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간 : 구룡령 - 갈전곡봉 - 왕승골 삼거리 - 956m봉 - 야영장 사거리 - 조침령 - 943m봉 - 양수상부댐 발전소 - 북암령 - 단목령 - 점봉산 - 망대암산 - 한계령
2. 산행 일정 : 3월 16일 18시 40분 출발, 구룡령 17일 0시 20분 도착 17일 0시 47 산행시작, 17일 19시 30분 한계령 도착. (총 산행시간 18시간 43분)
3. 종주자 명단 : 최현찬(산행부대장, 경주교도소), 권종훈(산행부대장, 경주월성중학교)
4. 운전자 : 이정필(사모님)
5. 차량 제공 : 이정필
6. 도움 주신 분들 : 최병윤, 김혜실, 이정필
지난주에 이어 또다시 대간길에 오르게 되는데 차량이동 시간도 길고 산행거리도 상당히 장거리에 속하는 구간이다. 이번에도 운전은 이정필 회원이 사모님과 함께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특히 이정필 회원은 되도록 야간운전은 하질 않으려고 하는데 그 먼거리를 장시간 운전을 해야하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그것도 사모님과 함께 가게되니 이래저래 회원님들과 친구들 가족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
특히 이번구간은 점봉산에서 한계령까지는 자연휴식년제 적용구간에다가 지금은 산화경방기간이라 어떻게 통과를 해야할 것 인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런데다 아직도 높은 봉우리에는 눈도 많이 쌓여 있을텐데 과연 구룡령에서 한계령까지 하루만에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그러한 가운데 18시 40분 출발을 한다. 이번구간은 두사람 밖에 없다. 밤중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산길을 둘이서 걷기에는 너무 쓸쓸하고 허전함마저 든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많은 인원이 오면 자연적으로 속도가 늦어지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생길수 있기에 지금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참고 인내하며 걸어가다보면 항상 꿈꾸며 그리워하던 백두대간 남한구간 종점인 진부령이 우릴 기다리며 따뜻이 맞이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고생한 보람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겠지...
앞으로 남은 두 구간만 고생하면 마지막 구간은 정기산행에다 거리도 얼마되지 않으니 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제 진부령 표지석 앞에 설 날이 얼마남지 않았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21시 40분 치악휴게소에 들어가 밥을 먹고 22시 10분 출발을 한다. 원주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진입을 해야되는데 잘못알고 지나쳐 홍천에서 구룡령으로 가게 된다.
0시 30분 만물이 잠든 시간에 구룡령 정상휴게소에 도착하여 산행준비를 마치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구룡령 고개마루에는 동물 이동통로 때문에 모든 시설물을 소등시켜 놓아 그야말로 불빛 한점 없는 암흑 지대이다.
이곳 구룡령은 갈전곡봉과 약수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 아홉 마리 용이 아흔아홉 굽이를 올라가는 모습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홍천군 내면과 양양군 서면을 넘는 2차선 포장도로인 56번 국도상의 고개로 내륙과 해안을 연결하는 새로운 관광도로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고개 둘레에는 자연휴양림과 약수터를 비롯해 내린천과 남대천 등 아직 오염이 덜 된 강들이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0시 47분에 1060m의 구룡령을 출발한다. 지난번 내려왔던 휴게소 뒤로 해서 2001년에 설치한 야생동물 이동 통로인 육교를 조심해서 건너간다. 이길은 밤중에 동물들만 이동하라고 만든 길이며 이곳에서는 함부로 불을 켜지도 못하도록 하는 곳인데 동물이 아닌 인간이 지나가고 있으니... 물론 인간도 고등동물에(아리스토텔레스-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또는 정치적 동물이다)속하니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야생 동물 이동 통로 옆을 따라 등산로에 진입하여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면 완만한 오르내림이 이어지지만 크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곳이다. 그것은 시작부터 고도가 높아 그렇지만, 너무 깊은 오지의 산속에서 두 사람만이 야간산행을 하기에는 조금은 슬프고 힘들며 왠지 허전한 마음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오늘 구간은 멧돼지들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다.
산마루에 올라서자마자 몰아치는 세찬 바람에 얼굴이 따가울 정도이며 출발한지 23분 후인 1시 10분에는 삼각점이 있는 1100.3m봉에 오르고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와 백두대간 보전회, 환경연합이라는 단체에서 강원도 홍천군 내면 명개리 갈전곡봉 일대에 백두대간 생태복원을 위해 주목과 전나무, 종비나무등 600본을 2001년 5월 11일 조림했다는 안내판이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에 심은 나무들이다.
잠시 내려가다 사거리가 나오는데 여기가 옛날 구룡령을 넘던 고갯길이라 한다. 구룡령 옛길을 지나 1121m봉에서 갈림길이 있지만 대간길은 서쪽으로 크게 방향을 바꾸고 내리막길은 경사가 심하다. 다시 봉우리를 오르니 길은 오른쪽으로 우회하고 왼쪽으로 갈림길이 있지만 대간길은 북쪽 방향이며 내리막이 꽤 가파르기 때문에 조심해서 내려간다.
