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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역사의 흔적’ 정도로 치부하기엔, 그건 너무 깊숙이 우리 삶에 들어와 있었다. 의례적 ‘봄맞이 행사’ 쯤으로 치레하기에도 우린 거기에 너무 많이 빠져있었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또 청춘은 청춘대로 그것에 대한 기다림이 있었고 설렘이 있었다.‘창경궁’이 궁의 위엄을 잃고 ‘창경원’으로 지낸 70여년이 그랬다. |
일제의 ‘조선 말살 정책’으로 심어진 벚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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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의 명소, 국민 대표 관광지로 자리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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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대학생들에게는 ‘나체팅’ 장소로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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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으로 지낸 아픔에서 회복된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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