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염상정(處染常淨)은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서 나온 성구로
연꽃은 진흙탕물 속에 살면서도 꽃잎을 혼돈과 더러움에 물들이지 않은 채 의연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라 합니다. '처염상정處染常淨'은 연꽃과 같이 '비록 몸이 혼돈되고 깨끗하지 못한 곳에 머물지라도 마음과 영혼만큼은 언제나 맑고 깨끗함을 잃지 말라'는 의미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고사를 지난주(5월10-11일)KBS 주말사극 정도전에서 목은 이색이 그의 제자 포은 정모주를 아끼는 마음에서 사용된 대사인데 온라인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 2 회에 걸쳐 아래 이미지에 있는 4 개의 성구(成句)가 주된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과전법은 신진사류인 조준(趙俊)에 의해 제시된 개혁안이데

삼봉 정도전은 과전법보다 막강한 '계민수전'만이 백성을 살리는 길이란 전제하에 시행을 주 창하던 중 明나라 사신으로 가게 되자

포은 정몽주는 조준의 과전법을 절충안으로 채택하여 이성계의 승낙을 받아 시행에 이릅니다.

明에서 귀국한 정도전이 '과전법'이 시행된 것을 보고 스승인 이색을 찾아가 벼슬길을 그만 두고 낙향하라고 하자 이색은 아래 이미처럼 대노하면서 '사문난적'을 외칩니다.
정도전 역시 물러나지 않고 자기 말대로 하지 않으면 정몽주가 다치게 될 것이라고 위협을 합니다만 목은 정도전과 사제간의 인연을 끊는다면서 굳건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몰락의 길을 선택합니다.

사문난적(斯文亂賊)이란 유교, 특히 성리학에서 교리를 어지럽히고 그 사상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주자의 학설에 반대되는 이론을 펴;는 학자들이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정국을 주도하게 된 노론계열은 주자성리학을 그 인식의 기반으로 삼고 있었는데, 이들과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던 남인이나 소론의 경우 주자와 다른 견해를 갖거나 양명학(陽明學)·노장학(老莊學) 등 유교와는 다른 사상체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는데...
이때 노론은 남인·소론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탄압했다고 합니다. 숙종 때 송시열(宋時烈)과 대립했던 윤휴(尹鑴)와 박세당(朴世堂)이 각각 〈중용주해 中庸註解〉·〈사변록 思辨錄〉 등을 지어 주자와는 다른 독자적인 경전해석을 내놓았는데, 송시열이 이들을 사문난적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고 합니다.그리고 윤휴는 북벌(北伐)을 주장한 개혁적인 인물이었는데,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합니다.

△ 고려사 권七十八 -과전법-
위 과전법의 계민수전 살펴보면 : 첫행의
[諸賜給田並階(?)收奪均給職田餘田公收租稅以充制可]
모든 사급(賜給 :나라나 관청 등에서 국민에게 내린 금품이나 물건)인 직전( 공직자에게 내린 전답)과 여전( 기타 남아 있는 전답)을 조세를 부과해 충실한 제도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끝 부문을 보면
[大司憲趙俊等上書曰夫仁政必自經界始正田制而足國用厚民生此當今之急務也國祚之長短出於 民生之苦樂而民生之苦樂制於田制之均否...]
대사헌 조준등이 상소를 올려 이르기를 "무릇 어진 정사를 하기위해서는 처음부터 경계( 나누어 줄 땅)를 잘 수립하여 바른 과전제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는 후덕한 민생을 이루는데 족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땅히 지금 급히 해야할 업무입니다. 백성들의 고락에서 나라의 복된 장단점이 나오게 되며 과전제가 균등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민생의 고락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해석에 오류가 많을 테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산여울-)

참고 :
사급 [賜給]① 나라나 관청 등에서 국민에게 내린 금품이나 물건 따위를 내려 줌 ② 내려 주다
계민수전(計民授田), 백성의 수를 헤아려 땅을 나누어준 제도. 원리는 농사짓는 사람이 땅을 가지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
고려는 사급제도였는데 전답을 부여 받으면 직접 경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세 주고 그 사람이 다시 전세를 주었기 때문에 최후 경작자는 주인이 여러 명이 되어 입에 풀칠할 양식이 없는 나라가 조성되어 서민이 도탄에 빠진 것을 보고 정도전이 역성혁명을 해서라도 이를 바로 잡야겠다는 사상으로 인해 조선이 태동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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