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
들뢰즈와 박지원의 만남 - 깊은 공감과 발랄함 갖춘 유쾌한 책
그린비에서 내놓은 '리-라이팅' 시리즈는 눈에 띄는 기획물이다. 이 시리즈는 책을 깊이 있게 연구한(혹은 재미있게 읽은) 가이드를 내세워, 그의 삶과 경험을 통하여 원전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텍스트를 읽고, 해체·분석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디자인하여 간직한다. 이렇게되면 고전 읽기가 철저하게 현재적인 작업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시리즈 1번으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다시 읽고 재구성한 것이다. 저자 고미숙은 박지원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자신만의 발랄하고 경쾌한 문체로 <고미숙표『열하일기』>를 선보인다. 그녀의 문체는 그 자체로 유쾌하기 짝이 없지만, 『열하일기』와 만나서 더욱 빛을 발한다. 한 시대의 사유체계에 대한 도전은 문체로 드러난다고 믿는 저자가, 고문(古文)에 반대하고 살아있는 생생한 문장을 추구하여 문체 반정의 원인이 되었던 박지원을 만났으니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한편 이 책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노마디즘에 기대어 『열하일기』를 읽는다. 저자는 연암이야말로 머묾과 떠남에 자유로왔던 유목민이었으며, 사물의 '사이'에서 사유할 줄 알았던 경계인이었다고 본다. 『열하일기』는 중심이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리좀'이며, 모든 장이 저마다 독립적인 세계를 가진 천의 고원이라고 선언한다. 또 '탈주'와 '재코드화', '재배치'의 대가인 연암은 사물의 어느 한국면에 머물지 않는 강한 호기심과, 풍부한 유머, 그리고 통렬한 패러독스로 『열하일기』를 채우고 있다.
이 책은 <리라이팅 클래식>이라는 기획의 진가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고전을 '다시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오늘을 사는 사람이, 오늘날의 코드로 텍스트에 접근하는 것이며, 마침내 그것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고미숙은 연암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훌륭한 프리즘으로 그것을 이루어냈다.
[ 저자 및 역자 소개 ]
저자 : 고미숙(자신이 쓴 자기 소개)
1960년 강원도 정선군 조동리 출생. 고려대학교에서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장 싫어하는 질문 : 독문학 하셨죠? 이거 해석 좀 해주실래요? 학부에서 독문과를 다녔지만, 전생의 일인 양 아득하기만 하다. 나름대로 독문학에 몰두한 거 같긴 한데, 지금은 어쨌든 알파벳을 구별하는 정도밖엔 남은 게 없다.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라더니, 허 참. 고전문학 전공이지만, 석,박사과정 시절엔 『열하일기』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시조, 사설시조, 잡가 등 한 마디로 중세 후기의 '딴따라' 장르들을 연구하느라 무지 바빴기 때문이다. 연암의 문장이라곤 논문 자격시험 준비할 때 벼락치기로 읽은 게(사실은 주입암기) 전부다.
박사학위 받고는 잠시 비평활동을 한 적이 있다. 비평적 글쓰기가 재밌기도 했지만, 박사 실업자가 될 때를 대비하여, '문학평론가'라는 직함이 필요할 거 같아서였다. 덕분에 『비평기계』(소명)라는 비평집을 내기도 했다. 비평가로 좀 '뜨려는' 찰나에 이상한 친구들을 만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진경, 고병권 등을 만나 푸코,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을 배우면서 문학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버리고 말았다. 인생행로 역시 완전 뒤바뀌어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www.transs.pe.kr)라는 긴 이름을 가진 지식인 공동체가 내 삶과 지식의 거점이 되고 말았다.-'인생역전!' 좀 오버해서 말하면, 이 모든 것은 『열하일기』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던 것처럼(^^). 암튼 우여곡절 끝에 2001년 드디어 『열하일기』를 만났다. 문학도, 비평도 다 던져버린 바로 그 순간에. 연암이 먼 우회로를 거쳐 열하와 만났듯이, 나 또한 먼 길을 거쳐 『열하일기』와 조우했던 것이다. 『열하일기』의 '빛나는 유머와 뜨거운 패러독스'를 어떻게 하면 '사방팔방'에 널리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 드디어 그린비의 야심찬 기획 '리라이팅 클래식'과 접속하게 되었다. 또 한 번의 '인생역전!'
앞으로 '고전평론가'로 불러주길 바란다. 그게 뭐냐고? 내가 새로 만든 직업이다. 고전을 싱싱하게 재구성하여 현대의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는 일종의 '매니저'(혹은 브로커?)라 이해하면 된다. 오래 전에 구상했는데, 이제야 드디어 쓸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다. 가장 최근에 나온 저서는?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책세상) 취미는? 요가와 등산. 꿈은? 축제, 지식, 명상을 모토로 삼는 인디언 코뮨을 만드는 것. 좋아하는 TV프로는? 동물의 왕국(KBS1).
*추신 : 올해 4월 말쯤 친구들과 함께 열하에 다녀올 생각이다. 연암이 열하에 갔을 때가 마흔 넷이었다. 올해 내 나이가 그쯤 되었을 것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다.
2장 1792년, 대체 무슨 일이? - 『열하일기』와 문체반정
1. 사건 스케치
2. 문체와 국가장치
3. 대체 소품문이 뭐길래!
4. 연암체
5. 『열하일기』- 고원 혹은 리좀
3장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1. 잠행자 혹은 외로운 늑대
2. 열하로 가는 '먼 길'
3.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목소리'
4장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 유머는 나의 생명!
2. 시선의 전복, 봉상스의 해체
3.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거름에 있다"
5장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1. 사이에서 사유하기
2. 세 개의 첨점 : 천하, 주자, 서양
3. 인간을 넘어, 주체를 넘어
보론 : 연암과 다산 -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
<부록>
『열하일기』의 원목차
연암의 열하 여정도
『열하일기』등장 인물 캐리커처
화보
함께 읽어야 할 텍스트
[ 출판사 리뷰 ]
리라이팅 클래식(re-writing classic)을 말한다
모든 삶의 질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태는 사람들이 '돈 되는' 분야에 몰리도록 만들어 사회를 기형적인 모습으로 만들고 말았다.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이 단순히 모든 학문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말은 이제 대중들에게 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인문학이 삶의 질에 관련된 문제임을 제기하고자 하며, 인문학의 위기를 인문학으로 극복해 보려 한다.