봉우리가 계속 이어지고 펑퍼짐한 길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1066m봉 오르는 길가에 산죽이 보이기 시작하고 아름드리 고목들인 굴피나무와 참나무가 곳곳에 보이고 2시 7분에 치밭골령이라는 표지목이 세워진 곳에 도착한다. 우측으로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마을 불빛을 끼고 돌아나가며 엄청난 바람이 불며 등산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봉우리 넘어 봉우리가 계속이어지다가 갈전곡봉에 이르게 된다.
1204m의 갈전곡봉에는 2시 28분에 도착하였으며 왼쪽으로 가칠봉과 홍천군 명개리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오른쪽으로 꺾이는 대간길은 설악산 쪽으로 방향을 튼다. 한밤중의 어둠으로 인해 주위의 지형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지만 정상은 양양군과 홍천군, 그리고 인제군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남서쪽의 가칠봉쪽 등산로에도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어 헷갈리기 쉬운 곳이니 주의를 요하는 곳이다.
갈전곡봉에 이르러 서쪽으로 가지를 뻗어 놓은 산이 개인산이다. 강원도 인제군과 홍천군에 걸쳐 있으며 주봉인 1444m의 주억봉을 비롯하여 서쪽에 1435m의 깃대봉, 동쪽에 1388m의 구룡덕봉과 1320m의 숫돌봉이 종이깔때기 형상을 하고 그 안에 개인동이라는 큰 계곡을 품고 있다.
미산리나 살둔에서는 개인산, 개니산으로 부르는데 현리나 상남에서는 방태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개인산은 삼봉약수, 개인약수, 방동약수로 유명하며 이 약수 섞인 물은 내린천으로 흘러들어 차례로 소양강, 북한강, 한강이 된다.
개인산은 입구가 좁으나 안은 넓은 형세로 살둔, 달둔, 월둔, 아침가리(조경동), 명지가리(명지거리), 적가리, 곁가리, 연가리의 3둔 5갈을 두었는데 물, 불, 바람 즉 흉년, 전염병,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았던 불행한 시대에 개인산은 많은 민초들을 보듬어 주었음을 역사는 전한다.
인적이 드물지만 한번 가본 사람이면 꼭 다시 찾을 만큼 정감이 가고 한국의 유토피아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른바 정감록의 20피장처에 속한다. 이 정감록을 믿고 평안도나 함경도 사람들이 찾아들어 한 때는 수백명의 화전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울진 삼척 무장공비 사건 뒤로 소개되고 2가구만 살고 있다고 한다.
특히 가칠봉으로 진행하면 삼봉약수로 유명한 삼봉자연휴양림이 있다. 이곳 삼봉약수는 갈전곡봉에서 서쪽으로 10리쯤 뻗어나온 산줄기에 1240m의 가칠봉과 1156m의 응복산이 솟아 있는데 두 산에서 발원하는 실룬계곡에 있어 실룬약수라고도 불리며, 삼봉약수는 이 세 봉우리의 정기가 모인 곳에서 나오는 약수라는 뜻으로 '한국의 명수 100선'에 들 정도로 유명하다.
또한 삼봉약수는 위장병에 특효가 있고 신경쇠약, 피부병, 신장병, 신경통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며, 약수터 앞에는 삼봉약수산장이 있어 이 산장에는 약수로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과 피서객들로 한여름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고 한다.
약수가 나오는 구멍이 세 개가 있는데 그 맛이 모두 다르다고 하며 그중 맨 아랫것이 가장 강한 맛이 나는데 처음 먹는 이는 쇳내 때문에 못먹을 정도라고 한다. 처음 발견 당시에는 바위틈에서 졸졸 흘렀지만 관리하던 사람이 바위틈 아래의 보글거리는 곳에 구멍을 파자 바위틈에서 나오던 물이 그쳤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 아래에 구멍을 또 하나 파니 위쪽에 있던 약수의 물맛이 약해졌다고 한다.
다음은 개인약수로 1891년 함경북도 출신의 지덕삼이라는 포수가 백두대간을 넘나들며 수렵생활을 하던 중에 발견했다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현재의 약수 위에 원래 '장군약수'라는 약수가 있었는데 그 약수는 양쪽 겨드랑이 밑에 용비늘이 세 개씩 붙어있는 아기장수가 혼자 마시고는 큰 바위로 덮어버려 아무도 찾지 못했다 한다. 이 아기장수는 후에 제 자식이 역적이 되어 멸문지화를 당할 것을 두려워한 부모의 손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현재 미산리 빈지동에는 아기장수가 살던 집터와 아기장수가 쌓았다는 돌담이 남아 있다고 한다. 약수터 둘레에는 수객들이 무병장수를 빌며 쌓아놓은 돌탑이 수도 없이 늘어서 있으며 심마니들이 산신제를 올리는 제단이 있는데 이런 것은 약수 앞으로 흐르는 맑은 계류와 어울려 무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한다.
