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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첫번째 책
창세기 11장에 ...
님롯의 바벨탑의 건설과 심판이 나오며
성경의 11번째 책 ..
11장 11절에
솔로몬의 심판이 나옵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
9:11에서
구렁 즉 지옥의 천사요 그들의 왕인
히브리어로 아바돈이며....헬라어로 아폴루온이 등장합니다.
신비의 숫자 11과 세계무역센터 폭파
Terry Watkins / 권승천 譯 (cheon1107@hanmail.net )
2001년 9월 11일 미국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 발생했다. 미 항공 여객기 11편기가 세계 쌍둥이 타워와 충돌 폭파되었다. 당국자들은 미친 듯이 11편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찾고 있는 동안, 불과 55분 뒤, 마치 미사일과 같은 속도로 92명의 무죄한 승객을 태운 미 항공 여객기 77편기가 두 번째 쌍둥이 빌딩과 충돌 폭파되었다. 여객기가 끔찍한 미사일로 변해 영문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무역 센터 건물에서 폭파되는 장면을 TV로 지켜본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조국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처럼 끔찍스럽고 기절 초풍할 비극에서, 있을 수 도 있는 어떤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와 같은 비극에는 어떤 숨겨진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미국인들에게 어떤 주의를 주시는 것일까? 왜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사악한 일이 벌어지도록 허락하셨을까? 어떻게 그토록 파괴적이고, 그토록 사악하고, 그토록 몰지각한 일이 일어 날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하실 말씀이 없으시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9월 11일의 세계 무역 센타 폭파와 관련하여 그 재난적인 사건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11이라는 숫자에 관해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공격 일 : 11
이처럼 11이라는 숫자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에는 어떤 깊은 의미가 있는 걸까? 아니면 단지 기묘한 우연의 일치일까? 진지한 성경 학도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떤 숫자들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신다. 성경과 수에 관해 씌어진 책들이 몇 권 있다. Ed. F. Vallowe의 성경의 수학(Biblical Mathematics) , 피터 럭크만 박사의 성경의 숫자학(Bible numerics), E. W. Bullinger의 성경 속의 숫자(Number in Scripture), Robert D. Johnston의 성경속의 수들(Numbers in Bible), 그리고 Dr. Paul Heaton의 13이라는 수의 공포(Triskaidekaphodia-The Fear of The Number 13)들이 그것이다.
Bullinger는 자신의 뛰어난 책인 성경 속의 숫자(Number in Scripture)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Ed Vallowe는 성경의 수학(Biblical Mathematic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숫자들 가운데 성경에서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는 한가지 예는 666이 아닐까? 요한 계시록 13:18에서 그 수는 짐승의 표로 언급된다. 지혜 여기에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 그 까닭은 그것이 어떤 사람의 수이기 때문이니 그의 수는 육백 육십 육이니라(계시록13:18). 성경은 명백하게 6이라는 수를 사람과 연관시키고 있다. 계시록 13:18은 분명히 이렇게 씌어있다. " ......그것은 어떤 사람의 수(the number of a man)이니....." 이 숫자 6과 사람과의 상관 관계는 성경 전체에서 발견된다. 사람은 6일째에 창조되었다. 하 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것들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니라. 사람은 한 주에 6일 동안 일해야 한다. 엿새 동안은 네가 수고하고 네 모든 일을 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 인즉 그 날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거하는 나그네나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20:9, 10) 6일 동안은 인간의 날이지만 일곱째 날은 주님의 날이다. 너 는 육 년 동안 네 밭에 씨를 뿌리며 육 년 동안 네 포도원을 가꾸어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칠 년째 되는 해는 그 땅에 안식하는 안식이 있게 할지니 이것은 주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네 밭에 씨를 뿌리거나 네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레위기 25:3,4) 6이라는 숫자가 인간(사람)의 숫자인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은 66권이다. 성경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사람이란 단어는 창세기 6장에서 6번 나온다. (3,5,6절,7,9절에서 2번)
성경에는 하나님의 일곱 경륜(dispensation)이 있다. 이중 6번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며 7번째 경륜(1000년)은 주님이 통치하신다. 일곱 경륜은 다음과 같다. 1. 무죄 시대-창조부터 타락까지
여호수아서(Joshua)는 구약의 6번째 책이다. 여호수아 책은 이런 책이다. 사람 이름으로 명명되는 첫 번째 책이다. 여호수아(Joshua)의 이름은 여섯 글자이다.
