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한해 끝자락에서 코쿤족(cocoon. 누에고치 같은 칩거증후군)으로 365일의 마지막 날을 끝내기엔 영 아쉬운 대목이 많다. 소스라치는 갯바람이며 파도소리를 앞에 두고 해넘이를 보며 무거운 단봇짐을 내려놓는 일은 어떨까. 그렇게 아쉬운 일상을 털어내자. 달리기 출발점과 도착점처럼 바다에는 수평성이 그어져 있다. 그 수평선 위로 무던히도 뜨겁게 타올랐던 해가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온 바다를 풀무질한다. 못다 이룬 자신의 흔적을 그렇게 털어내며 사라진다.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떠오를 새로운 태양을 위해.
꽉 막힌 메커니즘의 도심에서 더욱 그리워지는 것이 파도소리이다. 객지에서 살면서 갈수록 잊혀지고 그리워지는 원초적인 고향 같은 대상으로 다가온다. 수직의 삶을 살면서 접하기 어려웠던 수평의 삶, 그 흔들림과 출렁임이 그리운 것이다.
석모도는 당일여행 코스로 안성맞춤이고 아주 고즈넉한 섬이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모든 포구이며 섬이 다 아름다운 풍경을 타고 났지만 부담 없는 거리에 있으면서, 정작 하루 만에 되돌아오기에는 너무나 아쉽고 정겨운 섬이다. 그래서 3대 서해 낙조로 부안 변산반도, 안면도 꽂지해변과 함께 당연히 강화도 석모도를 들었을 것이다. 이들 세 지역의 특징은 낙조도 낙조이지만 썰물 때 갯벌 또한 장관이라는 점이다. 생태체험으로 그만이다. 또한 해변 뒤로 침엽수림을 병풍으로 치고 있다는 점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어촌풍경이 아름답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동경의 섬으로 다가온 석모도
석모도는 강화도 외포리항에서 서쪽으로 1.5㎞ 해상에 떠 있다. 배로 10분이면 당도하는 섬이지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저만치 떨어져 있어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섬 안에는 아름다운 카페, 횟집, 어민들의 터전인 갯마을과 잘 어우러져 있다. 해안선이 41.8㎞에 이르는데 나이테 마냥 둥그렇게 섬 모롱이를 돌 수 있도록 길이 이어져 있다. 섬을 돌며 그 아래로 파도치는 바다를 조망하는 일, 그리고 그 바다에서 삶을 관조하는 일은 더없이 소중한 일이며 알짜배기 여행이 무엇인지를 실감케 한다.
하루 정도 더 투자할 수 있다면 강화도 섬을 하루 일정으로 둘러보고 석모도로 넘어가는 배를 타도 좋고, 석모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강화도~김포 구간의 교통체증을 피해 다음날 이른 아침 나오는 방법이 좋다. 강화도와 석모도는 섬의 크고 작은 것만 다를 뿐 전통적인 사찰 문화와 한적한 어촌 풍경이 서로 빼어 닮았다.
석모도는 본래 세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다가 70년대 간척사업으로 하나의 섬이 되었다.
이 섬은 석모리, 석포리, 상리, 하리, 매음리, 서검리, 미법리 등 7개 마을로 이루어진 강화군 삼산면 소속이다. 삼산면이라는 명칭은 석모도 안에 자리 잡은 해명산 (327m) 상봉산(316m) 상주산(264m) 3개의 산 봉우리가 산(山)자 모양을 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석모도(席毛島) 석(席)은 온상을 의미하는 상(床)자에 거(去)자를 인용한 모(毛)자를 더해 붙여진 이름이란다. 섬 모양이 우리나라 지도를 축소한 것과 같은 지형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기름진 평야 그리고 바다를 낀 천혜의 섬으로 살기도 좋고 즐기기도 좋은 일석이조 금상첨화의 섬이다.
석모도로 가는 배는 갈매기가 동행한다
그 섬으로 가는 길에 갈매기 떼가 동행했다. 인천, 강화도 주변에서 출발하는 장봉도, 신도 등으로 가는 섬 여행의 또 다른 맛이 바로 이런 갈매기와의 속삭일 수 있다는 있다는 점이다. 이는 쾌속선이 아닌 철부선이나 작은 여객선이 갖고 있는 느림의 미학 때문이다. 그 느림 탓에 갈매기들이 어깨를 나란히 겨누며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반복한다. 갈매기들은 떠날 때 동행하고 돌아올 때도 함께 한다. 일반적으로 갈매기들은 섬에 서식하거나, 포구 갯벌을 터전을 삼거나, 고깃배와 여객선 주변을 맴돌며 사는 방식을 취한다. 이들 갈매기들은 여행객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이나 라면 부스러기, 건빵을 받아먹으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산다. 녀석들은 던져주기 전에 손에 들고 있는 새우깡을 낚아채 가기도 한다. 오죽하면 뱃사람들은 이 괭이갈매기를 일러 ‘엽기 갈매기’라고 부르겠는가.
