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난날의 러시아의 오데사에서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아버지와 여학교의 지리.역사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22년에 오데사 대학의 물리수학 학부에 입학하였으나, 그의 재능을 알아차린 부친은 대대로 물려받은 은식기류를 처분하여 다음 해 레닌그라드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1925년에 학점을 모두 따고 대학원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25년에 가모프는 레닌그라드대학에서 네 살 아래인 란다우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룹을 만들어 양자역학을 연구하였다. 1928년 가모프는 a(알파)붕괴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또 1930년경부터 1,000만도를 넘는 태양이나 별의 중심부에서의 격심한 열운동에 의해 원자핵의 융합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33년 10월 브뤼셀에서 원자물리학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에 출석한다는 명목으로 겨우 여권을 얻은 그는, 다시는 소련에 돌아오지 않을 결심으로 레닌그라드 헬싱키행 열차를 탔다. 그는 회의가 끝난 다음 런던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다음해 조지 워싱턴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가모프는 1948년에 미국의 물리학자 알파와 베테와 공동으로 쓴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저자 이름이 머리 글자를 따서 그 후 '알파베타감마이론'으로 불리게 된 이론이다. 1965년에 벨전화연구소의 펜지아스와 윌슨 두 사람은 파장 7.2cm인 전자파를 이용하여 우주에서 오는 복사파를 관측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펜지아스와 윌슨 두 사람은 1978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가모프는 그들이 처음으로 우주복사파를 관측한 1964년에서 4년이 지난 1968년에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만일 그가 1978년까지 살아 있었다면 펜지아스 및 윌슨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으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