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장수(長水)는 전라북도에 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우평현(雨平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고택현(高澤縣)으로 개칭하여 벽계군(壁溪郡: 長溪縣)에 속하였다. 고려 초에 장수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남원부(南原府)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391년(공양왕 3)에 장계감무(長溪監務)가 이 지역을 함께 다스렸다. 1392년(태조 1)에 장수현을 복구하여 장계현을 병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남원부 장수군(長水郡)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장수군이 되었다. 1979년에 장수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황씨(黃氏)의 도시조(都始祖) 황락(黃洛)은 중국 절강(浙江) 사람으로 후한의 유신(儒臣)이다. 28년(신라 유리왕 5)에 한(漢)나라 장군으로 교지국(交趾國, 베트남)에 사신으로 다녀오던 중 풍랑을 만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 월송정에 해당하는 안아진(安我鎭)에 표류하여 그곳에 정착, 세거한 것이 시초라 할 수 있다.
장수황씨(長水黃氏) 시조 황경(黃瓊)은 도시조 황락의 후손으로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부마(駙馬)로 벼슬은 시중(侍中)을 지냈다. 그는 장수군(長水君)에 봉해져 장수황씨의 시원이 되었던 황을고(黃乙古)의 아들이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알 수가 없어 후손들은 이조참의(吏曹參議)를 지낸 황석부(黃石富)를 일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 후 10세손 황공유(黃公有)는 고려 명종 때에 전중감(殿中監)으로 무신 이의방(李義方)의 난을 피해 고향인 장수로 내려가 터를 잡아 세거하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15세손 황감평(黃鑑平)이 후학을 위한 덕망있는 학자 였다는 것 외에는 18세손 황석부(黃石富)까지는 고증할 자료가 없다. 중시조 황석부는 황희(黃喜)의 증조부로 사후에 호조참의로 추증되었다. 그 후 후손들은 황석부를 기세조로 하고 장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분적종 및 분파
황갑고(黃甲古)는 기성군(箕城君)에 봉해져 평해황씨로, 황을고(黃乙古)는 장수군(長水君)에 봉해져 장수황씨로, 황병고(黃丙古)는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져 창원황씨로 각각 분적하였다고 한다.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호안공파(胡安公派), 소윤공파(少尹公派), 열성공파(烈成公派)로 나뉘어졌다.
주요 세거지
경기도 포천시 청산면 대전리
경기도 파주시 임진면 사취리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대상리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면 덕산리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유평리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면 황교리
황해도 연백군 송봉면 노정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장수황씨는 45,567가구 총 146,575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