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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범신론적 세계관의 시세계
신한식 제2시집 “희망의 까치 마을”
김성열
1.시의 맥락과 창작 태도
신한식 시인의 시는 유장(悠長)하고 거침이 없다. 유장하다는 측면은 확고한 시정신의 확립에서 오는 일관성이며, 거침없다는 측면은 시적 대상에 대한 유연한 수용태도와 자유로운 표출 방식이다. 장강유수처럼 끊김이 없이 큰 흐름을 이어가는 시의 일관성은 시적 정서의 안정성에 기인한 것이며 그 형태는 폭이 넓고 길다.
각각의 개별 시작품(poem)은 큰 흐름 속의 한 부분이며 하나의 맥락을 이루는 그의 모든 시(poetry)는 도도하게 흐르는 장강의 유연함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의 시정신의 물줄기는 끊김이 없고 폭포 같은 낙차도 없으며 시간과 공간의 거리감도 없이 삶이라는 세월의 강을 유장하게 흘러온 의식세계의 강건함을 보여준다. 신한식 시의 또 다른 특성은 시적 대상에 대한 수용태도의 유연성과 표출형식의 자유로움이다. 이와 같은 시작태도는 세계인식의 존재론적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며 시정신의 요체는 범신론적 정신주의 경향이다. 이 시인의 정신주의는 유심론, 물활론, 생명소(生命素) 등의 이론적 근거를 갖고 확신에 찬 창작태도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시에서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사물(존재)은 생명력이라는 실천적인 연관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로서 물활론적 생명체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인의 시적 심안(心眼)에 포착된 무생물이나 동식물까지도 의인화 되어 시적 화자와 동화되어 버린다. 세계의 자아화를 통하여 투사와 감정이입의 형태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시적 경지를 구축해 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의 면모는 서정시의 장르적 특징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이 시인의 시정신 또는 시적 세계관이나 비전에서 발생하는 독창성(獨創性)이라 할 수 있다. 자아와 세계가 동일성으로서의 만남은 대상과의 거리를 두지 않고 시의 미적 전체를 이루는 것이다. “세계가 각각 특수한 성격을 상실하고 하나의 새로운 동일성의 차원에서 승화되었을 때 미적체험 소이 주객일체의 경지가 된다“는 존.듀이의 정의는 그의 시를 읽을 때 새겨볼만한 내용이다. 이 시인의 많은 시작품은 답답하게 막힌데가 없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흐르는 물과 같이, 살랑거리는 봄바람처럼 자연스럽다. 현학적으로 애써 꾸며낸 억지스런 어색함이 없고, 천연의 자연 색깔처럼 순수하다.
이와 같은 시의 맥락은 시인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인생관과 무관치 않다. 허심탄회한 마음의 비움에서 오는 자연스런 결과이다. 죽음을 체험한 한 인간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그의 시에서 읽을 수 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인간적인, 보다 인간적인 심성을 곱게 다스리는 이 시인의 모습은 순수무구한 감정의 화신처럼 결백하고 중후하다.
마당에 돗자리 깔아 놓고
모기불 피우면서
별빛이 너무 좋아서
그 많은 별들의 이야기 들으며
한여름 밤은 깊어가고
별들의 고운 노래
사랑의 노래를
그리움의 맑은 노래
들어보고 싶은데
부실한 내 몸이
그 많은 속삭임을
듣지 못할 것 같아
두 눈을 껌뻑이고 있는데
자장가처럼 곱게 길게
들려오는구나, 흔들이는 마음 깊은 곳으로
별들은 너를 사랑한다
가슴 속 깊이 깊이 끌어안고
별들의 심장 깊은 곳에서
네 노래를
아픈 사랑노래를…. -시 ‘별을 보며’ 전문
한여름 밤에 돗자리 깔고 앉아 하늘의 별을 보면서 느껴지는 마음을 그린 시다. 표현이 담담하고 억지스럽지 않으며, 진정성이 물씬 풍긴다. 정다운 고향 친구와 소근 소근 옛날이야기를 나두 듯이 격의 없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현란한 무도회의 가공된 무대장치도 없이 외딴 주막의 목로에서 술잔을 나누며 담소하듯 여유롭다. 시의 화자는 지금 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별들의 노래까지 듣고 싶어 한다. 왜 듣고만 있는 것일까. 화자가 지금 보고 있는 별은 평생토록 간직한 그리움과 회한(悔恨)의 표상이다. 이 그리움과 회한은 온갖 추억과 아쉬움과 후회와 참회를 수반한 많은 사연들으이 유입되어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별을 끌어들여 스스로 듣고 있는 것이다. 실은 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회한을 별에게 토로하면서 별과 함께 정담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부실한 내 몸이 그 많은 속삭임을 듣지 못할 것 같아 두 눈을 껌벅이고 있는데”(3연)라는 진술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고독한 회한의 정서다. 대자연의 순수한 절대공간에서 자신의 왜소함과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고독감의 표현이다. 별을 보면서 자신의 소회를 토로하는 서정적 화자의 이미지는 나와 마주 앉은 죽마고우처럼 그립고 정다워 보인다.
