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님 먼저 아우 먼저 / 지요섭
가난이 폭삭 익은 마을, 어느 날
어야, 동상 있는가
야, 어서 오쑈 성님
그란에도 해름참에 성님한테 갈 참이었는디 잘 오셨소
형님이 한참을 망설이다
거시기, 월산 댁 바깥양반 칠순이 내일 아닌가
쩌쪽 뒷길로 오다본께, 벌써 전 부치고 부꾸미까지
찬지름 꼬시한 냄새가 동네에 진동하던디 우린 어째야 쓰까
아이고 성님도, 형편대로 해야지라우
끼니 꺽정하는 우리가 뭘 어쩌것소
긍께, 머시냐
월산 댁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제
글고 나는 껄핏하면 손 내민 곳이 그 집 아닌가
큰딸 유정이 여울때도 빈손이었는디
이참에도 걍 모른 채 허먼 쓰것는가
망서리던 아우
꺽정마쑈 성님, 나한테 찹쌀이 서너 되 있승께
성님하고 반절씩 나눠 부주합시다
워매, 시방 뭔 소리 하는 거시어
쩌번 참에 꿔다 쓴 보리쌀도 갚지 못하고 있는디
자네한테 신세 진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글먼 쓰것는가
벼룩도 낯짝이 있는 것인디
동상, 아무래도 이참에
살강 밑에 꼬불쳐둔 좀도리를 헐어야 쓰것네
워매 워매, 고거시 뭔 소리다요
고것은 용식이 고등 핵교 월사금으로 쓴다고 안 그랬소
암쏘리 말고 내가 허잔대로 허시란 말이오
멈칫거리던 형님, 각혈을 토해내듯
허기사, 좀도리 쌀을 헌문다는 게
영 껄쩍지근 하네만, 어째야 쓰까 모르건네
쪽빛 하늘에
잠자리 떼 은빛 물결처럼 일렁이고
들녘의 황금빛 벼 이삭이 주렁주렁
풍성한 가을이 영글어 가고 있다
도솔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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