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동안 겨울 문 앞에 서성거리며 봄의 전령사의 인기척을 감지하려 해도 아무 기미가 없더니 어느새 나뭇가지에 꽃눈이 맺히고 노란 수선화와 크로커스가 햇살에 꽃망울을 톡톡 열고 있다.
파릇파릇한 봄기운에 긴 기지개를 켜다 겨우내 묵은 먼지를 털어 내듯 가볍게 다녀오기 좋은 곳이 파리에서 40km 떨어진 샹티이 마을이다.
샹티이 마을을 가장 빛내 주는 건축물은 섬세함과 정교함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샹티이 성’이다. 성은 프랑스의 역사와 함께 영화 ‘바텔’의 배경이 되었고, 축구선수 호나우두가 성대한 약혼식을 올리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곳이다.
성 안에는 중세 미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콩데 박물관이 있고 유명한 샹티이 크림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성 앞의 넓은 숲은 파리지앙들이 자전거, 승마, 산책을 즐기는 곳이다. 성 바로 옆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말 박물관과 경마장이 있다. 이런 풍부한 문화유산과 역사로 2007년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역사와 예술의 마을’로 지정되었다.
프랑스의 장구한 역사가 도도히 흐르는 샹티이 성
파리를 벗어나 숲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갑자기 반짝반짝 빛나는 수면 위에 하얀 백조들의 날갯짓을 따라 우아한 공작부인의 자태를 닮은 성이 나타난다. 바로 루아르 강가의 어느 성에도 빠지지 않는 아름다운 샹티이 성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유서 깊은 성이다. 이 성의 주인들은 프랑스 역사의 강을 따라 흥망성쇠를 겪은 프랑스 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몽모랑시 가문에 의해 그랑샤토는 1531년, 쁘띠샤토는 1560경에 건축되었다. 한 때의 성주는 16세기에 혁명에 참가했다 참수형을 당하고 루이 13세에게 성을 빼앗기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이 성은 그 후 부르봉가의 콩데 가문의 소유가 되어 루이 14세의 절대왕권 시대에 문화의 향연 장소로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 시기에 성은 번영을 보여주듯 증개축을 거듭하다 프랑스 대혁명 때 파손되었다. 이후 7월 왕정 루이 필립왕의 아들 오말공이 상속받아 예전의 모습 그대로 복원 후 오랜 정치적 망명을 떠났다. 그 후 성으로 돌아와 정치적 재기를 노렸지만 실패 후 모든 것을 정리해 프랑세즈 아카데미에 기증했다.
17세기의 문학의 향연
샹티이 성의 전성기는 1643년에서 1700년 사이로 왕세자 콩데공이 소유하던 시대로 그랑 콩데(Le Grand Cond)라고 불린다. 예술과 문학을 사랑했던 그랑 콩데는 세비네 부인, 라파예트 부인, 라 퐁텐, 라 브뤼예르, 몰리에르 등을 초대하여 문학적 토론을 위한 연회를 자주 열었다. 이들은 17세기 프랑스의 고전주의와 바로크 문학이 꽃피었던 시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작가들로 낮에는 정원을 거닐며 문학과 철학을 논하였고, 밤에는 화려한 무도회와 불꽃놀이를 즐겼다.
프랑스의 위대한 희곡작가이자 배우인 몰리에르는 1659년 이곳에서 일주일을 보내며 ‘재치를 뽐내는 여인들’을 썼다. 이 작품은 그 시대의 겉멋 들린 여성들을 유쾌하게 풍자해 여성들의 항의로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었다. 그 후 몰리에르는 콩데공에게 다시 초청 받아 성에서 1668년 ‘'타르튀프’을 상연했다.
숨은 보물로 가득 찬 콩데 박물관
샹티이 성은 지금은 콩데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이은 고전 명작들을 볼 수 있는 곳으로 12개의 전시실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플랑드르 미술인 회화 1000점, 스케치 2500점, 필사본 1500점과 고서 30000권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라파엘로, 드라크로와, 와토, 푸상 등의 걸작들을 한꺼번에 감상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성의 마지막 주인, 오말 공작은 샹티이 성을 콩데 박물관으로 개조 한 후 정부에 기증하면서 콩데 박물관의 수집품을 외부에 대여 하지 말 것과 공작 자신이 배치한 작품 순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독특한 것은 그 작품 배열순서가 연대별이나 계보에 따른 것이 아닌 작품의 크기에 따랐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샹티이 정원과 하모
샹티이 정원은 프랑스 최고의 조경설계사였던 앙드레 르노트르(1613-1700)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르노트르는 튈르리궁전 정원을 재설계하고 지금의 샹제리제 길을 내는데 기여한 조경 설계사이다. 그의 작품 중에 보 르비콩트 성의 정원은 연못, 분수, 조각품 등의 아름다운 조화를 통해 그의 명성을 확인 시켜준다. 이 정원을 본 루이 14세가 그에게 직접 의뢰해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이 조성되었다. 그밖에도 트리아농 궁, 생클루 궁, 퐁텐블로 성의 정원도 그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졌다.
