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난 매우 바쁜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던때라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모토였던 때 였기 때문이다.
야근을 밥 먹듯이 당연한듯 했고 바쁜 시간 땜에 연습장 등록을 해 놓고도 거의 가질 못했다.
하지만 골프에 대한 생각은 전혀 바뀐게 없었으니 여전히 골프를 가잖은 운동으로 보고 있었다는 거다.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야구나 자치기 같은것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공이나 나무조각을 맞추는 운동이지만 골프는 가만히, 얌전히 '나를 때려주세요' 하고 앉아있는 공을 치는 매우 쉬우면서 다소 무료해보이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골프에 대한 생각이 나를 여전히 자신만만하게 만들었고 연습을 몇 번 하면 누구보다 골프를 잘 할 것 같았다.
연습장에 처음 가는 날
프로님이 날 타석에 세우시더니 "절대 풀스윙하지 마시고 1/4스윙으로 공을 똑바로 맞추는 연습을 하세요" 그러신다.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아 보이시는 프로님이 하라 하시니 하긴 하겠지만 이건 뭐 나를 너무 가볍게 보신다는 생각이 문뜩 든다.
TV에서 보니 모두 세게 때리던데 왜 나한텐 이렇게 치라하는 걸까? 혹시 나를 우습게 보는걸까? 아님 연습장을 쿠폰으로 끊었다고
기합을 주는 건가? 옆 타석에 예쁘게 생긴 여성회원도 있는데 자존심 구겨지게 왜 이걸 시키지? 타이거우즈만큼 멋진스윙으로 옆에서 나를 쳐다보는 여성팬들을 매료시키고 싶다구요.."
이러한 나의 바램은 공허한 메아리와 같았다. 절대 돌아오는 법이 없었으니까.
프로님은 "절대 풀스윙은 안됩니다.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어요."
아니 이건 또 얼마나 당황스런 소린가? 30중반에 쇠도 소화시킬 만큼 젊은 혈기와 당당한 체격을 자랑하던 나에게 프로님은 "다칠 수 있단다." 이건 완존 인격 무시다. 이깟 스윙 몇 번 한다고 다친다니...
어쨋든 프로님의 눈이 있었기에 시킨대로 고분고분 조신하게 공을 때려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때려주었다기보다 맞춰 주었다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요 골프채라는 것, 특히 아이언 이라는게 좀 요상하게 생겼다. 작대기같이 첨부터 끝까지 길기만 하면 훨씬 수월한텐데 끝에가서 많이 휜 것이 있고 적게 휜 것이 있다.
치기전에 정렬을 해보면 영 눈에 불편하게 생겼다.
이제는 골프채 디자인이 영 별로다. (누가 이 따위 모양으로 디자인 한거야. 영 불편하네..)
혼자 궁시렁 궁시렁 대면서 공을 맞춰주기 시작했다. 대부분 그렇듯이 1/4스윙에서는 공이 잘 맞아준다.
사실 뭐든지 아는만큼 보이기 마련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임팩트니 가속이니 그런건 없이 그저 공만 잘 맞추고 있었던 것을 "이 쉬운것을 시키다니" 하는 생각으로 어떡하면 이 단계를 건너뛸까 하는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번 나가본 연습장은 따분하고 지루하기 짝이없는 곳이었다. 1/4스윙만 계속 반복되었고 주변에서 나를 완전 초보로 아주아주 귀엽게 봐주고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내 실력에 금가는 일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야 부상의 위험이 있어 풀스윙을 안 시킨다 해도 30중반의 아직 젊은 나인데 1/4스윙을 시키는 것은 분명 쿠폰으로 연습장을 끊은 것에 대한 프로님의 복수일 것이다.
토요일 !
우리 회사일과 관련이 있는 기관에서 일하시던 김00 과장님이 "박사장. 인도어 함 가볼래?"하고 만나자고 한 날이다.
당시 회사가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안에 있었는데 옆에있던 대덕대학 내에 짧은 인도어 연습장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구력 5년 이상의 김과장님은 기량과 골프입담은 과히 최고였다. 나를 보자마자 시범을 보이면서 엄청난 레슨을 퍼붓기 시작했다.