로마서(Romans)는 신약의 6번째 책이다. 로마서는 이런 책이다. 로마서는 여섯 글자다: (Romans)
"사람의 아들(Son of MAN)"이란 말은 신약에서 84번(14 ×6) 나온다. 14라는 숫자는 구원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수이다. 그리고 6은 사람을 상징하는 수이다. 예수 그리스도, 사람의 아들은 사람(MAN:6)들을 구원하기(deliver:14)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사 람의 세속적인 세상에서조차도 6이라는 숫자와 얽혀 있다. 세상은 가장 오래 된 사본이라는 것을 뒤적이며 킹 제임스 성경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일에 대하여 자랑스러워할지 모르지만, 킹제임스 성경은 그 진실성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사는 세상은 이렇다. 1분은 60초(6 ×10)다.
다른 숫자를 가지고는 이렇게 할 수 없다. 한번 해 보라! 어떤 수든지 다른 숫자를 가지고 해 보라. 인간의 몸에는 6개의 주요한 지체가 있다: 머리, 몸통, 두 팔과 두 다리.
왜 사람이 지하 6피트의 깊이에 묻히는지 궁금한가? 당신이 사는 지역의 매장지 사무실에 전화해서 하필이면 왜 6피트인지 물어 보라. 7도 아니고 5도 아닌 왜 6피트인지! 나는 개인적으로 몇 군데의 매장지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왜 6피트인지를 물어 보았다. 그것이 "사실상의 표준"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6 이라는 숫자는 사람의 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TV 방송국이 "초인적인 힘을 가진 사람"에 대한 드라마를 제작했을 때, 뭐라고 불렀는지 아는가? "6백만 달러의 사나이"였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는가? 6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숫자 11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는 11이라는 숫자와 관련하여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걸까? 숫자 11과 관련된 두 가지 분명한 의미가 있다. 이 의미는 "마지막 기회"란 의미의 열한시(eleventh hour)란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20장에서 "열한시(the eleventh hour)"란 말을 2번 말씀하셨다. "열한시"는 긴박함,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 마지막 기회를 의미한다. 이 는 하늘의 왕국이 마치 품꾼을 고용하여 자기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아침 일찍 나간 집 주인과 같기 때문이니 그가 하루에 일 데나리온씩 주기로 품꾼들과 합의하여 그들을 자기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세 시쯤 나가 보니 시장에서 놀고 서 있는 다른 자들이 있으므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으로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무엇이든지 정당한 것을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또 그가 여섯 시와 아홉 시쯤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또 열 한시쯤에 나가보니 놀고 서있는 다른 자들이 있으므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온 종일 여기서 놀고 서 있느냐?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를 고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음이니이다, 하매 그가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무엇이든지 정당한 것을 너희가 받으리라, 하니라. 날이 저물매 포도원 주 인이 자기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품삯을 주라, 하니 열 한시쯤 고용된 자들이 와서 각각 일 데나리온씩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으나 자기들도 각각 일 데나리온씩 받으매 그들이 그것을 받은 뒤에 그 집 주인에 대하여 투덜거리며 이르되, 나중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낮의 열기와 무거운 짐을 견딘 우리와 같게 대우하였나이다, 하거늘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 못 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일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아니하였느냐? (마20:1-13) 성경에서의 하루는 해가 떠서 질 때까지를 12시간으로 나누어 측정했다. 따라서 12시는 어두운 밤이었다. 그러므로 열한시란 표현은 마지막 시간, 즉 해가 지기 직전의 시간을 말한다. 마 태복음 20장에서, 주 예수님은 마지막 기회를 뜻하는 그 유명한 "열한시(eleventh hour)"란 말을 만들어 내셨다. 그 말은 "시간이 다 되었다." "마지막 가능한 순간"이라는 경고나 급박함을 나타내는 말로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열한시에 대한 몇 가지 세상의 정의를 보자. 숫자 11은 분명히 "마지막 기회"와 관련이 있다. 주님은 미국과 세상에 급박한 11시의 경고를 보내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마감시간 전의 열한시(마지막 기회)에 서있는 걸까? 우리는 인류 역사상 열한시(마지막 순간)의 중대한 사건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성경은 분명하게 숫자 11의 또 다른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엮고 있고 훨씬 더 명확하며.....훨씬 더 경악하게 하는 수. 성경은 명백하게 숫자 11을 심판과 관련시키고 있다.