불행하게도 고전은 과거에만 속할 수 없는 책들이 어느 시대에건 읽히길 바라며 붙여진 이름이지만, 어느새 그 이름은 내용을 떠나 너무 낡은 냄새를 피우게 되었다. 우리는 고전이라는 말에 묻어 있는 옛냄새를 지우고 그것에 현재를 담고 싶었다. 지금-여기의 삶을 위한 사상을 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전 자체가 완전히 해체, 재구성되어야 했다. 그간 출판계에서도 독자들이 고전에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고전에 현대적 주석을 다는 데 그쳤을 뿐, '다시 쓰는' 시도는 아직 없었다. 기존의 요리에 양념 몇 가지를 첨가하거나 세팅을 바꾸는 것으로는 오늘의 우리가 먹을 음식이 되기엔 뭔가 부족했다. 우리는 재료는 빌려오되, 젊은 필자들이 과감하게 다시 만든 요리를 내놓고 싶었다.
그 요리를 위해 지금-여기에 있는 저자는 시공간을 넘어서 원저자와 때론 웃으며 때론 논박하며 대화를 나눴다. 시대를 뛰어넘는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고전에 대한 해설서가 아닌 새로운 책 리라이팅 클래식을 낳았다. 그리고 그 소통은 독자에게로 확장된다. 책을 읽는 독자가 원저자와 만나 소통하고 그 가운데 지금-여기의 저자가 끼여드는 고전, 요컨대 원저자, 저자, 독자가 함께 참여하는 토론과 사유의 장을 지향한다.
한편 리라이팅 클래식은 원저자와 대화하며 지금-여기를 말하지만 시대와 불일치하는 시간을 담은 책이다. 니체를 빌려온다면 시대와 불일치하고 때에 맞지 않는 것으로 존재하는 시간은 바로 미래가 될 것이다. 리라이팅 클래식은 그런 의미에서 시간과 더불어 오는 책이며 미래의 책이다. 시간과 더불어 호흡하는 리라이팅 클래식은 늘 변화와 생성을 꿈꾼다. 그래서 저자들이 원저자와의 대화가 다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그 때가 언제든 개정판을 낼 생각이다. 10년 뒤, 어떤 책은 10번쯤 모습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 YES24 리뷰 ]
들뢰즈와 박지원의 만남 - 깊은 공감과 발랄함 갖춘 유쾌한 책
그린비에서 내놓은 '리-라이팅' 시리즈는 눈에 띄는 기획물이다. 고전을 다시 쓴다는 것, 매력적인 발상 아닌가. 기존의 고전 읽기는 허구헌 날 본문에 해설만 덜렁 붙인, 싱겁고 따분한 것들이었다. 현재적 맥락이 없는 고전은 종이쪼가리로 전락하기 쉽다. 한데 이 시리즈는 책을 깊이 있게 연구한(혹은 재미있게 읽은) 가이드를 내세워, 그의 삶과 경험을 통하여 원전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텍스트를 읽고, 해체·분석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디자인하여 간직한다. 이렇게되면 고전 읽기가 철저하게 현재적인 작업이 될 수 있다. 물론 맹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이드의 역량(특히 깊이와 표현력)에 따라 고전 읽기의 편폭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 과정에서 텍스트의 전체적인 면을 놓치고 부분 밖에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는 것. 그러나 모든 시도는 어차피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골방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보다는 설령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새롭게 읽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나로선 시리즈 1번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 가장 끌렸다. 박지원은 국문학 사상 전무후무한 문장가이며, 그의 『열하일기』는 청나라 황제의 70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사신의 신분으로 북경을 다녀온 기행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사상가, 문장가, 예술가,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다층적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난 걸작으로 평가된다(이 시리즈가 『논어』도 아니고 『국가론』도 아닌, 『열하일기』로 문을 열고 있는 것은 의미 있다). 거두절미하고, 고미숙의 책은 어떤가?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유쾌하게 읽었으며, 그야말로 기획에 걸맞은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쓴다'고 할 때, 다시 씌어진 책은 하나의 작품이지 않으면 안 된다. 원전의 의미를 설명만 해주는 구태의연한 해설서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자체로 유쾌한 개성을 가진, 펄펄 살아있는 '고미숙표 열하일기'다.
이 책이 그만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열하일기』에 대한 고미숙의 매니아적 사랑이 책에 곧바로 전이된 것, 그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몇 번의 운명적 계기를 거쳐 『열하일기』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드러낸 프롤로그를 읽어보면, 그녀는 매우 솔직하고 순수하며 열정적인 사람인 것 같다. 요컨대 그녀는 박지원과 『열하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으며, 또 사정없이 자신을 던졌던 것이다. 결과는? 열렬한 애정과 흠모가 밴 <공감의 비평서>가 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텍스트에 대한 감정이입과 독자를 감동시키는 힘이 바로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책의 생동감은 그녀의 독특한 문체 때문이기도 하다. 지배 담론에 도전하는 개성적인 문체를 구사하는 데 관심이 있는 그녀는, 근엄하고 딱딱한 말투를 버리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고 강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다. 그녀는 '곁가지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기', '눈치보지 않고 자기 식으로 말하기'를 모토로 삼은 듯하다. 생동하는 구어와 과감한 영탄, 생략, 많은 느낌표와 따옴표를 곧잘 동반하며, 명사형 어미로 문장을 끝내는 걸 즐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국땅의 한 점포에서 벽에 쓰여진 <호질>을 촛불아래 '열나게' 베껴쓰자 주인이 묻는다. 그걸 대체 무엇에 쓰려느냐구. 조선에 돌아가 친구들에게 보여줘 한바탕 배꼽잡고 웃게 만들려 한다는게 연암의 답변이었다. <호질>보다 연암의 행동이 더 배꼽잡을 일 아닌가?(p.6)
그러나 늦바람이 무섭다고, 늦깎이로 읽기 시작한 『공산당 선언』, 『독일 이데올로기』, 『프랑스 혁명사 3부작』에 나는 한 마디로 '번개 맞을 것'같은 충격을 받았다. '변증법'과 '유물론'을 통해 그때까지 희뿌옇게 시야를 가리고 있던 삶과 사유의 추상성이 한방에 날아가버렸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맑스의 수사학은 '환희' 그 자체였다. 그렇게 '프로페셔널'하고 전투적인 내용을 그토록 선정적(?)이고 생기발랄한 말로 구성할 수 있다니! 석사논문을 쓴 이후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었던 글쓰기에 대한 통념이 전면적으로 수정되는 순간이었다. 두번째 클리나멘. (p.19)
그런데 아뿔사! 멋진 이별론을 펼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에 몰두하느라 연암은 엉뚱한 길로 들어서버렸다. (....) 이 대목도 갈 데 없는 한 편의 '시트콤'이다. 생각해보라. 이별은 생이별이 가장 슬프다느니, 그것도 강에서 이별을 해야 제격이라느니, 「배따라기」가 어떻고, 소현세자가 어떻고 하면서 비장한 테마뮤직이 흐르다가 느닷없이 길을 잘못 들어 죄충우돌하며 따라잡는 꼴이라니.(pp. 167 - 168)
만일 이러한 매니아적 사랑과 발랄한 문장의 실체가 속 빈 강정이라면 참 대책 없는 우환일 것이다. 그러나 고미숙은 『열하일기』에 대한 충실한 가이드이면서도 결코 박지원의 것으로 치환될 수 없는 자신만의 '『열하일기』새로 쓰기'에 성공하고 있다. 그 새로움은 문체의 힘과 더불어, 박지원과 당대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 그리고 들뢰즈/가타리를 『열하일기』에 적용함으로써 가능했다. 특히 들뢰즈/가타리의 입김은 대단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노마디즘'에 입각한 『열하일기』읽기>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유목', '탈주', '리좀', '외부'와 같은 들뢰즈/가타리의 용어가 목차에서부터 사용되고 있으며, 본문에서는 더 많은 용어와 발상법이 차용되고 있다. 책의 구성이나 서술방식, 전편을 가로지르는 해석의 준거도 마찬가지다.
