일구고, 다시 방향을 북서쪽으로 잡아 오서산을 일군다음 홍성에서 잠시 그 맥을 낮춘다.
꽃조개까지 구릉지대로 이어지던 마루금은 남산에서 다시 맥을 일으켜 세워 일월산, 홍동산(393.6m), 수덕산(495.2m), 뒷산(447.6m), 가야봉(677.6m), 석문봉(653m), 일락산(521.4m), 상왕산(307.2m)으로 서북진하다가 동암산(174.7m)을 거쳐 은봉산(283.5m)에서 서진하여 간대산(175.2m), 성왕산(252.3m), 금강산(316.1m), 장군산(203.5m) 물래산, 오석산(169.0m), 백화산, 퇴비산(159.7m), 구수산(145.5m), 전막산, 지령산(205.9m)을 일구고 안흥진에서 그 맥을 서해 바다로 넘기고 있다.」
출처 : <안성산지기의 불로그, http://kr.blog.yahoo.com/seong9038/95>
2006년 11월 5일 한남금북정맥 9구간을 완주하고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분기하는 칠장산에서 금북정맥을 종주하기로 뜻을 모았다.
[2] 산 행 전
[2-1] 대원들의 동정
입동(立冬 11. 7)이 지난지도 한 달이 지났다. 무성하던 가로수 잎도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고 기온도 뚝 떨어져 마을 실개천에도 살얼음이 얼다 녹기를 거듭한다. 원거리 산행을 앞두고 동네 공원이라도 몇 바퀴 돌며 산행 대비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날이 차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핑계로 여러 날 쉬다보니 몸무게는 점점 불어나고 산행에 대한 걱정 또한 몸무게가 불어나는 만큼 가중치를 더한다.
이번에는 금북정맥 종주 시작이라 성황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싶어 자주 다음 카페를 방문해 보았지만 한남금북정맥 종주 참가 수준을 넘지 못한다. 백두대간 종주 때의 기백을 잃었는지 아니면 생활이 바쁜지 회원들의 움직임도 거의 없다.
12월 3일이 정규산행인데 사정이 있어 9일(토)로 산행 날짜를 옮긴 탓인가? 강동규사장은 개인 사정이 있어 12월 2일 안교감과 함께『옥정현』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산행 출발 삼일 전인가? 다시 한 번 인원 점검을 해 보니 망포중 선생님 세 분, 곡선중 한 분, 한일타운 아주머니 두 분, 박상호사장, 박기양장학사, 장현옥부장 등 17명이 참가하겠다고 한다. 17명이면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샘이다. 다행이다.
[2-2] 날씨와 산행 준비
산행 하루 전, 산악대장의 글이 카페에 올라와 있다.
“내일 정맥 산행 시 우의 준비하세요. 비 올 확률이 오전 6시 - 59%, 오전 9시 - 40%, 12시 이후 오후에는 30%로 비를 맞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 오시는 분들에게 우의와 함께 도시락 등 준비물과 일반산행과 다름을 잘 챙겨서 알려 주시고, 특히 무리하게 산행에 참가하지 않도록 안내해주세요. 산제(山祭)는 우천(雨天) 관계로 생략하고 술 한 잔 올리는 정도의 약식으로 하겠습니다. (2006년 12월 08일 09시07분)”
‘시집가는 날 등창난다’더니 하필이면 산행 날에 비가 온다는 것인가? 하늘이 하는 일이니 雨中 산행을 대비해야겠다.
비를 대비한 산행 준비를 하고 밤 11시를 넘긴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자다 깨기를 서너 번, 결국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집사람이 깨운다. 03시 30분, 급히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으로 손을 내 밀어 보니 빗방울이 제법 많이 떨어진다. 썩 내키지 않는 산행이다. 그래도 도시락을 싸고 배낭을 다시 점검하여 집을 나선 것이 04시 30분. 생각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린다.
[2-3] 약속 시간
04시 50분, 동수원 물류센터 앞 버스 정류소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한 때문인지 산행 팀들이 보이지 않는다. 04시 55분, 김미환사장 나타나고 안교감도 택시에서 내린다. 박장학사, 대장, 노․장부장도 이어서 도착했는데 윤사장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 동창 모임이 있었다고 한다. 전화로 확인을 해 보니 집에서 막 출발을 했단다.
