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과 칼의노래] 
이순신 의 난중일기를 영화로 만든"명량" 개봉한지 한달이 넘도록
보지 못한 이유가 있다.
내가 그만큼 뒤떨어진 사람처럼 보인다.
초교동창 모임에 우리 점심 먹고 명량 영화나 보자. 했더니 지금까지 그 영화도 못 봤나,
난 개봉한날 보았다고 하는 말에 한편 창피하기도 하다.
지난토요일 손자들을 데리고 아들딸 손자들이 이 영화를 보러간다며 나섰다.
다녀온 후로 소자 녀석에게 물어보았다.
재미있게 보았니?
네
영화를 보고나서 느낀 것이 뭔가?
음 바다에 빠진 군사를 잘 건져내는 것을 참으로 감동적 이었습니다.
아하, 그랬구나. .
문득 생각이 낫다.
세월호 빠진 학생을 그만 두고 달아난 것에 연관을 두는 듯하다.
이렇게 시대적 견해가 참 무섭구나, 이것이 교육인데.
나는 말을 이을 수 없어 그만 입을 다물었다. 여러 말을 하면 할아버지 잔소리로 듣기 쉽다.
그러나 난 그대로 넘어갈 수 없다.
기회가 되면 충무공의 충성이 무엇이며 왜 지금까지 충무공을 우리는 존경하고 그를 숭배할 만큼의 장수로
충신으로 우리역사에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이야기 해 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
해전은 지혜, 용기, 사랑, 정명(죽음),애족,애국,모든것이 융합된 혼 의결정체 라고 할수있다.
재작년인가 내가 존경하는 선배 성상우 형님과 이야기 중에
[김훈이 쓴칼의노래]를 한번 사보라고 조언을 하셨다.
전화를 끈기가 무섭게 서점에서 책을 13.000원을 주고 구입 일기 시작했다.
평서 [소설가 김훈은 남한산성]을 쓴 작가다 노무현 대통령당시
여름휴가 때 이 남한산성 책을 들고 여름휴가를 보냈다며. 일국의 대통령이 휴가 중에 읽은 책은 국정에 반연이 된다. 라고 선배는 나에게 귀띔을 해줬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최악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난 난중일기 같은 책은 신록에서도 보고 여러 번 여기저기서 봤기 때문에 또 볼 책도 너무 산적 같아 시간을 허비 할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에서 이었을지 모른다.
선배는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 무언가를 이 책을 보고 느끼라는 깊은 뜻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김훈의 충무공, 난중일기. [칼의노래]. 읽느라면 내가 바다에서 직접 전쟁을 하는 느낌도 느낌이지만 어찌 그렇게 구석구석 섬세한 충무공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이순신이 적을 물리치기위해 바닷사람 못지않게 바다의 흐름을 아주 섬세하게 살핀 것처럼 김훈 작가역시 이 소설을 쓰기위해 난중일기를 보며 바다에서 이순신 못지않도록 살면서 그 섬세한 바닷물의 움직이는 것을
기록하여 이순신의 그 전법을 이야기 하고 있다.
명란을 이야기 하려다, 이렇게 삼천포로 빠지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다.
난 명란 영화를 보기 전에 충분히 이 난중일기를 암기하듯이 읽고 그 영화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칼, 이순신, 그리고 김훈.
이순신은 우리에게 영웅으로 다가온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비상한 재주로 주변을 놀라게 했고,
뛰어난 실력으로 촉망 받았으며,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나 거북선으로 왜를 물리치는 영웅이 되어 유명한 명언을 남기고 죽는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훗날 그의 그 유명한 명언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이순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분명 그는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었고 후세의 우리들에게까지 알려진 영웅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이순신은 언제까지나 영웅일 뿐이다. 우리는 영웅에게 인간적인 사랑과 슬픔 따위의
감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 이순신으로서, 그가 전쟁터에서 느꼈을 두려움과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기까지의 고통, 썩어빠진 조정에서 겪어야 했던 낮은 지위에 있는 자의 어려움, 한 가정을 가진 아버지가 아들을 잃고 나서 느껴야 했던 슬픔. 그리고 여진이라는 여자와 나누었던 사랑. 이 모든 인간 이순신의 면모를 우리는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인간 이순신을 보여준 책이 바로 <칼의 노래>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접하게 된다. 그 중 내게 가장 와 닿았던
장면은 셋째 아들 면을 잃고 나서 후에 꿈에서 그의 혼령을 만나 대화하는 부분이었다.
그 인간적임과 슬픔에 눈물을 쏟게 만든다. 아들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을 당시, 그는 부하들 앞에서 태연했다.
그러나 소금창고에서 홀로 울기도 하고, 아들의 혼령을 만나기도 한다. ‘아버님, 저는 죽었습니다.