타락 이후 첫 번째 심판 인간의 타락 후 인류에게 행해진 첫 번째 심판은 카인이 자신의 동생인 아벨을 죽인 결과였다. 그 심판은 창세기 4장 11절에서 행해졌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동생의 피를 받았은즉 이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창세기 4: 11) 어떤 사람은 아마도 생각하기를.....와! 하지만 잠깐만! 성경의 장과 절의 숫자는 영감 받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 원문 사본에는 장과 절이 없어요! 따라서 장과 절의 숫자가 갖는 "의미"는 무시해야 합니다. 만일 장과 절의 숫자가 영감 받은 것이 아니라면 - 모음들과 어간(語幹: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 어떠한가? 히브리어 원문 본문은 모음과 어간(語幹), 소문자들이 없었다.(또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만일 히브리어 원문 사본만이 영감 받은 것이라면 - 그렇다면 어간들과, 모음들, 그리고 소문자들을 구약에서 다 없애 버리자. 당신은 다음의 글을 읽을 수 있을까? SLMFDVDTHLRDSMYSHPHRDSHLLNTWNTHMK 이해했습니까? 그럼 계속 나갈까요? 좋습니다.
두 번째 심판은 노아의 홍수였다. 두 번째 심판은 노아 당시의 홍수였다. 그 심판은 창세기 7장 11절에서 행해졌다. 노아의 생애에서 육백 년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십칠일 바로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다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창세기 7:11)
세 번째 심판은 가나안에 내려졌다. 노 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셈과 함, 야벳 이다. 함은 벌거벗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는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심판을 내리셨다. 주의 :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9:1에서 함을 축복하셨기에 그를 저주하실 수는 없었다. 창세기 9:25는 가나안의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을 것이요, 그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될 것이니라, 하고 (창세기9:25) 왜 하나님께서는 함의 아들 가나안을 심판하셨을까? 함에게는 적어도 네 아들이 있었다. 구스, 미스라임, 붓, 가나안이다(창10:6). 왜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을까? 정상적으로는, 저주나 축복은 장자에게 임했다. 그렇다면 왜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다는 말인가? 가나안에게 열한 명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가나안에 대한 저주"는 가나안의 열한 명의 아들들 위에 내려 졌다(창세기 10:15-18).
바벨탑에 대한 심판은.....
성 경은 악명 높은 바벨탑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니므롯은 바벨탑을 세워 인간의 역사 속에 단일 세계 질서(one-world-order)를 가져오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니므롯과 그 일행들에게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심판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니므롯의 심판은 창세기 "11"장 7절에 나온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11장 7절)
소돔 사람들에 대한 심판 소 돔과 고모라의 사악함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 위하여 두 명의 천사를 보냈다. 두 천사가 롯의 집에 도착하자, 소돔의 남자들이 롯의 집을 에워싸고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롯에게 그 사람들(천사들) 내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두 천사들은 소돔의 남자들을 쳐서 눈이 멀게 하는 심판을 내렸다. 그 심판은 창세기 19장 "11"절에서 행해졌다. 큰 자든 작은 자든 집 문에 있는 남자들을 다 쳐서 눈을 멀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 애를 쓰더라 이집트에 대한 심판은.....
B.C. 1700년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집트의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모세라는 한 사람을 부르셨다. 그러나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이스라엘을 풀어 주기를 거절했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풀어 주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주님은 이집트에 대하여 "11"가지 심판들을 내리셨다.