책은 1장과 2장에서 박지원의 삶과 그의 문체가 당대에 끼친 영향(문체반정)을 다루고, 3장부터 『열하일기』분석으로 들어간다. 고미숙은 박지원이야말로 '접속을 두려워하지 않으나 동시에 떠남도 두려워하지 않는' 유목민이었으며, 『열하일기』자체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천의 고원'이라고 말한다. 천의 고원에는 들어가는 문이나 나오는 문이 따로 없다. 압록강에서 열하까지 장대한 파노라마를 펼치는 대서사시이지만, 고원 하나 하나가 독립된 채로 열린 구조를 가진 풍성한 세계라는 얘기. 이 천의 고원에서는 '친숙함과 낯섦의 끝없는 변주'가 이루어지고, 침묵하고 있던 사물들이 잠에서 깨어나 강렬한 액센트로 말을 걸어 온다. 이 노마드적 여정에서 박지원은 유머와 패러독스의 달인으로, '천개의 얼굴'과 '천개의 목소리'를 가진 호모 루덴스로, 고착화된 주자학의 껍데기를 찢어발기는 새로운 담론 구성의 대가로, 만물의 '사이'에서 사유하며 이름에 갇힌 인간 주체를 뛰어넘는 거대한 철학자로 나타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겁고 유익한 경험이었다. 물론 『열하일기』를 읽는 방식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고미숙처럼 들뢰즈와 가타리에 기대는 것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좋음과 나쁨을 떠나, 고미숙은 텍스트를 자유로이 읽을 수 있는 독자의 권리를 보여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한번 잡고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 이유가 고미숙이 정말 뛰어난 가이드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박지원이 정말 노마드이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미숙은 신명을 다해 읽고 썼다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 『열하일기』를 새로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P.S. 고미숙은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를 이끌고 있다. '수유너머'의 활동이 점차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놓고 있어 반갑다. 한국 지식사회에 의미있는 저서들을 계속 생산하기를 빈다. 동시에 서로 너무 비슷해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여러 저자의 책에서 같은 화법을 발견할 때는 다소 민망해진다. 함께 성장하되 자기 색깔을 잃지 않기를 기원한다.
--- 허순용(sellavy@yes24.com)
[ 미디어 리뷰 ]
소장 연구자들의 '쉽게 쓴 고전'
고전은 끊임없이 다시 읽힌다. 수백 수천년을 두고 읽히고 또 읽히는 고전에는 주석이 덧붙여지고 해설서가 헌상되며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쌓여간다. 고전 자체를 건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그 주변을 맴도는 것은 그 깊은 함의에 대한 경외심의 표시이자 고전에 대한 기본적 예의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겁없는 소장 연구자들이 나서서 이런 고전들을 ‘다시 썼다’. 이들은 시공간을 꿰뚫고 저자의 심중을 넘나들며 텍스트를 조각조각 나누고 이으면서 묵직한 그 고전들의 사이사이에 독자들이 쉽게 비집고 들어갈 ‘틈’을 열어준다.
출판사 ‘그린비’와 함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라는 ‘무모한’ 기획을 한 사람들은 소장연구자들의 모임인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의 연구자들. “‘지금-여기의 삶’을 위한 사상을 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전’ 자체가 완전히 해체, 재구성돼야 했다”는 것이 기획자들의 변이다.
고전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인 2001년에야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만나 “『열하일기』의 빛나는 유머와 뜨거운 패러독스를 사방팔방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는 고미숙씨. 그는 중세를 탈출하고자 부심했지만 근대에 도달하지는 않았던 유목민으로서 박지원을 규정하며, 그를 프랑스 현대철학자인 질 들뢰즈와 조우시키고 철저히 근대인이 되고자 했던 정약용과 대비시켰다.
마르크스를 찾아가다가 니체를 만나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됐다는 고병권씨. 그는 이미 2년 전에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소명출판)이라는 니체 연구서를 내놓은 ‘사회학도’다. 그는 니체의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재구성하고 니체의 철학을 상징하는 그림들을 활용해 독자의 이해를 도우면서 차라투스트라를 향한 안내자가 돼 준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권용선씨는 철학책인 『계몽의 변증법』을 들고서, 그 책의 난해함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내어 역시 ‘다시’ 썼다. 그는 두 명의 저자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직접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고, 이들을 기획회의 테이블로 불러내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문제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는 “신화적 세계로부터 인간을 빠져나오게 했던 이성이 왜 인간을 도리어 야만의 상태로 몰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20세기 참혹한 비극의 원인을 찾던 이들의 문제의식을 21세기의 현재로 끌어와 이라크를 침공하고 있는 미국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조금은 거칠더라도 이 시대를 통해 고전을 다시 보는 시각을 직접 담아내려 한 진지한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발간된 3권 외에 마르크스의 『자본』, 플라톤의 『국가』, 스피노자의 『에티카』, 강유위의 『대동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홉스봄의 3부작(『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다윈의 『종의 기원』 등이 기획돼 있다. 이들은 이 밖에도 더 많은 고전들을 ‘다시’ 쓸 수 있는 필자를 찾는 중이다.
