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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부 대륙의 손잡이
1. 회오리바람
2. 안양천 산책로
3. 유리창
4. 촛불시위를 보다
5. 길
6. 마누라
7. 관조
8. 피아노2
9. 피아노3
10. 혀1
11. 혀2
12. 장애인
13. 쓰레기 옆을 지나며
14. 酒's
15. 홍어
16. 촛불
17. 독도
18. 컴퓨터에게
19. 서울
20. 밥 한그릇
21. 비극
22. 소의 눈
23. 우주선
24. 故박재헌선생 10주기 추도시
25. 돈
26. 그래프의 연주
27. 술
28. 대륙의 손잡이
회오리바람
한줌 바람이
흙먼지를 끌어안고
빙글빙글 나선을 그리며
춤추듯 지나갑니다
저리 늘씬한 몸매를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공중의 낙엽 하나가
무희의 손끝 되어 돌다가
풀썩 주저앉습니다
그건
바람도 그 자태에 넋을 잃어
그녀를 풀밭에 누인 까닭입니다
역시 끼 있는 바람인가 봅니다
세상이
끼의 산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안양천 산책로
1.
저녁을 먹은 후
안양천을 산책하려 할 때
맨 먼저 진한 내음의 풀꽃들이
내 심신을 검문한 후
입장을 잠정 허락합니다
2.
칡넝굴이 등정 중이고
강아지 풀밭은 보리밭
갈대밭은 수수밭입니다
풀벌레들 합창이
도시의 소음을 이기고
내 귀를 점령 해 버립니다
3.
가로등 불빛이 벌떼 같지만
모든 걸 제치고
별빛만을 찾아 오랜만에
별들과 눈을 맞춰 봅니다
4.
갑자기 나온 두꺼비
바람의 안무를 무시하고
꿈벅꿈벅 겁 모르고 기어갑니다
여인네들의 유일한 일탈일까요
엄마와 아들의 데이트
팔이 높이 올라가니 보폭이 커지고
보는 이의 가슴도 넓도들 해 집니다
5.
돌다리!
두드릴 필요 없이 건넙니다
어둠 짙어 가는데 저기 작은 바위
하마처럼 멱을 감는 듯
버들치들이 간질이어
몸을 긁적이는 듯.
6.
애들이 쏘아 올리는 폭죽.
긴 세월 준비하고 태어나
어둑한 하늘에 잠시
꽃수를 놓고 산화해버린
어느 시인의 얘기일까요
그렇게 살다간 사람들을
뇌리에 떠올려보다
돌아 올 냇물에 고이 보내 드립니다
7.
먼 고향의 깊은 강 보다
가까이 있는 이 냇물과 산책로가
지금의 내겐 더 소중합니다.
휠체어 하나
이 곳 품을 더듬으며 저기
바쁘게 팔을 움직이고 있군요
8.
도심 속에서 어렵게 소생된
안양천 산책로.
길포장과 도시의 불빛만 빼면
어릴 적 외갓집 가던 길을
쏘옥 빼닮았습니다
저기 인덕원 다리 위쯤 외할머니께서
꼭 기다리고 계실 것만 같습니다
유리창窓
불구덩
지나고서야
맑게 섰다
평생 수행修行도
나처럼은 맑지 못해
큰스님도 다비에 들고
너에게도
저만치
火口가 기다린다
촛불시위를 보다
어떤 불꽃이건 무슨 상관이랴 만
우리가 성화를 받들어 뛰는 것은
마니산에서 채화됐다는 사실이고
저 촛불시위를 묵중히 보는 것은
하나 하나가 저들 심장에서
채화 됐다는 사실이다
촛불이 별처럼 모여 은하가 된
저 곳에 내 별 하나 끼어있지 못함은
내 요즘 심지 없이 사는 반증일 게다
오늘은 밤을 새워
꾸겨진 종이심지라도 심장 깊숙 박아
불꽃 이글거리는 시 한편 피워보자고
하얀 종이 앞에 앉는다
그예 재떨이엔 꽁초만 쌓이고
마지막 타는 꽁초를 눈여겨보다
불꽃도 없이 주변을 더럽히는 이것
은근히 독기를 뿜어대며
죄 사랑 멋대로 망가뜨리는 이 몹쓸 것
내게서 채화 된 것이 아니냐!
