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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령 장군과의 만남. 서 양 순
나의 출생지는 전남 해남군 황산면 신성리. 면소재지에서 7km쯤 떨어진 깊은 산골마을이다. 이곳에서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서당에서 한문공부를 하며 살았다. 하루는 할아버지께서 광주 무등산 김덕령 장군 이야기를 해 주셨다. 김덕령 장군은 비호처럼 날 새고 천하에 그 힘을 당해내지 못할 정도 장사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서까래 끝을 잡고 집둘레를 몇 바퀴씩 돌았다하니 그 힘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다. 청년 김덕령은 활을 쏘면 백발백중 했고 비호처럼 말을 잘 탔다고 한다. 하루는 말을 시험하기 위해 화살을 하늘 높이 쏴 놓고 말에게 화살이 떨어지기 전에 앞산 봉오리를 돌고 오라 했다. 땀을 뻘뻘 흐르고 뛰어 오는 말을 늦게 왔다고 목을 배어버렸다. 목을 베고 한 참 있으니 “툭‘하며 화살이 떨어 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어린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 후부터 김덕령 장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광주가 어디에 있는지 무등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얼마 후 서당을 탈출하여 면소재지에 있는 황산초등학교에 찾아 갔다. 복도를 지나는 선생님을 붙잡고 입학을 시켜 달라고 애원을 했다. 입학 시기도 아닌데 핫바지 입은 촌놈이 달라붙어 입학을 시켜 달라고 사정을 했으니 그 선생님 얼마나 난감 했을까? 드디어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시험을 보았다. 태극기를 휘두르면서 물어도 보았고 이름도 써보고 여러 가지 시험을 보았다. 나는 3학년에 편입 허가를 받았다. 그 때 나는 한글을 알고 있었다. 밤마다 할머님께 “춘향전”이며 “장화홍련전”을 읽어 주고 있었다. 학교에 다니게 되어 기뻤으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말없이 서당을 탈출하였으니 아버지한테 매 맞을 일이 걱정스러웠다. “신식 글을 배워서는 구장(이장)도 못한다.”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드디어 학교엘 다니도록 허락을 받았다. 목포에서 사범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졸업 자격증을 광주중앙초등학교에서 받게 되었다. 생후 처음 광주를 구경 했다. 목포에서 출발하면서는 김덕령 장군이 살던 무등산을 구경하고 싶었다. 멀리 보이는 무등산을 바라보면서 그 꿈을 다음 기회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광주생활이 시작 되었다. 첫 발령을 받고 몇 년이 지난 후에 행운이 찾아 왔다. 생각지도 못한 광주 발령을 받게 되었다. 기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또 벌어 졌다. 충효 초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그 때 충효초등학교는 광주에선 아주 변두리 학교였다. 참 묘한 인연이다. 어려서부터 늘 생각하던 김덕령 장군이 살았다는 충효동 성안마을에 학교가 있었다. 더욱 신비스럽고 감동스러웠던 것은 김덕령 장군의 생가에 방을 얻게 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이 아닐 것 같았다. 나는 학교가 끝나고 방과 후나 주말이면 김덕령 장군이 뛰 놀았던 곳을 찾아 다녔다. 장군의 체취와 흔적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충장사를 비롯하여 무기를 만들었다는 주검대(鑄劍臺)도 찾아보았다. 많은 곳을 답사를 했다. 섯가레 끝을 잡고 집을 빙빙 돌았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면 환벽당이며 취가정 단풍정을 찾았다. 충효동 성안 마을 사람들로부터 김덛령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장군이 젊은 시절 씨름판에 나가면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장군의 누나가 동생이 힘을 너무 과신할까봐 남복(男服)을 하고 씨름판에서 동생을 넘어 드렸다는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웠다. 장군의 탄생신화며 많은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학습 자료를 만들었다. 그 자료를 직원 연수 자료로 썼으며 자료전시에 출품하가도 했다. 장군은 임진왜란 때 나라가 위난에 처하자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모았다. 파죽지세로 왜적을 물리쳐 많은 공을 세웠으나 당파 싸움에 휘말려 요절하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당파 싸움의 해독은 인기리에 방영 됐던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에서 잘 묘사 되었다. 나는 장군의 생가에서 살면서 귀여운 아이를 얻었다. 남아를 낳으리라 기대 했으나 여아를 분만 했다. 이름을 충효(忠孝)라 불렀다. 여장군이 되리라 기대가 컸다. 요즈음 나는 정년을 하고 매주 한두 차례 무등산을 찾는다. 산장 쪽을 택한다. 충장사를 비롯해서 그 일 때가 장군이 어린시절부터 성장하기까지 삶의 활동무대였다고 생각 할 때마다 나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지금 무등산을 오르고 있다. 파란 하늘이며 청홍 색색 아름다운 단풍으로 펼쳐진 충효동 일대 넓은 벌판을 바라며 비호장군(飛虎將軍)의 모습을 그려 본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곳에서 땀을 씻으며 쉬어 갔으리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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