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끔말|성모님을 사랑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둘째는 성모께서 우리들의 인자하신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성 베르나르도는 "성모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여 낳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간절히 구하시고 우리를 마음에 품어 생각하시는 것이 어머니 같으시고,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계실 때 성모께서 친히 그것을 보시고 거룩하신 그 마음이 어찌나 슬프고 아프셨는지, 마치 우리를 낳으시는 어머니의 산고와 같으셨다. 이제 성모께서는 하늘 나라에 계셔서 더욱 우리를 사랑하시니, 어찌 사랑으로써 사랑을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셋째는 성모께서 갖가지 아름다우심과 좋으심을 가지시고, 또 그공덕과 지위가 매우 크고 높으시어, 세상에 계실 때에는 그 깨끗하심과 아름다우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셨으며 사람의 사욕을 소멸하게 하셨고, 이제 천상에 계시어 더욱 아름답고 좋으심으로 우리를 지극히 즐겁게 하시고, 또 우리와 함께 영원한 복락을 누리기를 지극히 원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마음이 비록 돌같이 굳으나, 어찌 성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맺음말|성모님을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이니, 그러면 사랑하는 방법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 이에 대하여 성 이냐시오는 사도 성 요한의 말씀 (1요한 3,18) 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빈말로써만 사랑할것이 아니라 마땅히 행실로써 사랑하여야 참사랑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들이 본분을 다하여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여 예수님의 공로를 저버리지 않으면, 이것이 성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니, 이렇게 함으로써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지극히 궁핍하여 성모께 드릴 것이 없으나 성모님의 원의대로 우리 육신의 오관과 영혼의 삼사(三司)12)를 다해 사랑하올 성모께 전구하여 예수님께 바쳐 드리기를 구한다면, 이는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맞아 성모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
"사랑하올 어머니, 저희를 위하여빌어 주소서."
응: 사랑하올 어머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덕행 실천]자기를 성모께 바칠것.
[기도 지향]성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많아지도록 기도합시다.
12)삼사( 三司)는 영혼의 세 가지 관능(官能)을 일컫는 말로, 명오(明悟, 지혜), 기함(記含,기억), 애욕(愛慾, 사랑)을 가리킨다.
성인 사적|성모께서 아름다우심을 나타내심
옛날에 한 신부가 있었다. 그는 성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모께 한 번만이라도 나타나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에 성모께서 한 천사를 보내시어 다음과 같이 이르게 하셨다. "네가 감히 성모님이 나타나 주시기를 바라니,만일 성모님을 뵈오면 두 눈이 멀게 되 것이다." 신부가 대답하기를 "제가 진실로 성모님을 뵈옵고자 원하오니 눈이 비록 멀지라도 좋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말을 듣고 천사는 떠나갔다. 신부는 다시금 '만일 두 눈이 다 멀면 미사를 드리지 못할 것이요,선행을 하지 못할 것이다. 성모께서 나타나 보이실 때에 한 눈은 감고 한 눈만 뜨고 보아 한 눈만 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과연 성모께서 나타나 보이실 때 그는 한 눈만 뜨고 성모님의 아름답고 좋으심을 한 번만 보았는데, 그 즐거움이 비할 데가 앖었다. 그래서 그는 '나머지 한 쪽도 떠서 성모님을 뵙는 영광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고 생각하고 즉시 두 눈을 다 뜨니, 성모께서 문득 보이지 않으시고 한 쪽 눈만 멀었다. 이에 눈물을 흘리며 "진실로 어리석도다. 한 눈을 어디다 쓰겠는가? 차라리 성모님을 뵈옵고 두 눈이 다 머는 것이 좋겠다" 하고는 성모께 다시 나타나 주시기를 구하니 성모께서 나타나 보이셨다. 그런데 성한 눈이 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에 먼 눈까지 다시 밝아졌다. 신부가 성모님을 사랑하여 차라리 두 눈이 다 멀지언정 성모님을 뵈옵기를 간절히 원한 까닭에, 성모께서 특별히 은혜를 내려 주신 것이다.
'성모호칭기도'와 한두 가지 기도문을 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