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살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고민하는 공개 토론회가 대구에서 열렸다. 대구에서는 지난 2011년 12월 20일 중학교 2학년 권모(14)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시작으로 최근 6개월동안 10명의 학생이 자살을 기도해 8명이 숨졌다. 또, 지난 4월 경북 안동, 영주, 상주에서 3명이 스스로 숨진 사건까지 더하면 대구경북에서만 6개월동안 11명의 청소년이 목숨을 잃었다.
토론자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저마다 다른 분석과 처방을 내놨다. 학부모는 "경쟁교육"을 자살 원인으로 꼽은 반면, 교사는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계의 면피성 처방"을, 청소년은 "청소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 부재"를, 장학사는 "학교폭력에 대한 미온적 사법 처벌"을, 의사는 "과도한 공부 스트레스와 청소년기의 충동성"을 지적하며 다른 시각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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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청소년 잇따른 자살,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2012.7.10 대구동부교육지원청)... 임성무 교사가 대구시교육청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성무, 김광미 평등학부모회 집행위원장, 김병하 해직교사, 김규종 교수, 김은경 의사, 권영규 변호사, 김태헌 장학사, 누피(18.별칭)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대구경북전문직단체협의회>는 7월 10일 저녁 대구동부교육지원청에서 '대구 청소년 잇따른 자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김은경 대동병원 정신과 의사와 김병하 강동중학교 해직교사가 발제를 맡았고, 임성무(전교조 대구부지부장) 상인초등학교 교사, 김광미 평등학부모회 집행위원장, 누피(18.별칭)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김태헌 대구시교육청 학교생활문화과 장학사, 권영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가 패널로 참석했다. 이날 토론은 김규종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사회로, 시민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 30분가량 이어졌다.
"과도한 스트레스...소통 구조를"
김은경 의사는 발제를 통해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청소년들의 자살 원인을 설명했다. 그는 "청소년은 신체적, 정서적, 지적으로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격동의 시기"라며 "이 시기 청소년들은 공부를 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에 머무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공부, 폭력, 가정환경 등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신적 질환이나 문제에 시달려 자살이라는 충동성에 휩싸일 수 있다"며 "자살 충동이 강하게 밀려오는 시기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소통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강조하며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가 원만하고 대화구조가 잘 이뤄져 있으면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설득하고 문제도 해결 할 수 있지만, 핵가족화는 가족 간의 설득 기능을 약화시켰고 청소년들은 오히려 대중매체에 설득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대중매체가 어떠한 관점에서 청소년 자살에 접근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며 "앞으로는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방법에 대해서는 방송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청은 면피성 처방만...아이들 만날 시간조차 부족"
김병하 해직교사는 "학교폭력에 대한 시교육청과 각 학교의 처방은 위기를 모면하려는 면피성 극약 처방"이라며 "현장 교사들은 교무수첩에 상담 기록을 점검하고, 진술서를 받고, 대책위를 소집하느라 피해.가해 학생 상처 치유 방법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공문 처리, 집중이수제, 방과후수업, 학원 때문에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바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바빠 만날 시간조차 부족하다"며 "상담할 시간이 나겠느냐"고 말했다.
또, "외부 경찰이나 전문가, 학부모로 꾸려진 학교폭력대책위원회나 선도위원회 등은 학생 내부 문제를 잘 알지 못해 문제가 생기면 잘 해결하지도 못하고, 실질적 권한도 가지고 있지 못해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도 약한 게 사실"이라며 "학생들은 아예 대책위에서 배제돼 주체적으로 나설 수 없고, 스스로의 인권을 주장할 방안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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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토론에는 교사와 학부모를 포함해 8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법을 통한 해결에는 한계...일선 교사의 현명한 대책을"
그러나, 김태헌 장학사는 "부모와 학생, 학생과 교사들이 만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대구만의 문제는 아니다"며 "경찰이 잘못한 학생에 대해 구속하고 수사할 수 있는 강제력이 있었다면 자살하는 청소년들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가해자 학생이 처음으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사법적인 대처를 취해야 한다"며 "인권은 타인의 인권을 존중할 때만 자신의 인권도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학사는 또, "잇따른 청소년 자살에 대해 시교육청이 추구하는 목적은 소통"이라며 "우리 학교와 선생님들이 좀 더 학생들과 소통을 했다면 아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문제로 다양한 계층이 모여 토론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발전"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했다.