김인기사장 외국 여행 후유증 때문에 못 간다 하고 망포중, 곡선중 선생님, 그리고 한일타운 아주머니들은 우천으로 장시간 산행이 어렵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참여하도록 권유했다고 하며 박사장은 김치를 시골에서 날라 와야 하기 때문에 못 온다고 한다. 결국 평소 수준이 되고 말았다. 내연산 산행 때 함께 했던 망포중 젊은 선생님들의 경우는 참가할 만도 한데 아쉽다. 다음 구간부터는 꼭 함께 산행을 했으면 좋겠다.
예정시간보다 30여 분 늦은 시간에 윤사장 도착했다.
[2-4] 죽산에서
05 : 50분, 동수원 TG를 빠져 나와 빗속에 영동과 중부 고속도로를 달려 죽산(竹山)에 도착(06 : 35분)했다. 날이 훤하게 밝을 시간임에도 흐리고 비가 오는 관계로 주변 사물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어둡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 간 곳이 『죽산 행복 야식집(T, 676-6350, H, 011-258-5554, 죽산 동부 지구대 앞)』, 강사장과 안교감이 지난 번 산행 때 아침 식사를 했던 곳이다. 청국장과 동태찌개로 식사를 하고 밖에 나와 보니 여전히 비가 내린다. 아예 스펫치도 차고 비옷을 입고 차에 올랐다.
[3] 칠장사 이야기
계속되는 비로 산행 걱정을 하며 칠장사 주차장에 도착한 것이 07시 50분. 산사(山寺) 주변의 가게 불빛도 보이지 않고 인적(人跡)도 없다. 이른 아침이고 비가 오는 때문이리라. 배낭 덮개를 씌우고 지팡이도 꺼내 산행 채비를 단단히 칠장산으로 올라붙었다. 출발 예정시간(06:40)보다 1시간 15분이나 늦었다.
지난 한남금북정맥 완주를 하고 칠장사 경내를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둘러보았는데 이번에도 산행 시간에 쫓겨 결국 스쳐가고 말았다.
칠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 말사이며 창건년도는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선덕여왕 5년(636)에 창건하였고 그 뒤 고려시대 「혜소국사(慧炤國師 972~1054)」가 크게 중창하였다.
혜소국사(慧炤國師)의 속성은 이씨이며 이름은 정현인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 때에 광교사 총회에게서 구법하고 17세에 영통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28세에 왕명에 의하여 대사가 되었으며, 칠현산에서 아란탑 (阿蘭塔)을 세워 홍제관이라 하고 좌선하다 1054년 83세로 입적하였다.
칠장사는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혜소국사가 칠장사에 돌아와 가르침을 펼칠 때 일곱 명의 악인이 찾아와 가르침을 구하니 국사가 이들을 거두어 모두 현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후로 사람들이 칠장사가 속해 있는 산을 아미산(蛾眉山)에서 일곱 명의 현인을 뜻하는 칠현산으로 고쳐 부르고, 칠장사(漆長寺)도 칠장사(七長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칠장사에 기거하던 갓바치를 찾아온 임꺽정에게 절의 승려가 말 타는 법을 가르치고 자신의 말을 주었고. 임꺽정은 이 말의 이름을 칠장마(七長馬)라고 불렀다는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우왕 9(1383)년 왜구의 침입으로 충주 개천사에 두었던 사적을 이곳에 옮긴 적이 있다. 창건 된지 200년 가량 되었을 때 불타서 없어진 것을 연산군 1(1495)년에 중건하였고 현종 15(1674)년 중사 하였으며 단청을 칠했다.
숙종 30(1704)년과 영조 1(1725)년, 영조 2년, 영조 27년에도 다소의 이축과 증축이 있었고 고종 14(1877)년과 그 이듬해에 걸쳐서 또 다시 중건하여 오늘까지 전해오는 것이다. 경내에는 대웅전, 사천왕문, 원통전, 명부전, 나한전 등을 비롯하여 12동의 건물이 있다.
