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은 문화유산의 해와 개관 15주년을 맞이하여
전통문화의 계승 및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재조명하기 위해
1997년 5월 전통정원 희원(熙園)을 개원하였다.
희원은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전통정원의 멋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속에 내재된 원리를 삶의 뿌리로 읽어냈던
우리 조상들의 미의식이 정원 곳곳에 깃들어 있다.
현대조각품으로 즐비했던 기존의 정원을 손질해
전통정원 조형미의 근원인 "차경(借景)의 원리"를 바탕으로 옛 지형을 복원하고
정자,연못,담장,석단,계곡 등 건축요소를 최대한 살린 희원은
나무 와 꽃 그리고 민중과 가까이 있었던 장승과 석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정원과 건물이 때론 숨겨지고 때론 드러나는 유연한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 그 정취에 흠뻑 빠질 수 있다.
또한 호암미술관에 전시된 불교미술을 통해 불교문화를 접해보고,
오원 장승업과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등의 그림에 심취하며,
동양미의 극치인 고려청자와 우리나라에서만 제작된 분청사기,
고아한 질감의 하얀 백자를 보며
내 작은 양식을 한 차원 높일 수 있기에 나는 더 이곳을 좋아한다.
[희원 입구의 자작나무 길]
희원으로 가는 길은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마성T.G를 지나면 길 양쪽으로 수만 그루의 벚나무와 은행나무가 심어져
봄 가을에 하양과 노랑 물결을 이루고 철쭉도 질세라 붉은 빛을 토해 낸다.
산길을 휘돌아 에버랜드로 빠져 들어가다보면
자작나무 길이 참 운치가 있다.
여행을 할 때 하얀 자작나무를 보고 신기해 한적은 있지만
에버랜드에서 자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흥은 아주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봄부터 겨울까지 돋보이는 나무가 자작나무다.
봄에는 물 오르는 신록의 상연미와, 여름에는 그 푸르름이,
가을엔 황금색으로 물드는 황엽의 풍정이 특유의 우아한 자연경관을 조성하며,
겨울에는 눈꽃 핀 자태가 어찌 그리 고운지...
지리산 구절리를 지날때나 태백산 입구를 차를 몰고 달릴 때
황금색으로 물든 자작나무 잎은 황색 바다를 이루고
뽀얀 껍질로 감싸인 줄기는 미인의 각선미를 보는듯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었다.
바라보노라면 아, 하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자태와 위세가
산속의 귀족인양 너무나 당당하고 우아하다.
[자작나무]
탈 때 "타닥타닥" 소리가 나 자작나무라 이름한 나무.
설백의 수피를 가져 숲속의 귀족이요 가인이며 여왕으로 불리는 이 나무는
강원도 이북의 높은 산에 많이 자라는 그리 흔하지 않은 나무였는데
요즘 정원수,가로수,조림수로 심어져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어 더 없이 좋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하얀 자작나무 숲.
그리고 영화 '차이꼽스끼'에서 자작나무 숲길을 달리는 마차는
지금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작은 바람에도 자작나무는 흔들리고
작은 햇살에도 자작나무 잎은 밝은 떨림으로 감사를 표한다.
아, 저리도 하얗게 빛나는 줄기와,
저리도 우아하게 반짝이는 나뭇잎의 아름다움을
나는 많이 사랑할 것 같다.
[희원 Guide map]
희원은 에버랜드 윗쪽에 조성한 한국식 전통정원으로
호암미술관의 마당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희원(熙園)은 크게 호숫가에 조성된 석인의 길과 수변광장,
관음정이 있는 작은 정원 소원(小園)이 있으며,
희원의 주인격으로 법원지와 호암정과 계류가 흐르는 주정(主庭)과,
읍청문과 월대(月臺)가 있고 양대(暘臺)라 하는 미술관 앞 너른 뜰과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앉은, 화계의 정원 후원(後園)과
세계의 거장 부르델의 작품을 전시한 부르델조각공원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 3대 전통정원을 꼽는다면
보길도의 세연정, 담양의 소쇄원, 영양의 서석지를 꼽을 수 있겠으며
희원은 이들 정원의 장점들을 두루 참고 하여 지었다.
희원의 전체적인 구조는 한국정원의 교과서인 창덕궁 비원을 중심으로 삼았고,
입구의 보화문은 덕수궁 유현문을 본떴다.