나는 그만 치가 떨려 필을 던지고 만다
길
비포장 도로를
차가 달린다
꼬불탕 구불탕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풍파에 휘청이다
요철이 심한 길, 코를 씩씩 불며
흙먼지 덮어쓰고
박히며 솟구치며 달리다가, 겨우
누군가 닦아 놓았을
넓고 편안한 길로 들어선다
속도가 난다
아까 달려 온 길의 수배를
짧은 시간에 그가 달린다
빛이 가듯
거침없이 달릴수록
부복하여 간다
마누라
옜다 하고
돈 줘 본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글쎄
오늘도 어김없이
변변한 저녁상이 나온다
희한하다
관조觀照
내
조명 몇 개 걸어 놓고 멀리서 보니
해라는 등잔 아래 지구가
몸을 뒤틀며
고양이 제 꼬리 잡으려는 듯
급히도 자전을 하는구나
격랑이 일고 태풍이 치도록
미치게 도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몸에
털어 낼 게 있는 모양이다
피아노2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말렸는데.
피아노가 한 삼백년은 묵었다지
그 정도면 여우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듯
아들을 물고늘어질 턱이 있나
주야로 아들의 가슴팍을 해머로 두들겼다
저음 라를 칠 수밖에 없는 八字에
곧 바로 고음 도를 내려치니
해머의 태풍에 집안의 모든 것, 혹은
없는 지폐도 창 밖으로 사정없이
날아갔다 우편물로 되돌아와 쌓였다
이젠 날아 갈 것조차 없어
아들의 해머가 여우를 두들긴다
오늘도 역시나
귀갓길의 내 귀에 멀찌감치
피아노 소리가 먼저 들려 버리니
피아노3
깊은 밤.
피아노의 커다란 주리에
재갈을 물리고, 쉿
조용히 울으라고 한다
화음은 묵사발
고음도 저음도 없다
그저, 달그닥 달그닥
온 몸을 뒤트는 짐승.
신음은
벽을 타고
바닥을 타고
염통의 판막을 건들며 지나간다
밀폐된 방 한 칸
못 들여주는 애비.
이렇다 저렇단 말 없이, 이내
잠에 골아 떨어진 척 한다
혀1
사랑한다
그 말 한마디
전달했을 뿐인데
이게 웬 횡재
쪼옥
쪽쪽
우주의 단 맛이
몽땅 내게로 온다
혀2
맨 처음 고민을 안겨준 한마디
'눈이 밝아져 하나님 같이 되리니'
배암의 혀를 따르다 몸에 배인 S자의 길.
어차피 떨어진 고통, 노래로 달래던가
하던 사랑 공기처럼 물처럼 시로 녹이며
절정을 찾아야지 입다물면 수졸도 없는 법.
혀는 가위 같잖아 무엇을 재단해도
들통이 나 어떤 이는 모르쇠를 채우거나
봄 없는 동면에 들기도 하더라만
내 뭉툭한 혀가 어쩌다 서툰 뱀춤을 추고
허기져 지면의 논조라도 주워 먹을라치면
'모든 권세와 영광을' 이런 손에 쥘 듯
우아한 말들의 출처가 궁금했더니
오늘 지음의 양복깃 뱃지에 새겨진 펜촉
그 끝 갈라진 혀를 뚫어지게 쳐다 보다
아, 저건 우리의 혀. 이미 갈라져 있었구나
내 혀끝을 몇 번이고 깨물어 보는 것이다
장애인
1.
마누라의 쪼들린 손바닥 앞에
옜다라는 말 못하고
알았어라는 말만 하는 나.
꼭 부산에 내려갈 일이 생겼다
외삼촌 부음이라 마누란들 어쩔 수 없어
미리 끊어 온 1人 왕복열차 표.
삼은 언니 장애인 카드로 끊어 온 반 표.
표 검사는 안 한 대요 애껴 써요.
갑자기 장애인이 된 나, 차 타기 전
끝내 일반 표로 바꾸고 말았다
2.
잘 댕겨 왔소? 하는
마누라의 손바닥 위에
남은 돈을 대충 챙겨 올리고, 됐지?
마누라는 영원히 돈 몇 만원 번 셈.
그래도 내 주머니 빳빳한 기세가 있는 것은
늘 베풀기만 하신 외숙모께서 또
와중에 차비를 넣어 주신 것, 그도 넉넉히.
