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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회 이일향 고문님의 시집
<< 노래는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다. >>
내 생애 다 못 부를 노래가 있었니라
꽃 지고 달 뜨는 밤 차마 소리도 못 내고
가슴속 차오르는 불
눌러 끄던 사랑이었니라
○
돌에 새긴 글씨라도 비바람에 닳아지고
활자로 찎었어도 종이는 헤지는데
그 노래 내 생애 다해도
마르지 않는 샘이니라
○ ○
산에 묻으랴 강에 흘리랴 적삼안의 붉은 글씨
한 장 한 장 떼어다가 화롯불에 태워본다.
노래는 재가 되지 않고
사리로 굳는구나
(13page)
<< 가슴은 천길 강물 >>
누가 나를 안다고 속마음을 터놓겠나.
겉으로야 웃고 울고 나를 다 보이지만
가슴은 천길 강물처럼
숨죽이며 흐르는데
□
지구촌 가 볼만큼 떠돌아 다녔어도
아직도 발길 못 닿은 별천지는 많고 많듯
아무리 쏟아 놓아도
남은 말은 산 같아
□ □
이제는 말해도 되나 나 혼자의 고백성사
남의 눈 띄지 않게 애를 끓던 길고 긴 밤
이만큼 벌을 받았으면
이제는 말해도 되나
<< 밤하늘에 쓰다 >>
잠 안오는 밤이면 창을 열고 하늘을 본다
별들이 반기는 듯 무어라 깜박이고
은한강 건너편에서
숨은 얼굴 떠오른다.
◇
생각은 산처럼 와서 머리맡에 쌓여도
붓을 들면 모래알로 흩어져서 가버리고
밤이면 적막을 안고
빈 가슴만 후빈다
◇ ◇
뉘게도 못한 말 입속으로 뇌이자가
밤하늘 검은 먹지에 눈물을 찍어쓴다.
보이지 않는 글자들
별들은 읽어줄가
<< 사람 찾기 >>
사람은 이리 많은데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혼자일 때
혼자가 아니게 하는
마음을 손 잡아주는
그런 사람 찾습니다
귀성열차 타기 위해
서울역에 노숙해도
내일이면 부모 뵈올
마음은 보름달일 테죠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는
나 같은 사람 찾습니다.
<< 낙일 >>
하루가 멀다 하고
부음이 날아든다
내 삶을 지탱해온
피붙이며 이웃들이
작별인사도 없이
이승을 하직한다
잎이 진 낙목처럼
나 홀로 남았어라
몸에 밴 고독이라
두려울 것 없다마는
지는 해 붉은 울음이
내 것인 양 아파라
<< 깊어 가는 강 >>
한 때는 날개도 없이 날려고도 했었다
이제는 두발로도 바로 서지 못 하는 몸
평지가 언덕보다 더 높아 보이고
시간을 갉아먹는 소리가 목을 죈다
나도 이제 내 자리로 돌아갈 찬셰인데
별 지듯 하나 둘 사라지는 기억들만 더등는다
눈은 자꾸 어두워도 해와 달은 빛 나겠지
나만 두고 저 혼자서 달아나는 세월이여
생각은 어둠 속에서 깊어가는 강일레
<< 성당 가는 길 >>
주일은 성당 가는 날
교중 미사에 참여한다
환갑 지난 큰 아들
알렉산델 손을 잡고
애미 뜻 헤아려주는
그 믿음이 갸륵하다
주님께 내 기도가
얼마쯤 닿았을가
우리 모자 부럽다고
자매님들 칭송에
무겁던 내 발걸음이
날개 돋친 듯 가벼워라
<< 새 평택이여, 뻗어가는 물류여 >>
먼 천년 서역 뱃길 열렸던 역사의 땅
오대양 육대주에 꿈의 날개 활짝 펴고
우뚝 선 평택 물류센터 늠름한 기상이여
세계를 앞서가는 수출 강국 떠받치며
지구촌 한 가족 행복을 배달하는
동북아 물류의 허브 새 아침이 밝았어라
너른 바다 수산물이며 대지의 곡식과 육류
풍요로운 먹거리에 살쪄가는 나라 살림
자랑타 사조SYSTEMS 길이길이 뻗어가라.
