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고 땅이 있었는지, 땅이 있고 사람이 있었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 물론 땅이 먼저고 사람이 먼저지요. 진화론을 멀리하는 성경에서도 사람은 땅이 있은 후에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얘기하려는 곳, 공고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에 아주 애매한 곳입니다.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이 아닙니다. 단 한 가구가 삽니다. 그럼 쥐꼬리만한 곳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이 한 가구가 소유 땅만 3만 평정도 됩니다. 선사시대의 유물이 발굴된 적이 있는 곳이라 하니 역사가 일천한 곳도 아닙니다. 알면 알수록 정체가 모호한 곳이지요.
행정적으로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95번지가 이 집의 주소입니다. 거제도 관광지도에는 공고지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지도에만 존재하고 행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지요.
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예구마을 역시 와현리에 속하는 자연부락입니다. 예구마을 전체가 와현리 몇 번지라는 식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거제도 장승포 아래 유명한 와현해수욕장을 지나면 예구 마을이 나오고, 예구마을 끝에서 차를 세워두고 산 하나를 넘어가면 공고지가 나옵니다.
공고지가 어디부터인가에 대한 견해는 입장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공고지는 예구에서 공고지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예구에서 그 고갯마루까지 어른 걸음으로 10분쯤 걸리고 거기서 평지까지 10분쯤 걸립니다. 평탄한 길이라면 20분 정도 걷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지요. 공고지 가는 길은 까다롭습니다. 우체부도 그 고개를 넘어가지 않고, 예구마을에 우편물을 맡겨놓습니다.
지도에만 공고지라고 표시된 이곳은, 강명식씨(31년생), 지상악씨(33년생) 부부가 5남 1녀를 낳고 기른 곳입니다. 공고지라는 지명을 거제시지에는 공곶이라 표기하고 ‘육지가 바다로 툭 튀어나온 곳, 꽁무니 같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합니다. 공고지 근처에서 만난 한 표지판에 지명이 공곶鞏串이라 적혀 있더군요. 만灣은 육지가 쑥 들어간 곳이고 곶은 툭 튀어나온 곳이죠. 그러니까 공곶이라는 거제시지의 표현은 잘못으로 보입니다. 한자로는 공곶, 일반적으로 쓰는 지명은 공고지이니 저도 공고지로 표기합니다.
공고지는 지명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곳이나, 거제도의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관광지로 꼽히는 이상한 곳입니다. 공고지는 해상관광농원 외도와 비교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런 오지에 무슨 아름다움이 있을까 싶지요. 맞습니다. 관관용 아름다움이 없을 듯한 이 곳에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강명식씨 부부는 1969년에 공고지에 터를 마련했고, 막내를 이곳에서 낳았습니다. 40대 초반의 부부와 어린 자식 여섯이, 땅을 사느라고 벌어둔 돈을 모두 써 버린 빈털터리 한 가족이 거제도 오지에서 아무도 모르는 역사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가족의 역사의 1장의 제목을 쓰라면 집념이라고 적어야 할 듯 합니다. 1장, 집념의 역사는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50년에 걸친 집념은 산비탈 한 쪽을 계단식 밭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땅이 만평 정도 됩니다. 계단식 밭마다 돌담이 쌓여 있습니다. 해변과 가까운 집에서부터 서서히 고갯마루까지 가파른 산을 깎아내고, 거기서 나온 돌로 담을 쌓았습니다. 포크레인이나 불도저 같은 건 아예 없었지요. 단순한 연장들, 호미, 곡괭이, 삽, 지게 등으로 땅의 모양을 바꿔나갔습니다. 어린 자식들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힘을 모았습니다.
해변에는 돌로 된 담을 쌓았습니다. 바닷물이 들이치지 않도록 해변의 큰 몽돌(동글동글한 돌을 이르는 이 지방말)로 성을 쌓듯 담을 쌓아올렸습니다. 몽돌로 담을 쌓는 일은 모래성을 쌓는 일과 비슷하였습니다. 돌 하나라도 잘못 놓으면 그간 쌓았던 담이 우르르 무너졌습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쌓았습니다.
