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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가장 맛이 좋은 감성돔 볼락 생선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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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여름철, 입맛 되살리고 원기 회복에 그만인 생선회
1년 중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는 하지(夏至, 21일)가 다가오면서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웃돌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이마와 목덜미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온몸이 나른하게 풀리는 게 기운이 하나도 없다. 진종일 자꾸만 밀려드는 갈증을 씻기 위해 얼음물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제법 잘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아도 입맛이 통 나지 않는다.
속풀이용 뜨거운 해장국 같은 음식을 후루룩 후루룩 먹으면 금세 속이 확 풀리면서 기운이 퐁퐁 솟아날 것도 같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절로 땀이 삐질 삐질 나는 이 무더운 여름철에 그 뜨거운 음식을 어찌 먹으랴. 그렇다고 세끼를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냉국수나 냉면 같은 면 종류의 음식만 먹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럴 때 어떤 음식이 좋을까. 따가운 땡볕에 시들시들해진 채소처럼 풀어져버린 몸의 기운도 북돋워주고, 입맛까지 한꺼번에 되살려주는 보약 같은 그런 음식은 없을까? 있다. 싱싱한 생선회다. 특히 생선회는 여름철 무더위에 지친 몸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것은 물론 까칠까칠한 입맛을 새롭게 돋구는데 제격이다.
생선회는 혈관의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혈관 및 순환기 계통의 성인병을 예방하고, 뇌의 기능을 활발하게 만들어 노인성 치매나 동맥경화, 고혈압, 심장혈관 관련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뛰어난 음식이다. 게다가 생선회에는 단백질의 일종인 콜라겐이 많이 들어 있어 피부미용에 좋으며, 아무리 자주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훌륭한 다이어트 식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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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끔하고 맛갈스럽게 차려져 나오는 밑반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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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갖가지 해산물이 밑반찬으로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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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선회의 원조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다
"생선회는 깻잎과 상추 등에 싸서 먹으면 회의 참맛을 느끼지 못하지예. 생선회와 채소는 따로 먹는 게 좋습니더. 그리고 자극성이 강한 마늘과 된장을 생선회와 함께 먹는 것도 혀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지예. 생선회 고유의 향과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간장에 고추냉이를 섞어 찍어 먹는 게 가장 좋습니더."
생선회 전문점 '경남횟집'. 창원시 상남동에 있는 이 집 대표 김대근(48) 씨는 "굴이나 우렁쉥이, 오징어 등 패류와 연체류는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것이 좋고, 지방이 많은 전어 등은 된장에 찍어 먹는 것이 좋다"고 귀띔한다.
김씨는 "생선회를 즐기는 일본 사람들이 장수하며 세계의 장수마을이 모두 바닷가에 있다"며 "생선회를 많이 먹는 일본사람보다 육식 위주의 서구인들의 발암율이 2배 이상 높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생선회는 질병예방치료와 정력강화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면서 "생선회와 곁들여 먹는 양배추는 고대 로마시대 때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할 정도로 약효가 뛰어나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가장 일본적이라고 여기고 있는 생선회의 원조는 중국이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앞에 공자가 쓴 <논어>의 향당편 보면 '음식은 정갈해야 하며, 회는 가늘어야 한다'라는 내용이 씌어져 있다는 것. 또한 우리나라도 조선시대로 접어들어 유교의 성리학을 정치이념으로 삼으면서 생선회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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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접시의 생선회가 예술품처럼 곱고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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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안의 감성돔과 볼락은 고소하게 쫄깃거리면서도 향긋한 맛이 그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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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선회는 남해안에서 잡히는 물고기가 으뜸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선회의 비린내를 없앤다며 횟감에 레몬즙을 뿌리는데, 그것은 잘못된 상식이지예. 싱싱한 생선회에 레몬즙을 뿌리면 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하고 독특한 맛만 없앨 뿐입니더. 하지만 생선회가 그리 싱싱하지 않을 경우에는 레몬즙을 뿌리면 신선도가 살아나는 효과를 볼 수도 있어예."
나그네가 주인인 김씨에게 "오늘은 어떤 생선회가 가장 싱싱하고 맛이 좋으냐"라고 묻자 김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은 감성돔과 볼락이 가장 물이 좋다"고 말한다. 이어 김씨는 "생선회는 뭐니뭐니 해도 남해안에서 잡히는 물고기가 최고"라며 "남해안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향이 아주 좋고 씹으면 씹을수록 쫄깃거리는 고소한 맛이 으뜸"이라고 못박는다.