아무도 모르는 길 하나
나 홀로 걷고 또 걷고 싶은
그리움이 샘물처럼 솟아오르고
행복이 꽃술처럼 곱게 미소짓는
나의 길이 있어서
기쁨이 펑펑 샘솟아오르는
나의 길이 좋다
그 길 걸으며
사랑하고 싶은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파도가 사나운 비바람이
나를 삼킨다 해도
두렵지 않다
내가 걷는 나의 길에
많은 꽃이 피어나기를
항상 염원하고 기원해야지
눈물 철철 쏟아지는
촌노의 슬픔이
빗물처럼 흐른다 해도
손잡고 갈 길이 있어서
행복하다
희망의 언덕을 향하여
춤추듯이 걸어가는
아무도 모르는
길 하나 있어서…. 시 “아무도 모르는 길 하나” 전문
이 시에서 눈길이 가는 대상은 “나”와 “길”의 의미다. “나”는 서정적 자아와 실제 시인의 겹침 현상이고, “길‘은 감각적으로 인식되지 않는 의식 내부에 조성된 관념적인 길이란 점이다. 현상적인 시의 화자가 실제 시인과 겹쳐 보임은 이 시인의 현실적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며, 관념 속의 길로 읽혀짐은 ”아무도 모르는 길 하나“(1연) 이기 때문이다. 이 길은 시의 어느 곳에도 감각상으로 들어오지 않고 길 주변을 장식하는 여러 이미지들만 아른거린다.”샘물이 솟고“ ”꽃이 피어나고“ ”눈물 철철“ “빗물처럼” “춤추듯이 걸어가는” 등의 수식어는 추상적인 길을 감각상으로 형상화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길 하나 내놓고 혼자서 걷는 그 꽃길은 희망과 결의를 다지는 의지의 길이다. 나의 길을 설정해놓고 허허롭게 걸어가는 노 시인의 심회는 비애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싱싱하게 젊어 보인다. “기쁨이 펑펑 샘솟아 오르는 나의 길”(1연) “파도가 나를 삼킨다 해도 두렵지 않다”(2연) “손잡고 갈 길이 있어 좋다”(3연) “희망의 언덕을 향하여 춤추듯이 걸어가는 ”(끝연) 등의 표현으로 감지되는 이 시인의 꽃다운 길은 죽장에 삿갓 쓰고 시 한 수 읊으며 훨훨 떠나는 김립(金笠)이 가는 길과 다르지 않을 것이며, 허접스런 것 다 내려놓고 노년의 삶을 진솔하게 음미하는 시인의 길은 신선이 걷는 청청한 처녀림의 숲속 길임이 틀림없으리라.