<출전 : 안성시 죽산면 문화재 안내>
※ 칠장사 개요 ※
①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24호
② 지 정 일 : 1983. 9. 19
③ 시 대 : 삼국시대 신라 선덕여왕5년(636)
④ 소 재 지 : 죽산면 칠장리 764
⑤ 소 유 자 : 칠장사
⑥ 재 질 : 목조기와지붕
[4] 금북정맥, 첫발을 내 딛다.
칠장사 뒤편으로 난 산죽(山竹) 밭을 따라 약 15분쯤 오르니(08 : 18분) 능선봉 T자 갈림 길이 나타난다. 산불신고 1-3지점으로 이정표(←칠장산, ↓칠장사, 칠현산→, 죽산산악회, 2004. 4. 15)가 세워져 있고 산꾼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파란색 돗자리도 깔아 두었다. 그리고 안성보건소에서「담배가 떠나간 자리 / 건강이 채움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금연 홍보도 할 겸 산불 예방 효과를 노린 듯 하다.
산악대장, 금북정맥이 처음 시작되는 지점에서 출발하기 위해 한남금북정맥과 금북정맥이 분기되는 지점으로 되돌아간 사이 나머지는 칠현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비를 맞으며 안개 낀 호젓한 산길을 낙엽을 밟고 걸어보는 정취도 여간 아니다. 여느 사람들이 우리 모습을 본다면 정상이 아니거나 凄凉맞다 싶겠지만 이런 길을 걸어보지 않고 호(好), 불호(不好)를 판단할 일이 아닌 것 같다.
[5] 부부 칠순비
08 : 30분, 바위봉을 통과하고 5분여를 더 진행하니(08 : 35분) 넓은 헬기장(433봉)이 나온다. 쉬는 기회도 갖지 못하고 500여 m를 더 진행하니 안부에 정성스럽게 쌓은 돌탑이 있고 비도 세워 놓았다. 전면에는「부부 칠순비」라 적고 뒷면에 「김성기, 임경순 / 광헤원 중고개 / 2002. 11. 24」라고 탑을 세운이의 이름과 地域名이 새겨져 있다.
中國 唐나라 때 詩人 「杜甫」는 그의 시 곡강(曲江)에서 “人生七十古來稀(인생은 70세까지 살기가 어렵다(드물다) = <고희 (古稀)”라 했는데 「김성기, 임경순」부부는 七旬을 살고도 이 호젓한 곳에 돌 하나하나를 모아 탑까지 쌓은 정성이 너무 대견스럽고 놀랍다. 포도송이 같이 쌓아 올린 돌 하나하나는 노부부의 살아온 인생 여정 같고 사랑이 알알이 박힌 것 같다. 물기 먹은 돌은 세상 그 어느 보석보다 분부시게 빛나 보인다. 참으로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부부라는 생각이 든다. 노부부의 정성과 사랑을 마음에 담아 가는 것만으로도 오늘 산행의 소득이라는 생각이 든다.
[6] 칠현산
[6-1] 칠현산 가는 길
그칠 줄 모르는 비, 짙은 안개로 10m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데 능선 봉 오르내림이 너무 자주 반복된다. 내려간다 싶은 데 곧 바로 긴 오름으로 이다. 안부, 오름, 내림, 급 오름을 반복하며 칠현산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앙상한 나무 가지 사이로 골프장(안성 세븐힐스 골프장)의 모습도 언뜻언뜻 보인다. 人家가 咫尺에 있는 모양이다.
[6-2] 산신제
완만하게 이어지던 능선 길을 따르다 급경사 봉에 올랐다. 『칠현산(516.2m)』정상(09 : 05분)이다.
작은 돌탑 위에 頂上石을 세워 놓았고 그 앞에는 삼각점이 설치되 있다. 그리고 이정표(←칠장사, ↓명적암(좌측), 덕성산(직진) →)도 세워 길을 안내해 주고 있다.
오늘 이곳에서 금북정맥 종주를 告하는 山神祭를 올리기로 했는데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祭物을 차려 후미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제물이래야 각자 준비해 온 과일과 떡에 술이 고작이다. 거창하게 준비한 祭物 아니더라도 정성으로 술을 따르는 것으로 제를 올렸다. 칠현산 신령님이 어여삐 봐 줄지 모르겠다.
