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밝고 보배로운 이름, 보성

[박실늑대]

밝고 보배로운 터전으로 이름지어진 보성군

보성군은 아득히 먼 백제시절에 복홀(伏忽)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때부터 보성(寶城)으로 불려왔다. 고려 성종 15년에 한때 패주(貝州)로 바꿔 불렀지만 오래지 않아 보성으로 환원되었는데 이때 산양(山陽)이란 이름을 별칭으로 사용했고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즐겨 쓰고 있다.

보성은 근자에 이르러 3景 3寶鄕이라는 현대적 의미를 담은 별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3경(景)은 산(山), 바다, 호수를 고루 갖춘 자연여건에 대한 예찬으로서, 山이야 어디든 있지만 ‘帝’字이름을 가진 3개의 산을 비롯해 그 줄기찬 모습이 의연한 연봉들이 청정한 바다와 수려한 호수를 함께 떠 안고 있기에 다른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경관을 말하며, 3보향(寶鄕)은 역사와 함께 길이 빛나는 충의 열사가 많았던 터전(義鄕), 우리 나라가 세계에 자랑하는 민중예술인 판소리(西便制, 寶城制)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인들의 찬연한 업적(藝鄕), 그리고 우리 나라 최대의 차 재배· 생산지로서 차 문화를 선도하는 자랑(茶鄕)을 담고있다.

옛 선인들이 사용했던 이름들이나 지금의 별호들은 寶城(보배로움), 貝州(보배로움), 山陽(밝음), 3景3寶鄕(자랑스러움)이 모두 밝고 보배로움과 자랑스러움을 함께 갖는 것으로서 보성은 그 이름들이 갖는 만큼의 자랑과 보배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보성읍 시가지 전경 -보성군의 행정, 교육, 문화의 중심지이다.

보성군은 지리적으로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린 태백산맥으로부터 나뉘어진 소백의 세 갈래 지맥 가운데 서부지맥에 속해 있기에 6백m 이상의 고산이 열 여섯 봉우리나 될 정도로 산지를 이루고 있을 뿐더러 예로부터 운봉(雲峰, 지금의 남원) 다음가는 고지대로 알려져 왔다. 이러한 보성의 산들은 연봉(連峰)으로서 산세가 수려하고 웅장하며 또한 포근함까지 담고 있어 이 지역 사람들의 굳센 의지와 곧은 성품 그리고 다정다감한 성격의 형성에 끊임없이 작용하는 자연적 기반이 되어 왔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보성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의기가 강했던 곳으로 임·정 양대 왜란을 비롯해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칠순 노령의 유학자로부터 머리에 먹물이 들지 못했던 담살이에 이르기까지 노·소와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분연히 일어서서 보성인의 기개를 떨칠 수 있었을 것이다.

▲ 차밭가는 길 보성읍 봉산리에 있는 대한다원에 드는 삼나무 숲길. 방풍림으로 조성한 삼나무 숲이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특히 일침기(日侵期)에 조선 총독도 굴복시켰던 신유(辛酉) 제주사건(祭酒事件)으로 일컬어지는 항일운동은 보성인의 장거(壯擧)였기에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1919년에 있었던 3·1운동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21년 8월 일제(日帝)가 향교의 문묘대제에 쓸 제주를 주세령 위반이라 해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봉인을 하려고 하자 향교의 유림들이 일본인 세무관리를 묶어 화형을 시키려고 했다. 이에 놀란 군수와 경찰서장이 향교에 와 사정하여 이들을 구출한 후에는 관련된 유림들을 구속하고 갖은 고문을 자행했지만, 보성 유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전국의 향교에 통문을 돌려 투쟁을 주도하는 한편, 구속된 유림들도 의연함을 잃지 않아 총독부를 굴복시켰으며 1923년 6월에 구속자의 석방과 향교 대제용 제주만큼은 마음대로 담글 수 있게 한 사건으로 이는 가혹한 식민통치를 의기로 맞서 얻은 우리 민족의 승리로서 보성 사람들의 기상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그런가 하면 조선 말엽에는 전라관찰사 남병철과 보성군수 고재환이 이곳 주민에게 국세라고 이름 붙여 쌀 팔만석을 거두려 하자 온 군민이 힘을 모아 그 부당함에 맞서 싸워 이긴 일도 있다. 또한, 연봉으로 이어진 지형 때문에 14연대 반란 사건으로부터 6·25를 겪는 과정에서 존제산―천봉산―망일봉―모후산―백아산―무등산―덕유산을 잇는 루트(Root)와 존제산―금전산―조계산―지리산,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루트를 따라 소위 빨치산이라 불렸던 입산자들이 반란사건이 진압되고,

또 6·25 남침으로 비롯된 민족비극의 전쟁이 휴전으로 끝을 맺은 뒤에까지도 오랜 동안 군·경에 저항할 수 있었겠고 또한, 그들을 토벌하는 데 적잖은 희생을 치뤄야 했으며, 낮에는 군·경에 의해 입산자 가족과 통비분자들이, 밤에는 경찰가족과 소위 반동분자로 분류된 양민들이 희생되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보성은 광주­ 목포 ­ 광양권을 잇는 삼각형 축에서 거의 중앙에 위치해 있기에 남해안 통로의 중요 거점으로서의 지리적 중요성이 더해 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해산물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 득량만(得粮灣)과 여자만(汝子灣)을 끼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철도와 육로, 그리고 해운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보성 ­ 목포간 산업 철도의 개설과 전남중부 산업고속도로가 건설되면 보성군은 이미 예고된 서남해안 시대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는 지방시대의 중심지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크게 기대되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 18만 명에 달했던 보성의 인구가 산업의 다양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인해 비록 7만여 명으로 위축은 되었지만 전국 차 문화 축제인 다향제(茶鄕祭)를 비롯 서편제 보성소리축제와 같은 특색있는 이벤트의 개발과 같은 우리 것을 찾고 가꾸려는 수준 높은 지역 문화의식과 향토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이 함께 일고 있어 현대에는 물론 미래에도 멋과 의미가 가득한 보배로운 땅으로 길이 남게 될 것으로 믿는다.

▲ 대마를 수확하는 모습
이지역 특산물인 삼베(마포)를 짜기 위해서는 한여름에 삼을 베어 삼굿에서 찐 뒤 껍질을 벗기고 말려서 실로 만들어 내야 한다. 이러한 길쌈은 주로 모내기를 끝낸뒤부터 한겨울까지 이지방 아낙네들이 하는 일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