"박사장 그립은 말이야. 욜케 잡으면 페이드, 욜케 잡으면 드로우고..스탠스는 욜케 서고.."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하지만 모르면서도 김과장님의 박식함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전염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 내가 바라던 레슨은 바로 이런 것이쥐.. 프로님은 너무 간단한 것만 시키시니 날 몰라봐 주시는 거야..
김과장님이 고맙기까지 했다.
"나를 나의 운동신경을 진심으로 높이 사주고 게시는거다. 1/4스윙 같은건 내 수준에 맞지 않음을 미리 아시고 바로 고급레슨으로 들어가 주신 게다."
감사한 김과장님의 레슨 후 길었던 레슨이 계면쩍었던지 드라이버를 건네주신다. "박사장 함쳐봐"
이야~ 역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연습장 프로님은 절대 드라이버 같은건 아직 잡을 생각조차 말랬는데 김과장님은 역시 나의 진가를 알아주시는 게다. '과장님 고맙습니다 제가 꼭 멀리 쳐서 절 인정해주신 댓가를 롱게스트로 보여드릴게요'
타석에 들어서자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삼국지에 나와 있지 않던가. 그래 정말 멋진 샷으로 김과장님의 레슨에 보은하리라...ㅎㅎ
내 힘으로 봤을 때 멀리칠게 분명하고 또 멀리치면 골프채가 도망갈 수 있으니 그립을 세게 꽉 잡고 스탠스를 견고하게 하여 타석에 섰다. 내 인생의 첫번째 풀스윙, 그것도 드라이버 스윙을 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도래한 것이란 말이다.
으흐흐흐~~
욕심이 난다. 파란 그물을 넘실넘실 넘겨 쫘~~~~악 하고 솟구치는 그런 빨래줄 타구!
옆에서 힐끗힐끗 보던 사람들과 레슨을 해 주던 김과장님의 입에서 '헉" 소리가 나도록 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우습게 보였던 골프 아니었던가..나의 천부적인 소질로 모두를 놀라게 해 주리라.
"깡~~~"
불꽃이 일었다. 얼마나 세게 맞았길래 그리 쎈 불꽃이 인 것일까? 어쩌면 불꽃과 더불어 약간의 화약냄새도 난 것 같았다.
공은 이미 시야를 벗어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내 스윙이 너무 빨라 공이 순간 시야에서 사라져 그물망 밖으로
공간이동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역시 난 골프에 소질이 있어!" 흐뭇했다. 비록 짧은 찰나와 같은 시간이었으나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탈진한 느낌. 격정적인 섹스후 느끼는 나른한 권태감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별거 아니네"
김과장님을 홀낏 봤다. 눈이 엄청 커졌다. 내 공이 너무 멀리 간 것이리라.. 그래도 그렇지 정말 눈이 너무 커졌다. 원래 큰 눈이 두배는 더 커졌고 아직도 동공확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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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다.
드라이버가 아까보다 무지 무지 가볍다.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후의 느낌이 이런걸까?
아래를 봤다.
어??
드라이버 헤드가 없다. 그렇다. 드라이버 헤드가 어디론가 도망가고 난 샤프트라고 하는 작대기만 들고 있었던 거다.
이런~
그럼 아까의 불꽃은 다 뭐란 말이야?
그건 땅을 심하게 쳐서 드라이버 금속부분에서 튄 불꽃이란다. 어렴풋이 맡았던 화약냄새도 바로 강한 마찰열로 발생한 것이었다.
금속의 마찰로 생긴 냄새를 난 화약냄새로 착각을 한 것이다.
에고 에고~~
옆에서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큭큭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린다.
김과장님의 눈은 커질 대로 다 커져 '저게 얼마짜리 드라이번데'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을 잠시 본 것 같다.
그 후 한동안 김과장님은 인도어에 날 데려가지 않으셨다. 나 또한 델고 가 달라고 말한적이 없었다.
김과장님이 쓰는 드라이버 작대기(샤프트) 값이 무지 비싸다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 후 인고의 연습이 지속되었으니..
(재미있나요? 답글 달아주시면 담에 3탄 또 나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