1. 피의 재앙(출7:19-21)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원하신 후, 이스라엘은 창세기 17:8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으로 되돌아 가야했다. 이스라엘의 자손이 약속의 땅에 가까이 왔을 때, 민수기 13장에서, 그들은 카데스바네아(Kadeshbarnea)에서 행군을 멈추었다. 그곳에서, 주 하나님께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이미 약속을 하셨음에도 그들은 약속의 땅을 정찰하기 위하여, 각 지파에서 1명씩 선발하여 12명을 보냈다. 정찰 나간 자들이 돌아왔고 선발된 12명중 "11"명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소유할 수 없었다. 민수기 13:30에서, "즉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하자"고 말한 사람은 오로지 갈렙 뿐이었다. 다른 "11"명은 민수기 13:32에 따르면, "악한 보고(evil report)"를 가져왔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자기들이 탐지한 땅에 대하여 나쁘게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악한"으로 번역함-역자 주) 보고 하며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곳 거주민들을 삼키는 땅이요, 우리가 거기서 본 모든 백성들은 키가 큰 자들이며 (민수기13:32) "11"명의 악한 보고 때문에,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절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40년 동안을 광야를 방황해야하는 "심판"이 내려졌다. "11"명 때문에,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신명기 1:2에서, 성경은 이스라엘이 카데스바네아(Kadeshbarnea)에 머물렀던 때를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민수기 13장에서 주님이 이스라엘에 심판을 내리셨던 곳이 아닌가? 호렙에서 "열 하루(11)"길이었다! 모세가 요르단 이편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 있는 홍해 맞은편 광야에서 온 이스라엘에게 전한 말씀이 이러하니라. (호렙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는 세일 산길로 열 하루 길이었더라)
만일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진군을 했더라면! 만일 이스라엘이 12일을 이동했다면, 꼭 하루만 더 나아갔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시고 약속 하셨던 땅에 있었을 것을... 하지만 그들은 "열 하루"길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심판"이 이스라엘에 내렸다.
● 열 하루(11)길 때문에
11이라는 숫자가 심판을 뜻하는 하나님의 숫자라는 것에 어떤 의심이 있는가? 하지만 이것도 전부가 아니다.
삼손에 대한 심판 1100개(11*100)의 은 때문에 삼손은 심판을 받았다. 블레셋 사람들은 들릴라에게 삼손을 팔아 넘기는 조건으로 1100개의 은을 지불했다. 블 레셋 사람들의 영주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와 그녀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 그의 큰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보고 또 어떤 방법으로 우리가 그를 이기고 결박하여 괴롭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천 백개를 네게 주리라, 하더라 (사사기 16:5)
솔로몬에 대한 심판 성경에 나오는 어떤 수들의 특정한 의미를 푸는 열쇠들 가운데 하나는 성경에 있는 책의 번호(number)와 장, 절을 선택된 숫자와 맞춰보는 것이다. 피터 럭크만 박사는 자신의 책 bible numerics에서 이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어 떤 수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방법으로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 책의 번호 즉 몇 번째 책인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11을 찾는다면, 성경에서 11번째 책을 선택한다. 11번째 책을 찾은 후, 그 책의 11장과 11절을 살펴본다.( Peter S. Ruckman, Bible Numerics, P. 33)』 한번 시험해 볼까? 11번째 책은 열왕기 상이다. 다음 단계로 11장 11절을 읽어보자. 주께서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러한 일을 행하였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내 법규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왕국을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열왕기 상 11:11) 열왕기상 11:11은 명백하게 솔로몬에 대한 심판을 언급하고 있다. 솔 로몬의 왕국은 당대에 지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부유한 왕국이었다. 오늘날의 미국도 마찬가지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고, "나의 언약과 법규를 지키지 아니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으로부터 축복과 보호를 제하여 버리셨다. 미국도 그러한 것인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두 왕만이 이스라엘을 11년 동안 통치했으며, 그리고 두 왕은 이스라엘에 끔찍한 심판을 가져왔다.
여호야김에 대한 심판 열왕기하 23장과 역대기하 36장에서, 여호야김의 11년 간의 왕국 통치기간 동안 심판이 내렸음을 읽게된다. 여호야김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이십 오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여호야김이 자기 조상들이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였더라... (열왕기하 23:36-37) 여 호야김 시대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 동안 그의 신하가 되었다가 돌이켜 그를 배반하였더니 주께서 자신의 종 대언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 사람들의 부대와 시리아 사람들의 부대와 모압 족속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서 멸하게 하시니라....(열왕기하 24:1-2) 여 호야김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이십 오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통치하며 주 자기 하나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였더라. 바빌론 왕 느브갓네살이 올라와서 그를 치고 족쇄로 결박하여 바빌론으로 잡아가고 느브갓네살이 또 주의 집의 기구들을 바빌론으로 가져다가 바빌론에 있는 자기 신의 전에 두었더라. 보라, 여호야김의 남은 행적과 그가 행한 가증한 일들과 그에게 있던 것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느니라.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그를 대신하여 통치하니라 (역대기하 36:5-8).