북동쪽 영국식 정원 안에는 조그마한 마을을 뜻하는 하모(Hameau)가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마리 앙트와네트 하모의 모델이기도 했던 곳이다. 콩데 가문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손님을 접대하던 곳으로 소박한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장소이다. 잠시 정원 속 벤치에 앉아 한가로운 프랑스 시골 마을의 정취를 느끼다 보면 저만치 세비네 부인과 라파에트 부인의 부드러운 발걸음 사이로 몰리에르의 거침없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폭죽 소리와 무도회의 여인들의 옷 스치는 소리가 가득 메운다. 작은 호수와 수로의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유유자적 노닐고 수면 위에는 백조와 오리들이 한가로이 노닥거리며 한 폭의 로코코 풍의 풍경화가 완성된다.
당대 최고의 요리사, 바텔의 자살
샹티이 성을 둘러싼 유명한 일화가 있다. 성의 요리사였던 바텔은 1661년 루이 14세를 위한 3일 동안의 연회를 위해 요리를 준비했다. 그러나 둘째 날 바비큐가 부족하여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또한 마지막 만찬을 위한 생선 배달이 지연되어 완벽한 향연을 준비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자신의 명예가 실추된다고 생각하여 자살했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세비네 부인이 그녀의 딸에게 보내는 서신과 ‘샹티이의 연회’라는 글 속에 소개되어 신빙성을 더해준다.
바텔의 출생에 대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고 보 르 비콩트 성의 요리사로 있다가 샹티이 성으로 옮겨왔다는 것만이 전해진다. 이것은 루이 14세가 보 르 비콩트 성의 호사스런 파티에 참석했다가 신하가 왕보다 더 호화스런 저택에 살면서 사치스런 향연을 베푸는 것에 격노해 성 주인 푸케를 종신 금고형에 처했던 역사적 사실과 맞물려 바텔도 성을 떠날 수밖에 없었음을 추측케 하는 대목이다.
이 일화를 소재로 ‘킬링 필드’와 ‘미션’으로 유명한 롤랑 조페 감독이 2000년 영화로 만들었다. 조페감독과 여러 작품을 함께한 엔리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았고 지금은 러시아의 시민이 된 제라르 드빠르디유(바텔), 우마 서먼(안느), 팀 로스 등이 출연했다.
영화는 콩데공이 정치적, 재정적 위기에 처하여 루이 14세에게 신임을 얻으려고 연, 삼일동안의 연회를 담고 있다. 영화의 즐거움은 태양왕 시대의 의상, 실내장식, 공연, 음악을 통해 초호화 사치를 누리던 궁전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의 압권은 주방에서 화려한 궁중 음식을 만드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바텔이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 축제의 요리사이자 집행자가 아닌 한낱 그들의 노예라는 사실에 절망하여 자살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배경으로, 루이 14세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왕의 춤(Le Roi Danse)’과 함께 ‘바텔’ 역시 절대왕정 시대 프랑스 궁전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수작은 아니지만 한번 쯤은 볼 만한 영화이다.
샹티이 크림의 비밀
케이크에 얹어지거나, 커피와 아이스크림과 딸기의 풍미를 살려주는 샹티이 크림은 이 성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샹티이 크림이라고 불린다. 바텔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다만 1654년 기록된 크림 레시피를 보면 샹티이 크림 제조법과 비슷한 자료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레시피에는 설탕이 들어있지 않은 차이점이 있다. 18세기에 누군가 설탕을 크림에 넣어 지금의 샹티이 크림이 완성된 것이다. 샹티이 크림를 제대로 즐기려면 하모의 레스토랑에서 맛을 보아야 한다. 다른 곳의 맛과 다르게 농도도 깊고 달콤함의 깊이도 다르다.
또 다른 샹티이의 문화유산
샹티이 성 건너편에는 200년 전에 건축된 샹티이 조케 클럽 경마장과 대외양간의 건물 일부를 이용한 말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샹티이 성의 루이 헨리 공작이 후생에 말로 태어날 것을 믿고 다음 생을 위해 안락하게 지었다고 한다. 박물관 내에는 31개의 전시실이 있으며 1200여점의 그림, 조각, 마차, 타피스리, 마구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족보 있는 3000여 마리의 말도 이곳에서 길러진다.
샹티이 마을의 특산품은 꽃 모양의 레이스와 자기이다.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 레이스는 귀족부인의 의상, 집안의 소품, 우산, 숄 등에 들어가 큰 사랑을 받았다. 콩데가문은 동양자기를 수집하다 1730년에는 자기 제작소를 세워 직접 제작했다. 초기엔 동양자기를 모방하다 프랑스 스타일의 자기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1870년에 문을 닫았다가 1945년부터 다시 제조되기 시작한 자기들은 프랑스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콩데박물관과 마을의 상점에서 레이스 작품과 자기를 볼 수 있다.
샹티이 찾아가는 방법
기차편: Chantilly 기차역에서 내려 샹리스행 버스를 타고 샹티이 에글리즈 노트르담에서 하차.
자동차편 : 파리 북쪽 방향의 고속도록 A1을 타고 1시간 정도 가다 Chantilly라고 쓰인 진입로를 나오면 된다.
【한위클리 / 조미진 chomijin@hotmail.com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