2. 유장하고 거침없는 시풍
신한식의 시풍은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유장하고 거침이 없다. 어느 시를 봐도 시풍의 맥락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 내용은 거리낌 없는 시적인 토로이다. 이 시인은 대상에 대한 시적 사유가 자유분방하며 어디에도 무엇에도 제약받지 않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표출시키는 창작태도를 지켜나간다. 대상에 대한 언어적 조작은 물론 대상 자체를 파괴하거나 변형시키는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는 그의 절대권력은 자기의 시와 함께 하는한 천혜의 은덕으로 확신하는 것 같다. 이러한 창작 태도 성향은 우연이나 성품의 탓이 아닐 것이라는 여러가지 정황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문학을 전공한 그가 오랜 휴면기를 지나온 동안 깊이 잠재되었던 문학의 열정이 활화산의 폭발처럼 분출된 것이라는 점과 인생의 쓴맛 단맛, 삶의 애환을 다 겪어온 후에 의연하게 맞대하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성찰의 결과일 것이라는 점이다. 득도인(得道人)의 의연한 품격을 연상케 하는 시인의 심상이 아른거리는 것이다. 이 시인이 자기의 시세계에서 이탈하지 않는한 자기구원자로서의 시혼(詩魂)을 소중하게 품고 갈 것이다.
가을 하늘을 사랑한다
높고 푸른 하늘 위로
꿈결처럼 흐르는 구름들
아름다운 파편들까지
모두 주워 모아 내 아버지, 어머니의 동산에
집 하나 지어드리고 싶다
별빛의 고운 노래 흐르고
그 노래 들으면서
그래도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파도보다 무서웠던 삶의 언덕에서
신념의 날개 펼치노라
하늘과 땅 사이 그 많은 부도덕의 성벽 속에서
부끄럽지 않은 고집과 인내의 나날을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과 대화하며
인고의 쓰디쓴 날개 속에서
한과 설움의 그늘 속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명분과 행복의 날개 펼쳤노라
미소지을 수 있는 내 삶의 나래여. -시 “하늘과 땅 사이” 전문
유장한 시풍의 예시로 뽑은 이 시는 어떤 이미지 이론이나, 비유적 기법이이나, 시의 전략적 측면으로 접근하면 어려워진다. 이 시에서는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을 살펴봐야 한다. 화자의 의식은 무엇에도 어떤 누구에게도 저해 받지 않고 정서적 반응을 받아쓴 기록으로 본다면 실마리가 잡힌다.이러한 정서 상태는 순수하고 진솔하기 때문에 기록자는 확실한 자신감이 넘치게 된다. 회의하지 않고 확신에 찬 발화(發話. 시적진술)는 유창하기 마련이고 유창한 발화의 연장선상에서 유장한 시풍이 확립되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 시는 제목부터 돌발적이다. 하늘과 땅 “사이”는 아주 막연한 추상개념이다. 화자의 내면에서만 설정된 의식의 절대공간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동산에 집 한 채 지어드리고 싶다”에서도 의식내의 “동산”이며 “집”인 것이다. “별빛의 고운 노래” “삶의 언덕” “부도덕의 성벽” “바람과의 대화” “미소지을 수 없는 행복의 날개” 등의 표현은 가시적 사물(대상)이 아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생성되는 관념적인 존재들이다. 가시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따질 것 없이 순수하게 시의 문맥을 따라가면 화자의 정서를 느끼게 되고 이 느낌을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한식의 시풍이 큰 맥을 형성하여 유장하다고 평가된다는 점은 서두에서 밝힌 바 있다.
청산도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섬 중의 섬 청산도가 좋다
공기가 맑고 깨끗해서 껑충껑충 춤추고 싶다
아름다운 산에는 화려한 꽃의 미소가 유혹하고
숨어서 미소짓는 꽃들의 화려한 행진이 보인다
깨끗한 바다물고기가 다가와 인사하고
금빛 노을 화려한 무지개가 손짓한다
청산도가 보고파진다, 가서 살고픈 청산도
청산도여, 비탈진 산에서 뛰고 싶다
찌든 가슴 크게 벌리고 산새들의 지저귐
처마 맡에 지어 놓은 새들의 보금자리
아름다운 청산도여, 그리운 청산도여. - 시 “그리운 청산도” 전문
청산도를 그리워하는 시적 화자의 현재 위치는 어디인가를 생각해 보면 이 시인의 시적 성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화자의 위치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시제(時制)는 현재이다. 화자는 지금 청산도에 있지 않고 지난날의 여행 경험을 회상하면서 마음속의 그림을 시라는 형식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그리움”이라는 언어로 화자의 정서를 표출해 내는 시점은 현재인 것이다. 이를테면 과거가 집약된 현재로 표현되고 있으므로 화자의 위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인의 의식공간은 언제라도 시공을 초월하여 자리잡고, 이동하고 비상하며, 지하까지도 파고들 수 있다. 서정적 자아의 절대권력(자유의지)은 우주만상을 모두 다스릴 수 있다. 이러한 서정시의 모습은 논리와 합리성을 초월하여 다른 사람의 공감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서정적 화자의 모습은 이 시인의 많은 시에서 볼 수 있다. 시의 화자는 시간과 공간, 동식물과 무생물, 인간과 자연 등 모든 존재 일반을 거침없이 자유롭게 다스리고 관리하고 요리한다. 이러한 점은 시인의 시적인 의식공간이 무한히 개방되어 있다는 점과 절대적인 자유의지의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무한한 것이다. 그의 유장한 시풍과 관련이 깊다.
