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을 끼고 있으며, 농업이 주산업이다. 영암읍·삼호읍·군서면·금정면·덕진면·미암면·도포면·서호면·시종면·신북면·학산면 등 2개읍 9개면 121개 동리로 되어 있다(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은 361개). 군청소재지는 영암읍 동무리이다. 면적 565.89㎢, 인구 62,857(2006), 인구밀도 111.1명/㎢(2006).
연혁
지금까지 전라남도에서 가장 많은 고분이 분포하고 있음이 알려져 마한의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시사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월내군(月奈郡)이었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영암군으로 개칭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비조인 도선(道詵)의 탄생지로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영암의 세력이 커져 995년(성종 14)에 낭주(朗州)로 개칭하고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두었다. 1018년(현종 9)에 안남도호부가 옮겨가면서 영암군으로 강등되었으나, 황원군(黃原郡 : 해남군 황산면 일대)·도강군(道康郡 : 강진군)을 속군으로, 곤미현(昆湄縣 : 영암군 미암면 일대)·해남현(海南縣)·죽산현(竹山縣 : 해남군 마산면 일대)을 속현으로 관장하던 대읍(大邑)이었다.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바다와 강의 교통이 편리했던 영암은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진도군이 이곳에 피난을 오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영암군을 유지했으며, 별호는 낭산(朗山)이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나주부 영암군, 1896년에 전라남도 영암군이 되었다. 1906년의 월경지 정리에 따라 비입지인 옥천면·송지시면·송지종면·북평시면·북평종면을 해남군으로 넘겨줌으로써 강진과 해남을 지나 해남반도 동부에 있던 행정구역을 상실했다. 반면에 나주의 두입지인 종남면·비음면·원정면·금마면과 진도의 비입지인 명산면을 편입해 동북부를 확장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북일시면·북일종면·곤일시면·곤일종면·곤이시면·곤이종면은 그대로, 군시면·군종면은 영암면으로, 북이시면·명산면·종남면은 시종면으로, 서종면·서시면은 군서면으로, 금마면·원정면은 금정면으로, 비음면·북이종면은 신북면으로 합해졌다. 1917년에 곤일시면을 미암면으로, 곤일종면을 삼호면으로, 1929년에 북일시면을 덕진면으로, 1930년에 곤이종면을 서호면으로, 1932년에 북일종면을 도포면으로, 곤이시면을 학산면으로 개칭했고, 1979년에 영암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자연환경
군의 남동부는 노령산맥의 영향으로 비교적 높은 산이 많고, 서부는 영산강 하구에 해당하며 평야가 발달했다. 남동부에는 월출산(月出山)의 천황봉(天皇峰 : 809m)을 최고봉으로 하여 구정봉(九井峰)·사자봉(獅子峰) 등이 이어져 있다. 그밖에 흑석산(黑石山 : 650m)·국사봉(國師峰 : 613m)·주지봉(朱芝峰 : 491m)·궁성산(弓城山 : 484m)·백룡산(白龍山 : 418m) 등이 솟아 있다. 군의 서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영산강에 삼포강·영암천·도갑천·송계천 등이 유입되어 영산호를 이루며, 영산강 유역에는 충적평야가 발달했다. 영산강하구둑의 완공으로 간석지가 농토로 변하여 농경지가 더욱 확장되었으며, 관개용저수지가 많다. 해남만이 삼호면과 미암면에 걸쳐 있고, 삼호면에 나불도·외도 등이 있으나 영산강하구둑의 완공으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해안선은 매우 복잡하다.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나 겨울에는 북서풍의 영향으로 기온차가 심하다. 연평균기온 13.5℃ 내외, 1월평균기온 1.5℃ 내외, 8월평균기온 27.5℃ 내외, 연평균강수량 1,281.3㎜ 정도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기온이 따뜻하고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삼호면·학산면·미암면 일대에서 무화과나무가 재배되고 있다.
