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인간중심으로 살거나 자기중심으로 살고 있다. 그러기에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생을 구하기만 하고 죽음을 경시하고 있다. 아울러 물질과 일에만 집착하여 삶을 살고 있기에 진정한 자유가 없다.
또한 그릇된 이해의 결과로 잘못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죽음이 결코 고통의 끝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얼마든지 고통 속에서 인격을 성장시킬 수도 있고 고통을 겪으면서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도 있다.
조심해야 할 것은 그릇된 신념과 미신이다. 이로 인해 혹독한 시련과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항상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올바른 습관과 바른 생활 속에서 극기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죽음은 삶의 마무리이며 삶의 연장이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깨달음과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의식혁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죽음을 알고자 하면 생을 알아야 하고, 생을 알때 참으로 죽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구생을 제멋대로 할 수 없는데 죽음인들 어찌 알겠는가? 사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 다만 형상이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인간의 의식이 형상을 만들어놓고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형상은 무수히 교체되고 계속 바뀌고 있다. 그래서 현존하는 나와 진아를 하나로 보는 사람은 전체를 하나로 보기에 현재의 나만을 주장하지 않게 된다.
전체라는 몸이 업에 따라 계속 모양을 바꾸며 변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물질로서 사라지기도 하지만 나는 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나를 주체적 인물로 착각하고 있기에 죽음이 끝인 줄만 알고 살고 있다. 참나는 죽지 않고 업에 따라 변화하고 있음을 모르며 살고 있는 것이다.
깨달음을 통해 개체인 에고를 초월함으로써 참나를 얻을 수 있다. 아울러 수행을 통해 작은 죽음, 큰 죽음을 경험하면 사람들이 참을 모르고 가짜에 속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사람이 탈거 하여 환생도 할 수 있고, 이거하여 다른 형상으로 살 수도 있음을 보아왔다. 눈을 감을 때나 눈을 뜨고 있을때나 결코 죽음은 두렵거나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생사가 오고 감에 장애가 없어야 참으로 평화롭고 자유로울 수가 있는 것이다.
생활이 깨끗하지 못하고 인연에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생사관문의 머리에서 어찌 자유롭게 갈 수가 있겠는가?
지금이 자유로울 때 말후末後도 자유롭고, 말후가 자유로울 때 고금에 뻗칠 수가 있다. 평상시 부지런하여 청정할 수 있고 환연幻緣없어 걱정이 없다면 어찌 죽음이 두렵겠는가?
마땅히 일과 물질에 집착하지 않아야 마음이 편안하다. 지금이 인因이되고 연緣으로 인해 말후에 과過가 됨을 깨닫기 바란다.
그러려면 높은 안목에서 배우고 깨우칠 줄 알아야 한다. 당연히 내가 틀렸을때 주저없이 용맹하게 나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 또한 나를 다스릴 수 있으면 남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진을 모르고 가짜에 속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참으로 진가眞假를 구별할 수 있을 때 참다운 변화도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