시드기아에 대한 심판 열왕기하 24장과 역대기상 36장은 시드기야의 11년 간의 왕국 통치기간 동안 심판이 내렸음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열왕기하 25장 2절에서, 예루살렘은 심판이 내리기 전 시드기야 왕 11년까지 포위되어 있었음을 주목하라. 시 드기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이십 일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이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자신의 눈앞에서 쫓아내실 때가 이르렀음이라. 이 때에 시드기야가 바빌론 왕을 배반하니라 (열왕기하 24:18-20) 시 드기야의 통치 제구년 시월 곧 그 달 십일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기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을 치고 사방으로 요새를 쌓으매 예루살렘이 시드기야 왕 제 십일 년까지 포위되었더니 사월 구일에 도시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에 거하는 백성이 없었더라 (열왕기하25:1-3) 시 드기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석 달 열흘 동안 통치하며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였더라. 주 자기 하나님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고 대언자 예레미야가 주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전하여도 그 앞에서 자기를 낮추지 아니하였으며 또 느브갓네살 왕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게 하였으나 그가 느부갓네살을 배반하고 목을 뻣뻣하게 하며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또 제사장의 모든 우두머리들과 백성들도 이교도들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 크게 범죄하고 주께서 예루살렘에 두어 거룩하게 하신 그분의 집을 더럽게 하였더라. 주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거하는 곳을 불쌍히 여기사 자신의 사자(使者)들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말씀을 보내고 늦기 전에 일어나 보내셨으나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들을 멸시하며 그분의 대언자들을 학대하여 마침내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향해 진노하사 구제할 방법이 없게 되었으니 (역대기하 36:11-16) 시 드기아가 바로 마지막 기회, 즉 열 한시였음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시드기야는 마지막 왕이었다. 시드기야 이후, B. C. 606년에 느브갓네살이 와서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1948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시드기야는 11년을, 즉 열 한시의 - 주님의 진노로부터.... 구제할 방책이 전혀 없는.... 심판이 있기 전의 마지막 기회의 - 상황에 있었다. 11이라는 숫자는 심판을 뜻하는 하나님의 숫자라는 것에 어떤 의심이 있는가? 아마도 어떤 사람은 그 모든 것들은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모든 하나 하나의 단어(every single word), 모든 하나 하나의 숫자(every single number)조차도 정확하게 주님께서 명하신 것이다. 모든 단어 하나, 모든 숫자 하나에도 어떤 목적이 있는 걸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연의 일치라는 것은 없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눅4:4) 주 예수 그리스도에 따르면, 하나님 말씀의 영감은 심지어 가장 작은 "일점(一點), 일획(一劃)"에까지 적용된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성취되리라 (마5:18) " 점(jot)"은 희랍어나 히브리어에서 가장 작은 글자이다. "획(tittle)"은 액센트나 발음의 구분 점이다. "획"은 영어 알파벳 " i "의 위에 있는 점(dot)과 비슷할 것이다. 즉, 점이나 획은 글자를 쓸 때의 가장 작은 한 획인 것이다. 만일 하나님 말씀의 영감이나, 보존, 성취들이 점 하나, 획 하나 까지도 포함한다면,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의 숫자들 또한 말할 필요도 없이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세상의 체계조차도, 알게 모르게 "11"이라는 숫자를 심판(판단)과 연관시킨다. 20세기의 표현과 우화에 관한 Brewer의 사전은, "eleven plus(중등 교육 진학 선발 시험)" 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eleven plus 학교에 다니고 있는 11세나 그 나이를 약간 상회하는 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 마련된 대단히 곤욕을 치르는 선발 시험의 이름으로. 다양한 형태의 중등 교육에 대한 학생의 적합성을 판단(judging)하는 수단으로서 영국의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음...(Brewer's Dictionary of Twentieth-Century Phrase and Fable, P. 175)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한번 해 보라... 성경에서 어떤 다른 숫자가 그렇게 분명하게 심판과, 특히 중한 심판과 관련되는지를 나에게 보여 주라!
