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독후감 대회가 있네요. 상품은 학급문고 20권... 21일 마감인데 21일 오후 2시가 보았습니다. 오후 3시에 책을 샀고, 8시까지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독후감을 완성해서 응모했습니다.
전 믿습니다. 부족하지만 도전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아름답다. 적어도 젊음에게는....
전 아직도 제가 제법 괜찮은 교사라 믿습니다.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읽고
청년 ‘호근’의 단상들이 다시 삶에 들어오다.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읽고
청년 ‘호근’의 단상들이 다시 삶에 들어오다.
학창 시절 난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참 많은 고민을 한 학생이었다. 물론 그 때 품었던 회의와 의문들 중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해결 된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39살의 교직 14년차의 내게는 멀어진 이야기가 되었다. 사랑이 절망이 되고, 우정이 배신이 되며, 존경이 능멸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의 청소년 시절에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왜 그래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왜 어른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 그냥 받아들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을 파는 상점” 제목을 본 순간 아우그스티누스의 시간에 대한 단상이 떠올랐다. “우리가 그것을 생각을 할 때 우리는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물어오면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함을 알게 된다.” 아마도 이 소설의 시간도 그러한 의미는 아닐까?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묻기 전에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그 물음에 답을 잘 알고 있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막상 물음을 들으면 우리는 막막해진다.
용감한 ‘온조’라는 주인공 아이의 케릭터는 교사인 나의, 더구나 윤리교사인 나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꼬집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온조’처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잘못된 것을 참지 말아야 하며, 옳지 않은 것에 용기를 내세 싸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실은 ‘온조’ 같은 아이는 교사로서 매우 두려운 학생이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정당함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우리의 학교 정책에는 정당하지 않은 것이 너무 많다. ‘자율학습이라는 명분하에 진행되는 강제학습, 특기와 적성을 계발한다는 명목 하에 진행되는 국영수 위주의 보충 교육, 전인교육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도 성적 향상을 수업과 교육의 제일 목표로 추구하는 학교 현실’ 이런 부조리한 문제를 난 대한민국의 특이한 교육 현실이라는 이유를 들어 회피하곤 했다. 아이들에게 부정의와 부조리를 설명하면서도 정작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부조한 것들에 난 침묵하며 혹여 아이들이 그런 부분을 따지고 들지 않을까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온조는 그 질문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시간이 지난 빵을 팔게 하는 상점 주인의 모습은, 그것도 ‘저희 집은 매일 새로운 빵 만을 팔고 있습니다.’ 라는 표지만 아래에 전시해 놓고 파는 모습은 어쩌면 청소년들이 본 기성세대들의 부조리한 모습의 적나라한 상징이다. 아이들은 기성세대를 존경하지 않는다. 아니 믿지 않는다. 아니 혐오한다. 언젠가 청소년 문제를 학습하면서 아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나온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기성세대가 유일하게 인정받은 부분은 열심히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열심히’에는 정당함도 정직함도 없었다고 아이들은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의 믿음은 아이들 마음에 ‘암덩어리’가 된다. 그 암덩어리는 사랑 할 수 있는 마음도, 배려할 수 있는 마음도, 모든 것을 가려버린다.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에게 이 부분은 매우 큰 문제이다. 나는 지금껏 이 문제를 피해왔다. 아니 외면하였다. 하지만 시간을 파는 상점을 채 스무장도 읽기 전에 이 문제들은 다시 내 삶으로 다시 들어왔다. 난 다시 정당함의 원칙에 대해 고민하고 관계의 회복을 통한 상처의 치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기말고사 출제 방향을 고민하고 성과급 순위만을 고민하던 내 삶에 다른 질문이 들어온 것이다. 나의 이 질문은 아이들과 나의 관계를 행복하게 만들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녀 본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교실 풍경 그림이 있다. 선생님은 무겁고 엄숙한 말투로 “사람은 누구나 잘 못할 수 있다. 실수로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가져간 물건을 가져 오면 주인을 찾아주고 없던 걸로 해주겠다. 잘못한 사람은 물건을 가지고 나오도록...... ” 친묵이 흐르고 아무도 나오지 않으면 결국 모든 학생들의 가방과 사물함을 뒤지고, 물건을 가져간 학생을 가장 추악한 인간으로 전락시켜버린다.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는 물건을 훔친 학생의 심정이 묘사되어있다. 지금도 학교에서 절도 같은 실수를 한번 하면 학생에게 그 실수는 늪이 되고 만다. 학생의 실수는 잔혹한 친구들의 조롱과 선생님의 냉소 속에 실수한 학생을 결코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그런 실수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실수의 경험이, 그리고 그럴 수 있다는 이해가, 실수를 한 학생을 조롱하고자 하는 욕망을 이기지는 못한다. 우리는 기어이 그 아이를 같은 공간에서 쫒아 버리고 나서야 분노를 거둔다. 그런 분노에는 절대 용서와 관용의 가치는 없다. 여전히 이 부분은 몇십년 전과 똑같이 교실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엄마가 그랬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람들의 관계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고,” 어쩌면 난 이 문장이 이 소설을 통해 가장 긴 여운을 주는 문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모든 문제는 결국 관계의 문제이다. 우리가 절망하고, 상처받아 어찌 할 줄 몰라 할 때, 그 상황의 근본에는 사람들의 관계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의 근본에는 마음이 있고 마음은 다시 관계를 통해 힘을 얻는다.
온조는 시간을 파는 상점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게 해주고, 그 관계의 회복은 곧 그 사람의 마음의 변화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사람들은 보다 온전한 행복을 실현해 나간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성장과 치유가 관계의 상호 작용으로 서로에게 나타남을 이야기 한다. 온조는 친구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자신의 내면의 성장을 본다. 신체적 성장이 음식을 통한 영양소의 섭취로 이루어진다면 영혼의 성장은 마음 나눔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가 누군가의 상처에 위안을 주고 희망을 줄 때, 더 큰 위안을 얻고, 더 큰 희망을 얻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 모두의 삶은 시간의 틀 위에서 진행된다. 그 틀은 소설에서처럼 때로는 매우 잔혹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쏟아진다. 하지만 우리는 소설속의 할아버지나, 강토 아버지처럼 대부분 그 시간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나누는 것을 통해 우리는 관계를 회복하고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 해주거나 치유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장 할 것이다.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시간을 파는 상점> 선생님 독후감 대회
학급문고 20권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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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파이팅!!!
대상 : 전국 초, 중, 고등학교 선생님
기간 : 4월 16일~5월 21일까지
상품 :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6권 + 베어 그릴스(전4권) = 전 20권 (3명)
원고분량 : 제한 없음
내용: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읽고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카페 게시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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