--- 동아일보 책의향기 김형찬 기자 (철학박사) (2003년 4월 5일 토요일)
'반역'적 '번역'으로 새로 쓴 고전
서울 대학로에 자리잡은 연구공동체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의 멤버들이 출판사 그린비와 손잡고 새로운 기획물을 선보였다. ‘고전을 지금 이곳의 시점에서 새로 쓴다’는 뜻을 품은 ‘리라이팅 클래식’이 그것이다. 그 1차분으로 나온 것이 고미숙씨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병권씨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권용선씨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 등 3권이다.
고미숙씨의 책이 18세기 조선의 사상가 연암 박지원의 대작 『열하일기』를 ‘다시 쓴’ 것이라면, 고병권씨의 책은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텍스트로 삼은 것이고, 권용선씨의 책은 20세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두 거두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공동작품 『계몽의 변증법』을 다시 뜯어본 것이다. 지은이들은 원저자와 대화하고 자기 생각을 삼투시키고 새로운 관점을 끄집어낸다. 이들에게 ‘번역’은 ‘반역’이며, ‘다시 쓰기’는 ‘새로 쓰기’다.
이 학문의 도반들이 거처하는 연구공간은 익히 알려진 대로 근대적 질서와 기획의 바깥을 꿈꾸는 코뮌적 분위기가 팽배한 곳이다. 세 책에는 그 공간에서 공부하고 토론한 이 연구자들의 세계관이 짙게 스며 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근대 혹은 근대성을 비판하고 뛰어넘는 것인데, “『계몽의 변증법』이 근대 이성의 이분법적 시각에 대한 직접적 비판이라면, 니체의 사유와 연암의 유머는 근대적 이성의 파산을 선언하는 데서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의 생성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고미숙씨가 대화의 파트너로 삼은 연암은 ‘북학파’니 ‘실학자’니 하는 교과서적 명명이 주는 무거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고씨의 연암은 유머와 역설로 시대를 농락해버린 ‘웃음의 천재’다. 그는 단언한다. “내가 만난 동서고금의 어떤 여행기도 『열하일기』와 같은 다양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텍스트는 없었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 안에는 <호질> <허생전> 같은 소설적 텍스트가 들어 있고 <상기> <일야구도하기> 같은 명문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이질적인 사유들이 충돌하는 장쾌한 편력이자 대장정”이다.
그가 『열하일기』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건 배후에 새로운 관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책 갈피갈피에는 철학자 질 들뢰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유목·탈주·분열자 같은 들뢰즈 식 개념어들이 연암을 설명하는 좋은 무기가 된다. 그리하여 연암은 “지배적 코드로부터 탈주하여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산” “유쾌한 분열자”로 나타난다. 연암이 얼마나 지배질서와 ‘기질적으로’ 불화했는지는 “동아시아 엘리트집단의 공통문법이자 문화적 징표인 한시의 형식조차 견디지 못했던” 데서 확인된다. 그에겐 한시의 형식마저 구속이었다.
연암과 다산을 비교하는 대목은 더욱 흥미롭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둘 다 ‘실학자’였지만,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종류의 지식인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의 표현을 따르면, 다산은 중세를 떠나 근대에 도달한 여행가, 곧 근대인이었던 반면, 연암은 중세에도 근대에도 머물지 않고 시대와 공간을 떠도는 유목민이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쓴 시를 예로 들어본다면, “다산이 시에 혁명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면, 연암은 시의 양식적 코드화 자체로부터 탈주하고자 했던 것”이다.
고병권씨의 니체 또는 차라투스트라는 낡은 습속을 거부하고 깨부수는 자, 모든 우상을 향해 망치를 내리치는 철학자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낡은 세계를 부순다. 그래서 부정을 행하는 그의 정신은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이 더는 신이나 진리, 도덕에 의존할 필요 없이, 스스로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일깨워주는 ‘복음의 사자’라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권용선씨가 전해주는 『계몽의 변증법』은 전쟁과 침략의 광기가 이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시대에 다시 읽어볼 책이다. 2차대전의 참화 속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이성을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시 고민할 필요”에 봉착한 결과, 그 이성 자체를 비판하고 반성한 것이 이 책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아도르노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말한다. “『계몽의 변증법』은 도구적 이성에 대한 철학적 비판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동일성의 사유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중심화되고 체계화되고 반성하지 않는 사유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아우슈비츠’의 경우를 통해 너무나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아우슈비츠가 지금 바그다드다.
--- 한겨레신문 책과사람 고명섭 기자 (2003년 3월 29일 토요일)
書架위 먼지쌓인 고독한 古典… 우리시대 언어로 즐겁게 대화
젊은 연구자들의 학문공동체인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www.transs.pe.kr) 소속 연구원들이 동서양 고전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리라이팅 클래식’ 총서(그린비 펴냄)를 선보였다. 연구실의 맏언니인 고전문학평론가 고미숙씨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13권)을 냈고 사회학자 고병권씨는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3권)를, 국문학자 권용선씨는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8권)을 각각 출간했다.
이 총서는 독자의 관심과 눈높이에 맞춘 고전 해석서를 내겠다는 출판사측 기획의도와 젊은 연구자들의 새로운 학문적 태도가 결합해 탄생했다. 고전에 대한 정형화된 해석 대신 저자 나름의 해석을 내놓겠다는 것, 아카데미의 규율보다 독자와의 소통에 주력한다는 것, 이를 통해 원저자-저자-독자의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는 것이 총서 발간의 전제조건이었다. 그런 만큼 사고의 발랄함, 글쓰기의 파격이 두드러진다.
고미숙씨의 책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의 사유를 들뢰즈의 사유와 중첩시켜 새로운 고전읽기의 전범을 보인다. “열하일기를 만나기 위해 학문의 길을 걸어온 것 같다”고 할 만큼 원전에 푹 빠진 저자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한 중상주의 실학파의 거두’로만 알려진 박지원을 유머의 천재, 패러독스의 달인, 중세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들뢰즈가 말한 노마드(유목민)로 부활시킨다.