예시한 시 “그리운 청산도”를 군소리 붙여 해설할 필요가 있겠는가. 서정적 화자가 그려낸 그리움의 정서를 읽고, 보고 느끼면서 간접체험으로 즐기면 될 일이다.
3. 범신론적 세계관의 시세계
신한식의 시세계는 범신론(汎神論)에 근거한 철학적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범신론은 세계전체를 신의 실체로 보는 스피노자의 존재론적 이론이지만 맥을 같이하는 유심론(唯心論), 정신주의, 물활론을 배경으로 신한식의 시세계는 구축되어 있다. 장황한 이론을 단순화 시켜 물활론적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그의 시적 대상은 모두 살아 있다. 생명의지로 뭉쳐 있는 한 덩어리 거대한 생명체다. 이러한 생명체의 모든 시적인 존재는 신한식의 사랑과 삶의 의지로 수정(受精)되어 시적 창조물로 부활하게 된다. 시론으로 연결 짖는다면 “세계의 자아화” 또는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이다. 그의 시적 의식공간은 세계의 모든 존재를 생명체로 재탄생 시키는 거대한 자궁속의 신비한 공간이다.
밝은 달님이 둥글고 곱게 빛나는
아름답고 고운 미소를, 환하게 아롱지는
빛나는 밝은 노래 부르는 달님이
삶의 고통과 아픈 상처에 매달린
시인(詩人)과 마주서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먼저 시인(詩人)이 말할 것이다
네 동네에는 기쁜 미소만이 살고 있느냐
둥근 네 아름다움이 찌그러지는 고통과 아픔들을
어떻게 참고 견디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그 속에 숨어 있는
쓰리고 아픈 상처와 고뇌들을
어떻게 소화하고
밝은 미소들만 먹고 살 수 있을까
달님이 속삭일 것이다
모든 근심과 걱정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슬퍼도 괴로워도 사나운 바람이 불어와도
그냥 미소지으며 기쁜 노래 부르며
평화와 사랑과 기회의 아름다운 미소들만
먹으며 사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달님과 시인(詩人)은 서로 끌어안고
긴긴 포옹 속에 아리따운 단꿈에
소망의 날개 달고 춤출 것이다
긴긴 빛나는 춤을 추면서…. -시 “ 달님과 시인과의 만남” 전문
유사 대화체로 된 이 시는 삶의 고통과 비애, 소망과 고뇌의 복합된 정서를 형상화 하고 있다. 시의 주제를 구현하기 위하여 달님과 시인의 만남을 주선하였고, 대화하는 두 상대를 지켜보는 화자는 배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안 보이는 화자는 대화를 유도하고 삶의 고뇌라는 주제를 이끌고 있다. 달님과 시인은 서로 마주보고 곁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3자적 대화자로서 함축적 화자이다. 두 화자는 주제를 구현하기 위한 소재의 소품쯤으로 처리된 시의 전략적 가담자일 뿐이다. 이들 대화자는 사전 약속에 의한 방백적(傍白的) 대사의 연극처럼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없고, 연출자(시인)의 지시에 따르는 배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시의 전략기법은 추상적인 주제(삶, 고뇌, 슬픔, 소망)를 구체적인 상(像 )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달님과 시인의 이미지와 주변의 정황을 그려 보여주면서 고통스런 삶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고통스런 삶에 대한 극복의지이며, 의지의 내용은 “평화와 사랑과 기회의 아름다운 미소만 먹으며 사는 방법”(끝연)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험한 가시밭길의 삶이라도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미소를 먹으며 긍정적으로 사는 방법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진정한 삶의 길이라는 것이다. 의인화 된 달님이 다시 사물화 되는 활유법의 기법이나 “기쁜 미소” 같은 관념이 의인화 되는 변용의 형태는 시인의 의식 내에서는 자유로운 가변성의 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밝은 달님이 둥글고 곱게 빛나는“(1연 1행)에서 달님(인간)이 둥글고 곱게 빛나는 사물로 치환되는 무한한 가변성의 세계인식을 볼 수 있다.