그렇게 여객선이 당도한 석모도 석포리 선착장. 석모도에는 3개의 선착장이 있다. 보문사로 가는 길목에 보문리 선착장, 석모리 사람들과 인근 마을 사람들의 나들이 길목인 석모리 선착장, 그리고 이곳 석포리 선착장이다. 석포리 선착장은 사람이 붐비지 않고 가장 시골스러운 선착장이다. 강화도에서 건너올 때 가장 짧은 항로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조금 올라서면 보문사 방향으로 향하는 ‘전득이’라는 고개가 있다. 푸른 바다와 들녘 그리고 눈부신 염전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조망 포인트이다.
이 고개에서 서쪽 방향으로 가면 석모도의 유일한 해수욕장이 나온다. 폭 50m 길이 1㎞가 조금 넘어 보이는 민머루해수욕장. 드넓은 갯벌이 장관이다. 바닷가에 펜션 등 휴양지와 생태교육장이 갖춰져 있다. 이곳 갯벌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저어새 서식지이기도하다. 석모도는 영화 ‘시월애’ 촬영 섬이었고 뻘강을 걷던 장면이 압권이던 ‘취화선’을 촬영지였으며 드라마 ‘종이학’ 촬영지이기도 했다. 물 차오르는 밀물은 밀물대로, 썰물이면 썰물인 채로 아름다운 섬이 바로 석모도이다.
서해 3대낙조 중 하나인 석모도 일몰과 정겨운 어촌풍경
석모도 해변은 모래밭과 갯벌이 잘 어우러져 있다. 질퍽이는 갯벌과 맨발로 걸을 수 있는 모래톱이 반반씩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드러운 감촉은 바다에 대한 친근감을 높여줘 광활한 바다는 그대로 생태체험장이 된다. 물이 빠지면 연인과 가족들은 호미를 들고 수 십 만평의 바다로 향한다. 누구나 갯벌에 처박힌 돌을 뒤집으면 게들이 쏟아져 나온다. 뻘구멍을 호미로 파고 들어가면 제법 큰 대합, 상합 등이 나온다.
석모도 갯벌은 단위면적당 미생물의 개체수가 서해안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미생물이 많다는 것은 바다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갯벌에는 농게, 칠게, 달랑게, 갯지렁이, 민챙이, 서해비단고동, 소라, 낙지, 모시조개, 동죽, 짱뚱어 등이 수많은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봄과 여름에는 밴댕이와 꽃게요리 맛을 즐기려는 사람. 해수욕, 머드팩의 멋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석모도는 사랑받는다, 가을과 겨울에는 싱싱한 회 맛과 사색의 공간으로 삼으려는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섬을 한국관광공사는 생태관광지로 지정했다.
민머루 해변 옆 마을에 ‘장구너머포구’가 있다. 바다를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어민들의 풍경을 체험할 있는 곳이다. 가족단위로 조용히 머물고 싶다면 이곳 해변에 머물면서 바다를 오고가는 목선과 깃발의 나부낌 그리고 그물질하는 어민들의 생동감 있는 광경과 마주할 수 있다. 이곳 포구에는 통나무로 잘 만들어 세운 횟집과 찻집도 있어 맛과 멋의 여유를 즐기기에도 괜찮은 곳이다. 밀물 때는 포구나 갯바위 낚시를 할 수도 있고 썰물 때는 민머루해변처럼 많은 조개와 게들을 잡을 수 있다.
천년고찰 보문사 종소리와 파도소리의 절묘한 조화
석모도 낙가산 자락에는 천년 고찰인 보문사가 있다. 보문사는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이다. 전등사, 정수사와 함께 강화의 3대 고찰이기도 하다. 보문사에는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는 나한상을 모신 석굴이 있고 418 계단을 따라 산길로 들어가면 사람의 눈썹을 닮은 눈썹바위가 있다. 그 바위 아래 10m 높이의 거대한 마애석불이 서 있다. 보문사 석실과 마애석불좌상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보문사는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해가 질 무렵 혹은 동 틀 무렵 길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 그리고 나지막하게 연이어지는 목탁소리 끝자락에서 만나 울려 퍼지는 파도소리는 절묘하고 오묘하고 신비로운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느끼며 사는지를 이 대목에서 실감한다. 그것은 석모도 여행의 특별한 멋이다. 타오르는 바다를 쳐다보고 있는 나그네 뒤에서 눈썹바위 마애관음보살상이 웃는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고 있는 모습에서 아등바등 아웅다웅 살아가는 인간세상의 이면을 뒤집어 읽게 만든다.