진입로의 죽림과 매림은 별서정원(別墅庭園)의 대표격인
담양 소쇄원에서 모티브를 땄다.
꽃담의 길상무늬는 경복궁 자경전의 굴뚝,
후원은 창덕궁 낙선재의 화계를 원형으로 했고,
연못은 경북 영양 서석지, 석축은 영주 부석사의 것이 모태다.
[자연과 어우러진 고아한 석등]
오늘날 우리의 전통정원은 그 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침체해 있다.
이에 조경학박사 이유직 교수는 희원은 단순히 기존 정원을 베끼는 차원을 넘어
전통의 모티브를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정원의 미래지향적인 출발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2만 여평의 너른 땅에 전통정원의 배치를 재현하고
정원을 둘러싼 풍경과 조화시킨 것은
우리의 것을 찾으려는 호암미술관의 현대적 해석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희원의 곳곳에는 약 450여 점의 석조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동안 호암미술관이 수집해 온 신라시대의 석탑을 비롯하여
이름없는 석공이 만들어낸 불상,돌장승,돌확 등 귀중한 석조물들이 있으며
그중 분묘석물이 400여점으로
문무석인과 돌장승 등의 석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석양,석호,석마,망주석,석상의 다리,장명등,석주 등이 있다.
불교석물은 30여점으로 불보살상,석탑,부도,석등,석조 등이 있고
건축물의 부속물인 계단석,우물석,효자비,비석의 귀부 등이 있으며
옛 선비들이 정신수양의 대상으로 삼았던
매,난,국,죽 등 사군자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다양한 자생화초들이
정원 곳곳에 자라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보화문]
문(門)은 출입에 쓰이는 건축 구조물을 말한다.
즉 하나의 공간적 영역을 이루는 경계와
그 영역에 이르기 위한 통로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래서 문은 독립적인 구조물이라기보다는 담,벽 등의 경계요소와 병존할 때
그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아름다운 것을 모아 후대에 보존하라는 의미의 보화문. 그 정갈함이 돋보인다.
덕수궁의 유현문을 본따 전돌로 쌓아 올린 대문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품위가 있고 자태가 아름답다.
유현문은 조선왕궁의 화담(花墻) 중에서도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경사진 지형에 따라 담장의 높낮음에 절묘한 변화를 주었으며
붉은 벽돌로 두 줄의 퇴를 둘러 그 안에 완자무늬를 조형하고
윗 부분 좌우에 구름속에 생동하는 운용문(雲龍文)이 장식되어 화려하다.
[한겨울의 죽림(竹林)과 매림(梅林)]
주 출입구인 보화문을 들어서면 죽림(竹林)과 매림(梅林)이 우거지고
작고 귀여운 돌장승 60쌍이 화단에 배치되어 있다.
장승이 놓인 곳은 원래 대나무 숲이었다.
사대부 집에서 서쪽에 대숲을 안배하는 전통에 따라
미술관 서쪽인 이곳에 대나무를 심었는데,
다른 지역보다 추운 용인 지역의 특성으로 대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자
매화로 수종을 바꾸고 있다.
매화는 고난과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선각자를 표상한다.
녹색이 무르익는 계절이 아닌지라 숲이라 하기엔 아직 울창함이 덜하지만
한겨울의 댓잎은 그 연한 파릇함이 정겹기만 하다.
구불구불한 오솔길 옆으로 대숲이 미세한 소리를 내어 심금을 울리는데
숨은 듯 작은 몸을 들이밀고 있는 벅수들의 정겨운 표정이
댓바람 소리와 어우러져 한층 더 운치를 자아낸다.
봄이면 고사리며 송악 등 우리풀들의 소박한 미소는
마치 선경으로 이어지는 관문인 듯
대숲의 은자적 풍모를 돋보이게 한다.
[장승(벅수)]
벅수는 장승의 또다른 이름으로
경상도,전라도,제주도 해안지방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벅수는 원래 마을 공동체의 신앙대상물로 질병과 귀신을 쫓고
마을이나 사찰입구 성문 앞 등에 세워 경계를 표시하거나 이정표 또는
수호신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민중들의 삶과 함께 해왔는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얼굴 표정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들녘이나 마을 어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에
민중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만들어진 벅수는
처처의 심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동자승,할아버지벅수,할머니벅수 등은 우리 자화상같은 이미지요,
통방울 눈, 오똑한 코, 꽉 다문 입 등에서 보여지는
해학과 냉소, 엄격함과 인자함 등은
서민의 얼굴이자 희노애락의 감정표현인 것이다.
