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송산초등학교 23회 동기회모임은 10월 15일 고향땅 가례면 일준부채박물관에서 가졌다. 달초부터 행사를 알리는 재호의 문자가 바리바리 휴대폰에 쌓이는 걸 보고 서울 순희한테 전화 했더니 아들 수능 땜에 못 온다 하여 늦은 나이에 얻은 막내아들이니 얼마나 노심초사할까 싶어 다음을 기약하였다. 나 역시 보수교육과 잔치가 있었지만 유독 허전한 올 가을맞이를 일찌감치 동기회모임으로 정하였기에 11시30분 출발하여 부채박물관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1시였다. 공식 모임은 오후 6시, 둘레길 탐방을 가려면 1시까지 오라더니 주차장엔 차한대 없이 나락만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부랴부랴 재자한테 전화하니 서울 명동성당결혼식 참석 중이란다. 재호는 통화 중, 호수 전화는 등록이 안 되어 있고 마침 동네 아주머니가 나오시기에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길을 물어놓고 재호한테 다시 연락하니 태연이가 가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하였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고불고불 올라가니 아늑한 숲속에 부채박물관과 수목원이 함께 운영되고 있었다. 부산의 한 재력가 소유인 박물관 전시품은 모두 조선시대와 근대작가, 중국,일본의 진품으로 인사동거리에도 없는 희귀본도 다수 소장되어 있어 방송국에서도 찾아온다는 관리인의 설명이다. 문외한인 내 눈에도 추사 김정희, 고암 이응로, 소치 허백련, 허유 그리고 운보 김기창, 천경자 화백 등 다수의 낯설지 않은 이름이 보였다. 특히 조선시대 화려한 자수 부채, 조각보부채, 새의 깃털로 만든 화려함과 우아함이 돋보이는 부채, 거북이 껍질로 만든 장식용 부채 등 일일이 그 값어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가 전시 되어 있고 수목원의 규모 또한 대단하여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문화경험이 될듯하다.
2시쯤 태연,순상,강영숙,수연,덕제,희상,덕조,수원,형호,재호,윤석이와 함께 자굴산 둘레길 탐방을 나섰다. 둘레 길은 산림경영모델 숲 조성사업으로 만들어져 의령의 명물로 한창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중인데 우리는 자굴산과 한우산을 가르는 쇠목재 까지는 자동차로 오르고 완만한 길을 잠깐 오르니 계단이 나왔다. 나와 희상,수원,태연이는 멋모르고 직선으로 올라 30분만에, 다른 친구들은 재호의 안내를 받아 절터 샘으로 가는 둘레 길로 정상(해발 897m)에 도착하여 준비해간 푸짐한 간식으로 어울림의 시간을 가진 뒤 단체사진을 찍고 하산하였다. 직선코스로 오른 우리는 미련이 남아 순상,형호와 성질 급한 희상이를 설득하여 둘레 길의 묘미를 끝내 체험하였다. 불붙은 듯 자지러지게 붉게 물든 단풍, 미끈한 제 몸 훤하게 드러내어 눈길 머물게 하는 기암괴석, 하늘 향해 쭉 뻗은 나무에 요염한 자태로 매달린 다래덩굴, 봄이면 남 먼저 노란꽃에 생강 향 폴폴 풍기는 생강나무, 해마다 봄철이면 산나물 뜯으러 다닌다는 희상이가 첨 봤다는 얼룩무늬 몸통의 노각나무, 비바람 눈보라 세월의 때가 곱게 입혀진 자갈무더기 등 고향 산이라 그런지 모든 게 살갑게 다가왔다.