두로(Tyrus)에 대한 심판 제 십 일년 그 달 일일에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두로가 예루 살렘을 치며 말하기를, 아하, 만백성의 문이던 그녀가 부서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이제 그녀가 피폐하게 되었은즉 내가 충만하게 되리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오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바다가 그 파도를 일으키는 것같이 내가 많은 민족들로 하여금 올라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그들이 두로의 성벽을 무너뜨리며 그 망대를 헐 것이요, 나도 두로에서 그 티끌을 벗겨 내어 바위의 꼭대기 같이 되게 하리라 (에스겔서 26:1-4)
이집트의 왕 파라오에 대한 심판 제 십 일년 일월 곧 그 달 칠일에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내가 이집트 왕 파라오의 팔을 꺾었나니, 보라, 사람들이 그것을 싸매어 치료하지도 못하며 붕대를 대어 묶지도 못하고 칼을 잡을 만큼 강하게 하지도 못하리라.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집트 왕 파라오를 대적하노라. 내가 그의 두 팔 곧 강한 팔과 꺾인 팔을 꺾어서 칼이 그의 손에서 떨어지게 하겠고 이집트 사람들을 민족들 가운데로 흩으며 여러 나라로 흩어 버리리라 (에스겔서 30:20-23).
열 한 명의 사도들 갈보리의 심판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내려졌다. 그때 11명의 제자들이 있었다.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서 무죄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에 대해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셨다. 그분은 한 사람의 저주받은 자로 죽으셨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만족시키셨다(이사야 53:1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대속(代贖)하셨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는 다 저주받은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13) 비록 주 예수께서 3년 동안을 공개적으로 가르치시고 선포 하셨음에도 붙잡히시지 않고, 유다의 배신으로 인해, 제자들의 수가 11명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 됐다. 유다가 배신했던 밤, 그 날 밤 예수님은 심판장으로(흠정역에서는 법정으로 번역됨-역자주) 끌려 가셨다. 그 때에 그들이 예수님을 가야바에게서 데려다가 법정(hall of judgment)으로 끌고 가니 이른 아침이더라. 그들이 자기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유월절 어린양을 먹고자 하여 법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빌라도가 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하매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 되, 이 사람이 범죄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겨주지 아니하였으리이다. 이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하니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사람을 사형시키는 것은 법에 어긋나는 일이니이다, 하니라 (요한복음18:28-31) 사 도행전 1장에서, 사도행전 2장의 성령님께서 오시기 직전, 왜 사도들이 유다를 대신 할 한 사도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는가? 한가지 이유는 그들에게는 12명이 사도가 필요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 하나씩 할당되는, 12개의 보좌에 오르기로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마19:28). 하지만 심판은 이제 이루어졌으므로, 심판을 의미하는 11이라는 숫자의 열 한명의 명의 사도들은 12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또 한가지 이유로 가능하지 않겠는가?
성경 -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성경은 66권(6 ×11)으로 되어 있다. 6은 사람의 수다. 11은 심판의 수다. 성경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 것이 바로 성경이 이 땅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책이 된 이유다. 그 때문에 성경은 전 역사를 통해 불태워지고, 비난을 받고, 비웃음을 당하고, 금지되고, 공격을 받았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간단한 십계명조차도 입 밖에 내지 못하도록 입을 봉했다. 성경이 그들을 심판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성경은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분별하는 사람은 재판관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권능이 있어 양날 달린 어떤 검 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나누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니 (히브리서4:12)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으로서 언급되고 있다. 이에 모세가 와서 주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심판들을(judgments : 흠정역에서는 법도로 번역함-역자주) 백성에게 고하매 온 백성이 한 목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주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행하리이다, 하더라(출애굽기24:3) 요한복음 12:47-48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이 마지막 날에 우리를 심판(judge)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사 람이 내 말을 듣고 믿지 아니할 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이는 내가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러 왔음이라. 나를 거절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하는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요한복음12:47-48) 하나님의 66권(6 ×11)의 책들은 인류(6)에 대한 심판(11)이다. 사실, 당신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때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 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 (로마서 5:8-9) 하나님 말씀 즉 11과 심판에 대한 또 다른 흥미 있는 언급으로 시편 119편이 있다. 시 편 119편의 주제는(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흥미 있는 것은 심판이라는 단어가 시편 119편에서 22번 나온다는 것이다. 22는 2 ×11이다. 성경에서 숫자 2가 갖고 있는 의미 중에 하나는 증인(witness)이다. 또한 신기한 것은 시편 119는 1+1+9=11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18:16은 "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라고 말씀하신다. 두 강도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심의 증인이 되었다(막15:27). 요 한계시록이 22장, 즉 2(증인) ×11(심판)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계시록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계1:2: 증거 하는 사람은 증인이다.)하며, 하나님의 심판(계6:17, 11:18, 14:10, 14:19, 15:1, 16:1)의 신실한 증인(계1:5)이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아는가? 두 증인이다.(따라서 2*11=22이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능을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대언하리라 (요한계시록1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증인으로 파송하실 때, 둘 씩 둘 씩(two and two)보내셨다. 오 늘날조차도, 내가 보아온 모든 증인 프로그램이나 과정은 둘씩 짝을 지어 증인들을 파송한다. (여호와 증인이나 몰몬 교인들을 보라.) 또한 성경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에서, 하나님은 적어도 2명의 증인을 세우셨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으로 들어갈 때 왜 여호수아를 데리고 갔을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11)의 증인(2)이다. 시편 119편에는 심판(judgment)이 22(2 ×11)번 나온다.