뿐만아니라 형태에서 보여지는 과감한 강조와 생략,
경쾌하고 단순한 작업은 조각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간정(間庭)]
매림속 흐드러지게 피어난 야생화에 취하고
풀숲에 묻혀 간신히 고개내민 작은 장승을 보며 좁은 죽림길을 천천히 돌아들면,
담과 담 사이에 조성된 간정(間庭)이다.
이름 그대로 '사이(間)'를 이어주는 좁은 정원으로
이 곳이 있어 소원으로 가는 단조로움이 사뭇 여유로워지는데
겨울엔 한적하던 이곳이,
봄이 오고 여름이 다 가도록
눈 부시게 하얀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피고 져 풍성하다.
[小園의 觀音亭과 秋香池]
이름모를 꽃들이 자잘하니 발가에 다가와 인사하는 간정을 지나면,
小園.. 작은 정원이다.
소원은 이곳 가실리(稼室里)의 옛 지형을 상고(詳考)하여 되살린 산자락 끝에
석가산(石假山)과 화계(花階)를 쌓고 철쭉과 괴석(怪石)을 배치했는데,
마당 오른쪽엔 자연석들이 멋스럽게 놓인 연못이 자리를 틀고
연못가엔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난듯 예쁜 정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둘러보면 정자와 연못 그리고 화계가 각각 주변 경관을 의지하면서
서로 숨겨주고 드러내주는 차경의 원리를 잘 따르고 있어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풍긴다.
관음정(觀音亭).. 소리를 듣는 곳,
그 이름처럼 정자에 앉으면, 세상사 온갖 소리 다 들릴듯 한데,
탁족을 하는 듯 두 발을 담근 정자의 모습이 절묘하다.
누가 저리 던졌는지,
연못속에는 로마의 트레비 분수처럼 동전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창덕궁의 애련정을 닮은 관음정.
그 돌계단에 걸터 앉아 세상의 번뇌 잠시 잊으려고 하니
펼쳐진 아담한 정취에 세상사 온갖 풍상(風霜)이 씻은듯이 사라진다.
[겨울의 觀音亭과 秋香池]
연못, 추향지(秋香池). 이름처럼 가을 향기가 물씬 묻어 나는 곳.
이미 가을은 지나고 추위가 무르익어 연못엔 물대신 눈이 쌓여 있지만,
가을날, 잠길듯 수면 위로 고개 내민 기암괴석과
산국(山菊)을 비롯한 온갖 국화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한겨울인 지금도 그 정취가 살아나 물씬 풍겨올 것만 같다.
정원에 있어서 건물은 가장 인공적인 것이므로
주변환경이 훼손되는 것은 화를 불러일으킨다 믿어
선조들은 자연공간과 조화롭지 않거나 풍수에 어긋나면 건물을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배산임수(背山臨水) 하는 터를 잡아
건물을 지었던 것이다.
정원에 조성된 정자나 누는
그곳에 앉아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휴식을 취하면서 사색을 즐길 수 있었다.
이처럼 휴식을 취하고 사색을 하는 정적인 기능이 강하지만
그 자체로도 경물적(景物的) 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정원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훌륭한 예술품의 역할을 한다.
[미술관 앞뜰인 暘臺에서 바라본 겨울의 主庭]
주정(主庭).
이 장소는 호암미술관의 중앙에 위치한 주정원이다.
이곳은 오랜기간에 걸쳐 미술관에서 수집한 석물들을 전시하는
야외 전시공간 기능도 함께하는 정원으로
중앙에 방형의 연못인 법연지와
소나무 우거진 작은 언덕에 살며시 기대고 있는 호암정이 있고
호암정 넘어엔 숲속을 흐르는 작은 계류(溪流)와 폭포가 있으며,
영주 부석사의 대석단을 본따 만든 자연석단과 3단의 화계로 꾸며져 있다.
동쪽으로는 소나무와 우거진 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소원에 자리한 관음정과
북쪽으로는 미술관이 자리하고
남쪽으로는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자리잡아 담 안과 밖이 어우러지고
삼라만상이 모두 정원의 주요 구성요소가 되는
전통정원의 진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주정(主亭)에 서서 호암 호수쪽을 향하면 담이 보이지 않는다.