등 등 그런 저런 말 다 못한 나.
주머니의 풀세가 시들할 무렵
끝내 소통의 장애를 일으키고 말았다
쓰레기 옆을 지나며
늦은 밤
골목 입구 전봇대 밑.
한 때 기세 있게
알맹이를 감쌌을 껍데기들
풀끼 잃은 쓰레기로 나앉아 있다.
시간의 날금 씨금이 겹치는 자리
등 굽은 하얀 껍데기도 하나
마침 쪼그려 앉아, 동 병 상 련.
지나간 걸 찾기란 요원하다
손으로 과거를 쓸어주며
주섬주섬 현재를 챙겨 묶는다.
묶인 것들
다시 알맹이가 되고
묶는 당신도 다시
알맹이 있는 껍데기가 된
그 뒷모습
푸르스름한 달빛 아래
몇 개의 알을 품은 큰고니 같아
지나던 왜소한 그림자도
허우대를 키우며
제 집 대문의 초인종
힘껏 누른다
酒's
술집과 술집사이 빈 가게.
책대여점이 버티다 빠져나간 자릴
통유리에 X자가 지키고 있었다
O를 눈이 멀게 기다리면서
분식점, 세 비싸다고 X
부동산, 아직 시기상조라고 X
미장원, 내부수리비 많이 들겠다며 X
고깃집, 광우병 땜에 한번 생각해 보자며 X
며칠 전 많은 목재가 쌓이더니
빛 한 점 새잖게 통나무처럼 바뀐 전면.
오아시스에 거품 넘치는 잔이
네온으로 도드라지고
블랙홀 같은 까만 간판엔
입술처럼 빨간 상호
酒's
그것은 O ?
그것은 있고 또 있어도 O O O ?
걱정 말라
유별나게 반짝인다
홍어
언젠가 옆 설비가게에서
족발을 맛있게 얻어먹고
얼마 전 그 옆 사진관에서
옻닭을 오지게 얻어먹었지.
어젠 건너 컴퓨터 가게에서
양미리에 소주 기울이며 취토록 얻어먹고
나도 한 턱 내야지 내야지 했었는데
오늘
마누라 덕분에 일거에 恨을 푸는가 싶다
마누라가 찜솥 가득
애간장 톡톡 쏘는 홍어앳국을 끓였거든
나는 속 상한 일 있어
가겟방에서 뜨겁게 한 그릇 쏘이고
마누라는 옆 사람들을 가게에
비좁게 불러들여 무슨 잔치라고
한 대접씩 앵겨 홍어처럼 엎드려들 있다
좋다면
죽은 몸 두엄에서 또 죽어
제 몸 썩혀서라도 톡톡 쏘고야 가는
알싸한 홍어 맛 좀 보시오
전에 없이 내 입은 째지고
한사람 한사람 한 좀 풀었다 싶을 즈음
사람들이 깔고 앉은 신문에 내 눈길이 박힌다
죽기도 전에
썩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찬 신문.
홍어는
썩어서도 헤엄치는 우리를 톡톡 쏘며 가는 구나
썩어서도 죽지 않고 활개치는 우리의 구린 구석
얼얼 쏘며 가는 구나
이 정도 쏘이는 것에 우린 이력이 났는가
외려 시원타고 또 한 그릇
촛불
정전, 캄캄한 밤 촛불을 켠다
어둠 속 서서히 드러나는 사물들
전등불보단 못해도 그래 이 정도
1촉광이면 충분하다
내 눈도 적응을 하고
적당한 밝기에 오히려
졸작도 하나 건진다
하얀 몸을 스스로 태워
고향집 홀로 지키며
두 손 모아 자식 발 앞
빌고 비는 어머니 같은,
전깃불보다 더 밝은,
알 수 없는 빛
우리, 보고도 못 보는 것.
다시 환해진 전깃불.
음양의 억지 교합으로 인 불꽃.
휘황한 것들의 세상 범람으로
우리 어딘론가 바삐 휩쓸려 간다
그 곳이 어쩌면
1촉광보다 더 어두운
독도
결국 침몰될 일본열도가
탈출의 디딤돌로 독도를 넘보는가.
극한의 처지라도 그러면 안되지
그건 도적질.
평소의 믿음으로 손 좀 잡아달라며
살아갈 길 물어 온다면
독도의 등대
동방의 빛 우리 지혜로
목숨만은 살아 갈길 밝혀 주련만
그 행실에 천지조화도 물들어
열도침몰 더 빨리 오리.