만일 당신이 성경을 주의해서 읽는다면, 시편 119편이 히브리어 알파벳 22글자에 맞춰 22개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시편 119편은 성경에서 그렇게 구분되어 있는 유일한 장이다. 흥미 있지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심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에서 돌아가셨을 때 33세(3*11) 이셨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의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하고 그 두 사람이 함께 가서 (창세기22:8)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셨나니 (사도행전20:28)
대 백보좌 심판 요한이 계시록 20장에서 대 백보좌 심판을 보고 있었을 때, 요한은 11가지 일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우연하게도 11절에서 시작한다. 또 내가 크고 (1)흰 왕좌와 (2)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 자라마저 보이지 아니하더라. 또 내가 보니 (3)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4)책들이 펴져 있고 (5)또 다른 책이 펴져 있으니 곧 생명 책이라. (6)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로 인하여 심판을 받으니 (7)바다가 자기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8)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9)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고 (10)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11)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성경에서 숫자 11은 심판이나 급박함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넘버 세븐 숫자 11과 7의 상호 관련성은 성경이나 세상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E. W. Bullinger는 자신의 책 Number in Scripture에서 7과 11의 조합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Bulinger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Bullinger는 숫자 7과 11의 믿기 지 않는 관련성을 몇 가지 열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음악에서: 7개의 기본음과 11의 반음 기하학에서: 피라미드(기반이 정사각형이다.)의 높이와 기반의 길이의 비(比)는 7:11이다. 7:11은 원의 지름과 반원주, 반원과 그것의 현과의 비율을 나타낸다. (Bulliner는 자신의 책 20-27 페이지에서 과학과, 수학 등과 관련된 7과 11의 현상에 대하여 보다 많은 상세한 정보를 준다.) 7과 11의 조합은 흥미롭게도 세상 속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명한 주사위 던지기 놀이의 seven come eleven이라든가, 유명한 체인 형태의 편의점인 seven eleven등이다. 7 과 11은 운(rhyme)이 맞는 유일한 두 수라는 것도 흥미롭다. 7=3+4 이며 11=5+6 이다. 따라서 3,4,5,6이 완벽한 등차 급수를 이루며, 3 ×4 ×5 ×6=360 이 나온다. 우리의 세상은 360개의 요소들로 나뉘어 진다. 예를 들어, 성경의 1년은 360일이며, 원은 360도이다. 위도와 경도는 360도이며, 황도대(Zodiac)에서 사용되는 천궁도(circle of heaven)는 360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성경에서 7의 숫자는 어떠한가? 성경에서 그 의미가 가장 분명한 숫자는 7이다. 7은 성취(완성)의 수이다. 이것은 성경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피터 럭크만은 자신의 책인 Bible Numerics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숫자 7과 완성에 대한 예를 성경에서 찾아보자. 창조: 이것은 7이라는 수가 처음 나오는 예다.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일을 마치시고 자신이 만든 모든 일을 떠나 일 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세기2:2)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보자.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7이란 수로 가득하다.(요한계시록에서만 59번이 나온다.) 일곱 교회(계1:4) 계시록에는 왜 이렇게 많은 일곱(7)이 있는 걸까? 일곱째 천사가 음성을 내는 날들 곧 그 천사가 나팔을 불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 대언자들에게 밝히 드러내신 것같이 하나님의 신비가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0:7) 일곱째 천사가 자기 대접을 공중에 쏟아 부으매 큰 음성이 하늘의 성전에서 왕좌로부터 나서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하시니 (요한계시록 16:17) 만일 7이 성취의 숫자라면, 그리고 11이 심판의 숫자라면, 성경에서 7과 11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노아의 홍수의 심판이 창세기 7장 11절에서 일어난 것을 알고 있는가? 한번 찾아 보라! 또한 세계 무역 센타 폭파 사건에서도 숫자 7이 특이하게 나타난다. 공격 날짜 9/11 : 9+1+1=11, 하지만 9-1-1=7이다. 9월은 라틴어 명칭으로는 7이다. 이러한 숫자 11과의 연관성과 더불어,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미국에 대한 심판으로서 무역 센타의 폭발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7과 11의 조합은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며, 완성이자 심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역 사상 가장 엄청나고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감시 기술로도 어떻게 세계 무역 센타 폭파에 대하여 감도 잡을 수 없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전화나, 컴퓨터, 이메일 등과 같은 모든 형태의 전자 통신을 포착할 수 있는 NSA의 Echelon과 같은 그처럼 정교한 첩보 기술을 갖고서도 어떻게 그것을 놓칠 수 있었는가? 