(1)한없이 착해져가는 심성의 마을에
노래하는구나, 눈을 감고 깊은 사념(思念)의 바다 위에 -시 “여유”부분
(2)성난 바람아, 네 날센 창칼보다
사나운 칼 끝에 떨고 있는
흐느끼는 눈동자에 고여 있는 눈물방울을 -시 “상처를 씻어 주자” 부분
(3)가을은 모든 무더위와 권태의 옷을 털어 버리고
야호, 소리치면서 두 팔을 하늘 높이 들어올리고 -시 “새야 새야 파랑새야”부분
(4)황금 들녘에 혼자 쓸쓸히 서 있던
네 모습이 그립다 보고 싶다
내 어릴 때 보던 너의 착하고 순진한
허수아비여 네모습이 한없이 그립다 -시 “허수아비” 부분
(5)쭉쭉 뻗은 나무들이
대화하자고, 말 좀 해보라는데 -시 “깨어 있어야“ 부분
(6)새롭게 탄생하는 꽃들의 아름다운 꿈을 꾸거리
겨울 숲 속 나목에게. -시 “겨울 숯 속 나목에게” 부분
(7)네 살 속까지 뒤엉킨 눈덩이를
차라리 큰 손이라도, 허공이라도
흔들어 버리거라 =시 “겨울나무들이여” 부분
(8)매화야, 너의 고운 얼굴에
큰 사랑을 안고 마음껏 노래하거라 -시 “순수의 꽃 매화에게“ 부분
(9)슬픈 전설처럼
고목의 기도소리 들려오는데
눈물이라도 펑펑 쏟아지고 싶었던
(10)아름다운 꽃들의 고운 봉사
달빛보다 아름다운 꽃들의 대화
네가 있어 천 겹의 어둠을 뚫고
황홀히 웃는 어여쁨 있어서, 너 꽃의 미소여. -시 “꽃의 미소여“ 부분
(11)무더위와 공해가 인사동 대로변에
시위라도 하려는가
네 빛나는 모습 보고, 같이 숨쉬고
네 얼굴 미소짓는
큰 사랑 누리며 기쁨 샘솟고 -시 백일홍“부분
범신론적 세계관에 근거한 신한식의 시세계를 엿볼 수 있는 시구를 뽑았다. 인용 된 내용은 개별 작품의 일부분이지만 시집 전체의 작품에 맥락을 같이 한다는 면에서 발췌한 것이다. 한 시인의 여러 작품이 크게 한 맥락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은 시인의 시세계가 확고하게 정립된 결과인 것이다. 범신론적 정신주의에 근거한 이 시인의 시세계는 무한한 가변성의 공간이다. 시인의 의식 속에서는 세계의 모든 존재는 기존관념에 지배받지 않는 본질적인 존재 자체이고 시적 의지에 따라 변화무쌍한 변용태(變容態)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정신의 구현은 어떤 형태일까. 우선 창작기법을 보면 이 시인은 “무작법의 기법”을 전횡적으로 활용한다. 무작법이란 작법 없음이 아니라 틀에 박힌 기존의 어떠한 이론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기대로의 방법적 발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발상은 의인법,의물법, 의동물법 등의 활유법으로 구현되고 시정신의 핵심은 생명주의다. 살만치 살았다고 생각한 시인의 인생관은 세계인식과 해석에서 의식의 해방을 선언한다. 해방된 의식공간에서 고고한 자신의 시인상을 다듬어가면서 절대자와 공존하는 시의 세계를 유영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대로 그의 시적 대상은 인간 비인간, 생물 무생물의 상대적 경계를 허물고 생사를 넘나드는 생명소(生命素)로 존재한다. 시에 동원된 소재는 주제(정서)의 구현을 위한 전술적인 전위대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시의 소재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겠지만 이 시인의 경우는 소재와 주제가 동격일 경우도 있고, 생뚱맞게 대상을 결부시키는 등의 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1)~(11)의 인용 부분을 통하여 이 시인의 시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1)의 경우 “심성의 마을” “새” “사념의 바다”는 모두 살아 있고, 사유하는 인간의 모습들이다. 심성(心性)이란 불교식으로 말하면 참되고 변하지 않는 타고난 본성(心性情)인데 이러한 심성을 지닌 사람으로 "마을“이 묘사 되었고, 새는 짹짹거리지 않고 노래하는 사람을 흉내 내고 있으며, 바다는 인간의 마음으로 무엇을 사유하는 형상인 것이다.