이 집의 5남 1녀 중 삼남三男, 강병길씨는 저와 인연이 각별한 사이입니다. 공고지에 뼈를 묻겠다고 마흔 초반에 내려온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공고지에 갔던 날, 그러니까 2003년 봄에 만났습니다. 공고지 어르신보다 그를 먼저 만난 건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신문을 통해 저를 알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한동안 제 집에서 머물면서 공고지를 오가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는 공고지는 그를 통해 아는 공고지입니다. 공고지 역사의 제 2장이 시작되려는 순간부터 공고지를 알게 되었던 거지요. 아직 2장의 제목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공고지가 어디인지 궁금하다면 다음 지도서비스에서 와현리 95번지를 검색해 보세요. 출발지와 도착지를 설정하면 댁에서 공고지까지 가는 길이 나옵니다. 그러나 공고지는 그리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공고지의 대부분은 강씨 집안 땅입니다. 사유지이지요. 원칙적으로는 공고지에 가려면 그분들의 허락을 먼저 맡아야 합니다. 그러나 공고지 사람들은 밀려오는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보낼 시간이 없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노부부는 일을 합니다. 그분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개미 같습니다.
공고지에는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기계를 들여올 수 없었습니다. 강병길씨가 공고지에서 살게 되면서 작은 포크레인이라도 하나 장만하자고 했지만 부친께서 반대하셨답니다. 서울생활에 익숙한 아들을 공고지의 자연적인 방식에 길들이려는 뜻도 있었던 게 아닌가 짐작합니다.
거제도에 살 때, 텃밭을 일구던 제가 강병길씨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넓은 땅에 어떻게 잡초가 안 보여요? 제초제 뿌리나요? 그는 묘한 웃음을 지었지요. 일일이 손으로 다 뽑으십니다. 지금 제가 통영에서 손보는 밭은 천 평 남짓입니다. 일년 내내 잡초로 몸살을 앓을 정도입니다. 만 평을 하루도 빠짐없이 돌아다녀야 잡초를 잡을 수가 있지요. 잡초가 자라기 전에 부지런히, 그러니까 잡초보다 더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 가능한 일입니다.
공고지 집념의 역사를 여전히 쓰고 계신 강명식 어른은 팔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 살 아래인 부인 역시 칠순 고갯마루를 넘겼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습니다. 살아가는 길도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참 보기 드문 분들이고, 이분들이 걸어간 길은 아주 낯선 길입니다. 시간을 거꾸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80세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다가 결국 아이의 몸으로 죽는다는 내용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이곳에서는 별스럽지 않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공고지는 이 부부가 어린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들어온 50년 전처럼 지금도 오지입니다. 공고지란 곳은 육지에 있으나 섬과 다를 바 없고, 2009년의 한국과는 다른 공간입니다. 아니 이곳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자연의 시간만 흐릅니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왔다가 갈 뿐입니다. 공고지 사람들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일어나고 일하고 잠이 듭니다. 그 사이 장성한 자식들이 제 갈 길을 찾아 떠난 것 빼고는 생활에 변화가 없습니다.
참, 얼마 전에 농업용 모노레일을 깔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조를 받아서 설치하였다는군요.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산비탈을 오르내리던 시절은 이제 끝이 났겠습니다.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입니다. 그러나 예구마을에서 모노레일이 있는 곳까지는 산길입니다. 기계문명도 거기서는 힘을 못 씁니다.
거제시에서 2007년 대표적인 거제도 관광지 8곳 중 한 곳으로 이곳을 선정했더군요. 자연 그대로의 풍광이 주변 경치와 잘
어울리는 곳이라는 게 선정 이유였습니다.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강병길씨에게 외도처럼 입장료 받지 그래요? 했더니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사유지이면서 관광지로 선정된 곳,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이런 아이러니가 공고지에서 가능한 까닭은 그곳이 공고지이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곳, 공고지를 이해하려면 그곳을 만든 사람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발전과는 전혀 다른 발전을 이룬 그 사람들. 친환경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순명일까요? 이상주의일까요? 공고지가 오지가 된 것은 그분들이 고집하여서가 아닙니다.
공고지와 예구마을을 잇는 도로가 없다는 게 공고지를 섬 아닌 섬으로 만든 가장 큰 요인입니다. 그게 현실이지요. 공고지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게다가 공고지에 사는 주민이 한 가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한 가구를 위해 국립공원을 훼손하며 길을 만들 수 없다는 겁니다. 그 길이 지나가는 땅이 그 가족들의 땅이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거지요.
