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름의 절정판인 아내와 느림의 미학을 견지해 온 나 사이에 이번 겨울 방학을 통
해 부부로 공동체를 이룬 것이 있다면 4번의 국내외 여행을 꼽겠다. 주말이면 신문
위크란에 테마식으로 게재되는 여행가이드나 우리나라 지도나 세계 지도를 보는 취
미를 가졌고,지금도 "북회귀선, 알제리, 앙골라, 카자흐스탄" 등 등 벽에 붙은 지구
촌 곳곳의 지명을 보면 무한한 상상력에 행복해 하는 나의 기이한 습관은 계속 이어
져 '저 도시는 밤이 되었겠구나,
누군가는 행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겠지'와 같은 사소한 그리움부터,
세계영토의 1/4이나 될 것같은 舊소련의 몰락이나 중국의 半자본성 확대 등등 자못
뉴스위크지 국제란에 있을 법한 내용까지......
하지만 누군가가 말했듯이 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언젠
가는 또 그 곳이 그리워 질 것이며 ~
- 1박 3일 (동경 올빼미 투어)라는 제명의 여행 -
출발은 금요일 밤 10:30까지 인천공항 국제청사에 도착. 비행기는 전일본항공ANA機
비행기 왕복료와 1일 호텔숙박비까지 1인당 32만원(엔화 3만 2천엔). 인천공항까지
자가용을 몰고가 하루 8000원인 장기주차 하기로 선택. 수속받고 설명듣고 비행기
에 오르기까지 아는 사람도 없고 일어도 유창하지 못했지만 가이드 없는 여행인데
도 걱정은 하나도 안됨.
왜냐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무책임한 발로에서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자만감"에
서 나온듯함 미리 알아본 동경의 기온은 영상 8 - 15도. 두꺼운 옷도 필요없이 간단
한 가방 하나씩 메고 산뜻하게 출발. 좋아. 냉정하게 일본을 보고 오자, 일본은 없
다와 일본은 있다 사이에 짧은 시간이지만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아 오고자 최종적으
로 선택한 여행이 아니었나 ?
승용차로 고속도로를 달린다면 부천에서 대전까지 걸리는 시간인 2시간 남짓하니 일
본 羽田(하네다)공항에 도착. 일본 스튜어디스의 작위적이지 않은 미소가 여행기간
내내 선입견으로 작용할까봐 일부러 굳은 표정의 인사. 아, 그 전날 3학년 쫑파티에
서 무리한 관계로1시간 남짓은 꿀맛의 수면속으로....
하네다 공항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우리 서울의 2호선 전철격인 긴자線 병송정(하마
마츠쪼)역에서 하차. 모노레일 속의 자리배치가 흥미롭더군. 좁은 공간을 2인용, 3
인용, 혹은 한 일자 모양 등 의자배치를 보니 정확하고 실속있는 설계를 한다는 일
본 냄새가 팍팍 느껴짐
2호선 긴자선을 2000엔에 티켓팅하면 우리가 머무르는 48시간동안 무제한으로 탈
수 있고 표 끊는 불편도 줄인다기에 선택. 돌아오면서 생각해 본 것인데 이것이야말
로 탁월한 선택이었음. 처음 환승하는데 좀 애를 먹었는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그들만의 친철에 간단한 단어 나열이나 漢字소통으로 무리없이 진행. 1정거장 가서
우리의 3호선 격인 에이단치요다線에 있는 도라이노몽(虎의 門)에 우리가 묵을 호
텔 도큐인이 있었음. 그 전에 24시간만 머물수 있는 호텔에서 체크인은 15:00이후라
고 해서 아내가 들어서 알고 있다는 새벽 장거리
구경을 가기로 합의. 쯔끼지라고 하는 부두가 재래시장 이었는데 약간 시간이 늦어
배에서어전 구경은 못했지만 돼지고기를 가늘고 넓게 썰어서 手打로 뽑아 말아주는
우동가게에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이 필시 한국의 매스컴에도 한 번은 나온 곳이라는
아내의 귀뜸에 나만650엔에 우동 한그릇 뚝딱. 지하철을 타러 달려가는 화이트 칼라
들도 잠깐 서서 국수 말아먹고 출근하는 생동감있던 쯔끼지. 먼저 자신감이 생김.