담을 일부러 낮게 배치해 앞에 펼쳐진 호수와 산의 풍경이
정원과 이어져 보이도록 했다.
정원과 자연의 경계를 흐려둔 것이다.
이곳에서의 정원은 자연으로 확장되고, 자연이 정원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담안의 풍광에 머물지 않는 미..
구역의 경계마다 소담스런 담이 있어 안과 밖이 어우러지고
담 안과 담 밖의 조망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푸근한 정서를
전통정원 조형미의 근원인 '차경(借景)의 원리'를 바탕으로 드러내고 있다.
[法蓮池]
법연지(法蓮池). 흙탕물속에서도 고귀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인간 정신의 아름다운 승화를 기원하고자 법원지라 하였다.
연못 한 켠엔 방지방도형 작은 섬을 만들고
작은 섬에는 하얀 배롱나무 한 그루가 청초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곳으로,
지금은 분재같은 소나무 두 그루가 늘푸른 빛으로 멋을 돋우고
선비의 기개인양 여유로운 모습이 풍요롭기만한데
한켠엔 오수를 즐기는듯 거북이를 두어 장수를 기원한다.
방지방도형(方池方島型)의 연못은 지신(地神)을 모셔 제사지내는
지단(地段)의 원형인 방택(方澤)으로부터 연유된 것으로 본다.
방택의 꾸밈새는 네모진 연못속에 흙으로 네모난 제단을 쌓아 올린 것이며
지신은 생산의 기반인 땅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그 신을 섬긴다는 것은 바로 풍요와 자손의 번영을 기원함을 뜻한다.
[法蓮池에 피어난 한 송이 睡蓮]
예부터 연꽃은 불교에서는 극락의 꽃으로, 도교에서는 신선의 꽃으로,
유학자에겐 군자의 꽃으로 상징되어
진흙탕에서도 드맑은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인간 정신의 아름다운 승화를 기원하고자 했다.
그 고고함처럼 이곳 법연지엔, 푸른 하늘이 가만히 드리우고,
선비의 기개모양 한 송이 수련(睡蓮)이 피어나고 있다.
그 은은함과 함께 산과 정자, 나무와 꽃을 수면에 담은 연못가엔
분홍색 작약과 꽃 분홍 모란뿐 아니라 수많은 야생화와 백리향,
그리고 하양 분홍의 연꽃까지 화사한 꽃불을 터뜨리고 있어
그 꽃향기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하얀 모란도 있다. 부귀의 상징인 모란을 보면
꽃에 향기가 없어 벌과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다는 삼국유사의 선덕여왕 古史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法蓮池에서 바라본 湖巖美術館]
호암미술관은 희원의 주건물이다.
불국사의 백운교를 본떠 지어 그런가. 회백색 홍예문(虹霓門)이 더없이 웅장하고
푸른색 지붕이 청와대와도 흡사한데
초록 잔디 위에 단정하게 버티고 선 청색 기와 건물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려
그 자체로 하나의 미술이다.
부속사처럼 쌓았다는 축대를 오르면 여러 모습의 불상이 우리를 반기고
기라성처럼 쌓은 석축과 호암정을 지나
월대(月臺)로 올라가는 화강암 돌계단에 살포시 앉으면,
나른한 햇살을 쪼이며 주정의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다.
[..故 李秉喆會長의 아호(雅號)를 딴 湖巖亭]
산자락에 살며시 기대고 있는 듯한 정자 호암정(湖巖亭).
호암미술관 설립자 아호를 따 명명한 것으로
미술관의 역사와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자에 오르면 주정은 물론
소원과 간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일것 같은 단아한 정자 호암정은
하늘을 향해 살짝 들린 지붕의 모습이 퍽 맵시있다.
잠시 머무르면 이곳에서 주정의 계류가 발원되어 흐르니 신비롭고
호암정 곁을 감돌아 흐르는 계류는 청아하여 심신을 위로한다.
[主亭의 溪流]
한국정원에서의 물은
흐르는 물과 고이는 물, 떨어지는 물, 솟아나는 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솟구치는 물인 분수는 자연의 순리에 어긋난다고 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흐르는 물은 계류(溪流)가 되겠고
고이는 물은 연못, 떨어지는 물은 폭포, 솟아나는 물은 샘물이 되겠으며
정원에 시내가 없으면 계류를 자연스럽게 만들고 고이는 물을 위해 연못을 팠다.