[6-3] 칠현산 지명유래
七賢山은 백두대간에서 가지 쳐 나온 금북정맥의 칠장산군(덕성산-칠현산-칠장산)에 속한다. 칠현산의 원래 이름은 『아미산』인데 지리적으로 한양에 가깝고 숲이 울창해서 도적 떼들이 판 쳤다고 한다.
특히 지명에 얽힌 이야기로서 고려시대 때 절 근처에 ꡐ중원 7악ꡑ으로 불리는 7명의 도적이 살았는데 칠장사에 기거하던 「혜소국사」가 우물에 금바가지를 띄워 도적들을 불러 모은 뒤 감화시켜 현인으로 만들었다. 그 후 칠장사(漆長寺)는 칠장사(七長寺)로, 아미산은 칠현산(七賢山)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고 한다.
또 궁예가 신라 경문왕을 피해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조선시대에 의적 임꺽정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전설도 있다. 임꺽정의 스승 병해대사가 25년 동안 수도하던 곳으로 대사가 죽은 뒤 7명의 도둑이 찾아와 결의를 맺었다고 한다.
[7] 生居鎭川
칠현산 정상에서 祭를 올리고 덕성산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09 : 35분, 곰림정상(1m 높이의 자연석에 흰 페인트로 「곰림」정상이라 써 놓음) 표지석 앞을 지났다. 20여분을 더 가니(09 : 55분) 이정표에 「←칠장사 5.2km, ↑(좌) 병무관 3.5km, (우) 무술마을 2.2km ↓」라고 방향을 표시하고 기둥에는「생거진천」이라는 글 구를 새겨 놓았다.
무엇 때문에「生居鎭川」이라 했는가?
「옛날에 진천 어느 생원의 딸이 용인으로 시집가서 아들을 낳고 살다가 남편이 죽어서 청상과부가 되었다. 그래서 어린 아들을 시집에 두고 진천으로 개가를 하여 아들 낳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데 용인에 두고 온 아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한편 용인의 아들이 장성하여 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진천에 찾아왔다. 진천 아들은 “안된다.”고 하였다.
서로 싸우다가 용인의 아들이 진천의 원님에게 소장을 내어 해결해 달라고 하였다. 고을 원님은 고심 끝에 살아서는 鎭川에서 살다가 죽어서는 龍仁에서 제사 지내라는 ‘生居鎭川 死居龍仁’의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출처 : 진천읍 지명 유래, 제보자 : 진천읍 가산리 가암 마을 김용구(남, 78), 이규복(남, 80)>」
또 다른 이야기로 「진천 지방은 옛날부터 평야가 넓고 토지가 비옥하여 산물이 풍성하고, 한해와 수해가 별로 없어 농업경영이 순조롭고 사람들의 인심이 좋아 살만한 곳이기에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하였고, 용인은 산세가 순후(順厚)하여 사대부가(士大夫家)의 묘소가 많기에 사거용인(死去龍仁)」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8] 비가 오는 날의 산행
이정표를 확인하고 우측 『무술마을』방향 내림 길로 접어들었다. 10여 분을 진행하여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는 봉에 오르니(10 : 07분) [Y]자 갈림 길이 나온다. 정맥 표시기는 우측으로 달려 있는데 박장학사와 안교감, 무심코 좌측 내림 길(안성시 금광면 사흥리 동막마을로 내려가는 길)로 가다 다시 올라온다. 무심코 가다보면 정맥 길을 노치기 쉬운 곳이다.
고만 고만한 능선 봉을 두 개쯤 지나 넓은 평지 능선에 도착(10 : 15분)하니 앞서가던 대장과 장부장이 기다리고 있다. 함께 가던 노부장과 윤사장님이 다른 길로 빠진 것 같다고 한다. [Y]자 갈림길을 지나 능선 봉을 넘으면서 “한배”를 소리쳐 부를 때 양쪽에서 대답 소기가 난다 했는데 노부장과 윤사장님, [Y]자 갈림길에서 직진을 한 모양이다. 약 20여 분을 기다리니 노부장과 윤사장이 나타난다.
[9] 광혜원 구암리
[9-1] 무치(武峙)고개
잠시 가쁜 숨을 진정시키고 가파른 봉우리로 올라붙었다. 삼각점이 있는 470.8봉에 도착(10 : 55분)했다.
