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마주하니 내 노래해야겠네 2011.12.28
어제 올린 ‘조조의 운명 순환’에 관한 글은 사실 副産物(부산물)이었다. 조조가 남긴 對酒當歌(대주당가)란 名詩(명시)가 생각나 찾아 감상하다보니 우연히 쓰게 된 글이었다.
술과 마주하니 내 노래해야겠네,
우리의 삶이란 사실 얼마나 되리?
아침이슬과 같이 짧은 삶일진대
지난 날 돌이키니 힘든 날이 더 많았네,
이에 슬픔이 일어 북받치는 이 마음
근심어린 생각일랑 떨쳐내기 어렵구나,
어떻게 이 시름을 풀어낼 수 있으리?
그저 술밖에 없으리니...
對酒當歌 人生幾何 (대주당가 인생기하)
譬如朝露 去日苦多 (비여조로 거일고다)
慨當以慷 憂思難忘 (개당이강 우사난망)
何以解優 唯有杜康 (하이해우 유유두강)
慷慨(강개)한 맛으로 가득한 시의 앞부분을 잠깐 소개해보았다.
젊은 시절 누구나 그렇듯이 호호당 역시 꽤나 ‘센티’했다. 다행히 한문을 좀 배웠던지라 상당한 客氣(객기)를 부려서 중국 唐詩(당시) 선집 중에서 불멸의 고전인 “唐詩三百首(당시삼백수)”를 몽땅 암송하다시피 했다.
법대생이었으니 응당 고시공부를 해야 했었지만 1970 년대 중반 당시 나는 박정희 독재라는 암울한 시대를 핑계 삼아 하고픈 마음 전혀 없었고, ‘당시삼백수’와 영시 선집인 노튼 앤솔로지(The Norton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를 맹목적으로 열심히 외우고 다녔었다.
책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같은 책을 반복 암송하는 것은 실로 큰 공부가 되었고 평생 내가 시를 즐길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주었다. 최근 다양한 학습법이 소개되고 있지만 내 보기에 대충 다 헛된 거라 여긴다. 뭐니 해도 공부는 暗記(암기) 또는 暗誦(암송)이 가장 효과가 있다고 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우습다.
중국 시의 맛을 정말 알았던 것도 아니요, 영시를 음미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폼을 잡기 위함이었다. 쇼펜하우어나 니체와 같은 이상한 사상가들의 책도 대충 읽고 있었고, 법대생 레이블을 달고 漢詩(한시)와 英詩(영시) 좀 암송할 줄 알지, 나름 키도 되고 미모도 되고 해서 그것을 밑천삼아 온통 연애 사업에 몰두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돈도 중요하지만 역시 멋이 없으면 재미가 없는 법.
그런데 솔직히 20 대 나이에 무슨 멋을 알았으리. 그저 개멋을 부렸던 것인데 그 또한 사실 그닥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진짜 멋을 내려면 역시 ‘개멋’ 또는 ‘헛멋’부터 연습해야 할 게 아닌가!
기본적으로 멋이란 육체의 맛이 좀 가야 진국이 우러나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줄이면 ‘맛이 좀 가야 멋이 나오는 법’이다. (이 말 기억해두셔도 좋으리라!)
멋과 맛에 대한 잠깐의 철학은 접어두고 이제 본론으로 슬슬 들어가 보자.
이제야 본론이라고? 하지 마시길, 호호당은 원래 하고픈 얘기를 늦게 꺼내는 사람이다. 경박하고 빠름을 앞세우는 오늘의 세상이라 深重(심중)한 느림으로 대응하고픈 청개구리 기질 탓이다.
하고자 하는 얘기는 조조의 對酒當歌(대주당가)란 저 시가 지어진 시점, 즉 조조의 운명과 관련해서 살펴보면 정말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사이드 길로 빠져보자.
요즘 한창 잘 나가는 뮤지컬 배우가 조승우이다. 조승우는 영화배우이기도 하다. 정말 재능이 뛰어나고 매력 덩어리이다.
乙木(을목)의 날에 태어난 조승우는 1980 년생이지만 바닥운은 태어나기 5 년 전인 1975 乙卯(을묘)년이었다. 그러니 성장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본다.
財運(재운)은 언제나 바닥에서 24 년 뒤에 찾아온다. 그러니 1975 년에 24 년을 더하면 1999 년이다. 그리고 1999 년에 있었던 일이 바로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 출연한 것이었다. 이게 조승우가 인기 스타로 가는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그가 영화배우로서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해왔지만 그 중 가장 대표작을 뽑으라고 한다면 어떤 영화였을까?
이것을 그의 운세를 보면 금방 가려낼 수 있다.
그의 운세로 볼 때 氣(기)의 절정인 지점, 즉 立秋(입추)는 2005 년이었으니 그해 영화는 ‘말아톤’이었고, 다시 가장 힘이 좋을 때는 2007 년을 전후한 시점이니 2006 년의 ‘타짜’였다.
하지만 조승우가 앞으로도 배우로 활동할 것이니 가장 원숙한 연기를 보여줄 시기는 2017 년 무렵이 될 것이다.
이런 예를 드는 까닭은 예술가의 작품에 있어서도 시운에 따라 각기 다른 맛과 향취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武威(무위)를 떨친 영웅 조조가 남긴 이 對酒當歌(대주당가)란 시를 그 자체로만 감상하는 것도 물론 재미가 있지만 그의 운세와 연관을 지어 살펴보면 작자인 조조의 당시 마음과 생각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시에 담긴 정서를 더 깊은 경지에서 이해하고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조가 對酒當歌(대주당가)를 읊었을 무렵은 적벽대전을 앞두고 있을 무렵이었다. 한 번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만 한다면 천하를 一統(일통)할 수 있는 최고의 시점이었다.
지난 수십년간 전장을 누비며 수 없이 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긴 조조로서 상당한 感慨(감개)가 있었으리라.
이제 한판이면 끝이 난다는 생각, 그리고 전날을 돌이켜볼 때 여기에 오기까지 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참고 견뎌야 했던가 하는 생각 등등 실로 수많은 것들이 가슴 속을 채웠으리라.
그러나 아시다시피 적벽대전은 조조의 무참한 패배로 끝이 났다. 하지만 그로 인해 조조가 망한 것은 아니었고 천하통일의 대업이 일단 좌절된 정도였다.
적벽대전이 있던 해는 서기 208 년 戊子(무자)년의 일이었고, 조조의 운세 상으로 본격 겨울이 시작되는 小雪(소설)이었으니, 조조의 운세는 사실상 이로서 상승세가 끝난 셈이었다.
따라서 인생 최고의 자리와 시점에서 조조가 내뱉은 시가 바로 이 對酒當歌(대주당가)였음이다.
그런 까락으로 천신만고 끝에 큰 성취를 이룬 자의 자부도 있고 아울러 약간의 불안감도 서려있다. 그리고 더 큰 것을 욕심내는 조조의 조바심도 들어있는 시라 하겠다.
이 조조의 시만 아니라 여러 뛰어난 시인과 화가, 예술가들의 작품 역시 그들의 운세와 연관을 지어 살펴보면 그 작품 속에 깃든 정서와 생각들을 보다 深度(심도)있게 음미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운명학으로 예술가의 내밀한 속을 들어가 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재미있지 않은가 말이다.
[출처]<a href='http://www.hohodang.com/?bbs/view.php?id=free_style&no=727' target='_blank'>호호당 블로그</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