희원의 계류도 인위적으로 만들었지만 자연을 배제하지 않아
자연미가 물씬 풍긴다.
계류는 흘러 호암지로 들어가는데,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멈춤과 방향을 바꾸는 과정을 거친다.
서류동입(西流東入)의 명당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규모는 작지만 작은 폭포가 있고 졸졸졸거리는 물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실감한다.
물소리를 따르면 마음이 씻어져
잠시나마 세파의 시달림을 떨쳐 버릴 수 있다.
[月臺의 방지와 수로]
호암정에서 화강암 계단을 올라서거나
계류를 따르다 작은 폭포에서 운치있는 소로길의 언덕을 오르면 월대이다.
월대는 관조(觀照)를 위한 작은 정원으로
매림,방지와 수로,석문,부도 등
다양한 키와 다양한 모습의 벅수들이 배치된 공간으로
온세상의 장승을 다 모아 놓은듯 한자리에 모여 찾는 이들을 반기는데
돌로 만든 방지형 연못과 길게 이어진 수로,
효자비 모양의 석문과 버섯모양의 부도는 희귀한 것으로 보는 눈이 즐겁다.
[읍청문]
달이 차는 곳.
창덕궁 낙선재 뒤뜰의 만월문(滿月門)과 흡사하며,
보름달처럼 이지러진 데가 없는
정원내 협문(夾門)으로는 유일하게 원형으로 만든 문으로
동쪽에서 봄을 받아들인다하여 읍청문이라 부른다.
읍청문은 양대와 월대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문으로
전돌로 만월형의 출입구를 내고 좌우로 밀어 열게 된
각각 세 개의 문짝이 연결된 넌출문이 달려 특이하며
문 좌우 담벽에는 수복(壽福)을 상징하는
길상무늬와 꽃무늬로 가득하게 장식하여 아름답고
문 밖에는 고 이병철 회장의 동상과 분묘가 있으나 문이 굳게 잠겨
엿볼 수가 없다.
[푸른 잔디가 깔려 시원한 미술관 앞뜰 暘臺]
전통정원 희원의 진가는 미술관 앞마당에서 알 수 있다.
해가 비추는 곳, 양대(暘臺).
넓은 뜰에 조성된 푸른 잔디를 보니 오락가락 비 내리는 날임에도
따스한 햇살이 쏟아질 것만 같고
미술관을 등지고 정원을 바라보면 안산인 향수산과 호암호가
금방이라도 가슴에 안길 것만 같다.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앞마당으로 끌어 들이는 곳..
양대에 서면 그 차경(借景)의 원리가 정원의 근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정원의 구조뿐 아니라 나무와 꽃들도 모두 자생종으로 가꾸어
더 친근감이 가며 소나무 하나만 보아도 여느 소나무와 다르게
철갑을 두른 듯하다.
이름도 예쁜 은방울꽃,둥굴레꽃,하늘매발톱 등 야생화가 자라며
전시와 연주 등 다양한 공연및 행사를 할 수 있도록 기능을 갖춘 양대는
호암미술관이 오픈 뮤지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고
탁트인 곳이기에 주변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잔디마당으로
관람객들을 위하여 전통찻집도 조성해 놓았다.
[미술관 2층 휴계실에서 안산인 향수산을 바라보며]
이제 호암 미술관을 둘러본다.
한국최대사립미술관인 호암미술관은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선생이 30여 년에 걸쳐 수집한
한국미술품 1천2백여 점을 바탕으로 1982년 4월에 개관하였다.
호암미술관에는 선사시대의 유물과 토기를 비롯
불상,불구,불화,경전 등 불교유물과
진귀한 국보급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그리고 조선백자가 격을 높여주고
영화 취화선으로 유명한 장승업의 그림과
김홍도와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 등
한때 조선시대의 화풍을 한껏 드날렸던 서화들이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2층의 전시실을 둘러보다 복도로 나서면 휴게실이 보이는데,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마치 한옥의 넓은 대청마루에 커다란 풍경화 액자를 걸어놓은 것같이 환상적이어
잠시 다리도 쉴겸 그 풍경에 취해본다.
[경복궁 자경전(慈慶展) 굴뚝을 본따 만든 꽃담]
한국정원에 있어서 담장은 대단히 중용한 역할을 한다.
