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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인물
송철호 : 계리사 사무실 서기 사동
송영호 : 그의 동생, 상이 군인 치과 의사
송해호 : 그의 동생, 신문팔이 보안계 주임
송명숙 : 그의 누이 동생 수사계 주임
송혜옥 : 그의 딸 경찰관(A)
철호의 어머니 경찰관(B)
철호의 아내 경찰관(C)
오설희 : 여대생 식당 보이
박만수 : 상이 군인 택시 운전수(A)
강경식 : 상이 군인 택시 운전수(B)
곽진국 : 제대 군인 택시 운전수(C)
미리 : 여배우, 명숙의 동창 다방 마담
조감독 아파트 수위 영감
김성국 : 계리사 기타
미스 최 : 티이피스트
(전략)
#100. 경찰서 앞
허탈해서 나온 철호가 허공을 쳐다보고 섰다가 힘없이 걷는다.
#101. 빌딩 앞
여기까지 걸어온 철호. 사무실로 들어가려다 다시 걷는다.
#102. 철호의 집 앞
철호가 휘청거리고 골목을 접어드는데 어머니의 날카로운 "가자!" 소리.
그 소릴 듣자 철호의 눈에 눈물이 왈칵 솟으며 꽥――소리 지른다.
철호 : 가세요. 갈 수만 있다면 …….
#103. 철호의 방 안
철호가 아랫방에 들어서자 옷방 구석에서 고리짝을 뒤지고 있던 명숙이가 원망스럽게
명숙 : 오빤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슈.
철호는 들은 척도 않고 아랫목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명숙 : 어서 병원에 가 보세요.
철호 : 병원에라니?
명숙 : 언니가 위독해요.
철호 : …….
명숙 : 점심 때부터 진통이 시작되어 죽을 애를 다 쓰고 그만 어린애가 걸렸어요.
철호 : …….
명숙 : 지금쯤은 아마 애길 낳았는지.
철호가 부시시 일어나 담배를 붙여 물고 문을 연다.
명숙 : 오빠!
철호 : ……. (돌아본다.)
명숙 : 어딜 가세요?
철호 : …… 병원에.
명숙 : (답답해서) 어느 병원인지 아세요?
철호 : …… 참.
명숙 : 동대문 부인 병원 419호실.
명숙 : 오빠!
철호 : ……. (돌아선다.)
명숙 : 그냥 가기만 함 무슨 소용 있어요? 돈을 가져가셔야죠.
철호 : …… 돈?
명숙은 벽에 걸린 핸드백을 집어 든다.
철호는 얻어맞은 사람처럼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섰다. 뒷꿈치가 계란만큼이나 뚫어 진 명숙의 나일론 양말――.
명숙이가 만 환 뭉치를 내밀며
명숙 : 엣소요. 나 기저귀감 챙겨서 곧 갈게요.
철호도 돈뭉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받아 넣는다.
― O·L―
#104. 동대문 산부인과 복도
철호가 318호실 앞으로 휘청거리고 와서 조용히 노크한다.
이윽고 문이 열리면 텅――빈 실내를 간호원이 소독하고, 한 간호원이 철호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간호원 : 혹시 이 방에 입원 환자의 가족이신가요?
철호 : ……네.
간호원 : …….
철호 : …….
간호원 : 한 시간 좀 지났어요.
철호 : ……?……
간호원 : 부인과 과장실에 가 보세요 .
하고 문을 닫는다.
화석(化石) 같은 철호.
#105. 시체 안치실
철호가 유령처럼 걸어온다.
문 앞에 와서 손잡이를 잡다가 힘없이 놓고 돌아선다.
눈앞에 뽀얗게 흐린 채 거기 우두커니 서 있을 뿐――.
―O·L―
#106. 병원 정문 앞
철호가 나와서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정처 없이 걸어 본다.
#107. 거리
허탈한 상태로 걸어 가는 철호.
여기서 자신의 소리가 W한다.
소리 : (벽력 같은 소리로) 영호야! 그렇게나 살자면 이 형도 벌써 잘 살 수 있었단 말이다.
입은 찢어지고 눈에선 눈물이 사정없이 솟고 그러면서도 눈만은 정기(精氣)가 차서 앞을 정시(正視)하며――.