(63쪽)
<< 나 이제 섬이 되어 >>
산을 바라보다
생각 하나를 얻고
물을 따라가다
노래 하나가 생겨난다
그리던 섬에 가서 듣는
물소리 바람소리
밤도 낮도 지워지지 않는
낯선 꿈은 파도로 일고
먼 길 돌아와서
홀로 눕는 텅 빈방
뭍에서 불어오는 바람
머리맡에 뒤척이고.
64쪽
<< 능수매화 >> ㅡ딸 주영주에게
어젯밤 네가 와서 내 곁에 잠 들더니
오늘 아침 뜨는 해가 웃음 가득 먹었구나
어미 품 떠난 지 마흔 해
이제 네가 내 엄마구나
아직도 강단에 서랴 지아비 자식 거두랴
환갑을 넘긴 나인데도 눈코 뜰 새 없는 몸이
이 어미 깊은 잠 들라고
자장가를 부르누나
지난 해 어느 봄날 나고야 곷구경 갔다가
능수매화 바라보며 서로 손을 잡았었지
오늘 와 문득 생각하니
바로 네가 능수매화 구나. 67쪽
<< 아버지 >>
나는 일흔이 넘도록
아버지를 부를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
아직 나이 어린 손자 손녀들은
아버지른 부를
아버지가 없다
하늘의 별만큼이나
평생토록 불러도
닳지 않을 이름 아버지
그 흔한 이름 아버지
어떻게 다시 들려주나
어디 가서 찾아주나
이름 나도 부르지 않을란다
아버지 내가 부르는 이름
어린 것들에게 들려주지 못 할 바에야.
2017 11 24.
구상 문학상
시상식 참가자 전원에게 주신 만찬 !
고깃집과 해물탕집. 2곳.
삼풍 숯불갈비
02-2634-3035.
영등포구 국회대로 38길 8.
당산동 3가 91-1.
동해 해물탕
02-2677-1612.
영등포구 당산로 32길 13.
당산동 3가 127-1.
<< 빈 서울 >>
아들 내외는 일본으로
딸 내외는 터키로
작은 딸은 중국으로
모두 바쁘게 떠나갔다
서울은 만원이라던데
나는 적막강산이구나
사직동 오층 너른 집
나는 이제 주인이 아니
남의 집 지키 듯이
창문만 열고 닫고
저녁상 앞에 놓으니
손가락이 무겁다.
ㅡ36
<< 두 발로 걷기 >>
산짐승은 네 발인데 사람은 두 발이라
무거운 몸 두 발 딛고 여든 해를 걸었더니
이제는 앉고 서기도
힘든 날이 왔구나
나를 잡아주는 손의 따듯함을 알고
혼자서는 설 수 없는 그 슬픔을 배우면서
내 앞에 남은 길들을
손으로 헤어본다
다시 서 있고 싶다 두 발로 땅을 굴리며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과
산 넘고 물을 건너서
먼 길 한번 걷고 싶다.
ㅡ31
<< 밤이 너무 길어 >>
하마 날이 세는가
창문을 열어봐도
우리집 회나무 가지
밤은 아직 감감하고
하늘엔 묻어둔 별빛
깜박이는 새벽녁
내일은 누구를 찾을가
누구에게 전화를 걸가
이제는 친구들도
거의 세상 떠났는데
배게 모 적시는 새벽 별
갈수록만 너무 긴 밤.
ㅡ60
<< 아무 것도 없는 빈 집 >>
여기는 노인들만이 서로 모여 사는 곳
남아도는 시간이 하도나 지루해서
서로들 내려 설 종점이
어디냐고 묻는다
어제까지 꽃신 신고 쪼작쪼작 걷던 그들
어느새 노인이라니 믿겨지지 않는 피안
영원히 잠들 피안이
아득하고 멀구나
한 생이 멀다해도 백 년도 한 순간을
풀잎에 매달린 이슬 그것도 일순일 뿐
종점이 바로 여긴데
아무것도 없는 빈 집.
ㅡ32
<< 폭설 이후 >>
서울 살이, 내 반 백년
마흔 해 사직동 집
처음 보는 폭설이
앞 마당에 쌓이더니
어느 새
꽃샘바람에
진달래가
먼저 핀다.
내게도 봄은 있던가
허리 펴고 마중 온다
회화나무 후박나무
속잎을 다투어 내밀고
연산홍
수줍은 듯이
고개 숙여
볼 밝힌다.