담은 원내와 원외를 구분하는 외에 집의 모든 공간을 분할하는 기능을 하며
사랑채,안채,행랑채,별당 등의 생활공간은 담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의 옛담은 모두가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경복궁의 꽃담은 특별한 의미와 아름다움이 있다.
담장이라는 그 무거움과 단절감을 얼마나 절묘하게 풀었는지,
그 예술적 감각에 감동할 뿐이다.
자경전은 대왕대비가 머물렀던 공간답게 여성스러운 느낌과
멋이 한껏 넘치는 공간이다.
그런 까닭에 자경전의 곳곳을 장식하는 각종 의장과 문양 등은
매우 화려하며 아름답고 이 문양들이 상징하는 뜻 역시
공간의 용도 및 특성과 밀접하다.
자경전을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대왕대비이자 추존된 익종(효명세자)의 왕비인 신정왕후 조대비이다.
자경전은 고종을 양아들로 삼아 왕위에 오르도록 했던 조대비가
머물렀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이 조대비를 위해 지었다는 자경전의 꽃담은
대왕대비를 위한 공간이었던 만큼
액운을 물리치고 대왕대비의 무병장수를 빌었으며,
매,난,국,죽과,모란,나비,연꽃 등을 한 폭의 그림처럼 장식하여
화려하되 야하지 않고 복잡하되 번잡하지 않으며 품위가 있다.
[죽은 듯 살아 있는 300년 된 모과나무]
한국의 정원 속에 심어진 화목(花木)은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여
그 지방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것을 위주로 배식하였으며
인공적으로 전정(剪定)을 하여 모양을 낸다거나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하였다.
또한 화목에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의인화하여 벗에 비유하기도 하였으며
품격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화목의 배식에 있어서는
대문 앞에 회화나무 3그루를 심으면 길하다 하여 회화나무를 심고
동쪽에 복숭아와 버드나무를, 남쪽에 매화나무와 대추나무를,
서쪽에 치자나무와 느룹나무를, 북쪽에 살구나무와 벗나무를 심으면
청룡,백호,주작,현무를 대신할 수 있다 하였다.
호암미술관 앞 꽃담 옆에는 300년 된 모과나무가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삼백년을 묵어 한 그루만 심었나?
나무에 큰 구멍이 뚫리고 니스를 칠한듯 죽어 있는 것 같은 저 나무에
푸른 잎 무성하고 당실한 모과 열매 열린 것을 보니
나무의 생명력과 자연의 오묘함을 실감하게 된다.
[후원(後園)]
미술관의 측면과 후면은 전통정원의 후원에 해당한다.
서쪽에 불국사의 다보탑을,
동쪽엔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을 본뜬 모조탑을 실물크기 그대로 전시하고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앉은 후원(後園)은
고유의 특징 그대로,화강암 장대석으로 긴 화계를 만들고 그 위에 전돌담을 둘렀다,
철쭉 등 관목류들이 심어져 있는 창덕궁 낙선재 후원의 화계에서 보듯이
각종 식석과 석조물,동산의 수목,층층이 들어선 화계의 꽃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여 아늑하면서도 화사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이 화계는 단순히 경사를 극복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서 관조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후원양식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독특한 정원양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호암미술관 관장인 홍라희여사가 수집했다는 장독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대마상과 4신상(힘,승리,자유,웅변의 신)]
부르델조각공원은 프랑스 근대조각의 거장 앙트완 부르델(1861~1929)의
대형조각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부르델의 아버지는 고풍(古風)의 가구공(家具工)이었다.
부루델은 툴루즈미술학교의 장학생이었고,
1884년에는 파리의 미술학교에 진학하였으나,
그 아카데미슴에 싫증이 나서 퇴학한 후 독학으로 미술제작에 힘썼다.
1889년의 살롱 출품작이 A.로댕에게 인정되어,그의 조수로 장기간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스승인 로댕과는 대조적으로 고전의 재생을 꾀하여,
그리스의 고대조각을 비롯 로마와 이집트까지 조각미를 탐구하고,
활기찬 구조와 긴장감, 평면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1888년의 첫 베토벤상을 조각한 이후
만년에 이르기까지 약 20여개의 베토벤상을 남겼으며,
1893년에 주문받은 몽토방 위령비를 6년에 걸쳐 완성하였고.
1909년에 완성한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는
그에게 조각가로서의 명성을 최초로 안겨 준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
부르델의 특징은 건축적인 구성과 양식에의 복귀였다.