결국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빈손’의 의미가 무엇인지, 탐욕과 비움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되새김질하면서 일주문을 걸어 나온다. 그렇게 보문사에서 나와 북서쪽 방면으로 향하면 ‘한가라지’ 고개가 있다. 그곳에 바다 전망대가 있다. 드넓은 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오고 가는 선박,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풍경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는 갈매기들의 여유로운 나래짓을 볼 수 있다. 올망졸망 서해 작은 섬들이 파도에 출렁인다. 아스라이 보이는 저곳, 맑은 날에는 그 섬들이 확연하게 다가선다고 하는데, 북녘 땅 황해도 연백군이다.
천일염전 등 어촌체험 관광지로 발돋움
민머루 해변으로 들어가기 전 한쪽 방향 길이 있는데 삼량염전 가는 길이다. 해수욕장을 먼저 들렸을 경우는 보문사를 돌아 나오는 길에 이곳을 찾으면 된다. 보문사에서 승용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석모도는 예로부터 염전으로도 유명했다. 이곳 소금은 염기가 매우 좋아 예로부터 상인들로부터 인정받는 상품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천일염전이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학습체험의 기회가 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염전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마냥 신기한 표정들이다. 햇볕에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는 이곳 천일염은 항상 물량이 딸릴 정도인데 생산품은 현장에서 바로 수협에서 사서 수협 직판장을 통해 판매한다. 외포리 선착장에 수협 직판장이 있다.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를 갖고 있는 석모도에 대해 최근 인천시는 2009년까지 석모도 남단 어유정항을 수산물 생산․판매 및 관광시설을 갖춘 ‘어촌체험 관광단지’로 조성하기도 결정했다. 또 석모도를 찾는 여행객이 늘면서 최근 석모도 하리 선착장과 바로 앞 섬인 서검도항을 잇는 강화페리호(69t급)가 취항하기도 했다. 9억1천여만원의 국고를 들여 건조된 강화페리호는 승객 55명, 차량 12대를 적재할 수 있다. 하루 두 차례(오전 8시 40분, 오후 3시 40분 하리선착장 출발)씩 큰 섬사람들과 작은 섬사람들이 오고 가며 갯마을의 인정을 나누고 외부 여행객들이 바다관광을 더 넓혀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아름다운 섬, 석모도. 보고 또 보고 싶고, 돌아오면 또 가고 싶은 섬, 석모도. 오늘도 석모도의 푸른 파도는 해가 지고 해가 뜨는 수평선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다. 달려가서는 철썩철썩 힘차게 손뼉을 치고 있다. 지친 영혼들을 흔들어 깨우듯이....
● 미니상식/천일염전에 대하여
천일염전이라 함은 해와 바람 등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농축하는 시설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천일염전이 발달된 곳은 홍해 연안이나 미국 캘리포니아, 멕시코, 서오스트레일리아 등이다. 천일염전은 토질, 기후, 바닷물, 땅의 형태, 교통 등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토질은 점토 40%, 아주 작은 모래 60% 정도가 혼합된 곳이 가장 좋다.
토질 요건에서 적합한 형태를 띠고 있는 곳이 서해안 갯벌이다. 서해안에서 천일제염업이 발달한 까닭이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뻘이 많이 형성되어 있어 해를 이용할 수 있는 일조시수와 빨리 증발하는 효과가 큰 것이다. 이것이 서해안에서 천일제염업이 발달한 까닭이다. 이러한 천일염전은 과학의 발달과 함께 소금을 대량생산하는 기계발달과 값이 싸지면서 1990년대 들어 사양산업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서서히 추억 속으로 묻히고 있는 것이다.
● 석모도로 가는 길
1. 대중교통
- 서울 신촌 버스터미널에서 외포리행 직행버스(평일 1시간 간격, 주말 30분 간격 운행)
- 강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외포리행 직행버스(20분 간격 운행)
- 외포리항에서 석모도행 여객선(07:30-18:00 30분 간격 운행. 차량선적가능)
- 섬 안에서 버스 운행(08:10~19:10. 10분 간격 운행)
2. 승용차
-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김포나들목→김포시(48번 국도)→강화대교→강화읍(84번 지방도)→냉정 삼거리(우회전)→외포리항
3. 문의
서울 신촌 버스터미널(02-324-0611)/강화시외버스터미널(032-934-3447)/삼보해운(석포리행. 032-932-6007)/풍양호(석모리행. 032-933-8290)/외포리 선착장(032-932-6007)/석포리 마을버스(032-932-4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