인구
전체적으로 인구감소지역이다. 1965년 이후 연도별 인구를 보면, 1965년 14만 1,489명, 1970년 12만 7,888명, 1975년 11만 8,606명, 1980년 9만 9,980명, 1985년 8만 6,289명, 1991년 7만 2,615명, 2006년 6만 2,857명이다. 1970~80년의 인구증감률은 -21.8%, 1980~91년의 인구증감률은 -27.4%, 1991~2006년의 인구증감률은 -13.4%로 지속적인 인구감소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가구수의 경우도 1970년 2만 2,970가구, 1980년 2만 1,027가구, 1991년 2만 358가구로 점차 감소하다가 2006년에는 2만 5,069가구로 조금 증가했다. 2006년 현재 인구이동은 전출이 8,954명, 전입이 8,546명으로 전입이 많으며, 전입출 모두 도외로의 이동이 많다. 성별 인구구성비를 보면 남자 3만 1,708명, 여자 3만 1,149명(102 : 100)으로 남자가 조금 많다. 읍·면별 인구분포를 살펴보면 삼호읍(2만 851명)·영암읍(1만 14명)이 인구가 많고 덕진면(2,325명)·금정면(2,455명)·서호면(2,549명)이 인구가 적게 분포한다.
산업·교통
총경지면적 219.0㎢ 중 논이 158.3㎢, 밭이 60.7㎢로 경지율은 38.7%이다(2006). 주요농산물로는 쌀·보리·콩·감자 등의 식량작물과 무·배추·고추 등의 채소류가 생산된다. 과일은 주로 신북면·시종면을 중심으로 사과·배·감·포도 등이 생산되며, 특용작물로 참깨·잎담배·인삼·버섯 등이 재배된다. 축산업은 금정면을 중심으로 군서면·신북면·도포면에서 주로 행해지는데, 금정면의 서광축산(젖소 1,400~1,500두)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목장 100여 개소가 있다. 임야면적은 237.3㎢로 군 전체면적의 42.0%를 차지한다. 수산업은 대부분 농업과 겸해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연안어업과 양식 등이 활발했으나, 1979년 영산강종합개발사업의 2·3단계가 실시되면서 해면부 어장 13.0㎢가 소실되었고, 수산업의 형태도 내수면어업으로 바뀌었다. 연안어업의 경우 총어선수 207척을 보유하고 있는데, 어획량은 어류·패류·해조류를 포함해 339t이다(2006). 한편 삼호면의 천일제염은 이 지역에 대불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없어졌다. 군내에는 총 21개소의 광구가 있으나, 가행중인 광구는 4개소뿐이며 고령토가 생산된다(2006).공업의 경우 총공장수 141개소 중 섬유·화학·제재 공업이 약 21%를 차지하며, 공장은 신북면·영암읍에 주로 분포한다. 참빗과 영암어란이 한때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나 지금은 점차 쇠퇴하고 있다. 상설시장은 1960년대에 영암읍 동무리에 처음 개설되었다. 정기시장으로는 영암읍의 영암장(5·10일), 학산면의 독천장(4·9일), 금정면의 금정장(1·6일), 시종면의 금지장(2·7일), 군서면의 군서장(2·7일), 신북면의 신북장(3·8일) 등이 있으나, 최근 교통사정이 좋아지면서 점점 그 기능이 쇠퇴하고 있다. 철도는 없으며, 나주-강진을 잇는 국도는 군의 동부를 남북으로 통과해서 해남·완도까지 연결되고, 목포-강진 잇는 국도가 군의 남부를 동서로 통과하고 있다. 1992년 7월 삼호면 용당리에 목포공항이 개항되어 목포-서울 간 1일 왕복 3회, 목포-제주 간 1일 왕복 2회 운항되고 있으며, 연간 41만 명의 여객수송능력을 갖추고 있다. 도로총길이 383.8km, 도로포장률 70.0%이다(2006).