저자는 연암과 다산 정약용의 대비를 통해 연암의 특성을 드러내 보이는데 연암이 시대와의 불화를 넘어 어느 시대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라면 다산은 철저한 근대인이었다고 주장한다. 보론에서 연암의 ‘양반전’과 다산의 ‘애절양’을 비교하면서 다산이 시에 혁명적 의미를 부여한 ‘혁명시인’이었다면 연암은 시라는 틀 자체로부터 탈주하고자 한 ‘표현기계’였음을 밝힌다.
이런 연암의 특성이 담긴 텍스트 ‘열하일기’에 대한 유쾌한 해석서인 이 책은 훤칠한 풍채와 우렁찬 목소리, 다혈질이면서 온순한 성격, 걸출한 유머감각을 가졌던 연암의 생애와 학문세계, 교우관계를 소개하는 데서 시작해 ‘열하일기’를 ‘우스갯소리로 세상을 유희하고 패관기서로 고문을 망친 문제있는 저작’으로 받아들였던 당시 정조의 문체반정에 대한 주변설명, ‘열하일기’의 쉽고 흥미로운 재구성, 연암의 유머와 패러독스, 철학 순으로 풀어간다.
특히 저자가 박지원의 내면과 당시상황을 더듬어가며 재구성한 ‘열하일기’는 소설처럼 흥미롭다. ‘열하일기’는 1780년 연암이 삼종형 박명원과 함께 건륭황제의 만수절(70세) 축하사절로 중국에 갔을 때의 경험을 기록한 연행록이다. 그해 5월 길을 떠나 6월 압록강을 건너서 8월 북경에 들어갔지만 황제가 230㎞ 떨어진 하계별궁에 머무는 탓에 별궁이 있는 열하로 갔다가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10월에 귀국하게 되는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이다.
저자는 연암이 비공식 수행원이었던 탓에 대규모 집단의 유일한 여행자로 이방인에게 스스럼 없이 접근해 ‘딴지’를 걸 수 있었다고 짐작한다. 틈만 나면 술을 마시며 여행을 즐기는 연암은 사신부터 하인들까지 ‘되놈의 나라’로 치부하는 중국에서 이질적인 것들과 접속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이국의 친구들을 만나서 밤새 필담을 나누고, 심지어 조선사회에서 사교로 치부되던 티베트불교의 대법왕과도 접촉한다. 장터를 돌면서 생생한 호기심을 채우고, 조선의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술집 벽에 쓰여있던 ‘호질’을 베낀다.
저자는 “그의 시선 혹은 필력은 불가사의할 정도”라며 “열하일기가 발산하는 강렬도는 무상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생성할 수 있는 노마드적 여정의 산물일 터”라고 감탄한다. 출판사측은 고씨의 ‘열하일기…’가 총서의 기획의도를 가장 잘 반영한 책이라며 1권의 자리에 앉혔다.
한편 고병권씨의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생애를 질병과 치유의 체험에 맞춰 서술한 뒤 원전을 ‘신은 죽었다’ ‘너희는 너희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신체야말로 가장 큰 이성이다’ ‘새로운 우상인 국가를 조심하라’ ‘춤추고 웃는 법을 배워라’ 등 15개의 중심명제로 나눠 설명한다. “니체는 전체집합 U를 미지수 X로 바꾸는 데 능숙한 사람”이라는 저자는 “철학, 도덕, 정치, 시간, 욕망, 가족, 여성, 사랑, 우정 등 모든 주제를 놓고 차라투스트라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라”고 초대한다.
『…계몽의 변증법』을 쓴 권용선씨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저서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풀어간다. 저자들의 생애를 1인칭 시점으로 자서전처럼 쓰는가 하면 원저자들의 기획회의라는 가상의 형식을 빌려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인간을 신화적 세계에서 빠져나오게 한 이성의 힘이 왜 오늘날 도리어 야만상태로 인류를 몰아가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오디세우스를 통해 신화와 계몽의 얽혀듦을 설명하고 사드의 소설 『줄리엣의 역사』에서 계몽의 한계를 지적하는 등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끌어냈다.
--- 경향신문 책마을 한윤정 기자 (2003년 3월 29일 토요일)
고전과 젊은학자의 대화 '소통의 門' 활짝 열리다
고전은 막연한 숭배와 읽기의 두려움 사이에서 자주 외면 받곤 한다. 좋지만 어렵게 느껴져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거나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쓴 골동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린비출판사의 ‘리라이팅 클래식’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리려는 기획 시리즈다. ‘지금_여기의 삶’을 담기 위해 고전을 다시 쓴다는 야심찬 의도에서 출발, 고전을 완전히 해체ㆍ재구성하는 모험이다. 1차로 학문공동체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의 젊은 필자들이 쓴 세 권이 나왔다.
원전의 얼개를 분해해 재배치하고 해설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원저자와 대화를 나누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고전의 엄숙주의나 고리타분함, 특정 시공간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멀리 날려버렸다. 특히 제 1권 고미숙의『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이 시리즈의 특징에 가장 잘 맞는, 전혀 새롭고 강렬한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 책은 대단히 유쾌하다. 읽기 쉽고 날렵하며 유머러스하다. 독자는 여러 차례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고미숙의 렌즈에 비친 연암은 유머의 천재이자 패러독스의 달인, 놀기 좋아하는 타고난 장난꾸러기이자 호기심의 제왕, 중세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로 지금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온다.
『열하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예고편 컨셉을 ‘호모 루덴스가 펼치는 개그의 향연’으로 잡겠다는 식의 구절은 재기발랄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다. 연암의 사유를 들뢰즈의 사유와 겹쳐가며 서술하는 내용은 깊이가 결코 녹록치 않다. 들뢰즈의 개념을 빌어 그는 연암을 ‘천 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목민’(노마드)으로 파악한다.
연암의 사상과 ‘열하일기’의 정수를 뽑아내는 솜씨가 감탄스럽다. 연암 시대 조선 지식인 사회의 주요 사건 중에 문체반정이 있다. 고문의 엄격한 틀에서 벗어난 소품이 유행하자 이에 격분한 정조가 과거 시험을 포함한 사대부 계층의 글쓰기 전반에 대해 대대적 검열에 나선 사건이다. 연암은 그런 글쓰기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이 지점에서 고미숙은 연암에 동지의식을 느끼고 있음이 틀림없다.
『열하일기…』에서 고미숙이 연암의 열혈 팬임을 드러냈다면 제 2권『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저자 고병권은 니체의 친구를 자처하며 시대를 뛰어넘는 우정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그는 차라투스트라와 동행하며 질문을 던지거나 니체를 옹호하면서 독자와 니체의 만남을 주선한다. 이 책에서 그는 ‘차라투스트라…’ 뿐 아니라 니체의 주요 저작을 모두 말하고 있으며 그리로 이동하는 데 필요한 지도를 제시한다.