또 이 약수를 정안수로 올려놓고 기도하면 신이 잘 내리기 때문에 무속인들이 여기에서 신을 많이 받아간다고 하며 웬만하면 사흘쯤만에 신이 내리는데 약수터 뒤로 에두른 산줄기가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정기가 흘러들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수십년전에는 약수터 위쪽에 '용궁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의 산신당에는 약수로 병을 고친 수객들이 남긴 현판이 여러개 붙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때는 약수터 주변에 100명쯤의 수객들이 상주했었다고 한다. 그중에는 업혀 올라왔다 내려갈 때는 자기발로 걸어서 내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약수는 상탕과 하탕 두곳이 있으며 상탕이 원탕이고 나오기는 하탕이 많이 나온다고 하며 약한 철분내와 입안을 감도는 단맛으로 몇 모금 들이켜도 역겨운 맛이 없는 청수라 하며 당뇨병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이처럼 약수산과 갈전곡봉 그리고 개인산 주위에는 많은 약수가 솟아 올라오고 있는데 또 하나의 약수는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계곡에 있는 방동약수를 들 수가 있다. 이곳 약수는 조선 현종때인 1670년 한 심마니가 산삼을 캐려고 오랫동안 산속을 헤매고 다녔지만 매번 허탕만쳤다.
그러던 어느날 밤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나는 산신령이며 정직한 너에게 산삼을 캐게 하고 또 약물도 줄테니 세상에 널리 알려라'하고는 연기같이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난 심마니는 그 길로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한 동자가 나타나 손짓하는 곳에 이끌려 가보았더니 동자는 간데없고 그 자리에 수백년 묵은 산삼이 있어 심마니가 산삼을 캐자 그 자리에서 약수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약수는 300년 묵은 엄나무 아래 반석을 쌓아 드리운 듯한 암석 속에서 솟아오르며 탄산, 철, 불소, 망간 등이 주성분이라 한다.
갈전곡봉은 신갈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이제부터는 계속되는 경사진 내리막을 미끄러워 조심조심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하산길이 나오고 다시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니 무명봉(서쪽으로 848m봉이 이어지는 능선봉우리)이 나오며 3시다.
다시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니 정말 첩첩산중 오지임을 실감케 한다. 왕승골 직전 봉우리에서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면 지도상의 왕승골 삼거리가 나오는데 실제는 사거리로 시계는 4시를 알리고 있다. 왼쪽은 인제군 기린면 조경동으로 내려가는 길로 샘터가 있음을 표시해 놓았고 오른쪽으로는 왕승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대간 마루금에 '유인평해손씨지묘'라는 묘비명이 세워진 쓸쓸한 무덤이 나오고 4시 25분이다. 묘지를 지나고 968.1m봉을 지나면서 평탄한 지형의 대간길 양쪽을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느라 엄청나게 파 헤쳐 놓았다. 아마 먹이사슬이 붕괴되면서 멧돼지의 수가 엄청 늘어나 이곳에도 많은 멧돼지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밋밋하고 그리 험하지 않은 길을 한동안 진행하다 산죽 많은 가파른 오르막길로 올라가니 무명봉 정상에 헬기가 착륙하기에는 곤란해 보이는 폐헬기장이 있으며(서쪽으로는 1048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갈라지는 곳) 5시 27분이다. 아마 지도상의 잡목지대인 것 같다.
여기서 계속된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5시 50분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이 연가리골 샘터 갈림길인 것 같다. 좌측길이 연가리골 샘터가는 길이고 우측길은 대간길이다.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키 작은 산죽이 이어지고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956m봉이 나온다.
956m봉을 내려와 안부를 지나는데 멧돼지가 파헤쳐 놓은 구덩이가 많이 보이며, 7시 2분에는 희미한 사거리 안부에 도착하고, 다시 995m봉에는 7시 8분에 도착하니 1061m봉 50분, 쇠나드리 40분이 소요된다고 적혀있는 어슬픈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 있고, 대간길은 우측으로 휘어지면서 동쪽방향으로 진행한다.
계속되는 내리막을 내려오다보니 서서히 졸음이 몰려온다. 잠시만 눈을 붙이고 가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아무리 피곤하고 잠이 쏟아져도 절대로 앉거나 누워서 잠을 자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이곳까지 왔는데 이제와서 누울수는 없지 않겠는가? 공터 안부에 도착하니 산죽사이로 길이 있으며 왼쪽으로 샘터가 있다고 하지만 그냥 지나쳐서 조금 올라서면 윗황이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7시 40분에 도착한다.