오후6시쯤 쇠목재에 도착하니 주변이 어둑하니 바람까지 불어 춥다. 지름길로 하산한 친구들은 기다리다 못해 먼저 출발하고 뒤쳐진 친구를 픽업하여 서둘러 가니 박물관식당에 호수,재호의 정성이 듬뿍 담긴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 맛있게 먹고 3층 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술잔에 이야기꽃을 담아 주거니 받거니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본격적인 재호의 진행으로 신임회장 호수가 전회장 윤석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태연이와 호수, 얼결에 나까지 23회의 축! 발전을 기원하는 건배제의를 하였다. 멋진 서울 사나이 박순상은 노래로 인사를 하고 매번 친구들의 선물을 준비하는 아기공룡 우현에겐 박수로 감사의뜻을 전했다. 드디어 광란의 밤이 시작되어 누구랄 것 없이 참으로 잘들 노는 거라 오늘밤 여기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어 까이, 연도의 노래 일편단심은 첨 들었는데 가사가 좋았어. 남식,수원,호연,두리,수연,덕제,덕조,예비시어머니 재순 조금 늦게 온 미자,종문,호청,영이,영숙, 뭐에 홀린 듯 신랑까지 버려두고 한달음에 달려온 재자, 일찌감치 숙소로 직행한 미꾸라지 종복이(종복아 참 정겨운 별명이다)막판에 호수의 하사 주 발렌타인21의 위력에 사생결단 노는 우릴 보고 밴드마스터가 영이한테 한다는 말이 이렇게 쉬지 않고 무식하게 뛰어노는 팀은 첨 봤다 하더라네. 더듬이로 영숙이한테 매타작 당한 윤석이 다음번엔 각오해야 할꺼라. 카메라맨으로 업무에 충실한 점잖은 형호, 명가수 재호의 목청은 언제 들어도 좋았어. 모두들 목숨 걸고 후회 없이 놀더니 새벽4시쯤 슬슬 한 두 명씩 2층 숙소로 내려갔다. 재자, 재호, 우현, 나, 한숨 자고 올라온 영이와 호수가 자리바꿈을 하고 이후 다섯 명은 지난추억 곱씹으며 6시까지 날밤을 샜다.
아침6시, 예정에 없던 한편의 연극이 시작되었다. 식사시간인 9시까지 잠깐 눈을 붙이자며 우현이가 먼저 2층으로 내려가 어느 방이 비었는지 확인을 하고 206호에 종복이 혼자 자니 그 방으로 가자하였다. 행사 때문에 바로 출발해야 하는 영이는 주차장까지 데려다줬으면 하는데 쌀쌀한 날씨에 밖은 컴컴하고 모두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선뜻 바래다주께 하는 친구가 없었다. 용량을 벗어난 추임새로 에너지를 소진한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아 2층 문틀에 기대어 시린 눈을 껌뻑이며 서있고 알코올이 머리까지 오른 우현이는 복도 끝 206호 앞에서 자꾸 들어오라 소리만 지르고, 재자는 위에서 팔을 휘저으며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206호에 가서 자면 된다.”는 동문서답 해주고, 답답한 영이가 어느 방에 있는지도 모르는 호수를 불러 달라한다. 그래서 내가 한참 잠들었을 텐데 못 깨운다 하니 “으이구 우현이 저 의리도 없이” 하더니 “우현아” 하고 부른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어어” 가방을 들고 쪼르르 뛰어온 우현이한테 영이가 “나좀 데려다 도” 하니 엉거주춤 서서 응 응 하고 있는데 위에서 재호가 덜렁덜렁 내려온다. 그걸 본 우현이 가방을 들고 냅다 206호로 가버리고 재호가 “1시간만 더 있으면 날이 밝잖아 그때가라” 했더니 영이가 “그러면 늦어 안 된다, 이래라도 와준 내가 안 고맙나” 생뚱맞은 대답에 재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1시간 먼저 가는 기나 안 온기나 똑같다”. 한마디 툭 던지더니 들고 있던 잠바를 꿰어 입고 “오이야 내가 데려다 주께, 가자 ” 하며 앞장서 내려갔다. 이 상황이 영이는 몹시 답답했을 데지만 나는 꼭 연출자인양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를 보는듯하여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이제 우리의 푸른 청춘은 옛말인가보다. 우현이는 부산 결혼식, 재자는 서울 결혼식, 재호는 행사 준비로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았을텐데 날밤을 샜으니 오죽 피곤했겠니? 영이야 네가 이해하여라.