(2)의 경우 “바람”은 성난 사람의 험상궂은 모습으로 “칼”은 사나운 짐승으로 “눈동자”는 흐느끼는 인간의 몸부림으로 감정과 의식의 주체자로 변용된 모습이다.
(3)의 경우“가을”은 실증나서 게으름을 피는 사람이 옷을 벗는 모습이며, 두 팔을 높이 들어 야호하고 소리치는 등산객의 형상이다.
(4)의 경우 “허수아비”는 그립고 보고싶은 착하고 순진한 사람의 허름한 모습으로 의인화(인간화) 되어 쓸쓸히 서 있는 자태이다.
(5)의 경우 “나무”들이 대화하자고, 말 좀하라고 채근하는 사람의 기대감으로 가득 찬 모습을 닮아 있다.
(6)의 경우 “꽃”들은 식물학적으로 피어나지 않고 인간과 동물 같은 포유동물의 번식처럼 태어나고 있으며,
(7)의 경우 “겨울 나무”의 껍질 속 줄기는 인간이나 동물의 몸체조직처럼 유기질의 살(肉)로 변형되어 있다.
(8)의 경우 “매화”는 고운 얼굴의 “너”로 노래하기를 요청받은 사람의 겸손한 망서림의 표정으로 읽어진다.
(9)의 겨우 “전설”은 심각한 슬픔을 지닌 비련의 인간상으로, “고목”은 기도하는 성자처럼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10)에서 “꽃”은 마음씨 곱고 헌신적인 봉사자이며, 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황홀하게 미소지으며 서 있는 “너”의 표정을 지닌 사람으로 현신(現身)되어 있다.
(11)에서는 “무더위”라는 무형의 관념이 웅성거리며 시위하는 군중의 모습으로 호흡하고 이동하는 동작체의 형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1)~(11)의 인용 구절은 이 시인의 시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시집 전체의 시에서 발췌한 것이다. 예시에서 보는대로 그는 물활론적 의인화 기법을 능숙하게 잘 활용한 시인이다. 이 시인의 시적 대상은 사람으로 생물로 또는 생물이 무생물로 부활 변형의 형태가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전지전능한 신의 손길처럼 거침이 없다.
4. 결어
지금까지 언급한 신한식의 시세계는 범신론적 세계관의 정신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물활론적 창작기법으로 의인화, 의물화, 의동물화의 시적 전략을 능숙하게 조작, 소화, 또는 문맥화 해낸다. 확고하게 정립된 자신의 시세계를 알차게 구축해 나가는 시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토양에서 분출되는 그의 시는 유장하고 거침이 없고, 정열적이다. 이러한 시적 행보는 어디까지 이어진 것일까. 아직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7월에 상재한 시집 ‘희망의 새 아침“은 2000부가 매진되어 재판을 계획 중이라니 경이로운 일이다.
이 시인의 유장한 시의 강폭이 더 넓어지고 더 거센 물줄기로 도도하게 흘러가기를 기대하면서,
지켜보는 사람의 눈길은 자꾸만 시계를 보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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