윗황이로 내려가면 양양군 서면 황이리 미천골 초입에 선림원터가 있다. 선림원터에 서고 보면 절터가 들어서기에는 좁게 여겨지지만 근방의 산간에서는 가장 넓은 터이다. 그러나 '선림원'이라는 이름과 깊디깊은 산속에 자리한 것으로 보아 이 절이 중생들을 위한 기도처라기보다 스님들의 수도를 위한 곳이었던 듯하며 이곳에서 발굴된 부도, 석등, 삼층석탑 등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특히 1948년 선림원터에서 발견되었던 신라범종은 돌볼 사람이 없어 월정사로 옮겨놓았다가 한국전쟁때 변을 당해 현재 그 잔해만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종신에 조각된 비천상은 천의 자락을 휘날리며 연화좌에 앉아 피리와 북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생동감이 넘쳤다고 하며 종신 내부에 804년이라는 조성 연대와 내력을 적은 이두명문이 남아 있어 당시의 관직이나 지명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725년에 만든 상원사종, 771년에 만든 성덕대왕신종과 더불어 우리나라 종의 모범을 이루었던 걸작품이다.
이곳에서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바라보면 마음은 저절로 속세를 떠나고 미천이라는 이름도 이곳의 수도승들이 많아 공양을 짓기 위해 씻은 쌀뜨물이 하얗게 흘렀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제 길은 완전히 북쪽을 향해 진행되며, 평탄한 산죽 능선이 이어지고 계속해서 내리막이 심한 봉우리와 산죽이 많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쇠나드리의 집 몇 채가 가까이 보이고 북쪽으로 조침령 임도가 보인다.
계속 봉우리를 이어가니 설악산의 자태가 눈앞에 다가서는데, 대청봉, 중청봉, 끝청봉, 귀떼기청봉 등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백두대간 완주의 그날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시 안부 사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으로는 쇠나드리(소나 말이라야 건널 수 있을 만큼 물살이 샌 개울을 일컫는 순 우리말)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윗서림마을로 가는 길인 것 같으며 8시 19분에 통과하고 평탄한 능선이 이어지다 8시 25분에는 삼각점이 있는 무명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내림길에는 산죽이 이어지고 다시 두 번째 쇠나드리 갈림길에는 8시 30분에 지나치고 곧 나올 것 같은 조침령은 나오질 않고 한참을 가니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옛 조침령이라는 곳이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몇 개 더 오르내리다가 비포장인 조침령 도로에는 9시에 내려선다.
인제군 기린면과 양양군 서면을 잇는 비포장 도로로 새가 넘다가 하룻밤 묵고간다는 령으로 큰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조침령'이라는 표지석에는 연장(방동-서림)21km, 공사기간 1983년 6월 10일-1984년 11월 22일까지며 시공부대는 3군단 공병여단이라 적혀 있지만 본래 옛길을 두고 엉뚱한 곳에 새로 흙먼지 길을 닦고 표지석까지 세워두었는데 원래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반평고개라 부르는 곳이다.
조침령은 양양의 해산물이 인제의 내린천 물길을 향하여 넘어가던 고개로 광복 무렵까지 인근의 민초들이 소양강 물길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을 넘나들던 대표적인 고개가 조침령과 단목령이다. 조침령 표지석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기념촬영도 하고 주위조망도 즐기고 산행기도 적는다. 8시간 13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먹은 것이라고는 물 조금 마신 것 뿐이니 아무리 체질적으로 적게 먹는 체질이라 해도 이제 서서히 배가 고파온다.
그렇지만 여기서 먹다가 산불감시요원(3월 1일부터 산화경방기간)에게 발각되면 귀찮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잠시 산길을 올라가다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양지바른 곳을 찾아 이정필 회원 사모님이 준비해준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는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900.2m봉을 오르다 지도를 보니 38도선을 통과하는 지점이다. 그렇지만 정확하게 어디가 38도선인지는 알지 못하고 지나친후 10시 21분 900.2m봉에 도착하니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철쭉이 우거진 능선을 지나 943m봉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양양시내와 동해의 수평선이 아스라이 내려다 보이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갈전곡봉쪽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대간길은 여기서 왼쪽으로 90도 꺾여지고 10시 40분 양수상부댐 발전소 앞에 있는 1018m봉에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고 설악산과 점봉산이 다시 시야에 들어온다.
조금 더가면 좌측으로 댐이 보이고 대간길은 댐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반원을 그리며 이어진다. 962m봉을 지나 양수발전소 건설현장을 바라보니 이 깊은 산속에서 문명의 이기(개발이냐? 아니면 보존이냐?)때문에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우리의 등뼈인 백두대간이 심하게 훼손되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하다.
이곳은 한국전력이 인제군 기린면 점봉산의 백두대간이 에돌아가는 서쪽 안부에 상부댐을, 양양군 서면 영덕리 남대천 상류 후천에 하부댐을 축조하고 시설용량 1백만kw의 발전소 건설을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1996년 봄부터 공사를 진행중이다.