생떼 쓸 때마다 땅 밑 더 요동을 치고
대륙을 바라보며 독도를 탐내나
세상의 부리와 발톱이
전과자의 범접을 용서치 않으리.
훗날, 자업자득 열도 침몰에
그래도 우린 거센 풍랑을 뚫고
죄 있을지언정 생명이라고
그들을 하나하나 건져주겠지?
따스하고 정 많은 우리 한민족
그 진한 인류애를 부디 망가지지 않게 하라
컴퓨터에게
내가 갔다 와야할 곳을
네가 빛의 속도로 갔다 와선
화면에다가
있는 것 없는 것 다 풀어놓는다
암만 그래도 궁금한 건
그 곳 정원의 나무들 잘 있더냐
그 곳 자판기의 커피 값은 그대로더냐
전엔 거기 간다는 핑계로
바람 많이 쑀었는데
그 때가 차라리 좋았었는데
서류교부를 기다리는 동안
풀밭에 앉아 커피 한 잔에
담배 한 대 피울 적, 풀꽃들
또 그 봄 나비들은 잘 있더냐 말이다
서울
아침 햇살에 창들이 꽃처럼 피고
당신의 얼굴도 그처럼 보얗다.
더블 노트로 맨 넥타이에
푼더분해 보이는 당신이
으리으리한 꽃대 속 대리 의자에 앉아
직위가 승강하는 엘리베이터 쪽을
안구가 건조하게끔 바라본다
점심메뉴가 줄을 서서 고민하는
일수 명함이 바람수제비 뜨는 거리를 지나
아량의 손잡이가 고장 난
저 밑 계단 끝 글월 文자로 엎드린
밑바닥 풍경을 지날 때까지
당신은 한 닢 아량을 던질까 하다
어느새 지나치고 만다
밤의 땅밑이 낮보다 현란해
윈저17을 비우고 나온 당신은
위장에서 넘친 것들의 곁을 지나
핑크 빛 낚싯밥을 바라만 보았는데
어느새 마지노 선을 넘고 있었다
대리의 대리가 대리에게 맡길 셈치고
밥 한 그릇
목적을 잊은 모임의
회식이 끝난 자리에
둘이 먹고도 남을 고기와
손 안 댄 밥 한 그릇이 말라가고
커피 찐한 농지꺼리들
하나 둘씩 2차를 향해 일어선다
식당 한 기둥을 짊어진 TV에선
혜자 누나가, 만원이면
굶주리는 아프리카 어린 한 명
한 달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한 끼에 백 원 꼴 밖에 안 된다고,
갈급한 상황을 조용조용 말한다
내가 방금 밥 백 그릇쯤
먹어치웠다는 걸 문득 깨단하고
이 밥 한 상, 저기서 백 그릇 되게 하는
그게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생각할 때
목적 잃고 뚜껑 열린 밥 한 그릇
허연 밥알 치켜 뜬 채 멀어진다
비극
바람 소리가 들렸다
궁금했다. 그래서 왔다
수억대의 경쟁을 뚫고
그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한 컷 한 컷 펼쳐지는 세상.
맥 놓고 봐야 하는, 그리곤
강물에 휩쓸려 어디론가 가야 하는
결국 과거가 파먹는
그 곳으로 가야 하는
그렇게 될 일인데, 오고 말았다
궁금할 것도 없었는데
짧은 한 컷도 없었을 텐데
이 희극 볼 필요도 없었을 텐데
내가 출연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래도 나, 여기 '있음'에
누군가 나의 희극을 본다는 것.
그걸 내가 알고 간다는 것.
그게 나은가?
소의 눈
눈을 보면
그 존재의 탐욕을 가늠할 수 있던가
고향의 밤하늘처럼 깊은 소의 눈망울.