쉼 없이 걷기를 23분, 안부에 내려섰다.(11 : 17분) 이 안부를『무치(武峙)고개 또는 무위치(無爲峙)』라고 하는데 광혜원면 『무수마을』과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를 연결시켜 주는 고개가 된다.
무수동(無愁洞)에 대하여 상산지(常山誌)에 있는 말을 인용하면 산 이름은 요순산(堯舜山)이며 고개 이름은 무위치(無爲峙)고 洞名은 무수동(無愁洞)이라 하였다. 무수동이란 없을 무(無) 자와 근심 수(愁) 자를 쓴 것을 보면 근심이 없는 동네라는 뜻이며 임진왜란 당시에도 아무 근심 없이 피란하였다 한다.
또 한 說은 무술이란 동명이 붙은 것은 호반 무(武) 자와 재주 술(術) 자를 써서 무술이라 하며 옛날 이곳에서 무예(武藝)를 닦던 곳이라는 설도 있다. <출처 : 광혜원면 홈페지>
이곳에도 또 하나의 돌탑을 쌓아 놓았다.「광혜원 임경순」이라 쓴 돌을 돌탑 상부에 올려놓았다. 앞서 보았던 부부 탑을 쌓은 주인공이다. 노부부의 간절한 염원을 안부마다 돌탑으로 담아 놓았다. 天地神明도 필시 이들의 精誠에 感應했으리라. 所願成就를 했으면 좋겠다.
[9-2] 鳩岩里 兵武館
돌탑과 주변을 급히 살피고 능선 봉을 오르내리며 걷기를 20여 분, [Y]자 갈림길에 도착(11 : 38분)했다. 지도에 표시된 것으로 보면 이곳에서 광혜원 구암리(鳩岩里)로 빠질 수 있는 길 같다.
구암(鳩岩)마을을 병무관(兵武館) 또는 병목안이라고 하는데 신라 때 병무관터라고 하여 화랑들이 연무대(鍊武대)로 사용하였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곳이다.
구암리는 비둘기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하여, 비둘기 구(鳩)자와 바위 암(岩) 자를 써서 鳩岩이라 하고, 한때 중암(中岩) 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10] 사장골 정상
갈림길을 지나 7분여를 더 진행하니(11 : 45분) 『사장골 정상』표지석이 놓여 있다. 사장골은 광혜원면 구암리 병무관 좌측 상단에 있는 골짜기다. 표지석을 지나 좀더 진행하니 길이 山峰 아래로 가로질러([ㅏ]자 갈림 길) 나 있다. 직진하면 山峰을 오르고 우측 山峰 아래로 난 길을 따라 정맥 표시기가 달려 있다. 잦은 山峰을 오르내린 탓으로 지쳐서인가. 그리 높지 않은 山峰을 비켜 가는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부 사거리에 도착(15 : 05분)했다. 이 고개는 『윗만디』에서 『옥정현』으로 넘나드는 고개다. 이곳에도 작은 부부 탑을 쌓아 놓았다. 김성기, 임경순 부부의 至極 精誠이 너무 놀랍다.
[11] 고라니봉
12 : 37분, 『고라니봉(제비안알 정상?)』 삼거리에 도착했다. 타원형 목판에 『고라니봉』이라 새기고 소나무에 단단히 고정을 시켜 놓았다. 이곳에 「고라니」가 많이 서식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가 ---- ?
비도 그치고 안개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옥정현도 그리 멀지 않는 것 같다. 잠시 휴식을 가지면서 산행에 대한 논의 오간다. 옥정현에서 오늘 산행을 접어야 하는가, 아니면 힘이 들어도 계획대로 배티재까지 산행을 해야 하는가?
노부장, 산행을 출발할 때는 옥정현을 고수하더니 옥정현에서 산행을 접기에는 좀 아쉽다 하고 박장학사는 옥정현으로 단안을 짓는데 장부장은 어렵사리 시간을 냈는데 배티재까지 가야 한단다.
[12] 玉井재
『고라니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직진하다보니 철조망도 쳐 놓고 나무도 잘라 길을 막았다. 아마 山主가 산꾼들의 출입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길을 막아 버린 것은 좀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싶다.