상부댐이 들어설 점봉산에는 31종의 천연기념물이 서식하고 있어 국내 최고의 생물다양성을 보여 주는 지역이며 상부댐 축조시 수몰되는 지역은 산림청의 천연림보호구역과 유네스코 생물권보존핵심지역에서 불과 수백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한편 하부댐이 들어설 후천은 남대천의 세지류 중 가장 긴 1급수 하천으로 동해안 연안의 모천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80%가 이곳에서 잡혀 채란되는 국내 최대의 연어 회귀천이다. 댐 공사장 옆을 돌아가는 대간길은 다시 오르막으로 바뀌고 점봉산 전망이 점점 가까와진다.
1133m봉을 지나 11시 16분부터 10여분에 걸쳐 단풍나무 지대를 지나 조금 더 가면 1136m봉에는 11시 33분에 올라서니 꼭대기에는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잠시 조망을 즐기다가 계속되는 내리막을 내려서니 12시 4분 북암령 넓은 안부에 도착한다. 오르막길에 산죽이 보이기 시작하고 길은 점봉산을 향해 더욱 서쪽으로 휘어지며 계속된 내리막길이다.
12시 40분 875m봉에 올라서니 대청봉이 바로 앞에 보인다. 여기서 잠시 조망을 즐기고 간식을 먹으면서 여유를 가져본다. 한계령과 오색약수가 내려다 보이고 대간길은 점봉산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꺾이며 이제 대청봉을 오른쪽에 두고 점봉산을 향해 설악의 서북능선과 나란히 가고 있다.
다시 한참 내리막을 내려오다 참나무 가지에 겨우살이가 상당히 많이 기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줄기와 잎은 약재로 사용한다. 13시 16분에는 대간길 좌측 바로 밑에 큰 계곡이 흐르는데 지금까지 대간길을 걸으면서 계곡이 마루금을 가까이 두고 많은 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처음 보기 때문에 신기하기도 하다. 최현찬 대원이 계곡에 내려가서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얼음도 한 조각 가지고 올라온다.
계절은 속일수 없는지 아직도 산속은 겨울과 봄사이의 문턱에 놓여 있어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아 내리는 모습도 보이고 양지바른 오르막 곳곳에서는 이름모를 꽃들이 새싹을 파릇파릇하게 싹을 틔우면서 생명의 신비를 엿보게 하며 점봉산 정상은 흰눈을 뒤집어 쓰고 있어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수 있게 한다.
단목령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에서 양양군 서면 오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1시 20분에 도착하니 오래된 단목령 표지목이 있고, 전봇대도 보이며, 최근에 세운듯한 백두대장군과 백두여장군이 세워져 있으며, 점봉산 5km에 2시간 30분, 오색 3km에 1시간이라 적힌 이정표와 앞으로 백두산, 지나온 방향에는 지리산, 우측에는 오색, 좌측에는 설피밭을 표기해 놓은 이정표도 있다.
기념촬영도 하고 산행기도 잠시 기록한후 점봉산을 향해 출발하니 경사진 오르막길이며 13시 37분 엉뚱한 곳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지만 여기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으며 아마 855.5m봉 근처인 것 같다. 이후 그런대로 평탄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14시 15분 설피밭 갈림길에 도착하니 왼쪽이 설피밭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도 내려가는 길이 있다. 흰색으로 칠한 국립공원 표지석이 나타나고 이 시멘트 표지석은 점봉산을 다 내려갈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14시 28분에 951.5m봉에 올라서니 오른쪽 골짜기에 오색약수터와 오색온천 지역 주위의 여러 시설물들이 보이고 맞은편에는 대청봉과 중청봉, 귀때기청봉을 잇는 서북능선이 웅장하게 버티고 서서 우리를 반기면서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는 것 같다. 14시 35분에는 사거리 안부에 도착하는데 왼쪽으로 설피밭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오른쪽 길은 지도에 표시가 없는 길이다.
14시 57분 오색 갈림길 사거리가 나오고 좌측 오색약수 방면으로는 '등산로 아님' 팻말이 붙어있고 우측은 진동리 설피밭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다시 물을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정필 회원이 전화를 해서 설악산과 점봉산 주위에 많은 산불감시요원들이 지키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전화가 오고, 오늘의 최고봉인 점봉산을 올라갈 것을 걱정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계속된 오르막이며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올라가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천연보호림'이란 커다란 안내판이 세워진 널찍한 공터 안부에 서니, 이곳에는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 샘이 있다고 하며 야영지로도 훌륭하다. 이 표지판에서 20미터쯤 내려가면 북쪽과 서쪽이 모두 능선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평지가 나오는데 바로 홍포수막터다. 그렇다면 홍씨성을 가진 포수가 살던 터란 말인가? 이 깊은 산속에서 짐승을 잡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뜻인데(?)...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데 오늘 산행중 처음 만나는 산꾼들이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다. 서울서 버스를 대절해 왔다는데 원래 코스는 한계령에서 망대암산을 거쳐 점봉산으로 해서 오색으로 내려갈려고 했는데 아침에 오니 한계령 입산통제초소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오색으로 해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간다고 하면서 정상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으며, 지금쯤 정상을 거쳐 한계령에 도착하면 지키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고 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겨우내 쌓였던 적설량도 점차 많아지고 정상근처에는 아직까지도 무릎까지 빠질정도로 내린 눈이 녹지를 않고 남아 있다.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중간 중간 멈추어 서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시간이 자꾸 지체되고 육체는 서서히 피로감을 느낀다.