제3권『이성은 신화다_계몽의 변증법』은 앞의 두 권과 달리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함께 쓴 원전의 목차를 그대로 따르면서 ‘계몽의 변증법’을 해설한다. 저자 권용선은 문학 전공자로서 자신의 장점을 살려 소설적 상상력을 도입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생애를 그들 자신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그들의 기획회의를 가상으로 작성해 ‘계몽의 변증법’이 지적하는 이성의 광기를 설명하는 식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어렵기로 소문난 ‘계몽의 변증법’ 에 주눅 들지 않고 곧장 파고들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리라이팅 클래식’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고전을 다시 쓸 젊은 학자들을 찾아 100권이고 200권이고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 한국일보 책과세상 오미환기자 (2003년 3월 31일 월요일)
『열하일기』는 박지원의 도발적 개그
책 제목부터 좀 낯설다. 그런 요소 때문에 재미가 덜하겠다는 느낌부터 들기 십상일 것이다.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뒷 말에도 불구하고 연암 박지원의 고전 '열하일기'가 제목 앞을 척하니 가로막고 있으니 답답해보인다. 이 책은 그런 예감을 보기좋게 뒤집어 놓을 만한 좋은 읽을거리다. 조선조 사회에 대한 약간의 예비정보와 지적 호기심만 있다면, "이토록 빨려들 듯 읽히는 인문학서가 나왔다니"하고 놀라실 것이 분명하다.
"개그의 향연! 만약 '열하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나는 컨셉을 이렇게 잡을 작정이다. 고전을 중후하게 다루기를 원하는 고전주의자들은 마뜩찮아 할 터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유머없는『열하일기』는 상상할 수 조차 없으니. 아니 '열하일기'는 유머로 시작해서 유머로 끝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처에서 유머를 구사한다."(2백29쪽)
인용문에서 보듯 스스로를 '고전 평론가'로 불려지기를 원하는 저자 고미숙(44)은 18세기 조선시대의 '스타 지식인'인 연암이 얼마나 매력 넘치는 '문제적 인간'인가를 보여주는 작업에 성공하고 있다. 실제로 연암은 스스로를 '소소(笑笑)선생', 요즘 말로 개그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 기행문인 '열하일기'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먹거리가 술이고, 가장 자주 나오는 낱말이 '포복절도'라고 한다.
연암이 여행 중에 보고들은 정보들로 채운 '열하일기'는 중국의 장터에서 벌어진 마술, 열하지역에서 당시 칠순 잔치를 벌인 중국 황제(건륭제)와 함께 관람한 카드섹션쇼, 당시 여성들의 패션과 세태 등에 관한 스토리는 물론 두명의 시종을 거느리고 중국 땅을 건너가는 연암의 모험과 속마음을 시시콜콜할 정도로 기록하고 있다. 요소요소에 우스갯소리를 다량 집어넣고 있어 저자는 '얄개 연암'이라는 표현까지 구사할 정도인 이 글은 그러나 상식적인 기행문과는 너무도 다르다.
이 별난 산문을 놓고 그동안 고전문학계는 정확한 성격을 규정짓지 못해왔다. 어떤 카테고리로 포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연암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이 튀는 글을 조선 중세 지식사회의 틀에서 벗어나려한 주도면밀한 전략의 하나로 풀이한다. 그렇다. 그것은 충분하게 계산된 전략이었다.
18세기 조선 성리학이란 이름의 앙상 레짐(구체제)에 숨이 막혔던 연암은 삐딱이, 방외자(方外者)임을 자처했고, 도발적인 글쓰기와 웃음이란 무기를 통해 응전을 한 것이다. 같은 시대의 다산이 성리학의 먼지를 털어내 그것의 본래 모습을 되찾으려 한 '진지한 개혁가'라면, 연암은 낡은 상투성을 내부에서부터 허물려했던 '악동(惡童) 해체주의자'의 길을 걸었다는 선명한 차이점을 분석한 보론(補論)은 이 책의 백미다.
이런 식의 연암 해석이란 '열하일기'를 비롯해 '호질' '양반전' 등에서 나타난 그의 문체에서 친구 관계, 호탕한 성품 등에서 거듭 확인된다. 중요한 점은 이 책의 등장은 '사건'에 속한다는 점이다. 먼지 쓴 한문 고전을 이렇게 유쾌하게, 그리고 설득력있게 재해석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저자가 대학이라는 제도권 학문 기관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지식인 공동체를 겸한 연구소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에서 일하고 있다. 또 이런 책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다. 책 뒤를 보면 이번 저술이 최근 몇년 새 쏟아졌던 7권의 좋은 영향 아래 지어질 수 있었음을 겸손하게 고백하고 있다. 한양대 정민 교수의 '비슷한 것은 가짜다'(태학사)를 비롯해 김영호의'조선의 협객 백동수'(푸른역사), 김용옥의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통나무), 연암의 친구 홍대용의 책 번역서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다'(돌베개), 이진경의 '노마디즘'(휴머니스트)등이 그것이다.
한편 이 책은 '리라이팅 클래식'시리즈의 첫권. 동서양의 고전에 대한 젊은 학자들의 탄력적 해석과 2000년대식 글쓰기의 한 모델을 보여줄 이 시리즈는'홉스봄 3부작''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종의 기원' 등으로 이어진다. 최근 신간들 중 양질의 기획물로 주목된다.
--- 중앙일보 행복한 책읽기 조우석기자 (2003년 3월 31일 월요일)
“세계최고 여행기 재해석” 고미숙씨
책의 저자 고미숙씨는 한국 최초의 ‘고전 평론가’이다. 저자 자신이 새로 만든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게 뭐하는 직업이냐’고 묻자 “고전을 싱싱하게 재구성하여 현대의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는 일종의 매니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에 걸맞게 책은 평이하면서도 발랄한, 군데군데 재기가 번뜩이는 문체로 쓰였다.
―인문학서, 그것도 고전을 텍스트로 한 책 치고는 색다른 문체가 자랑거리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고전이라고 하는 텍스트 자체가 주는 한계를 깨뜨리는 게 임무라고 생각해 왔다. ‘봉인된 아카데미즘’으로는 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일반독자의 반응을 얻기가 힘들다. 이 벽을 어떻게하면 격파할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고 썼다.”
―본인에게 연암은 어떤 인물인가.