이것은 오랫동안 건축의 지배하에 있던 조각에
근대예술로서의 자율성을 부여한 로댕이 건축과 결별하면서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은
아르헨티나의 독립영웅인 "알베아르 장군" 의 기념비로 제작된 다섯작품인
대마상과 4신상(힘,승리,자유,웅변)을 비롯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 폴란드 서사시, 아프로디테의 탄생, 싸포상 등
아홉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의 배치는 작품의 고전적양식과 창작의도 그리고 주제를 고려한
전형적인 프랑스 정원양식을 도입해
정원의 중심축에는 알베아르 장군 기념비의 대마상과 4신상을,
부르델의 대표작이며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 등은
별도의 공간을 설정하여 배치했다.
초 여름이면 장미가 흐드러지는 곳.
분홍색 배롱나무 만개한 정결한 오솔길을 걷노라면 왠지 센치해 지고,
쭉쭉뻗은 활엽수가 자라나 이국(異國)적인 풍정이 물씬 풍겨오는 곳.
그곳을 거닐면서 대형 조각들을 보노라면 나 또한 조각가가 된다.
[수변광장에서 노니는 공작새]
부르델조각공원을 천천히 걷는데 온갖 새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정화된다
수변광장으로 가는데 어디선가 다가온 화려한 공작이
바로 내 앞의 잔디 위를 유유히 걷고 있다.
매점이 있는 곳이기에 사람들이 먹을 것을 던져주니 도망가지도 않는다.
신기해 공작의 꽁무니를 따르며 내 카메라의 모델이 되기를 바란다.
어디선가 어린아이들이 모여들어 공작새를 쫓느라 야단법석이다.
시선을 돌리면 석인의 길 곁으로 널찍한 호수가 있고,
그 너머로 나지막한 산자락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석인의 길(石人之道)]
희원으로 들어가는 벚꽃길을 지나면 호숫가에 마련된 아담한 산책로가 있다.
'석인의 길'이라는 운치있는 이름이 붙여진 이 길에는
수많은 돌사람들이 근엄하게 서 있고
좌우로 늘어선 옛 석상을 보노라면 담담한 심경이 절로 든다.
우리 산천 곳곳에 숨어
우리내 삶을 보살펴 온 석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
우리의 산하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으나
미술품으로서 별반 주목을 받지 못하였던 문인석과 무인석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도록 꾸며놓은 석조각 전시장이다.
[석인의 길(石人之道)]
머리에 화려한 금관 복두를 쓰고 폭넓은 조복 공복을 입었으며
두 손으로 상하 홀을 쥔 석인은 문신상이다.
제주도에서 보았던 하루방 비슷한 모습에서부터,
억새 사이에서 스르륵 연기처럼 솟아나온 듯한 석인의 모습,
정갈하게 의관을 정제하고
몇 백년 전부터 거기 서 있었을 것 같은 모습의 석인들까지
다양한 모습의 문무석이 눈길을 잡는다.
무덤을 호위하는 석인이라 하지만 두렵지 않다.
험악하거나 무서운 표정이 아니라,
수더분하고 친근한 모습을 한 문무석의 표정에는
우리 민족의 심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석인의 길(石人之道)]
석인들은 햇살을 받으며 모습이 깨어난다.
명장한 아침햇살과 찌는듯한 한낮의 태양,
그리고 붉은 석양을 받음으로 평평했던 얼굴에 명암이 생기고
흐릿했던 옷주름이 활기를 되찾는다.
비로소 입체감이 나타나고 조각이 되고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햇볕에 연출되는 순박,위엄,성냄,웃음..
그 수많은 표정들 따라
보는 이의 얼굴도 함께 바뀌며 옷매무새 걸음걸이도 바뀌어 간다.
호젓한 호숫가 석인의 길을 거닐다보면
나는 어느새 역사속으로 들어가 옛 사람과 정다운 대화를 나누며
지금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호암저수지]
우리는 누구나 맑은 공기를 숨쉬며 푸른 숲에 온갖 식물과 동물들이 자라는 곳,
몸과 마음이 포근해지고 화창해지는 곳에 살기를 원한다.
그것은 사람이 이 땅에 발 딛고 살 때부터 계속 되어 온 바람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들은 땅이 가진 성격과 지기를 살펴 그와 부합된 지명을 지었다.