’ ‘아버님,
제 칼을 찾아주십시오.’ ‘아버님, 죽을 때 무서웠습니다. 제 칼을 찾아주십시오.’ 칼을 찾아달라고 애원하는
아들에게 그는 차갑게 나무란다. 어떻게 들으면 어떻게 아버지가 죽은 아들에게 저렇게 모질게 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호된 나무람 뒤에 묻어있던 ‘죽은 녀석이 너뿐이더냐.
’ ‘무인이 칼을 놓쳤으면
죽어 마땅하지 않겠느냐.’ ‘목숨은 물리지 못한다.’ 등의 말은 아들의 죽음을 아직 납득하기 어려운 자신에게
하는 말로 들린다. 갈대숲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자신의 아들을 보고 다시 한 번 불러보는 장면에서는 인간 이순신,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이순신의 슬픔에 정말 가슴이 찡했던 것 같다.
김훈은 이순신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김훈이 아닌, 이순신으로서, 저자는 이순신이 살았던 시대를 1인칭 시점으로 바라본다. 세상은 크고 더럽다. 나약한 나는 오직 홀로 그 세상과 외로이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순신은 약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그를 지켜주는 것은 오직 그의 칼 밖에 없었다.
국가의 아버지로서 백성들을 다독이고 휘하의 신하들을 통솔해야 할 임금을 그 무기력함을 이순신에게 투정(?)하고 국가를 지켜내라 재촉한다. 그 밑에서 이순신은 아마 슬펐을 것이다. 지금 나는 어려서 그 외로운 싸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이순신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에 말없이 수긍할 뿐이다. 그렇게 나는 칼의 노래에, 이순신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애초에 어떤 위인전에서도 감히 이순신의 시점에서 그와 함께 고뇌의 길을 걸어 그 지독한 삶을 서술한 적이 없었다. 위인전은 그 위인에 대한 존경심을 유발하는 한 편의 소설이기 때문일까. 위인전을 생생한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그저 그 위인을 우상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영웅담에지나지 않는다. 김훈은 이 책을 통해 죽지 못해 사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묵묵히 걷는 인간의 운명을 탐구한다. 전쟁과 전쟁을 준비하는 혹독한 과정까지도 미화시키는 위인전에 비해 김훈의 <칼의 노래>는 그 잔인함과 피비린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당시의 전쟁
속으로 독자를 빨아들이는 듯하다.
- ‘칼의 노래’ 본문 중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삶의 무의미함에 한숨을 쉬어야 했다.
이순신은 내내 '헛것들'과 싸워야 했다.
싸움의 승패보다는 가토의 머리를 더 원했던 한심한 조정, 조선을 지원할 군대라며 조선에 눌러앉아 술과 음식을 축내며 창 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진 란의 군대(명나라 군대),
아군인 줄 알았더니 그 새 적군으로 변하여 자신의 심장을 겨누는 돌고 도는 피난민들, 그리고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는 적군의 머리. 도대체 이 싸움의 끝은 어디인가?
무엇 때문에 나는 싸워야 하는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는다. 나의 길을 가지만
그 길의 끝은 알 수 없다. 온통 '헛것들'과의 사투이다. 이처럼, 그의 싸움은 ‘헛것’이었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는 그저 허무함과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그가 쓰던 칼의 이름 염(染) 물들일 (染).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대장장이가 지어준 이름이다.
이순신. 그 장엄한 이름에 슬프고 허무한 삶의 노래는 어울리지 않는 것인가. 칼의 노래는 이순신, 그 자신의 노래이다. 그의 삶을 함께 하며 고뇌, 고통, 슬픔을 함께한 칼의 노래는 그 삶을 다시 걸어보자고
결심해 펜을 든 김훈의 노래이기도 하다. 나는 이순신의 용기와 용맹을 찬미하지 않는다.
뛰어난 싸움 기술과 전략에도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다만, 우리와 똑같은 한 인간의 삶에 고개를 숙일 뿐이다.
이렇게 소설로 봐야 한다. 라며 그는 글을 마무리한다. 그 얼마나 충무공에 대한 겸손함을 나타냄을 볼 수 있다.
영화 명랑. 칼의 노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었인가. 왜 이 영화에 우리는 열광 하는가, 6.25 때 북한군 서울을 점령한뒤 대통령 인 이승만은 국민을향해 안심 하라 해놓고 자신은 미국으로 피신 한강철교를 폭파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야 했고 세월호 선장은 자신만이 살기위해 도망간 무책임한 관계자들. 야당이 보걸선게에 좀 패했다며 물러가는 당수들의 모습을 비교 해본다. 우리는 진정 이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원하는 마음. 일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고 다시 펜을 들수있을까, ............
첫댓글 글을 쓰는 사람의 소망은
어떻게 하면 독자들의 마음을 울릴수 있을까.
김훈의 "칼의노래" 난중일기 당시 육지가 고향인 이순신의 물길을 알아내듯 이 작가도
파도를 읽고 찬 눈보라에 온몸이 꽁꽁얼어가도록 밤을 새워 그 소리를 이순신의 혼과
이야기 하지 않고는 이런 소설을 지어낼수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