“친구이자 스승이다. 연암을 만남으로써 인생이 한결 넉넉해진 느낌이다. 앞으로도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원천으로 작용할 것이다. 단언컨대, 전세계 어떤 여행기록 텍스트도 ‘열하일기’만한 것은 없다. 여행기를 비교해보기 위해 ‘동방견문록’과 ‘이븐 바투타 여행기’등 여러 종을 읽어봤지만 일부는 너무 지겨워서 완독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열하일기’와 비교한다면 급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다.”
―고전문학 전공자로서 ‘열하일기’를 최근 몇년사이에 들어서야 완독했다는 게 이해가 잘 안된다.
“그게 소위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로 나눠지는 한국 인문학의 한계다. ‘열하일기’는 이 모든 것에 ‘걸쳐 있다’. 따라서 어느 분야에서도 ‘열하일기’ 전체를 텍스트로 하지는 않는다. 단지 자신들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할 뿐이다.”
―들뢰즈·가타리의 시각으로 ‘열하일기’를 풀었는데.
“‘열하일기’를 예전에 만났다면 지금처럼 풍부하게 ‘접속’하진 못했을 것이다.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오히려 들뢰즈·가타리의 개념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게 된 측면도 있다.”
―스스로 노마드(유목민)라고 생각하나.
“그렇게 완벽한 노마드는 아니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고 어느정도 준비는 돼 있다. 소위 중산층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 가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가끔 진보적인 글을 발표하는 것만으론 아무 의미가 없다.”
--- 문화일보 북리뷰 김영번 기자 (2003년 3월 28일 금요일)
들뢰즈의 눈으로 열하일기를 읽다
1.책은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 재해석집이다. 그렇다고 18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의 ‘열하일기’의 또다른 분석서로 읽을 필요는 없다. 현대의 시선과 해석으로 재조립된 ‘21세기형 열하일기’다. 한국의 대표적인 들뢰지안(현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1925~1995) 철학 추종자)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평론가 고미숙씨가 서양 철학자 들뢰즈의 눈으로 18세기 조선의 저작을 새롭게 쓰고 있다. 말하자면 동양과 서양이란 공간 가로지르기, 18세기와 현대 넘나들기가 실현된 흥미로운 저작이다.
2.‘열하일기’는 청나라 건륭황제의 만수절(70세) 축하사절단에 동반, 1780년 5월에서 10월까지 6개월에 걸쳐 연암이 중국땅을 다녀온 여행기다. 그러나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멜로디의 수많은 변주가 일어나는 텍스트”다. ‘열하일기’ 중 세간에 어느정도 알려져 있는 ‘호질’을 보자. ‘호질’이 뭔가. 단순한 이야기 또는 소설? 그도 아니면 패관잡기(稗官雜記)?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호질’은 범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본, “인간 외부의 시선으로 인간 보기”이다. 저자는 ‘열하일기’에 대해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가 펼치는 개그의 향연’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한다. 저자가 읽어낸 ‘열하일기’엔 둘러치기와 의뭉함, 상대방이 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패러독스, 지전설과 지동설의 심도깊은 주장 등 자유로운 정신의 유쾌한 편력이 마음껏 펼쳐진다.
3.저자는 왜 ‘열하일기’를 다시 살려냈을까. “‘열하일기’의 빛나는 유머와 뜨거운 패러독스를 사방팔방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는 것. ‘열하일기’엔 연암을 비롯, 고지식한 하인 장복과 창대, 소중화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사행(使行)단원들, 연암과 필담을 나누며 막역지우가 되는 한족 선비들과 중국 장사치들이 등장인물로 나와 포복절도할 사건들을 연출한다. 하지만 포복절도 뒤에는 날카로운 패러독스가 묻어 있다. ‘청나라 문명의 핵심은 기와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고 주장하는 연암의 말은 단순한 기상천외를 뛰어넘는다. 이용후생의 차원뿐만이 아니라 ‘중화주의의 명분을 뚫고 나오는 새로운 담론의 속살’을 담고 있다.
4.책은 들뢰즈-가타리의 시각으로 바라본 ‘열하일기’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들뢰즈-가타리는 하나의 분석틀일 뿐, 오히려 ‘열하일기’의 풍부한 예증들이 들뢰즈-가타리를 해석하고 있다. 이른바 ‘메타 텍스트’라는 한국 출판에서는 매우 특이한, 한편으로는 대단히 흥미로운 저작이다. 실제로 저자는 ‘열하일기’를 중심텍스트로 사용하고 있지만 연암의 행적을 들뢰즈 문법으로 재해석하는 부분이 오히려 눈에 띈다. 이런 작업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생전에 연결고리라곤 없었던 동·서양 두 지식인의 삶을 가로지르는 것이 어떤 학문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란 질문은 이 책의 탄생이유를 묻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저자는 대단히 즐겁게 또 자유롭게 작업을 한 듯하다. 18세기 조선의 한 실학자의 행적과 현대 프랑스 철학자의 사유를 얽어매는 작업은 학자로서도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것이란 점에서 희열을 준 듯하다. 그러나 그런 작업의 심리에는 어쩔 수 없는 ‘들뢰즈 편향’이 있음도 비켜갈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작업, 이른바 앞선 텍스트를 한 책상에 가져와 해체 재조립하는 과정은 곧바로 들뢰즈 연구방식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고씨의 ‘열하일기의 분석틀’은 들뢰즈의 작업방식 옮겨오기라고 할 수 있다. 즉 책은 들뢰즈의 사유를 ‘열하일기’해석에 얹고 있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작업방식 자체에서도 들뢰즈의 작업방식을 가져오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열하일기’에 대한 경배이지만, 여전히 들뢰즈 찬사이기도 하다. 사실 들뢰즈는 자신을 철학사가라고 불러달라고 했을 정도로 서양 철학 전체를 자신의 사유틀 속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평생 해왔다.
5.책 말미에 보론으로 붙어 있는 ‘연암과 다산-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가지 경로’는 그 자체로 한편의, 빼어난 논문이다. 연암과 다산의 차이점에 주목,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한 ‘연암-다산론’이 전개된다. 연암과 다산의 철학적 사유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결코 ‘실학파’라는 ‘하나의 틀’로 묶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산이 중세를 떠나 근대에 도달한 여행가였다면(그에겐 도달해야 할 곳이 있었으며, 오직 그곳만이 중요했다) 연암은 중세에도 근대에도 머물지 않고 시대와 공간을 떠도는 유목민이었던 것이다. 이 한편의 논문만으로도 책이 들뢰즈 시각으로 본 한국고전에 대한 경이란 점을 충분히 보여준다.