내 눈과 부딪친 눈쌈마저
분쟁의 씨앗 될라 한 풀 내리깔며
힘도 거구도 모든 걸 맡기겠다는
백기를 든 포로 중에 포로 같아
머슴 중에 상머슴 같아
세상과의 눈쌈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군림을 원하고 탐했던가
오한이 느껴지는 몸서리
죄 많은 내 눈길 들어 먼 산을 바라보니
평생 풀지 못할 매듭들이 산적되어
도저히 지우지 못할 화석이 되고, 그 탐욕
가장 진실해야 할 시 한 수에마저
서린
우주선
널 붙잡는 인력引力이
꼭 가지 말라는 건 아니다
그저 내 품안에 두고픈 심정이었을 뿐이다
네가 발버둥치며 떠나지만
내 품이 싫어서가 아니란 걸 안다
넓은 객지를 주유하다
작지만 따스한 어미 품이 더 넓다는 것을
알고 돌아오는 새끼처럼
너는 꼭
잘 돌아오고 말아야 한다
故박재헌 선생 10주기 추도시
우리들 곁에 늘
한 그루 든든한 거목으로 계셨었는데
어느 날
그 때의 하늘나라에 쓸 재목으로
너무 딱 맞아, 이르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셨나 봐요.
이 곳에도 할 일은 많았지만
그 곳 일이 더 급했나 봐요.
사람들은 처음에 슬퍼했지만
지금은 그 뜻을 잘 알기에
슬퍼하지 만은 않아요.
님의 뒤를 이어
성경이 찬흠이가 최선을 다 하고 있고
그들의 당찬 어머니가 뭐든
잘 이겨내고 있지요.
주위에서 마음을 써 주지만
어디 당신의
그 빈자리만큼이나 되겠어요?
나도 주위의 한 사람으로써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어떤 이유로든
슬픔까지도 감사해야만 할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이지요.
그 분 가까이에 계시니 말씀 좀 해주세요.
여기 이러 이러한, 아직 재목이 아니 되는
이렇게 살다가 거기에 가면
어떤 쓰임새가 될까 두려워하는
그런 사람들 있으니,
언젠가 쓰실 재목으로
부실하지 않게 용도에 맞는
탄탄한 버팀목이 되게 해 달라고요.
우리들 개개의 사정을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여길 내려다보시니 다 아시겠지만
찬흠이의 앞길도 봐 주시고
성경이 시집갈 땐 꼭 오셔서
손잡고 입장하세요.
지금은 추운 때입니다.
이 곳이 추우면 그 곳도 춥겠지요.
부디 추위를 잘 이겨내시고
천국에서 맡은 일
열심히 하고 계시길 바랍니다.
('07.1.13)
돈
별들이 모여 산다
새들이 모여 산다
사람이 모여 산다
외로운 건 시려
서로 몸 부비며
모이어서 산다
우리, 도시로 도시로 몰려 살 듯
돈도 돈 있는 곳으로 몰려
몸 부비며 살려 한다
내 저고리 안주머니
달랑, 번호 늦은
신권 한 장
외롬!
견디다 견디다 못 해
뛰쳐나온다
그래프의 연주
친구가 건네주며 들어보라는 명곡이
하늘을 찌르더니 급락했다 다시 솟고
큰 음폭
해머가 되어
세상을 두들긴다
누군가 그런 음폭 그래프에다 그린다
지하와 마천루를 급경사로 오가는 해머.
먼데서
구급차 경보음
도플러효과로 다가온다
술
세상을
물이 한 번 쓸고 가고
이젠 불이 기다린다.
물 속에서
대륙의 손잡이
韓여사가 TV로
베이징올림픽을 보며
부침개를 부친다
대륙처럼 넓은
프라이팬이 열을 받는다
작은 손잡일 요리조리
여인이 잡고
살푼 들어 뒤집자, 부침개
노릿노릿 익어가는 금메달
손잡이의 조종에 대륙이 들썩인다
손잡이처럼 튀어나온 한반도
그 임자가
잘 요리한 금메달
상 위에 올려지고
여인은 또 손잡이와 일체가 된다
---------------------------------보류-----------------
침묵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며
강물이 흘러간다
바닥의 사금들은
사금사금 밀리어
강가로 나오고
강물은 침묵을
지키며 흘러간다
사금은 모이어 정제되고
웅변의 볼 큰 입안에서
금니로 빛을 냅니다
'침묵은 금이다' 라며
번쩍번쩍 빛을 냅니다
침묵하는 강이
침묵만 하는 게 아니네요
바닥의 사금들을
사금사금 밀어내어
한 데 모아 정제하고
고픈자의 몸을 빌려, 금빛을
섬광처럼 토할 때가 있네요
공원의 둔덕
진흙 발린 짱돌이
햇살 받으며 더욱 노랗게
'침묵은 금이다' 라고 말하네요.