유물·유적·관광
군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 2, 보물 9, 천연기념물 1, 사적 1, 중요민속자료 2), 도지정문화재(기념물 21, 유형문화재 9, 민속자료 8), 문화재자료 15점이 있다. 고대 유적으로는 선돌과 고인돌, 청동기시대의 집단주거지, 동과, 세형동검, 용범과 석검, 삼국시대의 무덤, 구슬과 토기 등이 있다. 월출산의 죽순봉 일대에는 백제시대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한 왕인과 그의 제자들이 공부를 했다는 문산재·양산재 등의 집터와 천연동굴로 책을 보관했다는 책굴이 있다. 제자들이 왕인의 모습을 돌에 새겨 놓은 석인상 등의 백제 유적과 유물들이 많으며, 군서면에 왕인박사유적(전라남도 기념물 제20호)이 있다. 주요 불교문화재로는 월출산마애여래좌상(月出山磨崖如來坐像 : 국보 제144호)·도갑사해탈문(道岬寺解脫門 : 국보 제50호)·도갑사석조여래좌상(道岬寺石造如來坐像 : 보물 제89호) 등이 있다. 그밖에 최덕지영정 및 유지초본(崔德之影幀油紙草本 : 보물 제594호), 도갑사의 도선국사영정, 수미왕사영정, 군서면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83호), 덕진면의 최성호가옥(중요민속자료 제164호) 등이 있다.
관광자원으로는 월출산국립공원과 고대의 유적·유물, 영산호 등이 있다. 월출산은 이 지방 제일의 관광지로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기도 하며,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폭포·계곡 등이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빼어나다. 천황봉 남쪽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있고 동쪽의 구절계곡은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이 있으며 그 사이로 칠치폭포·구절폭포 등이 있다. 월출산 중턱에 위치한 도갑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했으며, 국보로 지정된 해탈문이 있어 신라 때부터 명사찰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왕인박사유적지, 목포시와 영암군 삼호면을 잇는 영산강하구둑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등장하면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교육·문화
전통 교육기관으로 영암향교·녹동서원·죽정서원·서호서원 등이 있었다.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은 1908년 영암읍에 개교한 영암학교이고, 이어서 서창학교·신북학교·금정학교 등이 계속 문을 열었다. 또한 1946년에 영암중학교가, 1951년에 영암종합고등학교가 각각 세워졌다. 2006년 현재 유치원 22개소, 초등학교 23개교(분교 5개교 포함), 중학교 12개교, 고등학교 5개교와 동아인재대학·대불대학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군민회관 1개소, 군립도서관 2개소, 사립도서관 2개소, 실내체육관 1개소 등이 있다. 군을 대표할 만한 문화제는 없으나, 지역별로 전통적인 향토행사가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것이 군서면 동구림리에서 행해지는 '구림대동계'가 있는데, 조선 명종 때인 1565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어 이 마을의 깊은 전통을 나타내고 있다. 계원의 수효는 해방 전까지 70명이었으나, 현재는 80명으로 늘어났다. 그밖에도 덕진면의 영보애향회(永保愛鄕會)가 주관하는 '풍향제'가 있는데, 1931년 형제봉의 만세시위사건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매년 5월 5일에 열린다. 노인을 공경하고 위로하는 경로국악잔치를 베풀고 효자·효부를 표창하며, 이 고장의 미풍양속과 전통문화 보존, 애향심 고취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민속놀이로는 횃불놀이·윷놀이·강강수월래·줄다리기가 있고, 동제로는 당산제·산제·미륵제 등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시종면 신학리의 정동당산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 새벽에 지내며 신위는 마을 가운데의 정동이라 불리는 큰 샘에서 모신다. 설화로는 〈장독꼴샘전설〉·〈덕진다리전설〉·〈벼락바위전설〉 등이 전해오며, 민요로는 〈들노래〉·〈물레노래〉·〈베틀노래〉와 같은 노동요와 〈상여소리〉·〈상부소리〉 등의 의식요가 전한다. 2006년 현재 의료기관으로는 병원 1개소, 의원 20개소, 치과의원 8개소, 한의원 9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4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아동복지시설 1개소, 노인복지시설 1개소가 있다.
韓奉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