15시 59분 드디어 오늘의 최고봉인 1424.2m의 점봉산 정상에 올라서니 눈은 없지만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서울서 오신 후미분들이 마지막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서둘러 떠난다. 표지석과 삼각점이 있으며 점봉산은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숲으로 선정된 곳입니다. 2000년 11월 23일 산림청 인제 국유림 관리소라 적혀 있다.
그리고 옆에는 고 임주영님의 추모비가 있는데 비문이 간결하면서도 가슴에 와 닿게 한다. 점봉에서 넌 산이 되는구나. 단기 4329년 6월 23일 우리는 혼자간다회.
임주영이라는 분은 아마도 점봉산을 오르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닐런지. 늦게나마 삼가 조의를 표하며 산사람이 산에서 살다 산으로 돌아갔으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으랴!
점봉산. 그야말로 일망무제로다. 무지한 이놈의 머리와 글로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방팔방 어느 한곳 막히는 곳이 없다. 백사장을 따라 하얀 파도가 넘실되는 동해바다와 햇빛에 반사된 설악산의 장쾌한 능선과 암봉들, 그리고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모습이 천지가 조화를 이루는 기막힌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이곳, 바로 백두대간이요, 금수강산이로다. 이것을 보고 가히 절경이라 말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세찬 바람이 얼굴과 온몸을 때리지만 끝청봉과 중청봉, 대청봉이 손에 잡힐 듯 바라다 보이고 중청대피소와 중계소도 아스라이 보인다. 또한 서북주능선의 암릉과 침봉들 그리고 화채능의 장엄하고 화려한 선경, 이 멋진 조망에 취해 발걸음을 돌릴 수가 없어서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다보니 추위도 아랑곳 없다. 점봉산에 올라서야 비로소 설악의 진수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것을. 아! 내가 그동안 설악을 헛 다닌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하게 한다.
구룡령에서 북암령과 단목령으로 이어지는 둔탁하고도 순하디 순한 산세가 이곳 설악이 한눈에 들어오는 점봉산에 이르러 격랑이 일 듯이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법을 어겨가면서 어렵게 올라선 점봉산은 설악산 최고의 전망대로 손색이 없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화채능과 대청봉, 중청봉, 끝청봉, 귀때기청봉, 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주능선의 장쾌함과 만물상의 7형제봉과 주위의 아름다운 암릉이 조화를 이루고, 가리봉과 지나온 산들과 양수 상부댐 등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러나 벅찬 감격과 마음도 잠시 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망대암산으로 옮겨야 한다. 이제부터는 법을 어겨야 하는 대간길이라 모든 종주자들이 한두번은 고민을 하도록 만드는 구간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요, 고민이로다. 하지만 가야 한다. 여기를 지나가지 못하면 마등령에서 미시령 구간도 마찬가지이고 그렇게 된다면 결국 고생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의미는 상당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 구간은 백두대간 중에서도 가장 감시가 심한 곳으로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아예 빼먹고, 보통사람들은 한계령에서 역으로 치고 올라와 반칙을 하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렵고, 용기있는 사람은 용감하게 바로 통과하다가 단속에 걸리면 벌금을 물면 되겠지만, 우리는 돈이 많은 것도 아니요, 배짱좋게 지나갈 위인도 못되는지라, 좀 위험하고 무리가 되더라도 감시초소 근처에 가서 상황을 파악한 후 감시요원들이 철수하고 나면 통과하는 방법이 법을 어기는 건 마찬가지지만 힘없는 소시민으로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양심의 가책을 가슴에 간직한 채 지금까지 산화경방기간을 어겼다든지 지금처럼 자연 휴식년제 구간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양심이 다 망가지는 순간이다. 만에 하나 단속에 걸리면 통사정을 해보고 그래도 안된다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수 밖에 별다른 대책이나 방도가 없다.
주로 한계령 입산통제초소 근처에서 단속을 심하게 한다고 하니,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하여 진부령까지 차례대로 대간길을 밟기로 한 이상, 역종주보다는 인생을 살다보면 한두번 법을 어기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라고 자문하면서 합리화를 시켜 최악의 경우 벌금까지 각오를 하고 출발한다.