예부터 용인 땅엔 대를 이어 가문이 번창할 양택 명당이 전해져 왔는데,
바로 에버랜드 뒤편에 자리한 포곡면 가실리란 마을이다.
가실(稼室)이란 '집을 심는다'는 뜻으로,
곧 집을 짓고 살면 장수와 부귀를 누릴 복지라는 뜻이다.
가실리는 한남정맥이 석성산에서 한 줄기 용맥을 북진시키고,
이 용맥이 동쪽의 경안천을 바라보며 둥글게 포물선을 그은 안쪽에 위치해 있다.
높은 산이 삼면을 병풍처럼 둘러친 사이로 동쪽만이 트인 형세인데,
굳게 닫힌 듯한 수구(水口)를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들판이 넓게 펼쳐지고
위쪽에는 둑을 막아 조성한 저수지가 큼직하다.
소위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정한 여러 조건 중
지리의 조건에 딱 맞는 길지다.
[법연지에 피어난 연꽃]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은 산세,지세,수세 등을 판단해
이것을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연결시키는 학설이다.
호암미술관은 풍수사상에 근거해
서류동입(西流東入) 해 흘러들어 온 물을 일단 가두어 두기 위해
미술관 앞 남쪽에 연못을 만들었는데,
이는 물을 그대로 흘려보내 버리면 명당의 기운이 쇠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희원은 북쪽에서 남진한 생기발랄한 용맥이 저수지를 만나며 지기를 응집한 곳이니,
풍수로 보면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형국이다.
목마른 말은 다른 생각없이 급히 물로 달려 드니,
이 기운 때문에 산기운이 발동해 복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희원은 산세가 끝나는 끝자락 정남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을 등지고 호수를 바라보는 지세인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추구한다.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하며 안산인 향수산의 모습은 고즈넉하여
앞으로 지명유래에 부합된 새로운 명소로 재탄생할 것이다.
[분재같은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호수]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잔잔한 호수가 평화롭다.
호수는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햇살에 반짝이는 물빛이 시시각각 달라 보인다.
물빛에 담겨 있는듯한 담의 문양 하나, 기와 하나, 이름 모를 야생화 하나가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호숫가 큰 나무에는 백로 떼가 둥지를 틀고,
가끔씩 호수 위를 날렵하게 비행한다.
물이 맑아 최근에는 왜가리 등 철새들이 많이 몰려 들고 있다.
운이 좋으면 왜가리가 팔뚝 만한 물고기를
호수에서 낚아 채는 진풍경도 바라볼 수 있다.
넓은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정되는 것을 느낀다.
평온함... 저 호수처럼 늘 평온하였으면..
[자작나무]
바람결에 날리는 꽃향과
초록빛 물씬한 산과 들이 그리워질때면 나는 희원에 간다.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전통정원을 둘러보다보면
역시 '예술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진리를 실감하게 된다.
집과 인접하기에 자주 찾아보게 되는 나의 작은 안식처 희원..
청담동 새로 연 카페나, 특급호텔의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것보다
쇼핑을 하거나, 찜질방에 가서 피로를 푸는 평범한 일상보다
여기 올 때가 더 편안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쓸쓸할 때나 답답할 때,
문화재에 대한 갈증과 자연의 향수가 못견디게 그리워질 때면
시간이, 철학이, 그대로 멈추어 있을 것만 같은 한적한 정원을 찾아
머물며
마음과 생각을 차분히 가라앉혀 본다.
전통정원의 조형물을 천천히 돌아보며 자연의 의미와 멋을 재해석 해 보고
석인이 즐비한 호숫가를 거닐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선인들의 느긋한 여유와 삶의 철학에 동화되어 본다.
산으로 둘러쌓인 배산임수의 지형.
담 안의 풍광에 머물지 않고 차경의 원리를 끌어들여
안과 밖의 조망이 어울어져 뿜어내는 한없이 푸근한 정서..
그곳 주건물에 전시된 국보급 걸작들을 접하고 나면,
역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고
그렇기에 더 겸손해 지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희원을 나오는데 너른 저수지 위로 하얀 백로 한 마리가 여유롭게 날다가
푸른 송림 위에 우아하게 앉는다.
이제 나가는 길에 또다시 보게 될 하얀 자작나무..
그 나무가 그리워져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2005.8.9일 無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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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제 함 데불고 가 주세욤...헌데..두아녀자는 뉘신지?..이게 더 궁금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