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신 하나님의 집
디모데전서 3:14-16
예수 부활의 승리와 기쁨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모자람 없는 생명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두움, 눈물, 한숨과 거짓과 불의를 물리치시는 생명이 온 땅에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뜻 깊은 2010년 부활절에 색동교회 창립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 동안 건강한 주님의 교회를 세우려는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며 힘을 모아오신 색동가족 여러분의 수고와 헌신에 치하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참 좋은 목사님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시니 먼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며 ‘참 좋다’고 칭찬하시리라 믿습니다. 성서에 나타난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소문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 땅에 교회가 많이 세워졌습니다. 여기저기에 흔한 것이 십자가요, 교회간판입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부러워하며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 경험하시는 대로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장에만 몰입하다보니 너무 많이 본질을 잃어버리고 부패하여 타락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됨을 잃어버리고 거룩함을 상실한 대신에 기복주의, 샤머니즘, 세속주의가 독버섯처럼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교회공동체가 이웃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대신에 불신과 비난의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런 상황에서 색동교회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흔하게 보이는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이 땅에서 섬김과 나눔으로 희망을 주고 복음을 전하는 구원의 도구로 좋은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시는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한 관계로 우리를 실망시키는 병든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60~70년대의 가난한 시절에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를 노래부르며 새마을 운동을 전개할 때 한국교회도 ‘성장하자, 성장하자.’하며 교회의 가치를 성장주의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교회에서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신앙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큰 건물과 많은 수의 성도가 모이면 성공한 목회자로 인정받고 목회성공 여부를 심판받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내용이 변질되어 값싼 은혜로 기복화, 샤머니즘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무속신앙의 큰 문제는 신앙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고 내 자신이 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떡을 얻어먹기 위해 모였던 무리들처럼 세속적 이익을 탐하려는 사람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세속적 신앙이란 세상생활과 신앙을 양립시키고 필요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이중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적 가치, 세상적 사고로 신앙생활 하는 모습입니다. 믿는 사람의 생활은 믿지 않는 불신자와 무엇인가 다른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즉 성스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에서는 성, 속의 구분이 없습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찾으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주님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생활이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한국교회입니다. 병든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색동교회’는 어떤 교회로 세워져가야 합니까? 값싼 은총을 베푸는 교회가 아닌 자기 십자가뿐 아니라 분단의 아픔을 안고 있는 민족의 십자가를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십자가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십자가는 고통이요, 수치요, 죽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감당했던 고통이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닌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의 믿음 속에는 부활신앙이 내재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이 기도가 되어 이것을 바라보면서 감당하는 고통이어야만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독일의 성인 토마스 아켐피스는 말하기를 “십자가에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으며 원수를 이길 힘이 있다. 십자가에는 하늘의 행복이 있고 영혼의 능력이 있으며 생명도, 희망도, 십자가를 떠나서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신앙생활에 권능이 있으며 용서와 사랑이 있으며 생명과 영생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를 정의하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주님께 속한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흔한 건물이나 조직, 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들의 모임자체’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이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면 반드시 기초부터 먼저 합니다. 하나님의 집, 교회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6장 16절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적인 조직이나 단체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의 기초 위에 세워진 공동체가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하면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거룩한 집’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장 1-2절에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와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교회공동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는 곳입니다. 마치 쇠붙이가 용광로에 들어가면 녹아지고 변화가 일어나듯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인 색동교회에 들어오면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거룩한 변화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집’을 ‘축복의 집’으로 생각했습니다. 시편 118편 26절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집을 떠나 긴 여행의 경험에서는 언제나 집이 그립습니다. 왜냐하면 집은 육신생활의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집 곧 교회를 더 잘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 구체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가까이하며 사랑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집을 사랑하며 사모하는 자들을 축복하십니다.
색동가족 여러분, 교회를 향한 움직임이 여러분위에 거룩한 변화와 함께 복된 생활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교회의 존재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집은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것입니다. 기둥은 지붕을 받치고 벽을 지탱하여 주고 있습니다. 터는 기둥을 받쳐서 바로 서게 합니다. 기둥과 터가 든든할 때 집이 든든히 세워집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든든히 세워져야 나라공동체가 바로 세워지고 진실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것입니다.
흔히 무식이 용감하다는 말처럼 유럽관광을 다녀 온 사람들이 구라파의 교회를 ‘죽은 교회, 쇠퇴한 교회, 무기력한 교회’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유럽교회는 수천 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기독교진리에 기초한 도덕적 가치관을 깊이 뿌리내렸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의 진리의 터전과 기둥 위에 유럽의 도덕과 문화가 형성되었음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주일이면 몇 천, 몇 만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교회가 우리 사회에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지만 이 땅에서 진리의 터나 기둥역할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형사건이나 범죄가 터질 때마다 기독교인이 포함되지 않는 사건이 별로 없습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행위가 사회생활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교회생활 따로 하고 사회생활 따로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의 모습이 어디서나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어야 합니다. 남에게 기대하기보다는 색동가족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성을 구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색동가족 여러분!
여러분 때문에 평촌지역이 거룩해지고 우리나라가 깨끗하고 정직한 민족이 되리라는 비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색동교회가 창립되는 분명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끼리 모여서 좋아서 친교와 사랑을 나누는 수준이 아닌 지역과 민족을 섬기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색동교회가 개척되는 분명한 이유를 알고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 가는 칭찬받는 신앙공동체로서 새출발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색동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며 헌신하겠습니다.
신감독님의 귀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색동교회가 나아가면서 방향이 흔들릴때마다 나침반 삼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