내리막은 가파르고 눈이 많이 쌓여 있으며 일부는 눈이 녹았다가 얼어붙어 무척 미끄러워 넘어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내려선다. 주위에 주목들이 간간이 눈에 띄기 시작하고 안내판에는 200-300년생 주목을 무단으로 채취해 가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 있으니 한심한 사람들 때문에 정말 속이 상하는 일이다.
고도는 많이 낮아지고 그 옛날 점봉산 도적들이 망을 보았다는 1236m의 망대암산 정상에는 16시 47분에 올라선다. 구불구불한 한계령 고개를 넘나드는 차소리가 들리고 망대암산은 정상부만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말 그대로 멋진 바위전망대다.
이곳에서는 가는 고래골과 뛰어난 만물상의 칠형제봉과 십이담계곡의 멋진 절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우며 한계령 및 귀때기청봉의 모습도 눈앞에 다가와 있으며 우뚝 우뚝 솟아 있는 기암괴석들은 남성미를 뽐내며 자랑하고 있다.
망대암산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한동안 조망도 즐기다가 몇 개의 봉우리를 거쳐 한참을 내려서면 십이담계곡 안부 우측으로 갈림길이 나 있으며 17시 17분에 도착한다. 십이담계곡길은 1157.6m봉에서 뻗은 바위줄기 아래를 따라 내려가는 골짜기인데 경사는 급해 보이지만 경치는 더 없이 훌륭하며 주전골로 내려간다.
주전골은 점봉산 능선에서 발원하여 십이폭포와 선녀탕을 지나 성국사 앞을 감돌아 오색약수에 이르는 아름다운 골짜기로 남설악의 경승들이 집중돼 있다. 주전골 상류에 솟은 해발 300m의 봉우리를 주전봉이라 하고 산아래 바위를 주전암이라 하는데 옛날 위폐범들이 이 골짜기에 숨어들어 불법으로 엽전을 만들었다는 전설에 따라 주전골이라고 한다.
여기서 잠시 오색약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남설악 점봉산 자락에 위치한 오색약수는 설악산이나 점봉산을 찾는 사람들은 꼭 들렀다가 갈 정도로 인기가 있는데 이 약수는 조선 중엽에 오색석사의 승려가 발견하였다고 한다.
약수터로 전국에 소문난 이 마을은 먼 옛날 양양부의 역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넓은 암벽에서 용출하는 물은 다섯가지 맛이 난다고 하여 오색약수라 했다고 하기도 하고 오색석사의 한 나무에 핀 다섯가지 색깔의 오색꽃으로 인해 이름이 오색약수라는 말도 있다.
수소이온 농도가 6.6으로 상당히 센 알칼리성이며 칼슘, 마그네슘, 철, 나트륨이 골고루 포함되어 위장병이나 신경쇠약, 피부병, 신경통 같은 데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이 약수는 살충력이 있어 구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특히 이 약수로 밥을 지으면 푸르스름한 빛깔이 나며 밥맛이 뛰어나다.
지금은 용출량도 줄어들고 특유의 향과 톡 쏘는 맛이 예전에 비해 덜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집단시설 내 호텔의 탄산온천개발 때문이 아니냐고 말하지만 아직까지 원인 규명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오색온천은 상류쪽 오색약수에서 온정골을 따라 2km쯤 올라간 해발 약600m 지점에 원탕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온천이다. 알카리성인 25도의 단순천으로 유황성분이 많아 피부병, 신경통, 빈혈, 무좀, 습진, 비듬, 신경쇠약, 부인병, 정력부족 등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1157.6m봉을 향해 오늘 마지막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되는데 십이담계곡 갈림길에서 우측 내리막길은 십이담계곡 길이며 직진으로는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 뒤로 진입하여 완만한 오르막길에 산죽이 많은 대간길을 선답자들의 발자국을 따라 지나가면 된다. 정상에는 17시 43분에 올라선다.
1157.6m봉 이후 자연 휴식년제 구간인데다 내린 눈이 쌓여 무릎까지 빠지는데다 산꾼들이 다니지 않아 러셀이 안된 상태에서 표지기도 제대로 없는 위험한 길을 찾아 내려오느라 고생을 상당히 많이 한 구간이다.
조금 내려서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며 '등산로 아님' 팻말이 있고 이곳부터 암릉지대가 시작되며 눈이 쌓인 곳도 있고 빙판인 곳도 있어 조심조심 내려선다. 몇 개의 암봉을 우회하기도 하고 타고 넘기도 하면서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갑자기 뒤따르던 최현찬 대원이 내려서다 아! 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놀라 뒤돌아 보니 바위를 내려오다 미끄러졌다.
큰 상처는 없는 것 같지만 오기전에도 불편하던 어깨에 통증이 오는 것 같다. 잠시 후 앞쪽에 큰암봉이 버티고 서있고 좌측으로 길이 휘어지면서 조금 내려가면 직진길에 등산로 아님 팻말이 세워져 있는데, 대간길은 우측암봉에 로프가 드리워져 있지만 최현찬 대원이 어깨가 아파서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기어 오를수가 없다고 한다.