#108. 경찰서 앞
철호는 멍하니 서(署)를 바라보다가 다시 걷는다.
#109. 거리
철호의 사무실.
철호가 휘청거리고 와서 빌딩을 멍하니 올려보다가 또다시 걷는다.
#110. 다른 거리
문방구점, 라디오상, 사진관, 제과점.
그는 길 옆에 늘어선 가게의 진열장을 하나하나 기웃거리며 걷고 있다.
하나 철호의 눈에는 무엇인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어느 문 앞에 걸린 간판 앞에 우뚝 선다.
'○○ 치과' 그것을 쳐다보는 철호의 얼굴이 점점 찌푸려지며 손으로 볼을 움켜쥔다.
철호가 주머니에서 만 환을 꺼내 보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안으로 들어간다.
#111. 동 치과 안
앗!
하는 비명과 함께 의사가 집게를 들고 철호의 이를 뽑아 낸다.
의사 : 좀 아팠지요. 뿌리가 구부러져서…….
하며 뽑아든 이를 보인다.
철호가 침을 타구에 뱉는다. 나오는 피――.
의사가 계속해서 뽑은 자리를 치료하고 나서
의사 : 됐습니다. 한 삼십 분 후에 솜을 빼 버리슈.
철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고 나서
철호 : 이쪽을 마저 뽑아 주실까요?
의사 : 어금니를 한 번에 두 개씩 빼면 출혈이 심해서 안 됩니다.
철호 : 몽땅 뽑았으면 좋겠는데요.
의사 : 한쪽을 치료해가면서 뽑아야지 안 됩니다.
철호 : 그럴 새가 없습니다. 마악 쑤시는걸요.
의사가 주사기에 약을 넣으며 빙그레 웃는다.
의사 : 안 됩니다. 빈혈증이 일어나면 큰일나니까요. 자 벗으실까요.
하자 철호는 하는 수 없이 의자에서 일어선다.
#112. ○○ 치과 앞
치과에 나온 철호가 볼을 손끝으로 눌러 보면서 걸어간다.
#113. 거리
철호가 볼을 만지며 걸어온다.
그는 또 우뚝 선다. 다른 치과 앞이다. 그가 한참 생각다 들어가면
―O·L―
철호가 이번에는 양쪽 볼을 손으로 누르며 나온다.
그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입 안의 피를 뱉는다.
#114. 서울역 부근
여기까지 온 철호가 또 휴지를 꺼내서 피를 뱉는다. 오싹 몸을 떠는 철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이 때 거리에 전등이 들어온다. 눈앞이 환하게 밝아진다. 점점 흐려진다.
그는 또 한 번 오싹 몸을 떤다.
#115. 설렁탕집 안
휘청거리고 들어온 철호가
철호 : 설렁탕!
하고 의자에 쓰러진다.
철호가 또 휴지를 꺼내다가 힘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116. 그 집 앞
그 집 옆 골목으로 비틀거리고 나온 철호가 시궁창에 가서 쭈그리고 앉는다.
"왈칵" 쏟아져 나오는 피.
그는 저고리 소매로 입술을 닦으며 일어선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그는 휘청거리고 나가서는 지나가는 자동차를 세우고 던져지듯 털썩 차 안에 쓰러지자 택시는 구르기 시작한다.
#117. 자동차 안
조수 : 어디로 가시죠?
철호 : 해방촌!
자동차가 원을 그리며 돌자
철호 : 아냐. 동대문 부인 병원으로.
이번엔 반대로 커브를 돌리자
철호 : 아냐. 종로서로 가아!
운전수와 조수가 못마땅해서 힐끗 돌아본다.
#118. 동대문 부인과 산실
아이는 몇 번 앙! 앙! 거리더니 이내 그친다.
그 옆에 허탈한 상태에 빠진 명숙이가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앉아 있다.
여기에 W되는 명숙의 소리.
명숙 : 오빠 돌아오세요 빨리. 오빠는 늘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세상에서 젤 좋으시다고 하셨죠? 이 애도 곧 웃을 거에요. 방긋방긋 웃어야죠. 웃어야 하구 말구요. 또 웃도록 우리가 만들어 줘야죠.
#119. 경찰서 앞
택시가 와 선다.
#120. 자동차 안
조수가 뒤를 보며
조수 : 경찰섭니다.
