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덕 감옥 스토리’라는 컨셉으로 편지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감옥에서는 주말 제외, 매일 아침에 해주는 라디오 방송이 있습니다. 제목이 <행복한 아침 편지>던가 뭐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라디오 방송에서 코너와 코너를 넘어갈 때 쓰는 음악이, 「꼬마버스 타요」의 오프닝 전주입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이 라디오 방송에서 애니메이션, 게임 O.S.T를 간혹 들을 수 있습니다. 6월 어느 날인가는 제가 곧잘 들었던 「드래곤볼」 어느 시리즈의 오프닝이 나오더군요. “점점 나의 마음 이끌려...” 한국판은 이런 가사였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라디오에서 틀어준 건 일본판 원곡이었습니다!
또 7월 어느 날엔 「피구왕 통키」의 그 유명한 한국판 오프닝 심지어 2절까지 나오는 듣기 드문 풀 버전을 틀어주더군요. 오오. 나루토 한국 O.S.T인 “활주”가 나온 적도 있구요.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것은 진행자가(신청곡이 아닌) 음악을 틀었는데, 그 가사 없는 음악이 제 귀에 매우 익숙한 게임 O.S.T 였던 일입니다. 들은 순간 “어? 무슨 게임이었지?”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는데, 비쥬얼노벨 게임 「KANON」의 음악이었습니다. 한국에 정식 발매된 적도 없지 않나요, 그거?! 오타쿠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감옥에도 물론 있고, 감옥에서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 스탭 중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타쿠적 감성’은 분명히 한정된 사람들만 공유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침략! 오징어소녀」를 킬킬 거리며 재밌게 봤는데, 다른 분들은 이게 뭐가 재밌냐고 절 이상하게 봅니다. 그런 개그 만화의 관습과 문법에 익숙하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요? 「괴물이야기」 같은 것도 사실 일본 만담 풍 개그에 익숙하냐 아니냐가 크게 독자층을 가르겠죠. 흠. 게로게론에게 편지 답장도 좀 쓰고, 추천하는 라노벨도 좀 빌려달라고 해주십시오. 무사히 택배로 반납 할 테니까.
이번주에는 책을 별로 못 봤습니다. 금요일에 있던 워드1급 필기 모의고사 공부를 해야 했고, 그러면서 투명가방끈 책 원고도 써야 했거든요. 노트에 메모하듯이 쓰고, 컴퓨터실에 가서 타이핑, 편집해보고, 다시 그걸 노트에 옮겨 적고……. 참 못할 짓입니다만, 여하튼 추가 자료 필요 없이 쓸 수 있는 대까진 다 쓴 상태입니다. 이제 자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그러면서도 어찌어찌 「김수영을 위하여」는 2주에 걸쳐 다 읽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김수영 시선집과 산문집을 처음 만나고 어떻게 매료 되었었는지 다시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지요. 오답승리의희망도 그렇고, 제 사고방식이나 정서 곳곳에 김수영의 냄새가 남아있단 걸 새삼 느꼈습니다. 저도 ‘김수영 키드’ 중 한 명인 걸까요(웃음) 책은 좀 했던 말 또 나오는 점을 제외하면 아주 좋았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수감 4개월째가 됩니다. 사람들이 절 잊어가는 것도 체감될 즈음 이구요. 이곳은 언제나 후순위이지요. 아니, 순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할 일이겠지요. 뭐 어쨌건 할 일을 하면 될 일입니다. 다들 하반기에도 할 일을 잘 하며 지내세요 ^^;;
2012.08.12.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