솔직히 나 혼자라도 암봉으로 기어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궁시렁 궁시렁?!∼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혼자만 올라가서도 될 일이 아니고 하는수 없이 이곳저곳 사방을 둘러보면서 우회로를 찾으니 왼쪽으로 희미한 갈림길이 나 있고, '등산로 아님' 표지가 매달려 있다. 표지 뒤를 살펴보니 몇걸음 떨어진 곳에 어렴풋이 낡은 표지기 하나가 보인다. 이 표지기는 험난한 암릉길을 피하는 우회길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표지기는 마루금의 9부 능선쯤을 따르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것 같아서 되돌아 올려고 해도 암봉이 있는 로프구간을 최현찬 대원이 타고 올라갈 수가 없으니 최대한 암봉쪽으로 붙어서 길 아닌 길을 뚫고 나가기로 한다. 바위사면과 길 없는 산죽숲을 감각적으로 헤집고 올라가기란 무척 힘이 든다.
올라갈려고 하면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고 또 다시 올라서려면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어렵게 산죽숲을 올라서니 다시 눈쌓인 너덜지대를 만나게 된다. 너덜지대를 조심조심해서 어렵게 통과하니 만물상의 마지막 암봉을 내려선 지점에서 대간길과 만난다. 암릉을 타고 오르내리는 것보다 몇배(?)로 힘이 드는 것 같다. 벌써 서산에는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다.
한계령이 지척이라 한계령을 오르내리는 차량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이제부터 부지런히 걸으면 금방 내려설 줄 알았는데 휴식년제 적용구간이라서 그런지 러셀이 되어 있지 않은데다 표지기도 없어서 여러번 헤매다보니 결국 날은 저물고 후레쉬 불빛에 의존해서 길을 어렵게 찾아 한계령 입산통제 초소에 내려선다.
입산통제 초소에는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감시원들은 모두 철수하고 문이 잠겨 있으며 철조망 울타리 옆으로 해서 드디어 필례약수로 갈라지는 451번 포장도로에 도착하니 19시 19분이다.
필례약수는 1930년경 이 지방의 김씨라는 분이 발견했다는 필례약수는 철분성분이 많고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으며, 특히 무좀과 비듬에 특효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필례약수는 주변의 지형이 베 짜는 여자인 필녀(匹女)의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대동여지도에는 이 고개길을 필노령이라 하였으며, 인제군지에 의하면 필례약수가 있는 개울가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빈터에 아름드리 당목이 지키고 있다. 약수를 찾아나선 수객들이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오늘도 무사 산행(?)과 휴식년제 구간을 무사 통과했으니... 설악산 허리를 감고 구불구불 오르는 한계령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양희은의 '한계령'이란 노래를 떠올린다.
저 산은 네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네게 잊으라 잊어버리라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이 노래는 방황하던 젊은 날의 가수 하덕규가 한계령에 이르러 문득 산아래의 삶으로 돌아가야 함을 깨닫고 만든 노래라 하며, 양희은은 이 곳에 올라 한계령을 내려다 보면서 가슴으로 설악산을 느끼면서 한계령을 불렀겠지만 저는 노래와는 담을 쌓아서 마음은 한 곡조 부르고 싶지만 몸이 따라 주질 않는다.
도로를 따라 한계령 휴게소에 19시 30분 도착하니 이정필 회원 부부가 다정히 맞으면서 고생했다는 인사말을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두분을 하루종일 고생시킨 것 같아 미안할 뿐이다.
어두움 속에서 한계령 표지판 앞에 서서 기념촬영을 하는데 이곳 935m인 한계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대간중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고개이다. 양양과 인제를 잇는 고개로 옛날에는 소동라령이라 불렸으며 동해안 지역과 내륙지방을 잇는 작은 고개였지만 1981년 12월 포장이 되면서 설악산이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로 부상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한계령 고갯마루에 있는 설악루는 그 전망이 아주 뛰어나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들도 한번쯤 절경을 감상하면서 즐기다 가는 곳으로 콘크리트 108계단을 밝고 여기에 올라서면 동해바다의 푸른물결과 점봉산의 만물상, 칠형제봉 같은 기암절경의 풍치도 감상할 수 있지만 오늘은 어둡고 늦은 시간이라 다음을 기약하면서 한계령을 출발한다.
한계령을 내려와 오색약수에서 산천어회와 함께 식사를 하고 간단하게 소주 한잔을 곁들인 후 21시가 조금 넘어서 출발하여 경주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이정필 회원은 지난 삽당령 구간에서도 새벽에 도착하고 오늘 또다시... 3-4시간 자고 나면 피로도 풀리기 전에 다시 출근을 해야 하니, 여러모로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특히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시고 1박 2일동안 함께 고생하신 이정필 회원 부부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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