권영규 변호사도 "학교 폭력 가해자의 경우 지금까지 일정 부분 기소, 집행유예 등 사법적으로도 대부분 선처를 받는 경우가 많았고 학교에서도 금지, 사과, 봉사 등 추상적인 처벌이 많았다"며 "추상적 대책으로는 학교폭력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법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 할 수 있지만 자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일선 교사들의 현명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청 근시적 발상...일제고사 대비에 어떤 교육도 할 수 없었다"
반면, 임성무 교사는 "누군가 우동기 교육감에게 '그 정책은 안됩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죽어가는 학생들과 그 대책으로 시교육청과 교육감이 내놓는 정책을 보면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그 예로, "3층 이상 교실 창문은 아이들이 뛰어내리지 못하게 25cm만 열리게 하는 정책과, 매일 학생 상담일지 기록 정책은 정말 근시적인 발상"이라며 "그럼 3층 이상 건물은 다 없앨 것이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 "상담일지는 내담자에 대한 비밀이 보장돼야 하는데 교장과 교감은 결재를 통해 그 내용을 다 본다"며 "이름만 있고 진심이 없는 정책들"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자살한 학생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명문학교 재학생이었고, 부모들의 직업도 전문직이었고, 종교 신자도 많았다"며 "이는 종교.학력.계층 어떤 것도 지금의 대구 교육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구지역 청소년들의 자살이 잇따라 발생한 지난 3-6월까지 4개월 동안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대비를 위해 모의고사만 6번 치고 학교폭력이나 자살에 대해 어떤 교육도 할 수 없었다"며 "이런 시스템에서는 어떤 정책이 나와도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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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청소년 잇따른 자살,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2012.7.10 대구동부교육지원청)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김광미 집행위원장은 "학교 교육은 이미 가치 교육이 아닌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한지 오래"라며 "이 같은 현실 때문에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 행복을 유예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어떤 획기적인 대책도 모색하지 않고 있다"며 "일제고사를 포함한 경쟁교육만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시교육청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커뮤니티에서 운영중인 여러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고 연계해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을 요구했고, 교사와 학부모, 학생에게는 "더 이상의 죽음을 방치하지 않기 위한 교육 모라토리엄이라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에게도 실질적 권한을...우동기 교육감, '사과'의 자세를"
청소년 대표로 참석한 누피(18.별칭)양은 "자살률은 전 연령층에서 고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청소년들은 치료의 대상도 보호의 대상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폭력과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근거가 약하고 정부와 시교육청은 언제나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며 "우리가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교육 3주체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실질적인 권한이 필요하다"고 했다.
객석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의료원 의사는 "우동기 교육감은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건립하는데 돈을 쏟기보다 우선 자살 학생들에 대한 '사과'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노진하씨는 "1등 지상주의, 입시 지상주의를 타파해 사교육에 쓰는 돈을 공교육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학부모와 교육계가 교육에 대한 인식을 전체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구시교육청은 청소년 자살이 끊이지 않자, 올 1월 자살 방지 목적으로 '학교폭력원스톱지원센터'를 구축하고 '폭력근절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또, 2월에는 대구지방경찰청과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경찰 활동 체험 프로그램 협약' 체결했고, 3월에는 피.가해자 학생과 주변인에 대한 심리치료를 위해 '복수담임제' 도입, 5월에는 '대구교육헌장'을 선포했다. 그러나, 지난 6월 2일 수성구에 있는 한 고등학생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때문에, 전교조와 시민사회단체, 야당은 시교육청과 우동기 교육감의 '대책'을 비판하며 '새로운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