--- 문화일보 북리뷰 김영번 기자 (2003년 3월 28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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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다시 한번 열하일기를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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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소개하는 연암 박지원은 유머로 가득찬 조선의 선비다. 조선의 운명을 생각하면 우울하기 그지없고, 선비를 생각하면 근엄하기 짝이 없는데, 연암을 생각하면 유쾌하게 웃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몇 년 전 ''열하일기''를 통독한 적이 있다. 지금은 문을 닫은 대양서적에서 상중하 3권으로 출판된 ''열하일기''를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읽은 여러 책 중에 -10수 년 전 군대에 복무할 때 읽었던 ''장길산''을 빼고- 가장 쪽수가 많은(?) 책인듯 싶다. 이 책이 나왔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샀다. 저자가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를 운영한다는 고미숙이라는 사실도 한몫을 했다. 정말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을 정도로 열독을 했다. 이 책은 내게 열하일기를 다시 읽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 책이다. 덤으로 한 말씀; ''열하일기''를 읽고 싶었으나 아직 읽지 못한 분들께 꼭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아울러, ''열하일기''에 도전하고 싶으나 분량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이는 분은 일기의 앞부분을 묶어 문고판으로 펴낸 ''도강록''(이가원 역주, 정음사 간)을 구해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1980년 당시 800원, 이 책이 지금도 나오는 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열하일기에 맛을 들이는데 좋은 책이다.)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아끼는 책을 선물하는 버릇이 있는 40대 남자. 2003-04-23 [이 리뷰를 작성한 분이 작성한 또다른 리뷰]
악! 이 책이 '강력추천'을 동반한 4월의 추천도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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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예스24를 즐겨 이용하는 단골로서, 예스24의 추천도서에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는 단골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이 4월의 추천도서에 올랐다는 사실에 공감하기 힘들다. 지난 주중 주문해서 주말에 일독했다. 일독한 후의 느낌은 한 마디로, 이 책 어디에도 연암의 본 모습 아니면 저자나 출판사가 주장한 새롭게 해석된 연암의 초상화는 없었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저자 고미숙씨가 보고싶어만 했던 연암의 일면만 있었을 뿐. 거기에다가 너무나 산만한 문체, 과잉을 넘어 질식하기 일보 직전 수준의 감탄사와 문장부호의 남발, 레토릭. 메타포. 아포리즘. 노마드 등의 개념의 부적절한 사용...감탄부호 '!'가 과연 몇 개나 사용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한번 세어보려다 겨우 참았을 정도였다면... 이 책은 기본적으로 리라이팅클래식 시리즈로 선 보인 책이다. 고전의 새로운 해석을 표방한 책. 그러나 이 따끈따끈한 신간을 정색해서 정독을 한 나의 느낌은 '고전의 새로운 해석'이라고 표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너무 가혹할 지는 모르겠으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나의 심정은 '독후감'에 대한 비용과 시간으로서는 과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제목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4월의 추천도서 목록에 대한 예스24 편집진의 재고를 기대해 본다.
libero66 2003-04-08 [이 리뷰를 작성한 분이 작성한 또다른 리뷰]
재미있는 고전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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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책상태
제가 국문과 출신인데요.. 고전문학, 하면 아픈 기억이 참 많습니다.. 지루, 짜증, 답답.. 물론 그 땜에 좌절(?)도 수두룩하게 겪었지요.. 근데 말이죠.. 이번에 그린비에서 나온 고미숙 선생님의 자상하고 유쾌한 '열하일기' 해설은 고전문학에 대한 제 뿌리깊은 편견과 오해를 일거에(!) 불식시켜 주었답니다.. 일단 무지 재미나고요.. '양반전'에 나온 '맑은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는 구절을 기억하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연구대상인 연암 박지원의 텍스트 자체도 거의 코미디 수준이고요.. 거기다 전문연구자가 '열나게', '^^' 등 적나라한 일상어나 인터넷 용어들을 엄숙하기로 소문난 고전문학 연구서에 거리낌없이 사용한다는 게 우선 신기하고 통쾌하고요.. 아, 카타르시스~ ^^; (빽빽하게 들어차서 읽는 이의 눈과 골치를 아프게 하는 각주 녀석도 없답니다..) 또, 연암의 신랄한 유머에 필적하는 저자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촌철살인의 풍자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요.. 책 속에서 이루어지는 연암과 고미숙 선생님의 시대를 초월한 대화도 멋진 앙상블이자 볼 만한 장관입니다.. ^_^
글구 전 잘 모르지만, 기존의 아카데믹한 연암 해석과는 좀 다른 거 같아요.. 연암을 실학파나 북학파 등에 속하는 근대의 선구자로 보는 게 아니라, 그걸 뛰어넘는 탈근대적, 아니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로 그리고 있는 거 같아요.. 하나 더..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 개인적으로 전부터 들뢰즈 등 프랑스 철학을 한번 공부해 보고 싶었는데요.. 책만 집어들면 무슨 소린지 머리가 아득해지고 간담이 서늘해져서.. (아, 넘 어려워요..) 근데 이 책을 읽으면 그 기본개념들이 알기 쓉게 쏙쏙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정말입니다.. (고미숙 선생님이 연구공간 '너머' 짱이시잖아요..) 덕분에 전 들뢰즈로 가는 길의 첫걸음을 막 떼었답니다.. 암튼 이 책 읽는데 몇 시간 안 걸렸는데요.. 그것도 놀라웠고.. 간만에 책에서 느껴보는 행복한 시간이었답니다.. 강에 강에 강 추추추!!! ^^*
인상깊은 구절: "억압의 기호가 졸지에 저항의 징표가 되어버리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은 우리 시대에도 적지 않다. 이슬람권 여성들의 '부르카'(얼굴을 가리는 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여성억압의 대표적 습속임에도, 서구제국주의의 침략 속에서 그것이 이슬람 문화의 상징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이슬람 여성들은 '벗을 수도 없고, 뒤집어 쓸 수도 없는' 이중적 질곡에 빠지고 말았다. 한족 여성과 전족의 관계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역사의 교훈을 현재에 되새겨 보고 있는데요.. 미국의 침략전쟁 땜에 덩달아 이라크의 영웅이 되어버린 독재자 후세인.. 양날의 칼이군요.. Peace~!!!
출처: --- p. 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