공고지 역사의 2장은 퇴락으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퇴락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서 늦게 결혼한 강병길씨가 서울 출신 아내를 데리고 내려왔을 때부터 공고지의 미래가 문제되었습니다. 공고지는 50년을 맨 몸으로 살아온 부부에게도 불편한 옷이 되었습니다. 피땀 흘려 만들어놓은 산비탈 길을 오르내리는데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하였습니다. 휘발유 한 말을 사면 한 달을 쓴다는 모노레일의 동력은 5.5마력 엔진입니다. 이 기계로 인해 노부부의 노년은 더 쉴 틈이 없어졌습니다. 몸은 따라주지 않아도 마음은 늘 청춘인 게 사람입니다.
강병길씨는 이혼을 하고 공고지를 선택했습니다. 도시 생활의 편리함과 화려함도 버렸습니다. 아니, 자기가 가진 걸 다 버리고 공고지에 왔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공고지에 아내를 붙잡아 놓을 수가 없었지요. 아이를 낳을 수도 없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공고지에 와서 노년을 보낼 수도 있을 겁니다. 혹은 각자의 지분에 따라 공고지를 나눠 가진 후 필요할 때 팔아버릴 수도 있겠지요. 길 하나 없는 것 때문에 50년의 세월 동안 이뤄놓은 한 가족의 집념의 역사가 다른 장을 펼쳐보지도 못할지 모릅니다.
사람은 오고 갑니다. 그러나 땅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공고지 역시 그리 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나라의 방방곡곡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길과 연결된 곳으로 나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강요하는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가하는 폭력입니다. 이런 오지가 공고지만 있지 않을 겁니다. 고향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공고지가 가진 문제는 절망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평생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어느 날 출근하니 책상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하늘이 보답할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노부부와 그 자손들에게 현실은, 그동안 고생했으니 그만 두고 나가주시오라는 식의 압력이 알게 모르게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고지의 아름다움은 벌집이나 개미집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의 아름다움이고, 자연에 대해 아주 겸손했던 한 가족의 순종적인 삶에 대한 아름다움입니다. 그곳에서 자라는 수없이 많은 아열대식물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부지런한 농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가, 그 가족이 해내지 않았다면 모두가 불가능했을 거라고 믿었던 일이 공고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생태나 환경을 주장하는 학자도, 운동가도 아닌 사람들이 공고지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공고지를 특별한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연 환경 속에서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해 온 그 사람들의 삶이 매스컴을 타고 환상적인 곳으로 비춰지기도 하였습니다. 누구는 그분들이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표현하였는데, 그분들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 같이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개미처럼, 벌처럼. 자식을 키우고 먹고 살기 위해서. 공고지는 점점 더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 가족들에게는 점점 더 다가갈 수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을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서울에서 많은 오지를 보았고, 오지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정현종의 시, 섬처럼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는 게 아니더군요. 아예 섬이 되어 버린 사람들을 실컷 보고 왔습니다. 절대로 입장을 불허하는 그 섬들이 서울을 만들고, 서울이라는 거대한 오지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오지를 여행하는 즐거움은 자연과 가까워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멀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번잡한 문명과 사회제도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며 오지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오지는 널려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곳, 모르는 곳은 모두가 오지입니다. 내 마음 속에도 오지가 있고,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도 오지가 있습니다. 오지를 찾으려는 마음이 생겼다면, 먼저 주위를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공고지처럼 겉과 다르게 오지가 되어가는 곳이 없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공고지 여행정보
공고지는 식물원일 수도 있고, 농원일 수도 있고, 공원일 수도 있고, 해수욕장일 수도 있고, 낚시터일 수도 있습니다. 농촌을 체험할 수 있고, 산촌과 어촌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생활을 배우거나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공고지는 천국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노약자는 공고지에 가기 힘듭니다. 예구마을에서 배을 타고 공고지 해변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선착장이 없기 때문에 갯바위에 내려서 바위를 타고 가야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공고지에는 위락시설이나 편의시설, 숙박시설이 전혀 없습니다. 물 한 모금도 팔지 않습니다. 물론 얻어 마실 수는 있습니다. 공고지에 가려면 간단한 식사나 간식과 음료를 챙겨가야 합니다. 봄과 가을의 주말과 여름 내내 번잡합니다. 먹을 것을 싸들고 온 사람들이 해변이나 숲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소중히 가꾸는 식물을 뽑아가는 일이 흔한 곳입니다. 예의를 지키는 사람보다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니 공고지에서는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아직은 무료 입장이 가능하나 사유지이기 때문에 언제든 입장이 불가해 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Tip. 공고지는 영화 종려나무숲의 주무대였지요
첫댓글 여름에 한번 가봐야겠네요.....무인도 같습니다....
공팔도사님 상정 해서 함 가시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