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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3,7동건물은 - 부동산 등기법 제 131조 제1행에 의해
서울특별시 중구 양동 188번지 송은파 명의로 된 것을 79년 10월 14일
증여인(송은파)의소유를 대한 예수교 장로회 무척산 기도원 교회에게
증여함. 소유권 이전 등기 10월 26일, 1543m
<1982년 12월... 군청직원 최선생이 너무나 법을 잘 알고 전적 기도원편에
서서 너무 충성되게 일을 봐주었다.
제 2차 불하를 또 신청하여서 매점에서부터 샘옆에 곡간까지 했다.
그러다가 군청에서 최선생에게 날 벼락이 내렸다.
최선생인 워낙 다급하니까 예수도 안믿는데 아이고 무척산 식구들 나
모가지 달아나게 됐으니 기도해 달라고 불신자도 기도의 효과는 믿고
있었다.
세 번째는 임야를 밭으로 명의 변경하는데도 무척산 같이 일하기 힘든
곳은 전국에서 유일한 것 같다.
공무원을 만날때마다 민망하도록 내가 말을 못 알아 들어서 언제나 군청,
면사무소, 양산 영림소 등 분명 합법 절차도 무척산만은 인정을 안해주고
괴롭혀서 부산동교회 김정득목사님과 부산망미제일교회 박광익목사님께서
아무리 바빠도 한번도 짜증을 내지 않고 늘 자기 일같이 봐주었다.
한번은 김해 군청에 일보고 늦게 시장에 가서 찬거리랑 7보따리를 들고
택시를 타고 삼거리에서 내렸다.
빚이 있는 기도원에서 택시를 대절 할 수는 없어 기본 요금 되는데서
내려서 버스를 기다렸다.
1시간후에 퇴근시간이라 만원버스를 보따리 일곱을 들고 탈 수 없어 포기
하고 다음 버스를 한시간반 기다렸다.
시골 버스는 정류장이 없어 기사맘 내키는데 선다. 저밑에 섰기에 보따리
6개 나르고 마지막 보따리 들고 오니까 버스가 홱 떠나 버린다.
누구를 탓하겠나 하늘을 쳐다보니 별이 초롱초롱 맑기도하다
내 나이 41세 초겨울에 하이힐 신고 바바리코트를 입고 이 무슨 꼴인가
생각하니 속상하고 약이 바짝 올라 미치겠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나님! 엄마! 나좀봐 이게 뭐야 안탈거야 앙앙
엉엉 인기척이 나면 조용, 사람이 사라지면 앙앙, 안타 안해 내가 미쳤어?
나 좀봐요 이냄새 나고 덜렁거리고 씻지도 않고 몸냄새에 술막걸리에다
싸구려 담배 피워대는 이 버스 내가 다시 타나 봐라 ... 한시간쯤 울었을까
달이 중천에 떳고 처음 지나간 버스가 다시 오다 보고 기사가 뛰어 내려와
서 "아이고 아가씨 아직도 못 갔능교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며 다시 태워
주었다.
그후 4년 또는 5년후에 생각해보니 그 악을 쓴것도 기도였을까 지나가는
트럭 자가용 누가 태워줘도 단 한번도 그 시골 버스 안탔다.
깜짝 놀랐다.
그후 1982년도에 표지현 원장님이 무척산에서 8월 집회 인도를 하셨는데
전기가 없어 자가 발전해서 예배 시간에만 전기 켰다가 10시엔 껐으나
펑펑펑 산이 떠나갈 듯 이상한 소리가 나다가 예배 도중에 피-익 하면서
전기가 꺼져서 집회에 광고를 했다.
팔백만원 있으면 전기를 놓을수 있다고.....
그 집회에서 헌금이 딱팔백만원 나와서 그해 10월 전기공사를 완공했다.
변압기를 기도원에 세우도록 계약했는데 업자가 힘들다는 이유로 그 당시
모은암 밑에 다 설치해서...지금 2005년에도 기도원은 전력이 모자라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차원찬 집사님이 절대 변압기를 기도원에 올려야 된다고...
계약대로 해야 된다고.... 소리지르고 난리인데 표원장님과 내가 너무
무식해서 업자편이 되서 변압기를 못 올렸는데 그것이 엄청난 손해인
것을 30년 지난 요즘에 후회를 한다.
우리가 팔백만원에 전기를 놓을때 모은암에도 전기를 쓰게 허락했다
그래서 돈을 좀 내라고 하니까 70만원만 준다.
그리고 전기를 지금까지 같이 사용하고 있다.
해가 바뀌고 모은암에 젊은 주지가 왔다.
기도원 길이 절 밑으로 되있었으나 절에서 길건너에 암자를 지으니
기도원이 마치 절마당으로 통과하는 격이 되었다.
그런데 기도원에 올라오는 성도들 중 할머니들이 절 가운데로 올라오니
무시 무시하고 뭔가 느낌이 이상하니까 절에서 물까지 얻어 먹고 나와서
조금 올라가서 절을 향해 우리 원수 마귀 쫒겨가기는 찬송을 부르고
"주여! 주여! 사탄아 물러가라"고 소리 지르니 젋은 주지가 얼마나
화가나겠나, 그래서 겨울에 절옆 언덕에 사다리 놓은 것을 다 부셔버리고
찬송 부르는 여집사 뺨을 때리고 급기야는 아무리 사과해도 올라 다니는
길을 막아 버렸다.
우리는 속수무책 울고만 있었다.
주지에게 싸우려 갈려고 준비하며 기도하는데 누가 옆에서 말해 주는것
같이 온유해라, 온유로 대하라는 음성이 들린 것 같았다.
이상하다. 그래서 싸우지 않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스님, 개도 나갈
구멍을 열어 주면서 때린다는데 무식한 몇몇 할머니 때문에 마음상하신
것 사과합니다하고 정중하게 사과를 하였다.
그러고 새로운 길을 만들때까지는 기도원길을 열어 달라고
스님에게 부탁을 하였다.
그러나 길을 낼 곳이 없다.
부산 동교회 목사님, 송종복, 배상연 장로님 여러 성도들이 울지 말라고
위로하고 기도원 동서남북을 다 돌아 다녀 보아도 그 중 제일 가까운
곳은 역시 구길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랬더니 그 주지께서 절외 직원들과 지금의 우리 길을 나무를 베고 풀을
깍으며 만들어 보더니 새 길을 이렇게 내면 훨씬 구길보다 높은 바위들이
있어 절경이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또 동교회 목사님, 장로님들이 와서 보시더니 "너무좋다. 이길
닦자"고 말하였다. 그런데 차원찬 집사님과 김현수 집사의 반대가 얼마나
심한지.....
한편에서는 길을닦자, 또 한편에서는 안된다 하니 결국 싸움이었다.
이 두 집사님은 모든 일에 사사건건 반대 안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안되면 어떡하느냐 계속 교인들 맞으며 다녀야 되겠냐" 하면서
악을 쓰고 울었다.
동교회 목사님, 장로님이 남이지만 저렇게 땀흘리며 바쁜시간을 내서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무척산 기도원 식구들이 이럴수 있나......
그러다 서울 영동교회 장로님이시고 서울대 교수이신 손봉호박사가
강사로 8월 집회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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