ㅡ38
<< 근황 >>
한밤중 잠이 깨어
시계침 소리만 헨다
쫒기 듯 예 왔는데
무얼 그리 제촉하는가
창밖에 새벽이 와서
새울음이 달랜다
목숨을 다둑이는
시각을 쪼개다 보면
남들은 짧다는데
나는 하루 해가 너무 길다
바쁜 길 어서 가라는데
제자리걸음만 하고.
ㅡ39
< 구상 문학상 > 본삼 수상 소감
감사합니다. 이 시간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계실 구상선생님께 삼가 이 상을 올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의 글에 이토록 큰 영광을 입혀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실 저는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였으나 어른들이 서둘러 결혼을 시키는 바람에 이는 좌절되었읍니다. 그래도 꿈을 버릴 수 없어 두 아이를 낳고 늦깎이로 막 개교했던 대구 효성여대의 국문과에 입학을 하였읍니다. 그 때 강의실에서 처음 뵈었던 구상선생님의 얼굴은 지금도 제 머릿 속에 선명합니다. 당시 선생님은 한국문학에 대한 강의를 하셨는데 학생들의 인기가 굉장하였고 저는 무엇을 배웠는 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훤출한 키에 잘 생긴 얼굴, 그리고 크고 부드러운 음성만이 기억에 남아 있읍니다.
전쟁 후 셋째아이의 출산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그저 평범한 아내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나름 열심히 살았읍니다. 남편의 사업도 번창하고 아이들도 공부를 잘해서 저의 생은 그저 그렇게 마무리 될 줄 알았읍니다.
그런데 뜻밖에 저의 평온하던 삶에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이 내렸읍니다. 마흔아홉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빛이라고는 한 줄기도 없고 오직 어둠만이 길을 막고 있을 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읍니다. 시인이신 아버지가 시조시인 정완영 선생님을 모시고 저희 집에 오신 겁니다. '시조를 배우거라' 라고 하신 것이지요. 이미 글 쓸 나이도 한참 지났지만 제가 아버지의 가르침을 뿌리치지 못하여 시조쓰기 공부를 시작하였읍니다.
그것이 저를 구원하는 밧줄이 되었읍니다. 저는 그렇게 어둠 속에서 새 빛을 만나 눈을 떴고 아버지는 제게 두번의 목숨을 주셨던 것 입니다. 시조가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었는지 이태극 선생님이 하시는 '시조문학' 에 등단하게 되었고 제가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읍니다. 그 후 제가 시조집을 내고 문학상을 탈때마다 가장 기뻐해주셨던 분이 구상 선생님 이셨읍니다. 그렇게 구상선생님은 저의 문학스승이셨고 아버지셨읍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이름으로 주시는 이 상을, 그것도 시조를 잘 쓴다고 받는 것을 선생님이 가장 기뻐하시겠지요. 그렇읍니다. '구상문학상'은 이 나라 모든 시인들이 높이 우러러 보는 큰 문학상이고 저 또한 아득히 우러러 보았을 뿐 저의 꿈이 닿지 못할 곳에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현실이 될 줄은 기대하지도 않았읍니다. 이제 저의 문학적 소원은 모두 이루어진 것 입니다.
구상선생님! 이제 남은 시간동안 붓을 가다듬어 한자라도 더 쓰겠읍니다. 그리고 하느님 제 기도를 받이주셔서 감사합니다.
53
<< 너 있는 곳으로 >>
엽서도 한 장 없이
바람인가 구름인가
물길 하는길 다 큲겼는가
십 년 세월 기별도 없이
강 건너
어느 나루터에서
서성이고 있는지
풀씨 하나 가슴에 묻고
창문 밖만 내다 본다
달은 이미 기울었는데
잠은 멀리 달아나고
그 어디
너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마음일레.
53
35
<< 사직단 근처 >>
해 질 녘 집을 나서
사직단을 돌아본다
먼 왕조 솔바람 소리
내 어찌 들으랴만
세월의 무게에 눌려
빈 의자에 앉는다
사람의 한 생애도
이어지면 역사인 것
인왕의 묏부리가
넌지시 이르는 뜻
온 길이 아예 없으니
갈 길 또한 있으랴
35
46
<< 나도 아방가르드를 쓰고 싶다 >>
나이가 들었어도
생각은 늙지 않아
홍대 앞 카페골목
어정대고 싶다마는
그 누구 반길 이 없으니
내 집 뜰만 바자난다
요즈음은 시를 써도
아방가르드가 대세인데
붓을 들면 백수 구상
싯귀들이 앞 가린다
한 시대 훌쩍 뛰어 넘는
나만의 시를 못 쓰고.