혼수 상태의 철호가 눈을 뜨고 경찰서를 물끄러미 내다 보다가 뒤로 쓰러지며
철호 : 아니야. 가!
조수 : 손님 종로 경찰선데요.
철호 : 아니야. 가!
조수 : 어디로 갑니까?
철호 : 글쎄 가재두…….
조수 : 참 딱한 아저씨네.
철호 : …….
운전수가 자동차를 몰며 조수에게
운전수 : 취했나?
조수 : 그런가 봐요.
운전수 :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철호가 그 소리에 눈을 떴다가 스르르 감는다.
밤거리의 풍경이 쉴새없이 뒤로 흘러간다.
여기에 철호의 소리가 W한다.
철호E :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딘지 가긴 가야 하는데…….
이 때 네거리에 자동차가 벨 소리와 함께 선다.
조수 : (돌아보며) 어딜 가시죠?
철호가 의식이 몽롱해진 소리로
철호 : 가자…….
#121. 하늘
도시의 소음이 번져 가는 초저녁 하늘. 유성(流星)이 하나 길게 꼬리를 문다.
#122. 교차로
때르릉 벨이 울리자――신호가 켜진다.
철호가 탄 차도 목적지를 모르는 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행렬에 끼어서 멀리 멀리 사라져 간다. ( 본문에 수록된 부분은 전체 122장면 중 장면 100에서 마지막까지이다.)
<감상평>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는 <오발탄>.
그러나 검게 나오다가 갑자기 확 타버리는 식으로 안구를 괴롭히는 화면과 차마 알아듣기 어려운 대사는 영화를 보는 데에 상당한 인내심을 요할 정도이다.
한국영화 최고의 걸작이라는 작품이 저런 최악의 사태로 필름이 보존되어 있었단 말인가?
김홍준 감독의 설명에 의하면 그나마도 볼 수 있는게 다행이라고 하니, 하긴 할 말은 없다.
부산 영화제 때 정창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손가락>의 한국어 더빙 버전인 <철인>을 보며 비 내리는 화면에 경악하고, 지직거리는 잡소리에서 대사를 분별하기 위해 힘겨워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도 <철인>이 좀 더 화질은 좋았다. 젠장.
위에 적혀있듯이, 현재 남은 이 필름은 오리지널 네거티브도 아니고,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 출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문자막이 새겨져있는데, 알아듣기 힘든 대사 덕분에 오히려 영어도 못하면서 거꾸로 영어자막을 보고 상황을 유추해야 하는 정도였다. 가슴이 아프다. 어떻게 이 정도로 손상이 되었단 말인가.
오발탄이 박정희 정권당시 상영금지가 된 것은 그 내용이 너무나 전복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늙은 어머니가 외치는 "가자! 가자!"는 고향으로 가고싶다는 본 뜻 대신, 북한으로 가자는 용공성 멘트로 정권은 파악을 했고, 여기에 유현목 감독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반공이 국시가 되어선 안된다" 라고 한 말이 파장을 일으키며 그런 것이다. 아니, 이범선 작가도 이 소설을 쓸 당시 크리스찬 계열 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있었는데, 마지막 철호의 말 "어쩌면 나는 조물주의 오발탄일지도 모른다" 라는 이 말이 문제가 되어 교사에서 파면당했으니..이유는..전지전능한 신이 어찌 오발탄을 만드느냐 는 것이었다. 황당한 한국이다.
아무튼 영화 이야기를 조금만 하자면, 이미 예전부터 스토리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읽어본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표현되는 현실은 소설보다 너무나 암울하다. 철호(김진규)의 가족은 이미 파탄이 나 있다. 사실 난 이런 현실에 눈 돌리는 것이 너무나 싫다. 이런 리얼리즘은 너무나 처절해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아플 지경이다. 철호가 피를 흘리며 오발탄과 같은 짓을 할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이 소설이 쓰여지고,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박정희는 철호의 오발탄이 자신의 심장을 겨누지 않을까 착각을 했을 듯 하다. 그만큼 처절하고, 소름끼친다. 유현목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려낸다. 정말 지독하도록 잔인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참으로 미워하고 싶다. 불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잊혀질 수 없는 영화다. 역시, 걸작이라는 것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오발탄을 보며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