"매일 새벽마다 통영에서 직송해온다"는 김씨에게 감성돔과 볼락을 반반씩 섞은 생선회(대, 7만원) 한 접시와 소주 두어 병을 시키자 밑반찬으로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미역국과 삶은 강낭콩, 양배추 샐러드, 먹기 좋게 얇게 빚은 삶은 소라, 알맹이를 빼낸 멍게 등을 먼저 내놓았다.
오랜만에 만난 고교 벗들과 소주잔을 부딪힌 뒤 멍게 한 점 입에 물자 향긋한 내음과 함께 씹으면 씹을수록 달착지근한 감칠맛이 혀끝에 맴돈다. 삶은 소리 한 점을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자 쫄깃거리면서도 고소하게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가끔 떠먹는 시원한 미역국과 양배추 샐러드의 맛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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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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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선회는 각종 암, 다이어트, 피부노화방지에 아주 좋은 음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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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찬 |
| 쫄깃쫄깃 입천장에서 살살 녹아 내리는 감성돔 볼락의 깊은 맛
"생선회 고유의 참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붉은 살 생선보다 흰 살 생선을 먼저 먹는 것이 순서지예. 흰 살 생선은 깔끔한 맛을 내고, 붉은 살 생선은 진한 맛을 내기 때문에 붉은 살을 먼저 먹으면 흰 살 생선회의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어예. 만약 붉은 살 생선을 먼저 먹었을 때는 생강을 약간 씹은 뒤에 흰 살 생선회를 먹으면 제 맛을 즐길 수 있어예."
벗들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워갈 때쯤 주인 김씨가 첫눈에 보기에도 푸짐하고 맛깔스럽게 보이는 생선회(감성돔과 볼락) 한 접시를 식탁 한가운데 올린다. 가지런하고 멋들어지게 썰어놓은 생선회를 그냥 집어먹기가 머쓱하다. 마치 누군가의 정성스런 손길이 곱게 빚어낸 예술품처럼 곱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다시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젓가락으로 생선회 한 점을 집어 고추냉이를 섞은 간장에 찍어 입에 넣자 입안 가득 향긋한 내음이 번지기 시작한다. 쫄깃쫄깃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회 맛이 맴도는 게 입천장에서 살살 녹아 내린다고 해야 할까. 잔잔하게 출렁이는 남녘바다의 속살을 은근슬쩍 훔쳐먹는 맛이라고 해야 할까.
생선회 된장에 찍어 소주 한 잔. 생선회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 한 잔. 다시 생선회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 소주 한 잔. 그렇게 골고루 찍어먹다 보니 어느새 푸짐하게 쌓여있던 생선회가 꼬리를 감추기 시작한다. 생선회를 푸짐하게 먹은 나그네와 벗들의 얼굴에 번져나가는 기분 좋은 미소. 그 기분 좋은 미소가 점점 깊어 가는 유월의 밤하늘에 박힌 별빛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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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에 나오는, 노릇노릇 구운 꽁치도 맛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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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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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혀끝에 착착 감기는 감성돔 볼락 드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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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찬 |
| 생선회 한 접시 시키면 해산물이 덤으로 나와
마지막으로 나오는 매콤한 매운탕 국물도 더부룩한 속이 확 풀릴 정도로 시원하다. 그 매운탕 국물에 쌀밥을 말아, 노릇노릇 잘 구워진 꽁치 살을 발라먹는 그 맛도 기막히다. 후식으로 나오는 개불을 참기름에 찍어먹는 맛은 말 그대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그 맛이다. 이 집의 또 하나의 재미는 생선회 한 접시를 시키면 여러 가지 해산물이 덤으로 잇따라 나온다는 것이다.
어릴 때 내 고향집이 있었던 창원시 상남동 동산마을 들머리에서 맛본 감성돔과 볼락의 그 기막힌 맛! 그 맛 또한 어릴 때 나그네 어머니의 손맛처럼 아련하게 혀끝에 착착 감기는 것을 나그네인들 어떡하랴. 어릴 때 내 고향집을 영원히 잊지 못하는 것처럼 그 감성돔과 볼락의 맛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을 또 어떡하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