일본식 한자이긴 했지만 뜻이 통하는 표의문자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한 덕분에 지도
를 보고, 지하철을 타고 하는데 별 문제 없었음.
다시 2호선 긴자선을 타고 우리학교 일어 선생님에게 귀뜸해서 알아두었던
上野(우에다)공원으로 출발. 토요일- 주 5일제라서 그리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특이
한 점은 나이든 할머니나 할아버지들도 보기도 불편한 누런 갱지의 신문이나 잡지,
책들을 단정한 모습으로 앉아서 읽는 것이 옛날에 대학시절 일본어 교양강의 들을
때 흐르다가즈꼬라는 일본 여교수가 자신의 나라 독서율에 대해서 자랑하던 것이 공
치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됨.지도를 보니 우에다 공원근처에는 일본대학, 동경대학
등 일본의 유수한 대학들이 밀집된아카데믹한 거리였는데 카페에 차마시러 들어가
니 유난히 돋보기 안경 쓴 노인들이 저마다 읽을 거리를 손에 쥐고 독서하고 있는
모습들이 인상적.
그저그런 공원이겠지 하고 사전 지식도 없이 간 나로서는 우선 그 규모에 놀람.
동서양을 교묘히 혼합시켜 놓은 듯한 공원 분위기와 때이른 사쿠라가 수줍게 피어
있어서 일본이구나를 실감
동물원이나 박물관 일본문화예관 등이 즐비한 공원에서 뿜어대는 분수를 배경으로 한 컷.
공원 바깥쪽을 돌다가 우연히 국사책에서 눈에 익은 도쿠카와이에야스 사당을 발견.
무력으로 일본을 통일한 근대봉건제주 확립자 ? 이던가. 이 곳 저 곳에 한국인의 낙
서도 발견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한글로 선명히 남긴 어느 젊은이의 조국사랑.. 교환
학생으로 와 있다는 대학생의 힘을 빌려 약간의 설명을 듣고...
다시, 돌아오는 전철을 타고 숙소로 와서 여장을 풀다. 거미줄처럼 얽어진 동경의
지하철에 크게 놀라면서 저들의 그 치밀하고 정밀한 사고나 분석력 등이 여기저기
배여있음을 나름대로 확인. 일본도 대학입시는 예외가 아닌듯 유독 지하철에는 학원
광고가 많았고, 우리나라는 문예지가 안읽혀 난리지만 아직도 굳건하게 그 나라 사
람들의 지적욕구를 채워주고 있는 주간 문예지 광고로 뒤범벅된 지하철. 건물하나,
광고하나에도 어쩌면 세계 초경량의 초미니의 제품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저들의 미
적 심미안에 감탄.
호텔에서 잠시 쉬다 젊음의 거리라고 하는 신주큐로 출발. 그 때는 이미 지리가 눈
에 익어 걸어서 신바시역까지 가 바로 긴자선을 타고 감.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가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은 마치 중국 왕가위 영화의 촬영기법을 생각나게
함. 잠시도 정지라는 것이 없다는 듯이 부지런히 걷고 웃고 행복해 하던 저 재팬들
의 미래는 어떨까?라는 생각.
2만원이 주고 산 표가 아까워 동경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는 종합청사 45층에 오름 (저들이 패망한 1945년을 기억하기 위해 45층에 동경시내를 전망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배열한게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 틀리면 말고)
햇살은 있었으나 스모그 때문이지 투명한 동경구경은 못했고, 후지산이 보인다는 광
고판과는 다르게 위치만 확인. 만화영화 짱구에서 보았던 회전초밥집 방문. 한 접시
에 140엔. 먹은 수에 따라 계산하는 일본식 계산법도 재미있었음. 1박후 -
오늘 저녁 10시까지는 다시 하네다 공원에 도착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일정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임시합의문 작성. 오전에는 요코하마 방문. 오후에는 신주큐
나 시부야, 하라주큐 등 젊음의 거리를 다시 방문하기로... 9시에 먹은 호텔식당은
한국인들로 이글거렸지만 음식은 꽝. 11에 체크아웃. 바로 전철로 이동하여 우리의
인천과 여러가지로 흡사한 요코하마로 출발. 2호선 시나가와 역에서 경급선이라고
하는 우리로 말하면 국철인 듯 요코하마 역에 도착. 꼭 경인전철을 타고 있는 듯한
착각.
