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박윤웅(朴允雄)은 신라 경명왕의 아홉째 아들 박교순(朴交舜)의 6세손이다. 그는 1099년(고려 숙종 4년) 동여진의 10만 대군이 침공하자 4개월 만에 이를 평정했다. 그 공으로 1106년(예종 1년) 대장군으로 익찬공신이 되어 흥려(울산)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울산으로 하였다.
후손 박유는 고려가 망하자 이색과 길재와 작별, 충청도 대흥의 오류동에 은거한다. 그는 후손에게 유언으로 수대 동안 벼슬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 유지를 따라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고려조의 멸망과 함께 울산박씨 후손들은 대부분 벼슬과 담을 쌓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순절한 후손이 많다. 동래수성장으로 전사한 박안세도 울산박씨 후손이다.
그의 아들 박능정도 의병을 일으켜 울산의 서생진 싸움에서 전사했다. 박능정의 아들 박붕은 아버지의 순절 소식을 듣자, 병력을 모아 하양의 수성장으로 공을 세웠다. 그는 뒤에 훈도에 천거된다.
박붕의 아들 박헌가는 일찍이 과거에는 뜻이 없고 오로지 효의 실천과 상제의 예절에 엄격했다. 향약을 만들어 풍속을 바로 잡는데 힘썼다.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내리, 충북 옥천군 이원면. 옥천읍, 영동군 심천면, 충남 예산군, 경북 울진군 온정면,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이 집성촌이다.
2000년 현재 22,427명이다. 주요파는 ▲용당파 ▲초산부사공파 ▲기장통덕랑공파 ▲송경파산공파 ▲연암가선공파 ▲명곡군수공파 ▲평해남계공파 ▲제내군수공파 ▲유곡판관공파 ▲강화참판공파 ▲부내불강신공파 ▲보령현령공파 ▲경주현감공파 ▲부령강릉백파 ▲대흥찬성공파 ▲대흥판서공파 ▲대흥부사공파 ▲부여진사공파 ▲풍암좌랑공파 ▲영동전서공파 ▲옥천도사공파 ▲하양합문지후공파 등이다.
자료:전북매일신문 편집 2014.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