말마따나 사금 한 톨이라도 되려면
침묵들이 지나온 강바닥을
먼저 기어 봐야 되겠지요
------------------------------
잠수
세상에선
잠수로 죽고
가상에선
잠수로 산다
5-8
대한 지도
할랑한 청바지
빨간 저고리에
칭칭 매인 옷고름 언제 풀리나
덩치보다 큰 보따리 머리에 이고
골치아프다고 던져버릴 수 없어
갈데 까지 이고 간다
태초부터 모범생이었을까
맡겨진 숙제에 끈질긴 궁리는 곰처럼
자는 듯 가고있는 범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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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게
궁륭으로 울을 쳐
우리 날개를 펼치는데
전혀 지장이 없네
깊고
두텁게 감싸도
다감한 그 무게
우리 모르고 사네
울 밖의 떠돌이
실족이 있을라
나는 땀, 말없이 가끔
젖은 수건을 짤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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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아침
엊너녁 파티의 황홀함이
노을 빛보다 진했다
잔 부딪는 소리는
파도소리를 무색케 했다
밤하늘에 놓은 불꽃이
별빛을 가릴 때
곳곳에 이변이 일고
취한 밤이 새벽을 밴 채
제 때 일어나질 않는다
페달을 뒤로 밟아
이탈한 체인을 끼울 때 처럼
긴 어둠의 터널
그래도 어딘가 오고 있을
맑은 아침,
난산이라면 힘을 주자
괜히 바보처럼
엊저녁이 너무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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巫女
시원하게 물들여진 쪽빛 하늘에
오늘은 비둘기 같은 구름이 흐르고
하지만 어제는
하늘과 땅을 줄기차게 잇는
비의 춤이 있었고
거리는 복잡했으며 한 여인이
엉클어진 머리에 맨발로
우산도 없이 비의 춤을 안무하고 있을 때
누군가 옆에서 그랬다
대뇌가 풀린 여자라고......
지하에서 산다고......
그렇더라도
가로수와 풀꽃들은 힐끔
하늘과 땅을 이어 보려고 애 쓰는
그녀의 신끼 있는 눈빛에 따라
춤을 추며 동참을 했다
오늘은 비둘기 같은 구름의 깃털 사이로
터쳐나오는 햇살의 밝기가
깃발 삐죽이 꽂힌 지하에서 비손하다 나와
탈혼 된 듯
먼 산만 쳐다보는 그녀에겐
너무 강렬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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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머니
내 속 주머니는
汚주머니
내 곁 주머니는
아주머니.
세상 주머니는
詩주머니
어느 주머니도
날 놓지 않아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매여 살 때
胡주머니가 젤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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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넘기
쉼 없이 운행하는 동그라미.
누군가 쉽게 넘으려다
길바닥에 나딩구는 신세 되었다
바쁘고 힘들어도
회로를 침범하면 넘어지는 줄넘기.
앞뒤좌우 살펴가며 길게 살 일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아니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그렇게 되어 간다.
나 같은 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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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2.
제 밑으로 세월 같은 물
어찌할 수 없이 흘려 보내며
다리는 이 마을과 저 마을을 꼬옥 붙들고
신신 당부한다. 어여
오명가명
사랑하며 살으라고
찔레향님아 건너와라
플라타나스가 일으킨
바람돌아 건너가라
시원찮은 다리들아
다리 위를 오명가명
벌어진 간격일랑 좁히거라
세월이 다리 밑의 물처럼 흐른단다
그래, 다리 밑으론 세월 같은 물이 흘러.
가버리면 영 못 오는 세월이 흘러.
오명가명 못하는 세월일 바엔
과속은 금물이라 다리는 생각했어.
그래서 다리의 다리가 현재를 떠받치며
묵직한 자세로 유속을 감시하지.
세월이란 게 그 강물처럼 흐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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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
쪼그려 앉은 호돌이의
급한 한 무데기
마뿌리 같이 생긴 것.
너무 힘 줬나, 어디로 흘러가
아직 못 찾았고
한 숨 돌려 푸근히
한라 한 통.
가쁜 마렴증 가시자 씰룩
가파, 마라 떨구고
이어 한 점 찔끔
작아서 얕게 잠긴 것.
말랑해 보였나
황사몸통 붉은 쎄가
입맛 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