일요일이라 아이들 손잡고 교외로 나오는 사람들로 전철은 꽤 붐빔. 요코하마 역에
서 난처한 일 발생. 지도를 보니 항구쪽으로 가거나, 유명세를 타는 곳으로 가려면
환승이 필요했는데 역무원에게 내뱉은 일어가 잘 안통해
가지고 간 일어여행용회화책 응용하여 성공. 기쁨.
우리로 말하면 인천지하철로 환승한 셈. 요코하마에 도착하자 웅장한 건물이 즐비.
바닷물은 지척이었으나 국제회의관이니 박물관이니 멋진 건물들과 월미도 놀이공원
쯤으로 생각되는 공원. 잔디밭에서 맨발로 커피를 마시면서 행복을 호흡.
처음엔 눈에 안들어왔는데 벼룩시장의 좌판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 곳 발견. 10엔짜
리 아이들 블럭이나 자신이 메고 입고 했던 옷, 가방, 머리핀 등 여러가지 생필품들
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묶었고, 절대 가난해서가 아니라 재미로, 하나의 문화
를 창조하기 위해 웃고 매매하는 모습에서 또 하나의 일본을 맡다. 준 백화점에 가
서 본 물건은 모두 탐난다고 아내는 빙빙돌면서 구경에 여념이 없었지만 난 백화점
난간 의자에서 휴식나온 동경 젊은이들의 데이트 하는 모습과, 무슨 마라톤 대회가
열렸는지 자원봉사대가 질서있게 응원을 펼치던 경기를 구경하고 도시락 점심을 먹
은뒤 시부야로 출발.
한자로 보아서 계곡이름 같은데, 아뿔사 고풍스런 역사(驛舍) 뒤편은 명치신궁(?)
메이지유신과 관련이 있는 곳. 산을 끼고 있었음. 역 앞에는 100엔 샆으로 유명해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우리나라 대학로 비슷한 곳이 줄지어져 있고, 우리 아이
들 장난감 2개를 고르고
하마마츠쵸로 후퇴.
우동가게를 몇 대에 걸쳐 한다는 일본인들이라고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음식
적 주인들에게서도 먹물냄새가 나는 것 같은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하네다 도착전
마지막 일본의 미각을 느끼고자 들어간 하꼬방 같은 우동집의 두 평 남짓한 공간에
서 일본인들의 술자리를 구경하고 우리는 동경과 이별의 맛을 마셨다.
모노레일을 타고 하네다 공항으로 오는데 가는 빗발이 날리더니
한무리의 한국 관광객을 쏟아 놓은 일본항공기 모습을 보려고 창가에 서니 제법 굵
은 빗발이 유리창을 때리다. 막상 인천으로 출발하기 위해 이륙하는 비행기안에서
는 광풍이나 폭우라고 느껴질 정도로 험한 날씨로 변했으며, 3일간의 여독을 쓸어내
리던 잠이 깬 순간 한국의 상공에서 본 밤풍경은 기분좋은 새벽을 수놓아 가고 있었
다..
서양화 되어 있는 일본의 여성들이나 거리의 담배꽁초를 줍던 할아버지. 안전모를
반듯하게 쓰고 도로 공사를 깨끗이 하던 사람들. 활력이 넘치던 신주큐에서 만난 젊
은이들.남풍처럼 싱그럽던 요코하마에서의 반나절. 늘 지도만 보고 상상하던 내 맛
은 좀 식었지만 이 번 여행은 나에게 당분간 상상력을 빼앗아 갈 것이다.
2004년 2월 23일
카페 게시글
직업일기(교단일기)
교사 - 방학 - 여행 (일본기행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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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넘넘 부럽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