내림 길로 이어진다. 2차선 포장도로가 나오고 『옥정재, 해발 390m』표지판이 눈에 확 띈다. 오전 산행의 목적지 『玉井재』에 도착(13 : 00분)을 했다.
「옥정리(玉井里)는 『매나마을 / 매남이, 제비안말』이라고도 한다. 마을 뒷산에 형상이 매화꽃 같다고 매남이라고 불려지는가 하면 鎭川의 장꾼이 와서 주막에서 쉬어 갈 때 우물물의 맛이 좋다고 해서 『옥쟁이』라 하다가 『옥장이』라고 불려졌다고 하며 뒷산의 형상이 제비가 날아가는 형상이라고 해서 『제비안골』이라고도 하는데, 이 마을은 본래 청주한씨가 거주하였으나 약 350년 전쯤부터는 기계유씨(杞溪)가 정착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 <출처 : 안성시 금광면 홈페지>
『玉井재』는 경기↔충북 道間 境界 地點이고 안성시 금광면과 진천군 이월면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경기도는 경기도대로 충북은 충북 나름으로 표지판을 세우고 서로가 살기 좋은 곳이라 선전을 하고 있다.
*** 아름다운 충북으로 어서오세요.
*** 열린 미래, 희망의 충북
*** 화풍의 고장 이월면
*** 충북의 마스코트 「고드미 / 바르미」 환한 웃음 --- 등등.
충북의 마스코트 「고드미 / 바르미」앞에 배낭을 내리고 산행 계속 여부를 논의했다. 산악대장, 장부장은 산행을 계속하기를 희망했으나 모처럼 참석한 김미환사장, 박장학사는 더 이상 걷기는 무리라 하여 이곳에서 마무리 짓겠다 하고 나머지도 비로, 땀으로 옷이 젖어 오늘 못 다한 구간은 다음에 더 채우자고 한다. 아쉽지만 이곳에서 산행을 끝내기로 했다.
[13] 산행 뒤풀이
산악대장,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알음을 해 두었는지 뒤풀이 할 식당으로 전화를 한다. 5분 여 후 차가 도착했다.
靑山가든(충북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 123, ☎ (043) 537-4878). 진천, 천룡컨트리클럽 앞에 있는 가든으로 아담하게 잘 꾸며놓은 집이다.
삼겹살에 이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된장국과 상이 넘치도록 내 온 밑반찬, 장부장이 손수 마련한 참치 회, 싸온 도시락을 꺼내 놓으니 산행 점심상치고는 너무 푸짐하다. 소주잔을 권하고 잡으니 알싸한 맛에 醉氣를 더하며 못 다한 산행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더하여 主人丈의 인심도 넉넉하고 --- 취흥도 도도하고 갈 길도 멀어 자리를 털고 일어 선 것이 오후 3시를 넘긴 시간인가?
靑山가든 主人丈, 우리가 아침에 차를 세워 둔 칠장사까지 이동을 시켜 준다. 기름 값이라도 받으라는데 굳이 사양이다. 참 후한 人情이다. 가능하면 다음 산행 때 또 이 집을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4] 오늘의 산행은
○ 1 대간에 2정맥의 대장정에 오른 산행이다.
○ 신령님이 점지해 준 산행 일을 변경시켜 禍를 돋우었는가? 우중 산행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 잦은 오르내림이 힘들게 했던 산행이었다.
○ 우천으로 희망자가 절반으로 준 아쉬움이 남는 산행이었다.
○ 의지와 열기가 부족하여 계획을 다 채우지 못한 산행이기도 했다.
○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미흡한 점은 있었어도 한남금북정맥 완주에 이어 우천을 무릅쓰고 금북정맥을 첫발을 내 디딘 것은 한배산악인들의 긍지요 보람이라 생각된다.
○ 노부부의 지극정성과 사랑을 마음에 담는 소득도 있었던 산행이었다.
○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佛心(칠장사, 칠현산 유래)임을 마음에 새겨보는 산행이었다.
첫댓글 회장님 덕분에 제가 발끝만 보고 걸으며 지나친 산과 산이 품고 있는 여러가지를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늘 한결같으신 회장님의 글에 감명 받으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