사람은 일생을 보내는 동안 서로 교우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학교, 직장, 사회단체 등 각종 모임을 통해 맺어진 인간관계는 생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는데 그중에서 으뜸가는 모임은 단언컨대 초등학교 동기모임이 아닐까 싶다. 굳이 당나라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나이가 되면 고향이 그리워지고 또한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동기회모임에 가면 남녀를 불문하고 고향에 온 듯한 푸근함과 가족애 같은 애틋함이 있어 마냥 좋아 한다. 그뿐 아니라 어느 때 이 건 낡은 삽짝 문을 후다닥 뛰어들며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면 “오이야 내 새끼, 배고프제” 화들짝 반겨주시던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엄마가 있어 행복했던 어린시절 반추할 수 있고,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던 허물없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마당이 되어주는 동기회모임이야말로 우리들에게 최고의 무대인 것이다. 올해 참석치 못한 친구들아! 내년엔 두루 손잡고 꼭 오너라. 자신의 에너지로 건강한 삶 보낼 날 손꼽아보면 길면 20년, 짧으면 10여년밖에 남지 않았다. 사랑하는 친구들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 것을 대가 없이 노심초사 신경 쓰는 호수, 재호, 재자의 열정을 한번쯤 헤아려보고 역지사지로 내 몫이면 어떠할까 생각해보려무나. 우리 살아가면서 진정 필요한 게 무엇인지 허공을 향해 버려야 할 건 또 무엇인지 꽃잎은 왜 저리 어여쁘게 피는지 단풍은 어인일로 곱게 물들며 가슴이 이다지 시린 건 무슨 연유일까 간간이 넋두리도 하면서 행복한 시월 보내길 바란다.
첫댓글 김 시인의 후기 기다렸다 가슴에 와닿아 눈시울이 붉어지는건 세월을 탓해야 하겠지 그리고 채은(영이)아 미안타 다음엔 내가 바래다 줄께 기자야 고맙다이...
우현아 그날 네 연기가 얼마나 리얼했는지 모르지? 주연은 바로 너였어^^
일찍참석하지못해 미안하지만 그날의일정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후기를 올려준친구야!감사하구먼 왠지모르게 가을을타는듯 했는데 친구들보고 재호,호수가 차려놓은상에서 잘먹고 잘놀고 잠한숨도 안자고 왔는데,10월을 잘보낼수 있을것같다,친구들아!건강하여라~~~
우리가 이제 저물어가는 세월이 아쉬운 나이라 그래 오늘 비오는데 빵빵한 노래 한곡 부르고 일혀라
올해도 못가서 미안하다친구들아.재밌게 놀았겠지 .항상 수고해주는 기자.재호 호수.재자야.너거는 복받을끼다.매년 금방 동창회가 다가 오는데 이상하게 그때가 제일 바빠지네 내년에는 꼭 가도록 할께. 친구들아 건강하게 장수해라.
필석아 바쁜건 좋은거야,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아야지. 그래 그래 내년엔 얼굴 볼수 있겠지?
2011년 동창회 1박2일 여행문을 읽어보는 기분이다~~ 자굴산 산행정상에서 막걸리 소주 복분자주 켄맥 오징어 포와 마른안주 배와 포도 감 먹는 기분 지금도 생생하다 ~~2012년도에는 더멋진 산행을 위하여 준비 하겠노라 ^^*^^ 꼭 기역하여 만날수 있도록 하고^^ 김기자 회장 동기회 후기 읽는 친구는 내년에 아마도 모두 올겄같은 예감 넘넘 좋아서~~^^*^^용
그려 내년엔 더많이 와야지 친구들아 올해 자굴산 산행이 참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