테니스 공조차도 찾아 낼 수 있는 첩보 위성을 즉 빈 라덴(Bin Laden)을 감시하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속수 무책일수가 있었단 말인가? 세계적인 테러리즘 감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들이 어떻게 그것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무역 센타 폭파는 일년 이상을 준비 했고, 수 백 명의 사람, 여러 국가들이 연계되어 있었고, 엄청난 자금, 여권 위조, 비행 조종사 자격증, 수십 차례의 사람들의 위험 경고 등이 있었지만, 그러나 거듭 거듭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우리의 모든 최첨단 감시 기술이 이처럼 엄청나고, 세밀하게 계획된 이 일을 놓칠 수가 있는 지를 조사하기 위한 의회가 즉각 소집되었다. 이 모든 테러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10,000에서 20,000명의 감시 첩보 요원들은 마치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물었다. " 하나님께서 미국을 더 이상 돌보시지 않는가?" 미국은 심판을 향해 가고 있는가? 어쩌면.... 설마.... 솔직히 말해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 외에는! 이것은 위대한 미국의 종말의 시작일 수도 있다. 아니면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가 바로 가까이에 와 있는 것 일 수도 있다.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한가지는 -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되리라는 것이다. 틀림없다. 어느 날, 당신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러니 친구여, 심판으로부터 당신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한가지가 있다.. 단지 한가지!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14:6) 죽음은 분명하다..... 언젠가는 당신은 죽는다...... TV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세계 무역 센타가 폭파될 때 사망한 한 남자의 아내가 흐느끼며 말하고 있었다. "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막 집을 나섰죠. 그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내게 키스를 하고 집을 나섰어요. 그리고 두 세시간 뒤....그는 죽었어요. 누구도 몰랐어요." 당신이 세계 무역 센터에 있었다면.... 그 날이 내일 일 수도, 어쩌면 다음 주 일 수도, 5년 뒤, 10년, 20년, 50년 뒤 일 수도 있다.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이는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한가지 분명한 것은 - 죽음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여, 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고자 하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로 영접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죄의 값을 치르셨음을 믿는가? 솔직히 이 글을 쓴 진짜 이유는 세계 무역 센타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얼마나 깨지기 쉬우며, 불확실한가를 말하려는 것이다. 이 글의 진짜 이유는 당신이 불못 속에서 영원을 보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 지더라 (요한계시록20:15) 내가 처음 세계 무역 센타 폭파의 비극적인 소식을 들었을 때, 내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했을까하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세계 무역 센타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준 한가지는 죽음은 의심하지 않는 순간에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할 마지막 기회도 주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친구여, 만일 그대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까지 결코 믿은 적이 없다면, 지금 구원을 받을 수 있다네. 당신은 지금 당장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구원을 받는 것은 간단하다.
● 당신은 죄인임을 알라.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사람은 없나니 단 한사람도 없으며 (로마서 3:10)
●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믿으라.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베드로 전서 2:24) ● 당신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 단지 그분을 믿고, 당신의 개인적인 구세주로서 영접하는 것이다.
당신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진심으로 이렇게 기도하라. 주 예수님, 저는 제가 죄인임을 압니다. 주님이 저를 구원해 주시지 않으신다면, 저는 영원히 잃어버린 자가 됩니다. 저를 위해 갈보리에서 돌아가셨음을 감사 드립니다. 이제 주님께 나와 주님을 영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자 누구리이까? (시편 89:48)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으며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복음 3:36)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마태복음16:26) Terry Watkins / 권승천 譯 (cheon1107@hanmail.ne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