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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놀이 30년, 잘 놀았습니다. 배우 윤문식(67)은 1981년 ‘허생전’을 시작으로 마당놀이와 인연을 맺어온 지도 30년. 그 세월의 두께만큼 관객도 그를 살가워했다. 질펀한 농담에 배꼽을 잡았고, 번뜩이는 풍자에 고소해했다. 그런 그가 30주년을 맞아 “이제 떠날 때가 됐다” 며 마당놀이와의 이별을 통보했다. “원래 10년만 하고 그만두려 했다. 못 해서 여기까지 온 거다. 마음이야 나도 마당에서 죽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젠 후배들이 할 때가 됐다. 언제까지 우리 노인네들이 붙잡고 있어야 하나. 지금 마음은 곳간 열쇠를 며느리한테 물려줄 때의 심정이랄까. 대신 열쇠 한번 주면 난 간섭 안 할 게다. 그건 며느리 마음대로 해야지, 내가 또 미주알 고주알 하다간 배가 산으로 간다. 후배들 역시 지금껏 10년 이상 해왔다. 충분히 자격이 있다. 그저 바람이 있다면 마당놀이가 가지는 정신만은 지켜주었으면 한다.”
“마당이 어떤 곳인가. 애 낳으면 탯줄 태웠던 곳이 마당이었다. 어려서 뛰어놀고, 커서 뽕나무 밑에서 자빠뜨려 결혼식을 하던 곳이었고, 죽어서 상여 나가는 곳이 또 마당이었다. 한국인의 마당엔 우리네 삶의 모든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담겨 있었다. 그뿐인가. 마당엔 동료애가 있었다. 슬프면 동네 사람이 다 같이 모여 슬퍼하던 공간이 마당이었다. 거기서 공동체 의식이 싹텄다. 지나가는 낯선 이가 하루 묵고 가겠다고 마당을 찾으면 주인은 찬밥을 먹을지언정 그 사람에겐 따뜻한 밥을 대접했다. 근데 지금은 어떤가. 옆집 802호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우리’ 라는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건 마당이 없기 때문이다.”
교장 선생님이 “넌 배우 자질이 충분하니, 서울로 올라가 연극영화과에 진학해라.” 그 얘기를 듣고 연기자가 되고 싶어 서울행을 택했다.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구두를 닦아 돈을 모아 연기학원을 다녔고,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냈다. 경쟁률 17대1. 시험을 보러 학교에 가니 줄이 길었다. 맨 끝에 딱 나처럼 생긴 두 명이 눈에 들어오는 거야. 그게 박인환과 최주봉이야.”
중앙대 1학년, 남사당패를 따라다니다 여성국극단 '햇님달님'의 주연배우에게 반했다. 무대 위 그녀는 빛이 났다. 윤씨보다 8살 많은 국극의 1인자 박옥진씨(배우 김성녀 어머니)였다. 그 후 또 7살 아래 연극하는 여자에게 반했다. 그녀를 따라 극단도 옮겼다. "독신주의자"라던 그녀는 얼마 후 연출자 손진책(현 극단 미추 대표)씨와 결혼했다. 그녀가 김성녀다. 그가 끌렸던 건, 무대 위 카리스마였다. 현실 속 그의 사랑이었던 아내는 교사였다. 윤문식이 평생 돈에 굽히지 않고 연극을 할 수 있게 해줬다. 병원비 아까워 병을 끼고 있던 아내는 당뇨로 엉덩이가 괴사했을 때야 비로소 남편을 따라 병원에 갔다. 15년을 투병하다 2007년 세상을 떴다.
“당신은 연극만 해”라며 힘을 주었던 아내
아내를 떠나보내던 날, 그이는 둘만의 추억거리가 많지 않다는 사실에 마음이 미어졌다. 병간호하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저씨, 그동안 고맙습니다. 신세 많이 지고 갑니다’ 라는 쪽지를 남겼던 아내. ‘내가 좀 더 잘해줄 걸, 나랑 살지 않았으면 아프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눈시울을 많이 적셨다.
그이는 요즘 꼭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잠을 청한다. 아직 꿈에서 아내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만나게 되면 못다한 마음을 표현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밖에서는 늘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자주 운다고 한다. 실컷 울고 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고. |
30년 고별 무대 김성녀 1955년 그러니까 다섯 살 때였다. 당시 우리나라 여성국극 스타였던 박옥진(2004년 작고) 여사의 손을 잡고 천막극장 무대에 처음 섰다. 어린 나이에도 무대에서 노는 끼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무대 주변은 곧 놀이터였고 인생의 나무를 심는 터전이었다. 유랑극단에서 무대를 세우고 허무는 모습을 보면서 천막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 마당놀이 30년을 결산하는 김성녀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있는 마당놀이 전용 극장 앞에서 자신이 직접 짠 모자를 쓰고 웃고 있다. 뒤에 보이는 것은 이번 공연의 포스터.
# 허생전부터 인기작만 추려 공연
김성녀(60). 윤문식· 김종엽과 함께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라고 불린다. 김성녀는 이들과 함께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마당놀이’로 관객들과 만났다. 그렇게 30년 세월이 됐다. 이미 3000회 공연을 돌파했으며 매년 10만명 이상씩 관객을 끌어들여 지금까지 350만명이 이들의 연기에 울고 웃었다. 뿐만 아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만큼 기록들이 많다. 예를 들어 스태프와 배우가 30년 동안 쭉 함께해 왔다. 뮤지컬은 대개 더블 캐스팅을 하게 되지만 김성녀의 ‘마당놀이’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30년 동안 변함없이 혼자 배역을 맡으면서 한 번도 펑크를 낸 일이 없다.
“세 분이 함께 서는 무대는 이번이 마지막인가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우리 셋이 이끌어온 마당놀이는 이제 고전으로 남게 되겠지요. 그동안 ‘마당놀이’라고 하면 다들 우리 셋을 떠올렸잖아요. 이번 공연에서 30년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후배들이 잘 이어 갈 수 있도록 (세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과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서울신문 일부발취 |