46
47
<< 작은 행복 >>
어미닭 병아리 까듯
봄도 부화하는가
접시꽃 베고니아
마당가에 옮겨 심다가
까르르
웃는 봄볕에
마음속 겨울이
풀린다
나이는 이제 그만
머리맡 책도 덮어 두고
오늘은 옛 친구 불러
꽃구경이나 떠날가
해묵은
시름 다 털고
참새처럼
재질거리며
47
108
부활
잎이 지는 계절입니다.
나무들이 길을 떠나고 있읍니다
봄으로부터의 여정을 끝내고
긴 잠 속으로 들어가고있읍니다
저 나물들의 길을 따라
지금 내가 가고 있읍니자.
온몸으로 피웠던 꽃
살과 피를 바쳐 맺혔던 열매들
다 떨군 빈 가지 입니다
나무들은 다시 봄을 맞겠지요
머리에 화환을 쓰고 눈부시게 부활하여
새들 더불어 노래하겠지요
그러나 내게는 봄이 오지 않습니다
내 마지막 기도는 오직
골고다의 언덕에서 십자가를 짊어지산
그리스도의 용서와 은총으로
내 영혼의 새 생 명을 얻을 것
번뇌와 고통을 내려놓고
이대로 벗은 나무가 되어
내가 왔던 길로 가고 있습니다.
109
114
<< 내게는 그런 친구가 있어 >>
자주 만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칭찬도 허물도 가리지 않는
그런 친구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흐트러진 머리 손으로 쓸어 올리며
남해의 바람이야기를 듣다가
높고 먼 산울림 이야기를 하다가
금방 부쳐온 문학지를 읽다가
요즘 일부 시인들이
앞다투어 난해성 작품을 쓰며
아방가르드네 포스트모던이네 한다는
그런 이야기들 사이에
한 발짝 한 발짝 나도 빠져들다가
한 두 마디 건네는 말이
머릿 속으로 쏙 들어오는
그런 친구들이 내게는 있다
나도 누군가의 그런 친구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그건 지나친 욕심이고
애인도 되고 스승도 되는
친구가 있어 나는 외롭지 않다.
114
106
<< 당신의 하루를 더 주옵소서 >>
하루를 더 주옵소서
비록 눈 흐리고 허리가 굽어도
오늘로 끝날 수는 없습니다
넉넉히 내게 주신 시간을
어느 한때도 보배처럼 쓰지 못 하고
빈 수레만 끌고 왔읍니다.
세월도 경험도 지혜도 깨달음도
당신이 주신 귀중한 은총
감사하며 쓰게 해 주옵소서
주님 아직 기도가 남아 있읍니다
당신과 나의 이웃에게 바쳐야 할
감사와 나눔의 시간을 갖고 싶읍니다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고
사랑하는 것들에게 더 사랑을.
106
98
<< 마음은 제자리 못 얻고>>
서일당시
서울서
차를 몰아
금단산은 한 시간 길
기슭에
터를 얻어
한 칸 집을 지었건만
마음은
제자리 못 얻고
혼자 비자닙니다.
98
99
산 숲엔 저들만 둘이서
ㅡ서일당시.
산나리꽃 같은 해가
혼자 가는
하룻날은
내리는
골물소리
그도 혼자 흘러가고
산 숲에
저들만 둘이서
넘나드는 꾀꼬리
99
71
<< 묵주 한 줄 손에 쥐고 >>
남편묘 새 단장 하고
돌아와 잠 안 오는 밤
뚫어진 문풍지 사이로
별이 쏙쏙 빠져든다
내 몸은
여기 있어도
내집은 그곳이던가
손에 꼭 쥐고 갔던
묵주를 헤아린다
드릴 말씀 무엇이리까
닳도록 굴리는 기도
꿈속에
다시 산을 넘어
당신 곁에 눕고 싶은
71
첫댓글 선배님 시가 속속 가슴 파고드는 나이 팔십 중반이 되니 보구싶고 얘기 나누고 싶어도 만날수 없어 그립습니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